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봉선의 마을 책방을 찾아書](10) 제주시 애월읍 책방 섬타임즈

마을책방은 단순한 기호품을 파는 곳이 아닙니다. 대형서점처럼 책을 어마어마하게 팔아치우는 곳은 더욱 아닙니다. 후미진 도심 골목이나 시골 언저리에서 마을책방을 만난다면 그것은 행운이지요. 마을 초입 팽나무 아래 마을사람들이 모여들듯 책벌레들이 도란도란 어우러질 수 있는 사랑방 같은 곳입니다. 제주도 마을 곳곳에 작은 책방들이 사람을 살리고, 다시 사람이 마을을 살리고 있습니다. 그것이 마을책방의 가치입니다. [제주의소리] 시민기자 고봉선 시인이 바람을 쐬듯 책방마실을 다니고 있습니다. 책과 사람이 만나는 곳 ‘마을 책방’에서 책방지기의 책 살림 이야기를 시인을 통해 듣습니다. [편집자 글] 

청춘의 무대에서 여행이란 연극을 한창 즐기던 때 만난 제주, 연극의 주인공인 이애경 씨 시야엔 정제되지 않는 날것들이 가득 널려 있었다. 그것들은 턱턱, 숨이 차오를 정도로 신선한 매력을 발산하며 이애경 씨더러 ‘어서 오라.’고 유혹했다. 그 청춘의 무대는 두고두고 잊지 못할 짝사랑 같은 것이었다. 결국 자신이 나고 자란 곳 서울을 등지고, 2015년에 제주 사람이 된 책방지기이자 작가인 이애경 씨를 만났다. 

책방 섬타임즈와 소길리사무소 사이 피아노가 있는 버스 정류소 앞 공터, 잘린 나무 밑동에 기댄 늙은호박이 늦가을 햇살을 끌어안고 있다. 하늘은 온통 파란색인데, 셔터를 눌렀더니 마치 그려놓은 선처럼 사진 속에서 하얀 줄기가 튀어나왔다. 

“아름다운 화합을 그리며”

애월읍 중부 내륙 소길리에 자리한 책방 섬타임즈. 의외로 공간이 넓다. 작은 콘서트는 물론 세미나라든지 원데이 클래스 등 여러 가지 행사도 충분히 가능한 곳이다. 

처음 제주에 왔을 때, 이애경 씨는 오롯이 책만 쓸 생각이었다. 그런데 어느 정도 책을 내고, 출판기획과 함께 좋은 책도 만들어서 판매하고 싶었다. 마침 마음에 드는 공간이 있었다. 누구나 책도 읽을 수 있는, 마을 살롱과 같은 공간으로 활용하면 더없이 좋을 것 같았다. 그런 바람으로 이애경 씨는 책방에서 콘텐츠를 만드는 일까지 하게 되었다. 

대한민국의 정치·경제·문화·교통의 중심지 서울. 그 속에서도 가장 화려하다는 연예계에서 이애경 씨는 음악 잡지 ‘SEE’ 편집장, ‘굿데이’ 연예부 기자로 활동했다. 가수 조용필, 대한민국과 일본에서 활동하는 가수 윤하의 작사가이기도 한 이애경 씨는 직업의 특성상 많은 사람을 만나야 했다. 이런 삶을 뒤로하고, 이애경 씨는 청춘 무대에서의 짝사랑을 찾아 제주로 왔다. 

제주에 온 이애경 씨는 오늘도 사람들의 가슴을 따뜻하게 어루만져줄 그런 글을 쓴다. 글에는 치유의 힘이 있고, 용기와 힘을 주며, 생각을 변화시키는 기적까지 담겨 있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이애경 씨는 현재까지 여섯 권의 에세이를 썼고, 그 외 장르도 여러 권 펴냈다. 지난 9월엔 책방도 오픈했다. 

책방 섬타임즈 앞 공터에 사는 길고양이. 공터엔 청량한 공기가 흐르는 듯하다.

이주민이 늘어나면서 제주엔 알 듯 모를 듯 미묘한 갈등이 흐른다. 이곳이라면, 이 미묘한 갈등조차 화합으로 그려낼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소길리는 마을을 오가는 원주민뿐만 아니라 관광객, 주민들도 계신 곳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쉬운 일은 아니다. 어느 날 갑자기 행사한다고 해서 기다렸다는 듯 사람들이 오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책이라는 매체나 다른 소재를 토대로 같이하는 시간이 된다면 조금이라도 더 서로를 이해하게 되지 않을까.’ 비록 막연한 생각이라 할지라도 아름다운 화합을 그려보고 싶었다.

