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예총 서귀포지회, 15일 천지연폭포 야외공연장서 개최

제공=한국예총 서귀포지회.
1971년 3월 30일 서귀포항에 세워진 첫 번째 남영호 참사 희생자 위령탑. 제공=한국예총 서귀포지회.

(사)한국예총 서귀포지회(회장 윤봉택)는 15일 천지연폭포 칠십리 야외공연장에서 ‘남영호 참사 50주기, 끝나지 않은 진실-제1회 추모예술제’를 개최한다. 

이 행사는 1970년 12월 15일 새벽 1시 27분 벌어진 ‘남영호 참사’ 희생자를 위로하는 자리다. 남영호는 서귀포와 부산을 잇는 여객선으로, 사고 당시에는 정원보다 많은 338명이 타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적재량보다 많은 화물 209t을 싣고 출항했다. 당시 참사로 인해 338명 승객 중 323명이 희생돼 국내 해양 참사 가운데 가장 큰 해난사고로 기록되고 있다.

특히 1970년대 무지한 국내 해양 행정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인재로 평가받는다. 침몰 구조 신호가 일본해안보안청은 수신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무전실 당직자가 근무지 이탈로 조난 신호를 받지 못했다. 사고 소식 또한 일본에서 방송된 특종 보도가 한국에 전해지면서 사고 후 9시간이 지나서야 관계 당국이 인지 했다. 

사고해역 구조 활동 또한 일본어선과 일본 해상순시선은 오전 8시부터 시작했는데, 한국 해경 구조선은 오후 3시 넘어야 현장에 도착했다. 그 결과 338명 승선자 중 15명만 살아남았다. 총체적 불감증이 만들어낸 해양 대참사인 셈이다.

제공=한국예총 서귀포지회.
1982년 9월 상효동 남영호 희생자 공동묘지에 위령탑이 세워졌다. 제공=한국예총 서귀포지회.
제공=한국예총 서귀포지회.
현재 정방폭포 인근에 위치한 위령탑. 제공=한국예총 서귀포지회.

추모예술제는 서귀포예총이 주최를 하고 서귀포문인협회, 서귀포국악협회, 서귀포무용협회, 서귀포음악협회, 서귀포미술협회, 서귀포사진작가협회, 서귀포영화인협회, 서귀포연예예술인협회 등 8개 단체가 주관한다.

자농 보카시비료(대표 이종헌), 서귀동어촌계(계장 강유신)가 협찬하며 남영호 조난자유족회(회장 나종열), 서귀포신문사, 서귀포 미래를 생각하는 시민모임(공동대표 허정옥), (사)제주올레(이사장 서명숙), (사)탐라문화유산보존회, (사)서귀포문화사업회(이사장 이석창), 카노푸스음악회(회장 강승원)의 후원으로 이뤄진다. 서귀포시민들이 합심해서 치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추모예술제는 가장 먼저 서귀동어촌계 후원으로 배를 띄워 바다 위에서 들국화로 헌화하고 제주산 막걸리로 헌작 후 항구로 돌아온다. 길트기를 시작으로 희생자의 넋을 모시는 김하월의 영신맞이 진혼무, 추모 헌주를 위해 만든 ‘계선주’를 메조소프라노 김미현이 부른다.

이어서 남영호 참사로 어머니를 떠나보낸 양해란 목사의 기도가 이어진다. 사고 발생 후 며칠 뒤 김광협 시인이 발표한 추모 헌시 ‘바다여 말하라’를 낭송하고 각계의 추도사가 이어진다.

남영호의 넋을 위로하는 연주·노래·추모시, 고인들의 넋을 기쁘게 하는 오신 연주·노래, 그리고 추모시 낭송 뒤에 유가족인 박연술의 살풀이를 끝으로 송신 의례가 모두 마친다. 다음은 서귀포연예예술인협회에서 해원·화해와 상생을 염원하는 뒤풀이 한마당이 펼쳐져 유가족을 위로한다.

길트기는 강애인, 박사라, 김석래, 박영심, 강경아, 양정선, 한재근, 곽영화, 오숙만, 박재분, 오명숙, 장애선, 강명옥이 진행한다. 추모시 낭송은 문상금·고현심 시인, 추모곡은 김미현·김서희·조승훈, 추모 연주는 최규태·서란영·장애자·정옥배·문순심·양종배, 추모 노래는 김서희·혜리·오연경·신기영·조아영·김영미(금송월)·제도진 등이 맡았다.

서귀포예총은 첫 추모예술제를 시작으로 매해 12월 15일마다 희생자의 넋을 위로하는 예술제를 연다는 방침이다.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