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도 교육주체다] (8) 제주 학교비정규직 와이드 인터뷰-구 육성회

흔히 교육의 3주체로 ‘교사·학생·학부모’를 꼽는다. 잠시 시선을 돌려 보면 우리가 놓치고 있는 또다른 주체가 있다. 교육활동 지원을 담당하고 있는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다. 소위 ‘비교사 노동자’로 호칭되는 이들도 분명한 교육주체다. 학교라는 교육공간에서 노동의 차별은 반드시 없어져야 하고 비정규직 노동에 대한 존중도 보장되어야 한다. 경쟁과 차별을 넘어 협력과 지원이라는 새로운 교육 패러다임이 자리잡고 있는 주민자치 교육감 시대다. 독립언론 [제주의소리]가 현장 전문가의 릴레이 와이드 인터뷰로 생생한 현장의 목소리를 전한다. / 편집자 

교육공무직(학교비정규직)노동자 중에 ‘구 육성회’라는 직종이 있다. 1970년대부터 학교 행정실에서 일했다. 교육공무직노동자 중 학교에서 가장 오래된 직종이다. 과거에는 학부모들이 내던 육성회비로 급여를 지급했다. 지금은 교육청에서 급여를 지급하고 있다.

‘구 육성회’ 노동자들이 제주지역 최초로 2018년 직종파업을 했다. 그것도 2018년과 2019년 2년 연속 파업을 했다. 2018년에는 2일, 2019년에는 4일. 총 6일 직종파업을 했다.

‘구 육성회’ 신미희(47세, 가명)씨와 부서영(42세, 가명)씨를 지난 12월 4일 교육청 앞 천막농성장에서 만났다. 신미희씨는 지난 1993년부터 A고등학교 행정실에서 ‘구 육성회’ 노동자로 현재까지 25년차 일을 하고 있다. 부서영씨는 구 육성회 노동자로는 비교적 늦은 시기인 2009년부터 B중학교 행정실에서 일을 시작했다. 늦깍이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12년차.

‘구 육성회’라는 직종에 대해 물었다. 신미희씨는 “최초의 학교 비정규직노동자”라며 “1970년대부터 학교 행정실에서 일했다”고 말했다. 제주 도내 공립학교에서 일하고 있는 ‘구 육성회’ 노동자는 현재 28명이 근무하고 있다. 현재 가장 경력이 오래된 노동자는 ‘구 육성회’ 조합원 사이에서 왕언니라고 불리는 김서희씨(가명)로 35년째 학교에서 일하고 있다.

2018년 당시 구 육성회 임금교섭 농성 현장.
2018년 당시 구 육성회 임금교섭 농성 현장.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2018년 당시 ‘구 육성회’ 노동자들은 1년을 일하나 33년을 일하나 급여가 똑같았다. 제주도교육청이 ‘구 육성회’ 노동자들의 기본급을 경력과 상관없이 공무원 9급 1호봉으로 묶었기 때문. 

공무원과 신분은 달랐지만, ‘구 육성회’ 노동자들이 과거 학교 행정실에서 하는 일은 일반 공무원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구 육성회’라는 직종은 타 지역에도 있고, 제주도내 국립학교에도 있다. 이들은 모두 9급 공무원 호봉체계를 적용받고 있다. 제주도내 국립학교에서 일하는 ‘구 육성회’ 노동자들은 경력에 따른 호봉을 모두 적용받고 있다. 

타 지역도 비슷한 상황. 비록 호봉상한(예를 들어 16호봉까지만 올려주고, 경력이 더 늘더라도 호봉이 올라가지 않는 임금체계)이 있는 지역이 많지만, 1년을 일하는 33년을 일하나 9급 1호봉으로 묶은 지역은 제주도교육청이 전국에서 유일했다. 

비정규직노동자라는 개념이 희박했던 과거에는 학교에서 일하더라도 비정규직이라고 임금을 지금처럼 차별하지 않았다. 기능직공무원 또는 일반직공무원 급여 체계를 적용했다. 사기업도 마찬가지. 80년대, 9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조선소 하청노동자들이 정규직노동자보다 급여가 오히려 높은 경우도 있었다. 

신미희 씨는 “초등학교에서 일하던 ‘구 육성회’노동자들은 지난 1997년 초 공무원으로 전환이 됐다”며 “당시 교육부에서 내려온 공문을 보면 중고등학교에서 일하는 ‘구 육성회’ 노동자들도 공무원으로 전환하는 것이 타당하다라는 내용이 있다”고 밝혔다. 