“꼬리에 꼬리를 물며 머무른 자리, 작가”

이애경 씨는 어려서부터 기자가 꿈이었다. 그 꿈을 실현한 이애경 씨는 늘 글과 함께하는 시간을 보냈다. 그런 시간 속에서 우연히, 이애경 씨 기사를 보고 다가온 사람이 있었다. 수많은 히트곡과 한국 내 최대 콘서트 인원 동원 기록, 예술의 전당 7년 연속 공연 기록을 가지고 있는 가수 조용필. 그가 이애경 씨에게 가사를 써줄 수 있는가 의뢰한 것이다. 그렇게 이애경 씨는 ‘기다리는 아픔’, ‘작은 천국’, 평양에 가서 부른 ‘꿈의 아리랑’ 등을 작사하면서 조용필 씨 작사가로도 활동하게 되었다. 그리고 다시 연이 닿으며 책도 내게 되었다. 꼬리에 꼬리를 물며 다다른 곳에서 에세이 작가로 활동하게 된 것이다. 수많은 장르 중에서 이애경 씨가 에세이를 쓰는 이유는 단 하나, 자신의 스타일에 가장 맞기도 하거니와 가장 잘하는 장르이기 때문이다.  

책방지기 이애경 씨 부부는 지금 광령1리에 살고 있다. 광령1리도 제법 큰 마을이거니와 또 아름다운 곳이다. 그런데 책방지기는 왜 하필 소길리에서 책방을 하게 되었을까? 제주에 와서 오가다 만난 소길리는 유독 아름다웠다. 편안함, 그랬다. 세상 그 어떤 것보다 아름다운 건 편안함이었다. 그 편안함이 책방지기를 소길리로 이끌었고, 결국 이곳에서 책방도 하게 되었다. 

 책방 섬타임즈 입구. 방문했던 손님이 책방을 나서고 있다.
작가이자 작사가이며 책방지기인 이애경 씨가 책을 정리하고 있다.

“마을이 주는 이미지가 최고의 홍보”

책방을 찾아오는 손님들이 어떤 층인지는 잘 모른다. 오더라도 조용히 둘러보다가 가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고객을 대상으로 일일이 관광객이냐고 물어볼 수도 없는 노릇이지만, 그래도 느낌이란 게 있다. 그 느낌대로라면, 관광객과 주민의 고객층 비율은 8대 2 정도다. 
8대 2라고 해도 그 숫자는 극히 적을 수 있다, 오픈한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관광객이 찾아온다는 건 홍보가 되었다는 뜻이다. 어떻게 홍보하였기에 오픈한지 얼마 되지 않은 책방에 관광객들이 찾아올까. 

책방 섬타임즈는 인스타 등에서 꾸준히 홍보하고 있을 뿐 다른 건 없다. 가장 큰 홍보는 마을이 주는 이미지다. 마을이 워낙 예뻐서, 소길리를 검색하면 책방 섬타임즈도 함께 노출되는 것이다. 제주에서는 이애경 씨를 아는 사람들의 발길도 많이 오간다. 그 발길을 따라 책방 섬타임즈의 명성은 소리 없이 퍼지고 있다.

책방 섬타임즈 앞 텃밭에서 가꾼 콩을 장만하는 마을 할머니

‘소길리’ 하면 ‘소길댁 이효리’를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워낙 유명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런 만큼 이효리가 살았던 곳이라는 이미지 하나로도 홍보 효과는 크지 않을까. 그러나 책방지기 이애경 씨는 이효리가 살던 곳을 알지 못한다. 그보다 오히려 마을에 있는 맛집에 들렀던 관광객들이 더 많이 찾아온다. 물론 가끔은 이효리 씨 집이 어디냐고 묻는 사람도 있다. 

