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원의 영어어휘 톡톡 talk-talk] (45) crisis 위기

cri·sis [kráisis] n. 위기(危機) 
허구정 헌 말을 듣구정 헌 말로
(하고 싶은 말을 듣고 싶은 말로)

crisis의 어원적 의미는 ‘분리되어(=separate) 갈라짐’이다. 이 cri에서 나온 낱말로는 criticize ‘비판(批判)하다’, discriminate ‘차별(差別)하다’, crime ‘범죄(犯罪)’ 등이 있다. 위기가 되면 분리되어 갈라지는 것인지, 분리되어 갈라지면 위기인 것인지의 인과관계(cause-and-effect relationship)는 명확하게 규정할 수 없으나, 인류의 역사(the history of mankind)를 통해서 볼 때 ‘위기’는 즉 ‘분리되어 갈라짐’이었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하다.

사람들의 마음 안에는 너나할 것 없이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있다. 나라를 향해서 하고 싶은 말도 있고 아내에게, 상사에게, 동료에게 하고 싶은 말도 있다. 시나 소설을 통해서 혹은 강연이나 회의석상에서 하고 싶은 말도 있다. 그런데도 어떤 사람의 글은 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주는 글이 되는가 하면 어떤 사람의 글은 아무 것도 되지 않듯이, 말은 했는데 말을 한 의도와 상관없는 일이 벌어질 때가 많다.

왜 이런 일이 생기는 것일까. 아마도 말을 하는 사람의 미숙함 때문이 아닌가 싶다. 자기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남이 어떤 사람인지도 모르는 미숙함, ‘너’ ‘나’할 것 없이 사람의 마음 안에는 하고 싶은 말만이 있는 게 아니라 ‘듣고 싶은 말’이 있다는 것을 모르는 미숙함 때문이 아닌가 싶다. 남이 듣고 싶은 말은 하지 못하고 자기가 하고 싶은 말만 하는, 자기중심적인 사람이 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가. 그러니까 말을 할 때에는 ‘내가 하고 싶은 말’이 곧 ‘남이 듣고 싶어 하는 말’이 되도록 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 이강숙의 ‘하고 싶은 말, 듣고 싶은 말’ 중에서

‘분리되어 갈라짐’의 근본적인(fundamental) 원인은 ‘불통(不通)’이다. 어떤 식으로든 그러한 불통이 일어날 때 가정(家庭)이 무너지기 시작하고 공동체(共同體)와 나라가 무너지기 시작한다. 그렇다면 그런 위기를 초래하는 불통의 원인은 무엇인가? 불통의 원인이야 사람들마다 조금씩 다르겠지만, 적어도 그 불통의 시작은 ‘내가 하고 싶은 말’과 ‘남이 듣고 싶은 말’의 불일치(discordance)에서 비롯된다고 볼 수 있다.

내가 주장하는 바와 상대방이 주장하는 바가 평행선(parallel line)을 달릴 때 불통으로 가게 되므로, 말을 할 때는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상대방이 듣고 싶은 말이 되도록 해야만 불통의 벽을 넘을 수 있다는 것이다. 말의 기술적(technical) 차원을 높여야 한다는 게 아니라, 말을 듣는 상대방의 입장에 대해서 그만큼 고민을 거듭하며 말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주장하는 바와 상대방이 주장하는 바가 평행선(parallel line)을 달릴 때 불통으로 가게 되므로, 말을 할 때는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상대방이 듣고 싶은 말이 되도록 해야만 불통의 벽을 넘을 수 있다는 것이다. 출처=오마이뉴스.
내가 주장하는 바와 상대방이 주장하는 바가 평행선(parallel line)을 달릴 때 불통으로 가게 되므로, 말을 할 때는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상대방이 듣고 싶은 말이 되도록 해야만 불통의 벽을 넘을 수 있다는 것이다. 출처=오마이뉴스.

지금 우리 한국사회의 키워드(key word) 역시 ‘불통’이 아니겠는가. 진영(camp) 간의 불통, 세대(generation) 간의 불통, 노사(labor and management) 간의 불통 등으로 이제 숨이 막힐 지경이다. 민주주의 사회 속에 여전히 독재적(dictatorial) 마인드가 뿌리 내려 있고, 쌍방향(bidirectional) 소통이 필요한 사회에서 일방향적(one-way) 통제가 곳곳에 존재하여 소통의 흐름(flow of communication)을 막고 있다. 이 모든 현상은 아직도 진정한 리더십(leadership)의 품격을 갖추지 못한 리더들이 지위(social status)에 올라 우리 사회를 이끌어 가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가 풀뿌리 민주주의(grass roots democracy)를 지향한다면 우리가 먼저 우리 삶의 리더가 돼야만 하고, 우리가 먼저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상대방이 듣고 싶은 말로 바꾸려는 고민과 노력을 해야만 한다. 코로나가 덮친 지 어느 덧 일 년여가 되어가는 지금, 우리는 감정적으로 고갈되어 매우 예민하고 우울한 상태에 있다. 이런 사상 초유의(unprecedented) 위기에서 일수록 가정에서부터 따뜻한 말 한 마디로 그간의 갈라진 틈(gap)들을 메꾸어 가보는 건 어떻겠는가. 

“그 동안 당신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 채 내 말만 해서 미안해요.”

* ‘김재원의 영어어휘 톡톡 talk-talk’ 코너는 제주대학교 통역번역대학원 한영과에 재직 중인 김재원 교수가 시사성 있는 키워드 ‘영어어휘’를 통해 그 안에 담긴 어원적 의미를 들려주는 스토리텔링 해설 코너입니다. 제주 태생인 그가 ‘한줄 제주어’로 키워드 영어어휘를 소개하는 것도 이 코너를 즐기는 백미입니다.

김재원 교수는?

제주대학교 통역번역대학원 한영과 교수(現)
언론중재위원회 위원(前)
미래영어영문학회 회장(前)
제주대학교 통역번역대학원장(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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