이후 중고등학교에서 일하는 ‘구 육성회’노동자들도 초등학교에서 일한 ‘구 육성회’처럼 공무원 전환이 논의됐지만, 1997년 말 터진 IMF로 이 이야기는 쏙 들어간다. IMF 이후 ‘정리해고제’와 ‘파견근로제’ 등이 도입되면서 비정규직노동자는 대폭 늘었고, 정규직과 비정규직노동자들 간의 임금 격차는 비정규직노동자 숫자만큼 비례해서 차이가 벌어졌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가 학교에도 적용됐다.

불과 3~4년 전만 하더라도 매년 초 교육부가 학교비정규직 노동자 처우개선 안을 발표했다. 당시 교육부가 학교비정규직 노동자 처우개선이 필요한 이유로 IMF 이후 학교에서 공무원이나 교사로 뽑아서 써야 할 인력을 비정규직 노동자로 채용했기 때문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신미희씨는 “우리가 우물 안 개구리였던 것 같아요. 다른 지역 ‘구 육성회’ 노동자들은 호봉 인상이 일정하게 이뤄졌지만 그런 사실도 잘 몰랐어요. 주면 주는 대로 급여를 받았어요.”라고 말했다. 이어 “조리사, 조리실무사 등 기존 학교비정규직노동자들이 임금이 과거에는 진짜 낮았잖아요. 우리는 그것보다는 많이 받아서 거기에 안주했다고나 할까요”라고 토로했다. 

제주지역도 사정은 비슷했다. 2011년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전국교육공무직본부 제주지부(이하 교육공무직본부 제주지부)가 만들어질 때만 하더라도 학교비정규직노동자 월 급여는 불과 60만원에서 70만원대. 당시 월 급여가 100만원이라도 되면 좋겠다는 바람이 컸다. 노동조합은 그렇게 시작했다. 

‘구 육성회’ 노동자들이 2017년 12월 말에 교육공무직본부 제주지부에 가입했다. 당시 제주지역에서도 교육공무직노동자(학교비정규직노동자) 가입이 폭발적으로 늘던 시기였다. ‘구 육성회’ 노동자들이 교육공무직본부 제주지부에 가입하던 즈음 조합원 숫자가 1000명을 넘어섰다. 부서영씨는 다른 노동조합도 알아봤지만, 교육공무직본부 제주지부를 선택한 이유를 “조합원이 많고, 일부 직종에 편향되지 않은 노동조합이어서 가입했다”고 설명했다.

부서영씨는 파일첩에서 명함을 꺼내 “이게 박 국장님을 처음 만났을 때 제가 받은 명함이에요”라고 말했다. 지난 2017년 12월에 나는 ‘구 육성회’ 노동자들을 법원 사거리 어느 카페에서 만났다. 그때 나에게 받은 명함을 보관하고 있었던 것.

2018년 당시 공무원 9급 1호봉 기본급은 144만8800원이었다. 2018년 당시 월 최저임금 급여 157만3770원보다도 적은 금액이다. 공무원 급여가 높다는 사회적 인식이 있지만, 사실 9급 1호봉은 박봉이다.

‘구 육성회’ 노동자 호봉승급 투쟁은 쉽지 않을 거라고 판단했다. 제주도교육청은 타 시도교육청과 다르게 30년 넘게 ‘구 육성회’ 노동자 기본급을 9급 1호봉을 고집했다. 이 입장을 쉽게 바꾸지 않을 거라는 것은 불을 보듯 뻔했다. 그래서 2018년 ‘구 육성회’ 조합원 모임이 있을때마다 직종파업에 대한 적극 검토를 언급했다.  

교육공무직은 제주지역만 하더라도 30여개 직종이 있다. 30여개 직종이 공동으로 파업을 하는 것과 달리 직종파업은 최근 돌봄전담사 파업처럼 1개 직종만 파업을 하는 것을 말한다. 2018년 당시 다른 지역은 직종파업의 경험이 있었지만, 제주지역은 1개 직종만 파업을 한 경험은 없었다. 

게다가 노조에 가입하자 말자 직종파업을 말하는 나를 보고 ‘구 육성회’ 조합원들은 반응은 한마디로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라는 표정이었다. 신미희씨는 당시 나의 이야기를 듣고 “무서웠어요”라고 당시 느낌을 밝혔다.

‘구 육성회’ 조합원들은 그 무서움을 이기고 2018년 12월 11월에 하루 경고파업에 이어, 12월 18일 이틀 직종파업을 진행했다. ‘구 육성회’ 조합원들은 기본급을 9급 1호봉에서 한 호봉 올리는 게 2018년 교섭과 파업 목표였다.  

당시 직종파업 결과 9급 1호봉에서 2호봉으로 올리는 목표를 이루지 못했다. 1호봉에서 2호봉으로 올라도 고작 월 3만원 인상이었다. 교육청은 완강히 이를 거부했다. 액수와 관계없이 ‘구 육성회’ 호봉승급 자체를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대신 노동조합과 교육청은 월 2만2500원 근속수당 신설에 합의했다. 근속 2년 차부터 월 근속수당 2만2500원을 지급, 1년 근속이 올라갈 때마다 근속수당이 2만2500원씩 오른다. 상한은 20년차까지. 신미희씨의 경우는 당시 근속이 20년이 넘었기 때문에 월 45만원이 인상되는 안이었다. 