무엇보다도 내가 깜짝 놀란 건, 소길리사무소 앞에 차를 세우고 막 나올 때였다. 그 앞에 텃밭 하나가 있었는데, 텃밭에는 겨울무며 콜라비, 비트, 쑥갓 등 여러 가지 야채가 올망졸망 자라고 있었다. 야채 하나에 놀랄 일까지 있으랴만, 이들이들 윤기가 흐르고 오동통한 쑥갓은 뚝, 뜯어먹고 싶을 정도였다. 콜라비나 비트도 어찌나 싱싱하던지, ‘진짜 맛있겠다.’라는 생각과 함께 입안에서 군침이 돌았다. 그건 아마도 내가 시골에서 태어나고 자랐기 때문일 것이다. 무 하나를 봐도 맛이 있을지 없을지 어렴풋한 느낌으로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때, 나는 거의 4Km의 거리를 걸어서 다녔다. 왕복 8Km가 되는 셈이다. 그때 나는 동네 아이들과 학교를 오가며 서리를 참 많이 했다. 지금이라면 영락없이 범죄자로 낙인찍힐 일들이다. 하지만 그땐 밭 주인의 호통 한 번이면 끝이었다. 우리는 우르르 떼 지어 다니며 무밭에 들어가서 무를 뽑아 먹었다. 그것도 하나를 뽑아서 나눠 먹는 것이 아니다. 아이마다 제각각 하나씩 뽑아서는 돌담에 탁, 쳐서 밑 부분은 잘라냈다. 밭담이 허옇게 될 정도였다. 그때 무는 지금의 무와 달리 껍질도 잘 벗겨졌다. 귤껍질을 벗기듯, 바나나 껍질을 벗기듯, 손으로 매끈하게 충분히 벗길 수 있었다. 책방 탐방을 하러 갔다가 책방 앞에서 만난 텃밭을 보며, 난 옛 추억에 빠졌다. 그렇게 추억에 빠져 있자니 각박해진 현실이 아프기도 했다.

책방 섬타임즈 창 너머로 “나는 맑은 공기예요.”라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비록 학교 다니는 길은 멀었지만, 먼 길이었기에 추억은 더 많았다. 상동이며 산딸기는 기본이고, 보릿대를 태우고 난 자리에서 보리 이삭도 입술이 새카매지도록 주워 먹었다. 아련하고도 그리운 추억이다. 하지만 요즘은 다르다. 오염된 환경 탓도 있겠지만, 시골을 모르고 자란 환경이며 시대 탓도 있을 것이다. 산딸기 하나를 따도 그냥 먹으면 안 된다. 온갖 곤충이 똥을 쌌을지도 모를 더러운 것이기 때문이다. 서리도 그렇다. 오늘날 그렇게 하면 도둑질이다. 떠올리면 즐거운 추억이 될 일이 아니라, 주홍글씨로 남을 일이 되는 것이다. 어쨌든, 텃밭에 야채조차도 다른 마을보다 더 예쁜 곳 소길리였다.

오픈한 지 비록 얼마 되지 않았지만, 그래도 책방 섬타임즈 이애경 씨에겐 기억에 길이 남을 손님도 있다. 소길 언덕 너머에 한 달 살기로 오셨던 분이 계셨다. 책방 인테리어는 이애경 씨가 직접 했는데, 인테리어 공사 중 길을 가던 그분은 “언제 오픈하느냐, 너무 와보고 싶다.”라는 등 관심을 보였다. 그러더니 마침내 오픈하는 날 오셨다. 그분은 제주에 있는 동안 계속 드나들었다. 그리고 8월 하순, “보통의 속도로 걸어가는 법”이란 새 책이 나오면서 이애경 씨는 자신이 이런 책을 쓰는 작가라고 소개했다. 생각지도 못했던 만남에 그분은 깜짝 놀라면서도 환하게 웃어주셨다. 책방을 시작하기 전부터 관심을 가져주셨고, 오픈한 후에도 계속 드나들면서 책을 읽어주셨다. 출판 후 책과 함께 자신을 소개했을 땐 마치 자기 일인 양 좋아해 주시던 분, 이제 막 책방을 시작한 책방지기로서는 천군만마와 같은 힘을 얻었을 것이다. 비록 앞으로도 기억에 남을 손님은 많겠지만, 두고두고 잊지 못할 고객이다. 이애경 씨로서는 글을 쓰는 보람도 더 커졌다. 

