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 팡 : 버스 쉼 팡
쉼 팡 : 버스 쉼 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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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호의 짧은 글, 긴 생각] 여섯 번째
시간이 지날수록 제주다움의 가치는 더욱 빛난다. 제주출신의 공학자, 이문호 전북대학교 초빙교수가 '제주의소리' 독자들과 만난다. 제주다움과 고향에 대한 깊은 성찰까지 필자의 제언을 ‘짧은 글, 긴 생각’ 코너를 통해 만나본다. / 편집자 주

제주에서 처음으로 버스가 다닌 것은 1925년 일제 합병시 박이혁이 제주 동부 자동차회사를 세워 제주 와 성산을 버스를 운행한 것이 효시(嚆矢)다. 정류장(停留場)이란 단어도 일본식 이름이다. 요즘 제주도내 버스정류장은 정낭 서까래로 정류장 지붕을 만들고, 의자도 정낭 위에 평평한 의자로 제작하며 제주적인 풍속을 나타내고 있다.

한 발 더 나아가 버스정류장 명칭을 제주적인 이름으로 ‘버스 쉼 팡’이었으면 한다. 육지의 고속도로에는 운전 드라이버들을 위한 고속도로 갓길에 ‘졸림 쉼터’가 있다. 졸리면 쉬고 가란 배려다. 버스 쉼 팡에는 제주적인 그림이나 시(詩) 한 편이 계절 따라 걸리면 더욱 좋다. 이름도 정갈하지 않나.

사진=이문호.
정낭 모양을 입힌 안내판과 버스정류장. 사진=이문호.

계생이 쉼 팡(休憩盤石, Resting Flat Stones). 모슬포 대정읍 안성리 567번지 제주시 방향 평화로 1.5km에 접한 이곳은 옛날 대정과 서광, 동광과 제주시를 오가는 길목, 제주시를 오가는 가파른 고갯길이다. 그 위치와 조망(眺望)이 뛰어나 길손들이 쉼터였던 곳, 지형이 마치 멧돼지 입(豬口)모양과 같은 고개 등성이로 ‘저굴머루동산’으로 불린다. 1900년초 당시 젊은 청년 임명요는 길손들에게 편히 쉬어갈 수 있는 팡을 만들었다. 팡은 등짐을 내리고 쉴 수 있는 넓직한 돌(盤石)이다.

주위 사람들은 그 뜻을 칭송해 그의 아명(兒名)인 계생(啓生)의 이름을 따서 ‘계생이 쉼 팡’이라 부르고 지금까지 그의 송덕비가 세워져 있다. 임명요 씨의 자제분인 임영일(인성리, 85세, 전 대정중학교 교감·한림중학교 교장) 선생의 증언이다.

계생이 쉼 팡이 있는 곳은 대정현감이 부임하는 길목이고 추사 김정희가 걸었던 유배길이었고, 6.25사변 육군2하사관학교의 훈련장 길이다. 그리고 필자가 6년 동안 배낭을 등에 지고 통학했던 돌길이고 땀길이다. 모슬포에서 서광까지는 빨리 걸어 두 시간 반이 걸린다.

이 길에 얽힌 예피소드 하나.

1959년 중학교 3학년, 6월 장마로 비가 부슬 부슬 내릴 때다. 보성리 정미소에서 보리를 찧어 늙은 암소 구루마로 ‘저굴머루동산’ 고갯길을 오르는 밤 9시경이었다. 멀리서 등불이 보이더니 가까이 오고 있다. 그런데 그 늙은 소가 걸을 생각을 않고 서버렸다. 그리고 소가 코를 풀 듯 소리를 질러 울었다. 아버지께서 마중 오는 불빛인 줄 알았는데 아니다. 어머니도 놀라 기다렸다. 이어 불빛은 근처에서 사라졌다. 나중에 안 이야기지만 도깨비불이었다. 오르는 고갯길이 길다. 난생 처음 도깨비불을 본 곳도 ‘저굴머루동산’ 고갯길이다.

