[제주형 도시재생을 묻다] ⑥ 속칭 ‘방석집’ 밀집 무근성 7길…도시재생 업종 변경 바람

제주시 원도심 무근성 7길에서 운영되던 유흥주점 '황금 민들레(왼쪽)'가 최근 '무근성 모다들엉(오른쪽)' 식당으로 업종을 변경했다. 
제주시 원도심 무근성 7길에서 운영되던 유흥주점 '황금 민들레(왼쪽)'가 최근 '무근성 모다들엉(오른쪽)' 식당으로 업종을 변경했다.

“술집(유흥주점) 그만두고 식당으로 바꿨더니 만나는 사람마다 제 얼굴이 살아났다고들 하네요. 하하~”

제주시 무근성 7길에서 속칭 ‘방석집’이라 불리는 유흥주점을 운영하던 이은순(64)씨. 그녀는 술 팔면서 한동안 잊고 살았던 웃음을 밥을 팔면서 되찾았다.

유흥주점 '황금 민들레' 자리를 새롭게 단장해 지난 27일 음식점 '무근성 모다들엉'을 개업했다. 술 장사가 아니라 식당으로 전업하게 된 것은 도시재생사업 때문이다. 그녀는 스스로 잃었던 미소를 되찾게 된 것은 도시재생사업 때문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비단속곳 같은 사치도 아니고 술집해서 어느 정도 돈도 벌고 여유있게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어찌 생각 같으랴. 산전수전 다 겪어야 하는 것이 술장사인데, 소위 방석집으로 불리는 유흥주점을 8년여간 운영하며 이씨는 굴곡진 인생의 경험을 쓰라리게 경험해야 했다. 

그녀는 제주도 도시재생센터의 컨설팅을 믿고 술집을 접고 식당으로 전업하기로 마음 먹었다. 결국 지난달 27일 제주다움을 담은 음식을 판매하는 ‘무근성 모다들엉(무근성 7길 1)’이라는 작은 식당의 문을 열었다. 

일상도 바뀌었다. 늦은 밤부터 이른 새벽까지 술을 팔던 이씨는 현재 아침·점심·저녁 하루 세끼 음식 장사를 하고 있다. 제주시 원도심 도시재생사업의 일환으로 추진된 ‘무근성7길 유흥업소 업종전환 지원사업’에 따른 업종 변경의 첫 사례다. 

전남 함평이 고향인 이씨는 40여년 전 친언니를 따라 제주에 왔고, 제주에서 남편을 만나 가정을 꾸렸다. 자녀가 중·고등학생일 때 제주를 떠난 이씨는 2011년쯤 제주에 돌아왔다. 

제주에 돌아온 이씨는 1년 정도 제주시청 인근 한 식당 주방에서 일하다 2012년부터 소위 방석집 거리로 알려진 무근성 7길에서 유흥주점 ‘황금 민들레’ 영업을 시작했다. 

새롭게 단장한 모다들엉.

지금도 ‘민들레 사장님’으로 불리는 이씨는 유흥주점을 운영하면서 힘든 점이 많았다. 사실 이씨는 청각이 좋지 않다. 그러다보니 고객 응대가 쉽지 않았다. 또 가게가 비좁아 문을 열고 장사했는데, 일부 행인은 문을 발로 차거나 욕설을 퍼붓기도 했다. 

하지만, 돈 벌어 먹고 살아야 하는 상황에서 아무런 계획 없이 장사를 그만 둘 수도 없었다.

이씨의 고민이 깊어지던 지난해 가을 제주도 도시재생지원센터 관계자들이 이씨를 찾아왔다. 관계자들은 도시재생 사업 일환으로 유흥업소 업종전환 지원이 이뤄질 예정이라고 말해줬다. 혹시 참여할 의사가 있느냐고. 

수년간 해온 것을 그만두고 새로운 것을 시작하는 일은 그 누구도 쉽지 않다. 그럼에도 도시재생센터 관계자들은 꾸준히 이씨를 찾았다. 

계속 업종을 바꾸라고 설득하는 것도 아니었다. 차 한잔 마시면서 그저 안부를 묻고, 일상적인 대화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던 올해 초 코로나19가 전 세계를 강타했고, 이씨 가게에도 손님의 발길이 뚝 끊기는 코로나 ‘직격탄’을 맞았다. 손님 없는 날이 대부분이었고, 있어도 하루에 1~2팀이 전부였다. 