책방 섬타임즈 내부

“출판의 경계”

요즘 들어 부쩍 독립출판이란 말을 심심찮게 듣는다. 하지만 난 독립출판의 개념을 잘 모른다. 그저 막연하게 ‘책을 내고 싶은 사람은 누구라도 혼자서 책까지 찍어낼 수 있는 건가.’ 하고 생각하고 있었을 뿐이다. 마침 책방 섬타임즈에서도 출판을 한다고 했다. 나로서는 출판의 경계에 대한 궁금증을 드러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애경 씨는 “누구나 개인적으로 책을 쉽게 찍어낼 수 있는 출판이라는 의미를 ‘독립출판’이라고 한다면, 섬타임즈는 독립출판사가 아니”라고 했다. “섬타임즈는 인쇄물로 기록될 가치가 충분히 있는 콘텐츠를 선별해서 펴내는 작은 규모의 출판사이므로 작은 출판사”라고 하고 싶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내가 생각하는 게 독립출판이라고 정의하다면 책방 섬타임즈는 독립출판이 아니라는 것이다. 

책방지기 이애경 씨에 따르면 독립출판과 일반출판의 경계가 모호하다. 독립출판의 개념이 정확하게 정의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독립출판이 1인 출판 체제인 건 맞다. 하지만 디자인과 인쇄 업체, 유통 대행업체 섭외 등 모든 일을 홀로 진행하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가 양질의 콘텐츠로 출판해달라고 하더라도, 책방 섬타임즈가 가진 출판의 방향성과 맞아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책방 섬타임즈는 내가 생각하는 그런 독립출판이 아니라는 것이다. 

책방지기 이애경 씨는 작가다. 그렇기 때문에 편집하는 건 자신의 능력 밖이다. 책은 각자의 자리에서 일하는 디자이너나 편집자, 이런 사람들과 함께 만든다. 출판의 임무는 ‘책의 방향성과 책에 대한 소재 등을 기획하며 작가가 그걸 제대로 뽑아낼 수 있도록 인도하고 제작하는 것’이라고 했다. 출판이라면 으레 인쇄부터 떠올리던 나의 무지를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내년에 출판할 계획으로 책방 섬타임즈는 작가나 책 쓰실 분들을 찾고 있다. 그래서 책방지기는 주변에 책 쓰고 싶으신 분이 계시면 알려달라고 요청하는 등 최대한 책방 섬타임즈를 열어놓고 있다. 

책방 섬타임즈 내부. 이 방은 여러 활동이 가능한 곳이다. 책방 섬타임즈에 오는 꼬마 손님들이 특히 이 방을 좋아한다. 뒹굴뒹굴 뒹구는 환경 자체가 좋기 때문이다. 굳이 책을 읽지 않더라도 책과 함께 지내다 보면 친숙해지게 되고, 어느 날은 책을 꺼내게 될 것이다. 한번은 꼬마 아이가 와서 그림책을 읽어달라고 했다. 기꺼이 이애경 씨는 그런 손님들에게 그림책을 읽어주기도 한다. 

“특별한 이벤트와 계획, 작가 조이엘의 ‘1센티 인문학’”

책방 섬타임즈에서는 이벤트도 적잖이 열린다. 사람은 누구나 익숙하고 좋아하는 책만 읽으려는 습성이 있다. 이러한 습성 때문에 다른 분야의 책은 읽지 않는, 즉 편독은 책을 읽지 않는 것보다 위험하다고 작가 조이엘 씨는 말한다. 바로 이런 독자들을 위한 이벤트가 지금 책방 섬타임즈에서 진행되고 있다. 이벤트는 간단하다. 그냥 집에 있는 책장을 찍어서 보내주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조이엘 작가가 사진 속의 책장을 살피고 진단한다. 그리고는 ‘어떤 책이 부족한 것 같다. 그러므로 어떤 책을 읽으면 좋겠다.’라고 도움을 준다. 어떤 책을 읽어야 좋을지 모르는 사람들에겐 더없이 좋은 이벤트다. “선생님, 뭘 읽힐까요? 뭘 읽어야 해요?”와 같은 질문을 집중적으로 받으면서 이런 이벤트도 진행하게 되었다. 

