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世通, 제주 읽기] 182. 김은진, 예술가의 손끝에서 과학자의 손길로, 2020.

김은진, 예술가의 손끝에서 과학자의 손길로, 2020, 생각의힘. 출처=알라딘.
김은진, 예술가의 손끝에서 과학자의 손길로, 2020, 생각의힘. 출처=알라딘.

대중의 관점에서 보면, 미술관은 곧 전시장이다. 대다수 대중은 미술관에 가서 전시를 본다. 요즘은 미술관에 대한 일반의 이해가 높아져서, 전시 이외에도 교육 프로그램이나 도서관, 기록관, 휴게 공간 등의 다양한 기능과 역할을 만나기도 하지만, 노출 빈도로 볼 때 역시나 핵심은 전시장이다.

하지만 이는 미술관에 대한 표피적인 이해에 그친다. 미술관에는 전시나 교육 이외에도 눈에 보이지 않는 어마어마한 일들이 숨겨져 있다. 한국처럼 근대의 경험이 100년 남짓한 신생국가로서는 넘사벽 같은 일이지만, 제국주의 시대를 거치면서 어마어머한 노략질로 보물 창고를 가득 채운 유럽의 박물관들을 보라. 아니면 근대적 계몽주의 시기를 거치면서 기부문화로 일군 미국의 미술관들을 보라. 역시 박물관과 미술관의 핵심은 컬렉션이다.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 김은진의 저서인 이 책 '예술가의 손끝에서 과학자의 손길로'는 미술관 현장의 임상 체험을 토대로 보존과학의 흥미진진한 세계를 소개한다. 미술품 보존과학이라는 분야는 미술관의 물적 토대를 이루는 핵심적인 영역이다. 흔히들 아픈 미술품을 치료해주는 미술작품의 의사로 알려져있다.

하지만 이게 다가 아니다. 보존과학은 예술작품의 존재 자체를 유물론적 관점에서 정초해주는 미술문화의 물적 토대에 해당한다. 예술 작품들, 특히 미술작품들이 물질 상태로 존재하기 때문에 그 물질적 존재를 지탱하게 해주는 보존과 복원의 문제는 말그대로 미술(관) 문화의 지속가능성을 담보해주는 가장 원천적인 역할과 기능이다. 보존과학은 작품에 대한 물질적 이해를 토대로 작품에 대한 해석을 근본적으로 바꿔놓기도 한다. 렘브란트의 명화에 대한 저자의 얘기를 들어보자. 

“렘브란트는 당초 이 그림을 밝은 낮을 배경으로 그렸다고 전해진다. 그런데 왜 ‘야간 순찰’이라는 제목이 붙게 되었을까? 렘브란트가 그림을 완성하고 나서 직접 바니시를 칠했는지 아니면 다른 누군가가 바니시를 칠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그림의 두꺼운 바니시층이 변색되고 그 위에 먼지가 쌓였다. 그러면서 원래 대낮의 ‘주간 순찰’을 묘사했던 이 그림은 빛을 잃어 갔다. 관람객들이 보기에는 ‘주간 순찰’이 아니라 ‘야간 순찰’ 장면이었다. 하지만 1940년대 복원 과정에서 반전이 일어난다. 보존가들이 두텁게 칠해진 바니시를 제거하자 그 아래 숨겨져 있던 ‘빛의 화가’ 렘브란트의 밝은 태양빛이 세상에 드러난 것이다.”

- '예술가의 손끝에서 과학자의 손길로' 중

이처럼 ‘야간 순찰’로 알고 있던 그림이 ‘주간 순찰’로 바뀌는 결정적인 물질적 토대를 마련하는 것이 보존과학의 힘이다. 이외에도 수많은 사례들을 통하여 보존과학은 예술작품에 대한 과학적 분석을 토대로 작품에 대한 체계적인 이해를 뒷받침할 뿐만 아니라 작품의 진위 문제를 비롯해 작품에 대한 해석 자체를 뒤바꿀 정도로 강력한 근거를 제시하는 경우도 있다.

“과학과 예술이 만나 얼마나 멋진 일을 할 수 있는지, 이보다 더 잘 보여 주는 예는 없다”는 물리학자 김상욱의 추천사처럼, 예술에 대한 물질적 이해를 바탕으로 작품 해석의 폭을 넓히는 보존과학은 과학과 예술의 협업을 가장 강력한 수준에서 견인하는 영역이다. 

1부 ‘그림이 들려주는 복원 이야기’는 미술품 복원의 역사와 현장의 첨예한 의제들을 다룬다. 성공과 실패의 사례들, 전통과 현대의 보존기법의 변화 등을 소개한다. 2부 ‘미술관으로 간 과학자’는 실제의 미술품 복원 현장에서 활용되는 과학의 사례들을 소개한다. 과학기술을 통하여 분석해낸 데이터로 작품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이끌어내는 사례들이 많이 있다. 3부 ‘미술관의 비밀’은 미술관 차원에서 이뤄지는 미술품이 보존이 어떤 의미와 가치가 있는지를 알려준다.

이렇듯 미술품 보존 분야의 현장 전문가로서 생생한 경험을 토대로 한 이 책은 보존과학이라는 전문분야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대중서이다. 예술은 창작과 향유 과정 자체가 감성적 이해를 토대로 한 분야이지만, 그러한 예술적 소통의 근간에 과학적 토대로서의 보존과학이 존재한다는 점. 우리가 예술에 대한 유물론적 이해의 지평을 더욱 넓혀야 하는 이유이다.

▷ 김준기

홍익대학교 예술학 석사, 미술학 박사.
현(現)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실장, 경기문화재단 '평화예술대장정' 프로젝트 총감독 겸 정책자문위원장, 예술과학연구소장, 지리산프로젝트 예술감독, 미술평론가.
전(前) 부산비엔날레 전시기획 팀장, 부산시립미술관 큐레이터, 대전시립미술관 학예연구실장, 제주도립미술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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