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밖, 모든 청소년의 희망을 응원합니다](1) 창업 첫걸음 뗀 김지한 양의 '당찬 도전'

 

    2021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일명 ‘수능’ 날이다. 우리나라 입시제도를 상징하는 날이다. 그러나 제도권 교육을 통해 상급학교로 진학하는 것 만이 인생의 정석은 아니다. 행복과 성공의 정석은 더더욱 아니다. 독립언론 [제주의소리]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천편일률적 수능 보도를 벗어나 자신의 꿈을 좇아 치열하게 살아가는 학교밖청소년들의 당찬 얼굴들을 만나 봤다. 그들은 물론 모든 청소년들이 흘리는 땀과, 꿈꾸고 있는 희망을 힘껏 응원한다. [편집자]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김지한 양. ⓒ제주의소리
자신의 앞에 펼쳐진 꿈을 쫓고 있는 열 일곱살의 소녀는 홀로서기에 도전 중이다. 사진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김지한 양. ⓒ제주의소리

유년시절, 매일 성적에 쫓겼다. 어린 나이였지만 학업에 대한 스트레스가 만만치않게 뒤따랐다. 학업우수상을 받고 싶었고, 숙제도 완벽하게 하려 애썼고, 선생님의 칭찬에도 집착했다. 돌이켜보면 '행복'과는 거리가 있었던 삶이었다.

딱 한 발 물러서보니 또 다른 세상이 보였다. 예술에 관심이 많은 소녀는 피아노와 작곡을 배웠고, 사회 문제에도 능동적으로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하늘 위 구름만 같았던 '나의 꿈'에 대해서도 깊게 고민하게 됐다. '학교 밖 청소년'에 대한 세간의 왜곡된 인식은 적어도 소녀에겐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리고 소녀는 이제 자신의 앞에 펼쳐진 꿈을 쫓고 있다. 열 일곱, 홀로서기에 도전한 김지한(17) 양의 이야기다.

독립언론 [제주의소리]는 꼬박 1년 전인 2020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치러질 시기와 맞물려 지한이를 비롯한 제주지역 대안학교 보물섬학교 졸업생들의 이야기를 소개했었다. 당시에도 지한이는 자신의 신념과 비전을 당차게 전할 줄 아는 청소년이었다.

1년이 지나 또 다시 수능이 찾아왔다. 또래의 친구들은 고등학교 1학년에서 2학년이 됐고, 내년에는 입시전쟁에 뛰어들 채비를 하게 됐다.

당시만 해도 다소 설익었던 지한이의 꿈은 1년이 지나 한층 단단하게 영글어있었다. 단순 취미로 즐기던 사진을 업으로 삼겠다고 결심하고, 나만의 사진관을 만들기까지 1년이라는 시간만으로도 충분했다.

인터뷰를 나누고 있는 김지한 양. ⓒ제주의소리
인터뷰를 나누고 있는 김지한 양. ⓒ제주의소리

사진촬영은 작은 관심에서 시작됐다. 평소 기록하는 것을 좋아했던 터라 SNS를 활용하거나 블로그에 일상을 남기는 것이 재미있었다. 소소한 이야기일지라도 더 효과적으로 전할 수 있는 방법을 찾던 차에 사진촬영과 영상편집을 독학으로 익히기 시작했다.

카메라의 이런저런 기능을 알아가며, 주변 친구들을 찍어주거나 학교 후배들의 행사 사진을 한 두장 씩 기록하기 시작했다. 할머니 생신에도 촬영 장비를 챙겼고, 모두 함께 담긴 가족사진도 남겨뒀다. 배우면 배울수록 사진이라는 매개체가 '무심코 지나쳤던 이야기들을 다시금 선명하게 새겨줄 수 있는 도구'라는 점에서 더 크게 매료됐다.

스스로 익히는 것에 한계를 느낄 때 쯤, 제주에서 활동하는 유명 작가들의 SNS나 블로그 계정에 '꼭 사진 찍는 법을 배우고 싶다'는 메시지를 무작정 보냈다. 별다른 친분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지만, 그들은 배움을 갈망하는 지한이의 요청에 흔쾌히 응했다. 어린 나이에 겁 없이 덤벼든 소녀의 열정이 기특하기도 했을 터다.

"전국적으로 제주가 관심을 끌면서 유명한 작가님들이 많이 내려오셨어요. 당연히 수강료를 내면서라도 배우고 싶었죠. 작가님들이 처음엔 '기본적인 것은 알려줄 수 있으니 놀러오라'고 했는데, 지금은 같이 사진모임을 하면서 컨셉도 잡고, 기획하는 일도 돕고 있어요. 어시스트로 따라다니기도 하고요."

최근에는 모델과도 사진 작업을 해보고, 학교 졸업앨범 제작을 맡는 등 보다 전문적인 영역에 접어들었다. 카메라나 영상 작업은 직접 부딪혀보는 것만이 답이라는 사실도 몸소 깨닫게 됐다.

배움이 깊어질수록 욕심도 생겼다. 나만의 작업실, 나만의 사업장을 꾸려야겠다는 생각에 이르게 된 계기다.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김지한 양. ⓒ제주의소리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김지한 양. ⓒ제주의소리

"처음에는 사진관을 창업하는 것보다는 스튜디오를 만들고 렌탈해주는 사업을 해보고 싶었어요. 제가 사진을 찍을 때 자연광을 활용하는 것을 좋아해서 자연광 스튜디오를 만들고, 사진에 관심이 많은 학생이나 청년들이 찾아오면 기꺼이 빌려줄 수 있는 공간이요. 사업계획서도 직접 써보고, 부동산도 알아보고, 견적도 내봤는데 초기 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가서 어렵겠더라고요."