신미희씨는 “지금 와서 후회되는 게 무엇이냐면 12월 18일 3일간 파업하기로 나왔는데 파업 첫째 날 합의를 한거에요”라고 당시 심정을 밝혔다. ‘구 육성회’ 조합원들은 당시 근속수당을 받지 않아도 좋으니, 월 3만원 인상안인 기본급 1호봉 승급을 교육청에 요구했다. 교육청이 높은 금액을 제시하고, 조합원들은 낮은 금액을 요구하는 교섭이었다.

노사 모두 인상액보다 임금체계를 더 중요시한 교섭이었기 때문. 2018년 12월 18일, 근속수당 2만2500원 인상안으로 합의하자는 결정을 할 때 ‘구 육성회’ 조합원들은 모두 울었다. 차별해소는 때론 돈의 액수가 아니라, 제도 개선이 목표가 되기도 한다. 나는 매년 교섭을 하니까 내년에 호봉승급을 이루면 된다고 조합원을 설득하고 다독였다.   

‘구 육성회’ 조합원들은 다음 해 2019년 9급 1호봉에서 2호봉으로 호봉승급을 이뤘다. 2019년도에는 11월 25일부터 28일까지 4일 파업을 했다.  

2019년 구 육성회 단체농성 현장.
2019년 구 육성회 단체농성 현장.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부서영씨는 “노동조합과 17개 시도교육청이 집단교섭을 하는데, 교육청들이 제주를 방패막이 삼아 구 육성회의 경우 한 호봉 승급도 절대로 못 한다고 했어요. 제주가 전국 구 육성회 노동자들의 처우개선의 발목을 잡은 거에요”라고 말했다. 

결국 교육공무직본부 제주지부 ‘구 육성회’ 조합원들은 “우리가 전국 구 육성회 노동자들의 처우개선 발목을 잡을 수 없다”며 2019년 다시 파업에 들어갔다. 4일 파업 끝에 ‘구 육성회’ 조합원들은 기본급을 9급 1호봉에서 2호봉으로 올렸다. 2018년 이루지 못한 목표를 끝내 쟁취한 것. 

4일 파업해서 기본급을 3만원 올렸으니 금액만으로 따지면 “우리가 이러려고 파업을 했나”라는 소리가 나올 만도 했다. 하지만 구 육성회 조합원들에게는 30년 넘게 ‘넘사벽’(넘을수 없는 사차원의 벽이란 뜻의 은어) 같았던 기본급 9급 1호봉을 뛰어넘었다는 자체가 매우 큰 성과였다. 

신미희씨는 “코로나 때문에 나라가 어지럽기도 하지만, 노동조합은 꼭 있어야 하고 교섭도 없어서는 안되잖아요. 경력에 맞는 호봉재획정이 목표에요.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호봉재획정 되는 날까지 투쟁해야겠죠. 앞으로의 각오입니다”라고 결연한 의지를 드러냈다.

부서영씨는 “(신미희) 언니가 하면 저도 할 수 있어요. 저 혼자 하면 두려워요”라며 “사기업도 경력을 인정해서 급여를 주고 있는데 학교에서 우리는 경력을 왜 인정을 받지 못하는 건지 아쉬움이 많았어요. 그동안 우리 힘으로 하지 못했던 것을 교육공무직본부 제주지부와 같이 하면서, 교육공무직본부 제주지부와 함께라서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라고 소회를 밝혔다. 

글쓴이 박진현은?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전국교육공무직본부 제주지부는 학교에서 일하는 교육공무직 노동자들이 가입하는 노동조합으로 조합원 1천3백여명의 제주지역 최대노조다. 박진현 국장은 2014년 4월부터 전국교육공무직본부 제주지부에서 일했다. 민주노총 부산본부와 공공운수노조 중앙에서 일한 햇수를 합하면 20년 가까이 노동조합에서 일했다. 박진현 국장은 원래 부산 사람이다. 2013년 제주로 이주했다. 주위 사람들에게 제주로 이주하면 노동조합에서 절대로 일하지 않겠다고 떠들었지만 헛말이 됐다. 지금 제주 와서 가장 잘한 일을 뽑으라면, 교육공무직본부 제주지부에서 일한 것이다. 하루도 조용한 날이 없고, 한 해도 파업과 투쟁을 하지 않은 해가 없었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노동조합 하는 보람과 재미를 느낀다. 노동존중 평등학교를 실현하기 위해, 조합원들의 노동과 삶을 전하고자, 제주의소리에 연재를 시작했다.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