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틈’을 튼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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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원의 영어어휘 톡톡 talk-talk] (46) gap 틈

gap [gæp] n. 틈, 틈새
‘틈’을 튼내며
(‘틈’을 떠올리며)

gap은 gape ‘입을 크게 벌려 하품하다’에서 파생(derivation)되었다. 이 gap에서 나온 낱말로는 gapless ‘틈이 없는’, gapped ‘틈이 벌어진’, gapingly ‘멍하니’ 등이 있다. 이러한 ‘틈’에는 시간적인(temporal) ‘틈’이 있는가 하면 공간적인(spatial) ‘틈’이 있고, 사람 내의(intra-personal) ‘틈’이 있는가 하면 사람들 간의(inter-personal) ‘틈’도 있다. 그리고 그대로 놔두어야 하는 ‘틈’이 있는가 하면 메워 가려고 노력해야 하는 ‘틈’도 있다. 

아파트 사이 사이 / 빈 틈으로 / 꽃샘 분다
아파트 속마다 / 사람 몸 속에 / 꽃 눈 튼다
갇힌 삶에도 / 봄 오는 것은 / 빈 틈 때문
사람은 / 틈
새 일은 늘 / 틈에서 벌어진다

- 김지하의 ‘틈’ -

사람은 틈인데도 그 틈을 용납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사람들은 말 그대로 ‘빈틈없는’ 사람들인데, 정신분석학적으로는 완전주의자/완벽주의자(perfectionist)라고 한다. 완전주의자들은 자신의 틈이 남에게 드러나는 걸 극도로 싫어하며, 그런 틈이 나타나면 반드시 메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틈을 메우는데 자기 자신을 올인(all-in)하므로 자기중심적(self-centered)이 될 수밖에 없고, 다른 사람들에게 따뜻한 연민(pity)이나 관심(interest)을 갖지도 못하게 된다. 빈틈이 없으니 늘 심각한 표정으로 숨 막히는(suffocating) 삶을 살게 되고, 그러다가 종국에는 정신분열(schizophrenia)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제주의소리
사람과 사람 사이의 틈은 마냥 내버려 두어도 안 되고 너무 성급히 메우려고 해도 안 된다. 자연의 강한 바람을 자연스럽게 통과시키는 경이로운 제주밭담의 틈처럼, 앞만 보며 달려온 문명의 빈틈 사이로 들어온 코로나 팬데믹의 틈바구니에서 자연스러운 인류의 반성과 부활을 기원해 본다. ⓒ제주의소리

사람 내의 틈과는 달리, 사람들 간의 틈은 서로 간의 관계에서 나타난다. 평소 가까이 지내던 사람과 틈이 벌어지게 되는 경우를 생각하면 된다. 그 틈으로 인해 어색한 사이가 되고 대화(conversation)가 단절되면 큰소리(yelling)로 싸우는 것보다 더욱 깊은 괴로움(pain)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좀 더 잘해 주고 싶어 좋은 뜻으로 한 말이나 행동까지도 곡해(distortion)되어 틈이 더 벌어지게 되면 속이 터질 정도로 답답한(heavy) 지경까지 이르게 된다. 그렇다고 서로서로 조심스럽게 대하는 게 해결책(solution)이 되지도 않는다. 조심스럽게만 대하다 보면 오히려 그 틈이 필요 이상으로 오래 지속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사람과 사람 사이의 틈은 마냥 내버려 두어도 안 되고 너무 성급히(hastily) 메우려고 해도 안 되는 틈이다. 기회를 보면서(seeing the opportunity) 자연스럽고(naturally) 슬기롭게(wisely) 메워 가야 할 틈이고, 무엇보다도 용서(forgiveness)와 화해(reconciliation)로 서서히 메워 가야 할 틈인 것이다.

정신없이 바쁠 때가 좋은 때라고들 한다. 그러나 요즘엔, 정신없이 바쁠 때부터 인생을 잘못 살고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틈 없이 산다는 것은 사는 맛을 느끼지 못하면서 사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틈틈이 취미생활(hobbies)을 즐기는 사람들을 보면 사뭇 부럽다. 자연의 강한(strong) 바람을 자연스럽게 통과시키는 제주 돌담(stone wall)의 틈을 보면 여전히 경이롭다. 그러고 보면 사람만 틈인 게 아니다. 군데군데(here and there) 온 세상이 틈이다. 앞만 보며 달려온 문명(civilization)의 빈틈 사이로 들어온 코로나, 그 코로나 팬데믹(pandemic)의 틈바구니(tight spot)에서 인류의 반성(reflection)과 부활(resurrection)을 기원하여 본다.

* ‘김재원의 영어어휘 톡톡 talk-talk’ 코너는 제주대학교 통역번역대학원 한영과에 재직 중인 김재원 교수가 시사성 있는 키워드 ‘영어어휘’를 통해 그 안에 담긴 어원적 의미를 들려주는 스토리텔링 해설 코너입니다. 제주 태생인 그가 ‘한줄 제주어’로 키워드 영어어휘를 소개하는 것도 이 코너를 즐기는 백미입니다.

김재원 교수는?

제주대학교 통역번역대학원 한영과 교수(現)
언론중재위원회 위원(前)
미래영어영문학회 회장(前)
제주대학교 통역번역대학원장(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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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표 2020-12-11 11:58:09
교수님의 칼럼과 이유근원장님 댓글에 공감합니다. 감사합니다.
220.***.***.186

이유근 2020-12-11 10:34:15
선우휘 선생께서 독립운동가이신 조소앙 선생의 전기를 원고지 5~60매 쓰시다가 중단하셨다고 한다. 조 선생깨서 너무 빈틈이 없으셔서 도덕 교과서를 쓰는 기분이 들어서 그랬다는 것이다. 그런 조 선생께서도 물산장려운동을 하시면서 양담배를 피우셔서 지적을 받으시자 국산 담재를 담배를 피우시는 것이 아니라 담배를 끊으셨는데 몇 달 만에 야위어가자 제자들이 양담배를 다시 피우시도록 권해서 다시 피우셨다고 한다.
완벽한 사람은 없다. 너무 완벽한 사람은 사람의 냄세가 나지 않아 가까이 하기가 어렵다. 자기가 완벽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다른 사람의 단점을 용서해 주는 것이야말로 우리 사회를 부드럽게 하는 기름과 같다.
220.***.***.1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