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 가람 창작뮤지컬 ‘제주섬이 설문대가 되리’

3일 진행한 '제주섬이 설문대가 되리' 공연 출연진들. ⓒ제주의소리
3일 공연한 '제주섬이 설문대가 되리' 출연진들. ⓒ제주의소리

제주 극단 가람이 창작뮤지컬을 다시 들고 왔다. 2018년 12월 제주마(馬)를 다룬 ‘힘차게 달려가세’ 이후 딱 2년 만이다. 

이번 작품 ‘제주섬이 설문대가 되리’는 제주 창조 여신 ‘설문대할망’ 설화 이야기를 다룬다. 몸집이 거대한 설문대할망이 섬을 만드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이야깃거리를 보여준다.

아름다운 세상을 창조하고 싶던 설문대, 옥황상제가 다스리던 하늘에서 인간 세계로 내려오지만 섬 사람들은 자신의 마음을 몰라준 채 육지와 잇는 다리만을 원한다. 설문대하르방을 만나 오백장군 자녀들도 낳았지만 하르방은 거대한 솥에 빠져 죽고, 자녀들은 아비 육신으로 만든 죽을 먹었다는 충격에 돌로 변해버린다. 홀로 남은 설문대할망은 계속 자신을 비난하는 주민들을 마음에 품고 물장오리로 들어가 제주섬 자체가 된다. 

‘제주섬이 설문대가 되리’는 2018년 작품보다 여러 면에서 발전된 모습을 보였다. 

코러스 역할을 부여받은 10명의 출연진을 주민, 오백장군 같은 등장인물과 추임새 기능 뿐만 아니라 몸동작을 더한 무대 장치의 하나로 활용한 시도는 신선하게 다가왔다. 고가영은 지난해 제주시 뮤지컬 아카데미를 끝까지 마친 역량을 여실히 증명했다. 대사를 말하듯 노래하는 뮤지컬 특유의 연기도 독보적으로 소화했다.

설문대하르방, 오라버니 같은 조연급 배역에 20대 신인(김민건, 강지훈)을 투입하고, 이승준·이창익 같은 40대 이하 배우까지 단역으로 배치한 구성은 뮤지컬 장르를 조금이라도 더 신경쓰겠다는 의도로 읽혀진다. 김민건, 강지훈, 유채현, 정다혜, 고훈민 등 젊은 배우들은 완숙한 역량은 아닐지라도 목소리로 힘을 보탰다. 여기에 약방의 감초처럼 주어진 역할을 맡은 단역 배우들의 수고까지 더해져 '제주섬이 설문대가 되리'는 2년 전보다 한층 더 뮤지컬 다운 무대로 관객 앞에 섰다.

최인양 작곡가의 음악은 단번에 사로잡아 각인시키는 인상은 약했지만, 1990년 노찾사부터 이어진 풍부한 경험을 증명하듯 작품 속 감정과 어우러지는 유려한 선율을 자랑했다. 

이 같은 발전에 비해 아쉬운 점도 상당히 컸다. 

‘제주섬이 설문대가 되리’는 설문대할망에 대한 여러 전승 요소들을 연결했는데, 디지털제주문화대전에 소개된 민속학자 故 현용준 제주대학교 명예교수의 설문대할망 설화 소개글 ‘제주를 창조한 여신 설문대할망’에 크게 의존한다고 봐도 지나치지 않다. 

물론 설문대할망이 제주의 먼 미래를 고려해 다리를 세우지 않았고, 그래서 주민들의 비난을 받았다는 새로운 설정은 ‘보전’이란 가치를 담고있다. 그럼에도 익히 알려진 설문대할망 설화 이야기를 나열하는데 그친 전체 줄거리는, 설화 전승 양상을 정리해놓은 현용준 교수의 글 이상으로 극적인 창작을 찾긴 어려웠다. 현용준 교수의 글 속 '개설' 일부분을 인용 표시도 전혀 없이 그대로 작품 안내 책자의 기획의도에 포함시켜 베낀 것처럼 말이다.

장면이 넘어가는 순간마다 마치 TV동화에 등장할 법한 효과음을 사용했는데, 그 자체로도 어색했지만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수 십 차례 반복 사용하면서 극심한 피로감을 선사했다. 설문대할망 설화를 들려주는 할머니와 손녀뿐만 아니라 꿩 신령 간의 대화까지, 배경 설명에 너무 많은 비중을 할애한 점 역시 힘을 빠지게 만든다. 꿩 신령은 신령으로서 역할이 복장과 한 마디 대사 빼고는 사실상 없다시피 빈약했다.

고가영 배우가 홀로 이끌어가는 구성은 가람의 장점인 동시에 한계이자 과제임을 다시 한 번 증명했다. 샌드아트는 무대 규모와 맞지 않아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다.

이상용 대표를 필두로, 뮤지컬에 대한 가람의 관심은 높이 평가한다. 적지 않은 자원과 노력을 투입해 계속 도전하는 건 인정해야 마땅하다. 그러나 뮤지컬을 전문적으로 창작·공연하는 단체가 전무한 지역 여건에서의 뮤지컬 창작은, 고민이 몇 배나 더 수반돼야 한다. 

특히 유튜브, 넷플릭스 등 뉴미디어를 통해 콘텐츠에 대한 대중들의 ‘눈’은 빠르게 높아지고 있다. 이제 전통을 보여주려는 시도는 옛 이야기를 그대로 옮기는 것 이상으로 가치를 부여하고 새롭게 바라보는 재해석이 갈수록 중요해진다. 그것은 한 두 사람의 힘과 능력으로 이룰 수 없다. 동고동락해온 동료들과 머리를 맞댈 때 실마리가 보이지 않을까.

서서히 데우는 물 속 개구리를 떠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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