첫 술에 배 부르랴. 더 큰 목표는 조금만 미뤄두기로 했다. 결국 나름의 타협점을 찾아가면서 지금은 작업하기에 안성맞춤인 스튜디오 공간을 마련해뒀다. 지한이의 사진관은 현재 리모델링 작업이 한창이다.

"현실적인 어려움이야 적지 않죠. 모아둔 돈이 많은 것도 아니고, 부모님이 엄청 부유한 것도 아니고요. 이런저런 영상편집이나 사진작업을 하면서 틈틈이 저금을 해뒀어요. 대학 가려고 모아놓은 돈도 끌어모으고 있고요. 얼른 일을 시작해서 돈도 갚고, 월세도 꼬박꼬박 내려면 지금보다 더 열심히 해야겠죠."

단순히 자신만의 공간으로 사용하고자 함은 아니었다. 전문적인 영역에 접어들자 맞닥뜨렸던 청소년이라는 한계와 어려움을 또 다른 누군가에게 되풀이하고 싶지 않았다.

"제주에는 아마추어들이 취미로 사진을 즐길 수 있는 문화가 많이 활성화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스튜디오 공간을 빌리는데 한 시간에 10만원이 넘기도 하거든요. 그런 공간이 없다보니 저 같은 학생들은 엄두를 못내는 상황이 있었어요. 새로 짓는 스튜디오는 필요로 하는 친구들에게 흔쾌히 빌려주고 싶은 생각도 들어요."

당장의 목표는 건실한 스튜디오를 운영하는 것이지만, 여기에 그치고 싶은 생각은 없다. 영화를 보는 것도 좋고, 작곡을 공부하는 것도 너무 재미있었다. 더 큰 꿈을 펼치기 위해 늦게라도 대학에서 공부를 해보고도 싶다.

수능이 치러지는 오늘, 책상 앞에서 씨름하는 또래의 친구들과 비교해 뒤처지고 있다는 불안감은 없을까.

"대안학교 재학생이 그렇게 많지 않다보니 또래 친구들이 많지는 않았어요. 일반 학교에서 친구들과 생활하면서 체육대회도, 축제도, 현장체험도 겪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죠. 다만, 제게 그 친구들의 삶이 새로운 이야기이듯이 제 삶도 그 친구들에게는 새롭지 않을까요? 고등학교에 진학한 친구들이 제 도전을 신기해 하고 부러워하기도 해요. 자기가 뭘 하고 싶은지 모르겠다는 친구들도 많고요. 서로의 삶에 도움을 주는 것도 좋은 것 같아요. 제 결정에 후회하지 않을 자신도 있고요."

오늘이 수능이라 대학 진학에 대한 솔직한 속내도 털어놨다. 

 "대학이라는 곳을 가보고 싶기도 했어요. 제가 좋아하는 분야를 더 전문적으로 배울 수 있는 곳이니까요. 다만, 부모님과 상담하면서 '내가 과연 준비가 됐을까' 하는 고민을 했어요. 주변 대학생들을 보면 학비를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힘들어하는 분들도 있더라고요. 자금도 마련하고, 제 스스로 준비를 마친 후에 대학에서는 공부에만 온전히 집중하고 싶은 환경을 만들고 싶어요."

리모델링 작업이 한창인 김지한 양의 사무실 공간. ⓒ제주의소리
리모델링 작업이 한창인 김지한 양의 사무실 공간. ⓒ제주의소리

본격적으로 사회 일선에 뛰어들게 되자 앞으로의 일들이 더욱 바빠졌다.

지한이의 사진관은 겨우내 리모델링을 마친 후 2월초 개업을 목표로 하고 있다. 장비와 소품을 하나씩 구비하는 것도 신중을 거듭해야 한다. 물론 남 부끄럽지 않을 정도로 익혀뒀지만, 촬영 기술도 보다 능통해야 한다. 도움을 주신 분들의 은혜를 잊지 않고 갚아나가는 것 또한 지한이의 몫이다.

모든 것에 앞서 가장 큰 각오로 둔 것은 사람을 대하는 자세다. 

"지금은 주변 친구들이나 가족들을 찍어주면서 연습하는 과정이기도 했어요. 사진관을 열게 되면 한 번도 보지 못했던 분들을 찍어야 하는 경우도 많을 거에요. 자신의 모습을 남기기 위해 사진관을 찾아오는 분들을 대할 때, 어떻게 하면 최대한의 배려와 존중을 갖고 대해야 할 지, 많은 경험을 해봐야 할 것 같아요."

때로는 쑥스러워 하면서도 당차게 앞으로의 포부를 밝힌 지한이. 

"꿈이 없다고 생각하는 주변 친구들이 속상해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꿈을 이루는 데는 늦거나 빠른 것은 없는 것 같아요. 제가 사진관을 열고 싶다고 했을 때 '어떻게 이 시기에 이런 생각을 하지' 하는 분들도 많았는데, 저는 제가 하고 싶은 일이었을 뿐이에요. 시기가 다를 뿐이지, 제 또래 친구들도 언젠가 도전의 시기가 올 것이고, 때가 됐을 때 자신있게 도전해보라고 응원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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