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길웅의 借古述今] 201. 콩 볶아 먹던 소리한다

* 보까 : 볶아
* 먹단 : 먹던, 먹었던 / 둘 다 과거회상 시제임

말이란 개인 혹은 여러 사람과의 사이에서 이뤄지는 의견 전달과 소통의 도구이면서 수단과 방법이다. 자기 혼자 생각해서 멋대로 말하는 것은 어떤 경우에도 온당치 않다. 나의 입장만 내세워서 되는 일은 없다. 그래선 무리가 따른다. 상대는 물론 전체적인 분위기를 염두에 두어야 함은 물론이다.

상대는 아랑곳하지 않고 과거지사를 털어놓는 것은, 그게 지금 자리와 관계없는 얘기일 때는 참 민망한 언행이 될 수밖에 없다. 문제 해결을 위해 도움이 안되는 얘기는 말한 사람의 의도를 의아하게 여길 뿐 아니라, 경우에 따라서는 인격을 의심케 하게도 된다.

콩을 볶아 먹는 것은 오늘날의 주전부리 곧 군것질이다. 옛날엔 궁색한 살림 형편이라 콩을 볶아 먹는 일이 쉽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옛날 콩 구워 먹던 얘기를 자랑삼아 한다는 품위를 지키지 못하는 것일 뿐 아니라, 적어도 격에 맞는 일도 아니다.

더군다나 말하고 있는 현장의 담론과는 관계가 없는 것이니, 참여하고 있는 사람들로부터 빈축을 사게 마련이다.

1971년 8월에서 10월 사이 제주시 오라1동에서 촬영한 사진. 마당을 중심으로 안거리 살림집과 밖거리 등 ㄷ형의 전형적인 제주 가옥 구조를 갖추고 있다. 가운데는 콩을 말리고 있다. 사진=이토 아비토, 제주학아카이브.
1971년 8월에서 10월 사이 제주시 오라1동에서 촬영한 사진. 마당을 중심으로 안거리 살림집과 밖거리 등 ㄷ형의 전형적인 제주 가옥 구조를 갖추고 있다. 집 가운데에서는 콩을 말리고 있다. 사진=이토 아비토, 제주학아카이브.

‘억새 밭에 새소리 헌다’로 들릴 게 아닌가. 억새밭에선 억새 소리를 내야지 새(茅:띠 모, 초가지붕을 일던 풀)소리를 내면 전체 소리의 조화를 깨게 되니, 자연스러운 것이 못 된다. 조화를 깰 뿐 전체를 위해 득이 될 수 없으니, 단적으로 말해 아무런 의미도 없다 함이다.

콩 볶아 먹던 과거는 현재에 일고의 가치도 없는 한낱 얘기에 불과하다. 오늘의 현안문제를 풀고자 모여서 의견을 듣고 그 해결책을 모색하는 자리에서 지나간 얘기가 도대체 무슨 소용이겠는가. 옛날에 콩을 볶어 먹었든 말았든 개인의 소소사에 지나지 않은 일 이상으로 뜻이 없는 것이니 말이다.

같이 회자되던 것이 있다.

‘옛날 콩죽 쒀 먹은 말헌다’, ‘콩 볶아 먹단’이 ‘콩죽 쒀 먹은’으로 조금 변형됐을 뿐 내용은 매우 유사해서 거기서 거기다. 

지난날에 콩죽을 쑤어 먹었던 게 오늘에 무슨 화젯거리가 될 수 있겠는가. 그런 사소하기 짝이 없는 일을 꺼내 말한다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다. 흔히 속된 표현으로 ‘싸분 0’이라 하는 것이다. 벌써 먹고 배설해 버린 것인데, 지금 그런 얘기를 말이라고 입에 바르고 있느냐 함이다. 더욱이 백해무익한 것을 시시콜콜한 데까지 얘기를 하고 있으니. 실소(失笑)하게 생겼다.

무의미한 과거지사를 새삼 거론하는 것을 비유할 때 썼던 말이다. 지금 이런 사람은 드물 것이다. 했다가는 주제 파악 못하는 인물로 낙인찍히기 십상 아니겠는가. 요즘 젊은이들 ‘꼰대’ 서열도 끼워주지 않을 것이다.

# 김길웅

동보(東甫) 김길웅 선생은 국어교사로서, 중등교장을 끝으로 교단을 떠날 때까지 수십년 동안 제자들을 가르쳤다. 1993년 시인, 수필가로 등단했다. 문학평론가이자 칼럼니스트이기도 하다. 도서관에 칩거하면서 수필, 시, 평론과 씨름한 일화는 그의 열정과 집념을 짐작케한다. 제주수필문학회, 제주문인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대한문학대상, 한국문인상 본상, 제주도문화상(예술부문)을 수상했다. 수필집 <마음자리>, 시집 <텅 빈 부재>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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