책방을 오픈한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계획도 많을 것이다. 그 많은 계획 중에 이애경 씨가 가장 우선으로 여기는 건, 좋은 책을 만드는 것이다. 다음은 책방을 열려 있는 곳, 모두가 향유하는 공간으로 만들기 위한 프로젝트를 기획하는 것이다. 이미 시내에 사는 초등학생들이 토요일이면 책방 섬타임즈에서 기타 레슨을 받고 있다. 앞으로도 이 모임은 전문 기타리스트를 모시고 꾸준히 이어갈 계획이다. 얼마 전엔 사진 세미나도 열렸다. 세미나에는 제주도에서 사진을 전문적으로 촬영하시는 분들이 모였다. 그리고 자기 사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최근엔 “1센티 인문학”을 출간하신 조이엘 작가를 모시고 강연회도 진행했다. 책방지기 이애경 씨 남편이자 인문학을 전공한 조이엘 작가는 제주로 오기 전 대안학교를 총괄 운영했었다. 

대안학교가 좋다는 사실은 대부분 알고 있다. 대안학교는 정규과정에서 맛볼 수 없는 것들을 충분히 누리고, 자기가 원하는 교육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에서 교육을 이어가다 보면 결국은 입시다. 상황이 이러다 보니, 입시를 생각할 나이가 되면 누구나 대안학교에 대하여 고민하게 된다. 현 제도를 이겨내지 못하는 것이다. 대안학교가 어려운 이유다. 

이처럼 책방지기 남편인 조이엘 작가는 아이들 가르치는 일을 오래 했다. 그런 만큼 책도 많이 읽었다. 그에 따른 내공 또한 깊다. 그런 내공을 혼자만 갖고 있다는 사실이 이애경 씨는 안타까웠다. 그런 찰나 출판사에서 손을 내밀었다. 다행히 출판사와 의견이 잘 맞았고, 조이엘 작가는 “1센티 인문학”이란 책을 출간하게 되었다. 현재 조이엘 작가는 광령1리에서 작은 도서관을 꾸리며 아이들과 책 읽기도 하고, 엄마들께 좋은 책도 골라주는 일을 하고 있다. 

디지털 글만을 써오던 조이엘 작가가 아날로그 책을 출판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조이엘 작가의 글은 아날로그 작가인 이애경 씨가 봐도 위트가 있다. 나름 책을 많이 읽고 쓰는 작가가 보기에도, 처음 접하는 조이엘 작가의 글은 신비롭다. 조이엘 작가만의 독특한 문체가 있기 때문이다. 당연히 남편의 책이 출간되면서 이애경 씨는 첫 번째 독자가 되었다. 그 어렵다는 인문학을 쉽게 접근할 수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할 수 있는 책이었다.

책방 섬타임즈 책방지기의 남편 조이엘 작가(좌)와 그의 작품 “1센티 인문학”(가운데), 8월 하순에 출간된 이애경 작가의 에세이 “보통의 속도로 걸어가는 법”(우)

“극과 극은 통한다”

극과 극이 통한다는 말, 아마도 이애경‧조이엘 작가 부부를 두고 하는 말은 아닐까. 남편인 조이엘 작가는 인문학적이고 이성적이며, 철학적이고 논리적인 사고를 원하는 사람이다. 반면 이애경 작가는 지금의 감정이 더 중요한 사람이다. 당연한 일이겠지만, 각기 다른 성향을 가진 부부는 같은 얘기도 각자의 성향대로 푼다. 얼핏 봤을 때 도무지 맞는 것이라고는 없을 것 같다. 그런데 끝에 가서 보면 완전히 맞닿아 있다. ‘어쩜 이렇게 이야기가 잘 통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딱 맞아떨어진다. 극과 극이 통하는 부부다.

종교도 마찬가지겠지만, 책이 지향하는 목표 또한 하나가 아닐까. 장르에 상관없이, 나무의 뿌리가 얽히듯 네트워크화된 정보는 결과적으로 한곳에서 만난다. 이 또한 극과 극이 통하기 때문일 것이다.

책방 섬타임즈 벽에 걸린 명화 포스터(위)와 이애경 씨 큐레이션에 의해 화가로 활동하는 분의 예술 서적들이 진열되어 있다(아래). 벽에 걸린 포스터는 뉴욕현대미술관(MOMA), 영국왕립미술아카데미 등 미술관에서 직접 인쇄한 작품들이 넘어온 것이다. 그림을 인쇄해서 포스터화한 것이라고나 할까, 모두 미술관에서 파는 포스터다. 큐레이션 된 책들이 주로 배치된 책방 섬타임즈에서는 화가들의 그림 포스터, 에코백, 엽서, 스티커 외에도 종이로 만든 다양한 상품을 구매할 수 있다. 벽에 걸린 명화 포스터 외에도 이애경 씨가 좋아하는 그림이나 포스터가 수십 장 더 있다. 포스터 수납장이 완성되면 이를 판매하는 일도 훨씬 쉬워질 거라고 한다.

