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댁, 정지에書] (15) 잊혀져 가는 제주음식에 대한 단상 / 김진경 베지근연구소장 제주음식연구가

밥이 보약이라 했습니다. 바람이 빚어낸 양식들로 일상의 밥상을 채워온 제주의 음식은 그야말로 보약들입니다. 제주 선인들은 화산섬 뜬 땅에서, 거친 바당에서 자연이 키워 낸 곡물과 해산물을 백록이 놀던 한라산과 설문대할망이 내린 선물로 여겼습니다. 제주에서 나고 자란 김진경 님은 제주 향토음식에 대해 공부하고 있는 젊은 연구자입니다. 격주로 '제주댁, 정지에書'를 통해 제주음식에 깃든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편집자 글]

제주동문시장을 가면 내가 유난히 좋아하는 점포가 하나 있다. 그 집은 제주에서 오래전부터 통닭을 튀겨서 파는 집인데 내가 그 집을 좋아하는 이유는 통닭이 특별하게 맛있어서도, 주인아저씨의 인심이 후덕하기 때문도, 오래전부터 갔던 단골이어서도 아니다. 그곳을 내가 좋아하는 이유는 딱 하나이다. 그 집 간판.

그 닭집의 간판이 다른 곳과 뭐가 특별하겠냐 만은 나에게는 유난히 특별하게 보인다. 아날로그 감성이 담뿍 묻어 나는 이 집의 간판에는 제주식 가문잔치를 했던 사람이라면 눈에 띄는 단어가 유독 눈에 띌 것이다. 바로 ‘잔치꽃닭’.

이 닭집이 나에게 특별한 이유는 지금은 거의 사라져 간 제주의 가문잔치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신부상에 올렸던 잔치꽃닭을 취급했던 집이었기 때문이다. 간판에 써진 ‘잔치꽃닭’이 반갑기도 신기하기도 해서 무작정 아저씨에게 지금도 잔치꽃닭을 파느냐고 물어봤는데 주인아저씨는 갑자기 안으로 들어가서 무언가를 주섬주섬 꺼내며 사진 몇 장을 보여주셨다. 

사진=김진경. ⓒ제주의소리
잔치꽃닭을 취급하던 그 집은 지금 시장 내 조그만 편의점으로 운영되고 있다. 제주 가문잔치의 추억을 담아내는 점포가 사라져가며 제주의 가문잔치문화는 서서히 잊히고 있다.사진=김진경. ⓒ제주의소리
사진=김진경. ⓒ제주의소리
잔치꽃닭을 취급하는 닭 직매장. 사진=김진경. ⓒ제주의소리

주인아저씨의 회고에 따르면 당시 어머님이 만든 잔치꽃닭은 정말 인기가 많았다고 한다. 가문잔치가 주로 몰리는 주말이나 봄가을이면 아침 일찍부터 매장 진열대에 알록달록 리본과 조화, 구슬 등으로 장식된 꽃닭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다고 한다. 불과 20여 년도 채 되지 않은 마지막 닭집의 풍경이 주인아저씨의 말만 듣기만 했는데도 그 당시의 닭집 풍경이 생생하게 상상이 된다.

“우리 어머니가 아직도 살아계셔서 꽃닭을 하실 수는 있는데, 아이고 그거 작업하는 거 진짜 시간 오래 들고 정성 들여야 해.”

2대째 이어 어머니가 운영하셨던 닭집을 이어서 하시는 주인아저씨는 제주동문시장에서 유년과 청년 시절을 보냈을 것이다. 제주사람들의 잔칫날 빠질 수 없었던 잔치꽃닭을 만드는 어머니를 옆에서 보며 살아온 그분은 그렇게 제주동문시장의 역사의 한 편에서 묵묵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엔가 점포 안의 기물들이 깨끗하게 비워졌다. 그와 함께 주인아저씨도 출근하지 않고 간판만 덩그러니 몇 일간 달려 있었다. 그 후 얼마 있지 않아 내가 좋아했던 그 간판마저도 사라졌다. 나랑 아무런 관련도 없던 그 통닭집의 간판마저 내려가는 걸 본 나는 그날 하루종일 기분이 이상하고 섭섭한 마음이 들었다. 제주동문시장을 방문할 때마다 기분 좋은 부적처럼 나에게 위안과 위로를 주었던 그 간판의 ‘잔치꽃닭’은 나뿐만 아니라 중장년 이상 제주사람들만 아는 비밀스러운 암호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더 그리하였을 것이다.

그 닭집은 지금 시장 내 조그만 편의점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렇게 내가 아는 마지막 제주 가문잔치의 추억을 담아내는 점포가 또 하나 사라져갔다. 그렇게 제주의 가문잔치문화는 서서히 잊히고 있다.