지난달 유흥주점에서 식당으로 업종 변경을 위해 진행된 내부 리모델링
아기자기한 소품 등을 갖춘 일반음식점 '모다들엉' 내부.

고민 끝에 이씨는 올해 여름 도시재생센터 관계자들이 제안한 ‘업종 변경’을 결정했다. 스스로 ‘손맛’이 있다고 자부할 정도로 요리에는 자신이 있기에.  

올해 9월1일 도시재생센터는 ‘무근성7길 유흥업소 업종전환 지원사업-업종전환 지원 희망 유흥업소 사업주 모집 공고’를 냈다. 이씨는 공고에 따라 업종전환에 필요한 행정절차와 경영 등 컨설팅 비용 500만원, 특화 레시피 개발 등에 500만원을 지원 받았다. 

나머지 내부 인테리어 등에는 자신의 비용을 지출했고, 수개월간 레시피 개발 컨설팅을 받았다. 레시피 개발 기간에는 가게 내부 인테리어도 이뤄졌다.  

'모다들엉'에서 판매하는 메뉴와 기본 반찬.

이씨가 선택한 메뉴는 ▲제주 흑우 놈삐(무)국 ▲한치무침 ▲전복게우 톳 컵밥 ▲낙지볶음 컵밥 ▲제주 흑우 컵밥 등이다. 

가게가 좁다보니 포장이 쉬운 컵밥을 결정했다. 물론, 가게에서 식사할 경우 컵밥도 깨끗한 그릇에 담긴다. 가게를 오픈한지 며칠 안됐지만, 손님의 발길이 계속되고 있다. 이씨는 신선한 재료를 그때그때 구입하는데, 새벽과 오후 매일 2번씩 동문시장에서 장보는 것이 일상이 되고 있다. 

새롭게 오픈한 매장에서 기자와 만난 이씨는 주변 사람들 대부분이 요사이 자신을 향해 ‘민들레 사장님 얼굴이 살아났다’고 말한다고 전했다. 

이씨는 “스스로 생각해도 표정이 밝아졌다. 솔직히 말하면 유흥업소 운영할 때보다 업종을 변경한 뒤 매출이 늘었다. 매출이 늘었는데, 안 기쁜 사람이 있느냐”고 미소를 지었다.  

업종 변경 이후 주변인으로부터 얼굴이 좋아졌다는 말을 듣는 이은순 씨가 활짝 웃고 있다.
업종 변경 이후 주변인으로부터 얼굴이 좋아졌다는 말을 듣는 이은순 씨가 활짝 웃고 있다.

이어 “지나가던 사람들이 ‘민들레 사장님 가게가 이쁘다’고 말하고, 먹어본 사람들 모두 '맛이 좋다'고 칭찬한다. 동네 사람들 대부분이 맛봤다”며 “메뉴 중에서 전복게우 톳 컵밥과 제주 흑우 컵밥이 인기있다”고 귀띔했다. 

이씨는 “초심을 잃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뿐이다. 지금처럼 매일매일 시장에서 신선한 재료를 구해 음식의 맛을 유지할 수 있으면 계속 장사가 잘 될 것 같다는 생각뿐”이라며 “업종 변경에 도움 준 도시재생센터 관계자들에게 특히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도시재생센터 관계자는 “이씨는 도시재생 사업 일환으로 추진된 무근성 7길 ‘방석집’ 업종 변경의 첫 사례다. 한정된 예산 범위 내에서 지원을 했고, 내부 인테리어 등은 이씨가 스스로 결정해 지금의 모습을 갖췄다”고 말했다. 

이어 “업종변경에 동참해 준 이씨에게 되레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다. 도시재생 성공을 위해서는 주민의 적극적인 참여가 필수적이기에 지속적으로 주민과 소통해 나가겠다”고 덧붙였다.  

현재 무근성 7길 일대에는 이씨에 이어 다른 유흥주점 1곳도 업종 변경을 추진 중이다. 행정적 절차 등이 마무리되지 않아 내년 초쯤 새롭게 오픈할 예정이다. 이 일대 주민들도 낡은 유흥업소들이 즐비한 무근성7길 일대를 쾌적한 마을길로 조성해 나가려는 공동의 목표가 하나 둘씩 채워져 나가길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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