“꽃들에게 희망을”

촉촉하고도 감미로운 언어로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이애경 씨. 그의 삶에 가장 영향을 미친 책은 무엇일까. 이애경 씨는 단연 “꽃들에게 희망을”이라고 했다. “꽃들에게 희망을”은 ‘트리나 폴러스’의 글로 제주도에 계신 김석희 선생님께서 번역하셨다. 개인적으로 존경하는 분의 번역 책이어서 더 반가웠다. 혹시 김석희 선생님을 뵌 적이 있는지 여쭤보았다.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넌지시 “한번 만나 보실래요?” 했더니, 제주도에 계시냐면서 몹시도 놀라셨다. 내친김에 안부도 여쭐 겸 김석희 선생님께 전화를 걸었다. 선생님께선 어딘지 모르지만, 페인트를 칠하는 중이라고 하셨다. 서로 시간을 맞춰 방문하기로 하고 전화를 끊었다. 이애경 작가는 들떠 보였다. 자신에게 영향을 미친 책의 역자를 만나는데 어찌 들뜨지 않을 수 있을까. 그 들뜬 모습마저도 그녀의 이미지에서 풍기는 한 권의 에세이였다.

김석희 선생님은 애월문학회 총무로 있을 때 알게 되었다. 잊을 수 없는 건,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다. 독서수업을 하면서 포에니 전쟁을 다룰 때였다. 그때 필독서에는 기껏해야 한두 줄로 포에니 전쟁이 소개되었다. 그런데 난 마치 포에니 전쟁을 다 아는 것처럼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자그마치 500여 쪽 가까운 분량에 ‘한니발 전쟁’이라는 이름으로 다루어진 로마인 이야기를 읽으며 참 부끄러웠다. 숨 가쁘게 장을 넘기며 읽을 수 있도록 번역해 주신 김석희 선생님이 더없이 고맙기만 했다. 

독서수업 중 필독서에서도 종종 김석희 선생님을 만난다. 얼마 전이었다. 책을 정리하다가 독서지도사 과정을 밟을 때 과제물로 제출했던 “한밤중 톰의 정원에서(필리퍼 피어스 지음, 수잔 아인칙 그림, 김석희 옮김, 시공주니어 출판)”라는 판다지 동화 서평식 감상문을 보게 되었다. 원고지에 직접 써서 우편으로 제출했던 과제물이었다. 잊고 있었는데, 10년도 넘은 과제물이 괜히 반가웠다. 김석희 선생님께 문자를 보냈더니, “그 잘난 감상문 좀 봅시다.”라며 답장을 보내왔다. 그래도 에이 마이너스 받았다고 너스레 떨며 원고지를 사진으로 찍어서 보냈다. 선생님께선 “나라면 에이플러스 줬을 텐데.”라며 농담도 하셨다. 그렇게 내가 존경하는 선생님이 번역한 “꽃들에게 희망을”이 이애경 씨 인생에 영향을 미친 책이란다. 충분히 그럴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방 섬타임즈 내부. 천일홍을 닮은 듯 엉겅퀴를 닮은 듯 화병에 꽂힌 ‘천일홍 – 화이어워크’가 책방 분위기를 더욱 화사하게 만든다.

이 책에 등장하는 모든 애벌레는 우리와 똑같다. 우리는 모두가 그 끝, 고지를 향해서 올라간다. 그렇게 올라갔지만, 그곳엔 아무것도 없다. 올라가야만 아는 사실이다. 비극이다. 이애경 씨는 이 책을 읽고, ‘아, 저럴 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공허하거나 내게 뭔가 비어 있다 해도, 달성하지 못했다고 해도 막막하지는 않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각자 추구하는 삶이 달라도 되고, 굳이 그렇게 올라가려고 애쓰지 않아도 되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살다 보니 진짜 그런 것도 같았다. 굳이 끝까지 올라가지 않더라도 고지엔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이애경 씨는 어렸을 때 이미 알아버린 것이다. 