사진=김진경. ⓒ제주의소리
kfc는 제주에서 가장 번화한 곳 중 하나인 시네하우스 극장 아래층인 1층에 제주동문점이라는 이름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사진=김진경. ⓒ제주의소리
사진=김진경. ⓒ제주의소리
명맥이 이어지고 있는 한성국수. 한성국수는 1947년 무렵부터 제주동문시장에서 운영하다 2018년 10월부로 영업을 끝내고 다른 사람에게 넘겨졌다. 사진=김진경. ⓒ제주의소리

또 하나, 주식회사 제주동문시장 2층은 현재 일부만 운영되고 있고 과거 동양극장(후에 시네하우스) 자리는 운영되지 않고 썰렁하게 남겨져 있다. 80년대생인 나는 당연히 시네하우스 세대이다. 그리고 kfc는 제주에서 가장 번화한 곳 중 하나인 시네하우스 극장 아래층인 1층으로 제주동문점이라는 이름으로 자리 잡았다. 우리세대는 그렇게 kcf 치킨과의 첫 만남을 여기에서 마주했다. 우리보다 더 윗세대에게 들어보는 동양극장은 친구, 연인, 동료 간 만남의 장소이다. 마치 70~80년대 생 제주청ㆍ장년들이 “시청 석현슈퍼에서 보게” 와 일맥상통하는 우리만의 비밀암호 같은 장소이다. 그리고 역시 마찬가지로 시네하우스(구 동양극장), kfc제주동문점도 제주의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제주의 고기국수에 사용되는 건면을 생산했던 한성국수도 1947년 무렵부터 제주동문시장안에 정착하여 운영했었던 곳이었다. 지금은 2층에 국수터만 덩그러니 남아있고 2018년 10월부로 영업을 마무리 지었다. 제주 고기국수의 역사를 시작했다 해도 과언이 아닌 한성국수공장의 재래식 제면 기계는 국립민속박물관에 기증되었다. 물론 한성국수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지금 한성국수는 다른 사람이 인수받아 제주 구도심이 아닌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 영업을 하고 있어 한성국수라는 브랜드는 그 명맥을 이어나가고 있다. 한성국수가 사라져 아쉬운 사람들이 있다면 그나마 그 인근 50여 년 동안 묵묵히 지키고 있는 금복국수와 동진식당(혹은 두 국수집)은 여전히 한성국수의 면을 이용하여 고기국수를 판매하고 있다. 한성국수공장터와 걸어서 1분거리에 있는 두 국숫집의 화구는 여전히 50여 년째 그 불이 꺼지지 않고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이로이로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터줏대감'들이 있는 제주의 구도심은 이렇게 제주 사람들을 키워냈다. 아직 50여 년이 넘게 이곳을 지키며 우리를 반기는 정겨운 곳들이 많다. ⓒ이로이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제주시 구도심 일대에는 묵묵하게 50여 년 동안 이곳을 지키며 언제나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오래되고 정겨운 곳들이 있다. 구도심을 오랫동안 지키고 있는 아주반점과 송림반점, 북경반점은 같은 중국집이지만 각 노포들마다 그 맛과 개성이 뚜렷하다. 터줏대감같은 함흥면옥도 오랫동안 한 자리를 묵묵하게 지키고 있다. 동문시장 내 광명식당도 반세기 동안 제주사람들의 헛헛한 마음을 달래주는 따뜻한 한 수저를 선사한다. 서점인 우생당과 오래된 제주시 구도심의 약국들과 병원도 여전히 이곳을 탄탄하게 받쳐주는 반석같은 존재들이다.

물론 역사 속으로 사라진 영춘빵집, 호남당, 동백다방, 칠성다방, 동양라사 등 우리세대 젊은이들의 기억에는 없지만, 제주인들의 이야기와 삶의 한 부분을 담당했던 곳들도 분명히 아직도 회자되고 있을 것이다. 제주의 구도심은 이렇게 제주 사람들을 키워냈다.

사진=김진경. ⓒ제주의소리
옛 우생당서점의 모습을 표현해 둔 전시물. 사진=김진경. ⓒ제주의소리
사진=김진경. ⓒ제주의소리
옛 동양라사의 모습을 표현해 둔 전시물. 사진=김진경. ⓒ제주의소리

김진경은?

20대에 찾아온 성인아토피 때문에 밀가루와 인스턴트 음식을 끊고 전통음식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떡과 한과에 대한 공부를 독학으로 시작했다. 결국 중학교에서 아이들 가르치던 일도 그만두고 전통 병과점을 창업해 새로운 인생을 시작했다.

이후 제주전통음식으로 영역을 확장해 현재 베지근연구소에서 제주음식 연구와 아카이빙, 제주로컬푸드 컨설팅, 레시피 개발과 쿠킹랩 등을 총괄기획하고 있다.

현재 제주대학교 한국학협동과정 박사과정을 밟으며 제주음식 공부에 열중이다. 두 아이를 키우고 있어 어멍의 마음으로 제주음식을 대하고 있다.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