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원희룡 제주지사님께 드리는 고언 / 강원보 제주제2공항반대 성산읍대책위 집행위원장

해도 해도 너무하는 것 아닙니까? 원희룡 지사께 드리는 이야기입니다. 

원지사님, 정말 해도 해도 너무하는 것 아닙니까?  도민의견수렴을 위한 여론조사 방안에 대해 도의회와 협의하는 과정에서 서귀포시 성산읍 여론조사를 따로 해야 한다고 끝까지 고집을 부리셨다고요. 그래서 끝내 관철해 내셨고요. 그래서 축하드려야 하나요.

성산읍 여론조사를 따로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직접 나서서 설명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주민수용성 때문이라고 주장하실 겁니까? 주민수용성이 무슨 뜻인지 모르는 건 아니겠지요. 아무리 사회적으로 필요한 시설이라 하더라도 그 시설로 인해 피해를 봐야 하는 주민들의 이해를 구하고 동의를 구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당연합니다.

그런데 제2공항 건설로 피해를 보는 주민들이 누굽니까? 

제2공항이 건설될 경우 땅을 잃거나 소음피해를 보는 지역은 온평리, 난산리, 수산리, 신산리, 그리고 고성리 일부입니다. 지금까지 피해를 봤다는 개발행위허가 제한지역도 딱 다섯 마을이지요. 피해주민들의 수용성 확보를 위해서 별도의 의견수렴이 필요하다면 다섯마을 주민들의 의견을 물어야지요. 

나머지 성산 마을들이 무슨 피해를 봤거나 앞으로 피해를 볼 수 있다는 겁니까? 피해를 보는 분들이 지금 제2공항을 빨리 건설하라고 운동을 하고 있다는 겁니까? 난센스도 이런 난센스가 없습니다.

피해주민이 아닌데도 별도로 조사를 해야 하는 다른 근거나 명분이 있습니까? 있다면 얘기해 주십시오. 제 둔한 머리로는 아무리 생각해도 그 답을 찾을 수 없으니까요. 근거나 명분도 없는 성산읍 별도조사를 끝까지 고집해서 관철해낸 이유는 무엇입니까? 설마 도민여론조사에서 반대가 많아도 성산읍에서 찬성이 많으니 그냥 제2공항을 건설해야 한다고 주장하시려는 건가요?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시나요? 혹시 국토부쪽 하고 무슨 밀약이라도 하신 건가요? 밀약을 했다고 한들 무슨 소용입니까? 부질없는 짓이지요.

강원보 제주제2공항강행저지비상도민회의 공동상임대표가 12월 11일 오후 2시 민주노총 제주본부 사무실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제주 제2공항 여론조사 추진과 관련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제주의소리 DB
강원보 제주제2공항강행저지비상도민회의 공동상임대표(제주제2공항반대 성산읍대책위원회 집행위원장)가 12월 11일 오후 2시 민주노총 제주본부 사무실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제주 제2공항 여론조사 추진과 관련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제주의소리 DB

원희룡 지사님!

아무리 성산읍에서 찬성이 많이 나온들 다수 도민이 반대하는데 제2공항을 추진할 수 있겠습니까? 2019년 2월 여당과 국토부의 당정협의에서 객관적, 합리적 방법으로 도민의견을 수렴해서 제시하면 정책결정에 충실히 반영하겠다고 했습니다. 얼마 전 현 제주공항 활용가능성 심층토론을 앞두고 국토부-제주도-제주도의회 3자 합의 당시에도 국토부가 '도민의 동의와 지지'가 없이 강행하지 않겠다고 밝혔고요. 더구나 최근 여론조사 협의를 중재하러 온 국토부 국장은 도의회 특위 위원들이 모두 있는 자리에서 도민여론조사에서 단 1%라도 반대가 많으면 사업을 접겠다고 했다고 하더군요. 여기서 국토부가 존중한다거나 정책결정에 반영한다고 한 건 모두 '도민' 의견이었습니다. '성산읍 주민 의견'이 적시된 적이 한번이라도 있었습니까? 

원 지사님도 마찬가지지요. 지금까지 언제 성산읍민이 원해서 제2공항을 지어야 한다고 하신 적이 있으신가요? 공항시설 확충이 제주도의 미래고, 도민의 숙원이라고 했고, 그 방안이 제2공항 건설이라고 이야기한 게 아니던가요? 그런데 다수의 도민들이 제2공항이 제주도의 미래가 아니라고 반대하는데, 성산 주민들이 원한다고 하니 추진해야 한다고 하실 겁니까? 성산읍장이라면 그런 주장을 할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도민을 대표하는 도지사 아닙니까? 더구나 대통령이 되겠다는 포부까지 밝힌 마당에 일개 읍장 노릇을 하겠다고 나서는 것입니까?

원희룡 지사님.  