결국은 나비가 되어 날아가는 모습. 그건 우리가 모두 가야 할 길로 가는 것이다. 인내하며 고치가 되어 기다리노라면 더 큰 자유가 주어진다. 하지만 누구나 애벌레일 땐 그냥 기어 올라가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한다. 이애경 씨에게 그게 아니라는 사실을 일찌감치 깨닫게 해 준 책, 그 책이 바로 “꽃들에게 희망을”이었다. 성적 지상주의인 요즘, 일등을 향해서만 가는 우리 아이들의 모습이 겹치며 코끝이 찡했다. 

“에피소드와 소길리의 아름다움”

이애경 씨는 어릴 때부터 탐정소설을 좋아했다. 특히 코난 도일, 셜록 홈스 시리즈를 좋아했다. 그러면서 탐정이 되겠다고 생각했다. 이 발칙한 꼬마는 기어코 일을 저질렀다. 동네에 탐정소를 차린 것이다. 꼬마 탐정은 경찰서 벽에 붙은 용의자 수배 전단을 보며 수배 내용을 메모했다. 그리고는 나름대로 추리하면서 범인을 찾아다녔다. 생각만 해도 웃음이 나는, 이 발칙하기 짝이 없는 꼬마 탐정이 귀엽기만 했다.

이러한 놀이가 있었기에 이애경 씨는 기자가 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꼬마 탐정은 수배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사람들을 찾아다녔다. 찾아다니면서 질문하고, 추리하고,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애썼다. 그런 과정이 기자 근성을 키웠다는 것이다. 

소길리의 아름다움을 이애경 씨는 고요 속에 공존하는, 느린 번잡함이라고 말한다. 책방 앞은  많은 발길이 오간다. 그래도 번잡하거나 부산스럽지 않다. 햇살도 따사롭고 평화로운 길, 나른하고 느긋하다. 얼기설기한 것 같아도 잘 여문 연밥처럼 꿰맞춰진 느낌이다. 버스에서 내릴 때도 그렇다. 성급할 게 없다. 사람들은 천천히 내리고 천천히 간다. 그렇다고 너무 조용한 것도 아니다. 딱 그 정도다. 어찌 보면, 이애경 씨의 “보통의 속도로 걸어가는 법(위즈덤하우스 출판)”이 곧 소길리다.

이애경 씨가 있었던 곳 연예계, 그곳은 오직 화려한 빛만이 존재했다. 어두운 곳도 많지만, 사람들은 빛만 보며 따라가려고 했다. 그곳에서도 이애경 씨는 늘 생각했다. ‘보통의 속도로 걸어가는 법이 필요할 때’라고.

수많은 타임스를 탄생시킨 원조, 영국의 타임스. 비록 동네 책방이지만, 책방지기 부부는 영국의 타임스를 능가하는 섬타임즈를 이뤄낼 것이다. 섬에서 일어나는, 섬의 이야기를 담은, 섬의 시간들을 기록하는 섬타임즈로 우뚝 서길 빈다.

“책방 섬타임즈는”

시간에 쫓기고 계신가요? 혹시, 빛만 바라보며 살고 계시지는 않는가요? 하루쯤 책방 섬타임즈를 찾아가 보세요. 바쁜 일상 속에서 보통의 속도로 걸어가는 법을 알려주는 “보통의 속도로 걸어가는 법”의 저자 이애경 작가를 만날 수 있습니다.

찾아가는 길 : 제주시 애월읍 소길1길 15, 1층(녹색농촌체험관)
영업시간 : 화-토 오전 10시~오후 5시(일, 월 휴무)
인스타 : https://www.instagram.com/sometimes_jeju/
입고 및 출판문의 : sometimesjeju@gmail.com

고봉선은?

제주시 애월읍 고성리에서 농부의 딸로 태어나 식물과 함께 자랐다. 지금은 허름한 고향 시골집에서 꽃과 함께, 독서지도사를 하며 아이들과 지내고 있다. 한국해양아동문화연구소 운영위원, 애월문학회 회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독립언론 [제주의소리]에서 [고봉선의 마을 책방을 찾아書]를 통해 격주로 독자들을 만난다. 마을 책방에 깃든 사람과 책 이야기가 소개된다.

저서로는 시집 ‘詩를 먹고 자라는 식물원’, 꽃과 함께 사는 이야기 ‘詩가 사는 기행식물원1, 2, 3, 4’, 동화집 ‘지우개’가 있다. 식물원 시리즈로 전자도서관에 식물원을 꾸미는 게 소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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