가수 장재남의 노래 ‘빈 의자’(1978)가 생각난다.

서있는 사람은 오시오 나는 빈 의자 
당신의 자리가 돼드리리다 
피곤한 사람은 오시오 나는 빈 의자 
당신을 편히 쉬게 하리다 ​

두 사람이 와도 괜찮소 
세 사람이 와도 괜찮소 
외로움에 지친 모든 사람들 
무더기로 와도 괜찮소​

서있는 사람은 오시오 나는 빈의자 
당신의 자리가 돼드리리다

일제 강점기 시대 버스 ‘정류장’ 이름대신 순 제주 말(語)인 버스 ‘쉼 팡’으로 바꿀 것을 제안한다.

이문호 교수는 제주도 서귀포시 안덕면 서광리 출신 전기통신 기술사(1980)로 일본 동경대 전자과(1990), 전남대 전기과(1984)에서 공학박사를 각각 받고 미국 미네소타 주립대서 포스트닥(1985) 과정을 밟았다. 이후 캐나다 Concordia대학, 호주 울릉공- RMIT대학, 독일 뮌헨,하노버-아흔대학 등에서 연구교수를 지냈다. 1970년대는 제주 남양 MBC 송신소장을 역임했고 1980년부터 전북대 전자 공학부교수, 초빙교수로 재직 중이며 세계최초 Jacket 행렬을 발견 했다. 2007년 이달의 과학자상, 과학기술훈장 도약장, 해동 정보통신 학술대상, 한국통신학회, 대한전자공학회 논문상, 2013년 제주-전북도 문화상(학술)을 수상했고 2015년 국가연구개발 100선선정, 2018년 한국공학교육학회 논문상을 수상했다. 이 교수는 제주문화의 원형(原型)과 정낭(錠木)관련 이동통신 DNA코드를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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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만형 2020-12-11 19:27:29
@ 잠시의 휴식과 기다림의 장소, 버스정류장. 서민의 교통수단인 버스는 단어 자체가 이미 고향으로 달려가게 한다. 비포장 신작로에 뿌옇게 흙먼지를 날리며 달려와 동네 앞에서 서면 시골 어르신들이 꾸러미 들고 뿌듯하게 집으로 가는 모습이 선하다. 제주에 살면서 가끔씩 버스타고 오름이며 명소를 찾던기억이 난다. 그때는 단방향으로 걷기에 승용차를 몰고 가기도 불편해서 버스를 종종 이용했다. 운전 부담없이 가까운 버스 정류장에 시간맞춰 기다렸다 차에 오면 반갑게 오른다. 차오길 목빼며 기다리는 쉼터, 정류장이 하루빨리 쉼팡으로 거듭나 개명하면 좋겠다. 순수한 우리말, 토속어, 고유어가 이제 제때를 만나 우리곁에 선조의 숨결로 다가온다. 쉼터 쉼팡 정겹게 고향의 푸근함이 배어난다.
175.***.***.19

서광리 2020-12-04 18:53:18
이교수와같이 제굴머리 동산을 걸어 모슬포학교를 다녔는데 엊그제,같이느껴짐니다.
그동산은 귀신이 잘나와서 여러사람이 봤음니다.
211.***.***.29

임교장 2020-12-04 18:49:59
제굴머루동산위에 살손드르가 있는데 ,파괴됐음니다.
적토마발자욱과 화살이 바위에 남아있었음.
211.***.***.29

서광리 2020-12-04 18:45:08
이교수와같이 제굴머리 동산을 걸어 모슬포학교를 다녔는데 엊그제,같이느껴짐니다.
그동산은 귀신이 잘나와서 여러사람이 봤음니다.
211.***.***.29

해터 2020-12-04 18:37:58
버스쉼팡, 산뜻한 생각입니다. 제주도에서 정책으로 구현되길바랍니다.
211.***.***.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