성산읍 별도조사에 반대하는 이유는 성산읍 조사가 무슨 효력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가 아닙니다. 의미도, 효력도 없는 조사인데 지역공동체에 돌이킬 수 없는 상처만 남길 것이기 때문이죠. 한쪽에 5년 전 '마른 하늘에 날벼락'으로 공항이 들어온다는 발표를 들은 이후 하루하루 가슴 졸이며, 때로는 생업을 포기하고 심지어는 곡기까지 끊어가면서 싸워온 피해마을 주민들이 있습니다. 또 다른 한쪽에는 공항 주변 개발이나 관광객 증가로 이익을 기대하여 찬성하는 주민들이 있지요. 14개 마을 중에 피해마을은 4개뿐이고, 또 관광지이자 상업지구인 고성이나 성산은 인구가 많으니 찬성 의견이 많을 수 있겠지요. 이해관계가 다르고 의견이 다른 것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이해관계의 차이가 대립과 반목, 갈등으로 치닫지 않게 조정하는 게 행정의 역할인데, 오히려 갈등과 반목을 부추겨야 되겠습니까? 성산에서 찬성이 많이 나오면 피해마을 주민들은 이웃마을 주민들에게 어떤 감정을 가지겠습니까? 친척, 친구로 어울려 지내온 마을 주민들이 서로 삿대질하며 지낼 것이 뻔하지 않습니까? 해군기지 문제로 강정마을에서 벌어졌던 비극이 성산읍에서 벌어지도록 부추기는 게 행정이 할 짓입니까? 

원희룡 지사님. 

이럴 때 쓰라고 소탐대실이라는 말이 있는가 봅니다. 가능하면 여론조사를 하지 않으려는 입장이니 마음껏 배짱을 부릴 수 있었겠지요. 도의회는 여론조사는 해야겠는데, 독자적으로 할 자신은 없고, 해도 효력을 인정받지 못하지 않을까 전전긍긍하고 있으니 말도 안 되는 안을 던져놓고 '아니면 말고' 식으로 버티면 그만이었겠지요. 그렇게 해서 성산읍 별도조사를 관철시킬 수 있었겠지만, 그 때문에 잃어버릴 것은 보지 못하는 건 아닌지요?

어떤 분이 페이스북에 성산읍 별도조사라는 제목의 기사를 링크하고 "원희룡 참 구질구질하다"고 썼더군요. "원희룡이 이 정도 밖에 안 되나"라고 생각한 사람이 그 분 뿐일까요? 최근 원 지사님의 송악산 선언과 후속조치를 보면서 "역시 원희룡은 좀 다르네" 하고 생각한 분들이 꽤 있을 겁니다. 아름다운 패배는 진정한 승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셈이지요. 우연인지 모르겠지만, 그 이후 원희룡 지사님에 대한 지지도가 올라갔다는 보도도 있더군요. 

그런데 제2공항에서는 왜 아름다운 패배를 거부하고 해도 해도 너무한다 싶을 정도로 구차스러운 모습을 보이는 것인지 모르겠네요. 그렇게 해서 이길 수 있는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제2공항은 이미 물 건너 갔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송악산, 동물테마파크를 정리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뭡니까? 뭐니 해도 도민들의 생각이 현저하게 바뀌고 있는 현실을 인정한 것이 잖아요. 지난 30년간 (제주는) 양적 관광과 개발의 길로 달려 왔는데, "더 이상 가면 안 되겠다", "이제는 개발보다는 보전과 관리로 가야 한다"는 쪽으로 바뀌고 있는 것이지요. 제2공항에 대한 반대 여론이 높아진 것도 근본적으로 그 때문이고요. 그런데 죽은 자식 뭐 만진다고 아직 제2공항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건가요? 

원희룡 지사님!

본인이 나서서 제2공항 하지 말자고 말을 바꾸라는 거 아니잖아요. 그저 도민의 뜻을 있는 그대로 정직하고 공정하게 묻고, 그 결과를 담백하게 수용하면 될 일이 잖아요. 그렇게만 해도 원 지사님은 도민의 뜻을 받들 줄 아는 민주적 지도자로 우뚝 설 수 있을텐데, 왜 쪼잔하게 아집을 부리는지 모를 일입니다. 

혹시 정말로 아직도 제2공항이 제주의 미래라고 보고 계신건가요? 그렇다면 정말 현실 변화에 둔감하다고 할 수밖에 없네요. 코로나19와 기후 위기로 도민들의 생각은 환경을 더 보존해야 한다는 쪽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이를 차치하더라도 5200만명 정도의 우리나라 인구가 50년 후에는 3000만명 수준으로 줄고, 고령화도 가속화되어 75세 미만 인구가 4800만명에서 2800만명으로 줄어든다고 하지 않습니까. 제주 공항이용객의 90%가 내국인이고, 국토부 예측에서도 해외 관광객은 늘어나지 않는다고 하는데,  현 공항보다 더 큰 제2공항을 지으면 누가 이용한단 말입니까? 보나마나 애물단지가 되어 후손들에게 큰 부담만 안길 뿐이지요. 아니면 공군기지가 되어 버리거나… 원희룡 지사님은 그것을 바라는 건 아니겠지요.

강원보 제주제2공항반대 성산읍대책위원회 집행위원장.
강원보 제주제2공항반대 성산읍대책위원회 집행위원장.

원희룡 지사님!

제발 큰 정치인이 되십시오. 이 기회에 도민의 뜻을 받들어 지역 사회의 가장 큰 쟁점이자 갈등 현안이며, 나아가 전국적인 관심사가 된 제2공항 문제를 시원하게 풀어낸다면 그보다 큰 정치 자산이 어디 있겠습니까? 여기서 쪼잔하고 구질구질한 모습을 보이면서 갈등을 더욱 꼬이게 만든다면 어디 가서 대권을 얘기할 수 있겠습니까? 도민들의 박수 갈채 속에 전국적인 지도자로 우뚝 서는 원희룡 지사님을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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