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봉선의 마을 책방을 찾아書](11) 제주시 아라동 ‘아무튼 책방’

마을책방은 단순한 기호품을 파는 곳이 아닙니다. 대형서점처럼 책을 어마어마하게 팔아치우는 곳은 더욱 아닙니다. 후미진 도심 골목이나 시골 언저리에서 마을책방을 만난다면 그것은 행운이지요. 마을 초입 팽나무 아래 마을사람들이 모여들듯 책벌레들이 도란도란 어우러질 수 있는 사랑방 같은 곳입니다. 제주도 마을 곳곳에 작은 책방들이 사람을 살리고, 다시 사람이 마을을 살리고 있습니다. 그것이 마을책방의 가치입니다. [제주의소리] 시민기자 고봉선 시인이 바람을 쐬듯 책방마실을 다니고 있습니다. 책과 사람이 만나는 곳 ‘마을 책방’에서 책방지기의 책 살림 이야기를 시인을 통해 듣습니다. [편집자 글]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만수산 드렁칡이 얽혀진 들 어떠하리
우리도 이같이 얽혀져 백 년까지 누리리라 

- 이방원의 하여가 -

금방이라도 눈이 내릴 것 같은 12월 중순, “아무튼 책방”을 찾아 모처럼 구제주로 들어갔다. 아무튼, 아무튼… 운전하는 동안 입안에서는 자꾸만 책방 이름이 맴돈다. 어느 순간, 하여가의 초장과 “아무튼”의 고리가 맞물렸던 것일까.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느닷없이 난 이방원의 하여가를 읊조리고 있었다. 조선 건국을 앞두고, 얽힘의 논리로 화해와 조화를 요구하고 바라면서 정몽주의 진심을 떠보고 회유하고자 이방원이 읊은 시조 하여가. 정몽주의 단심가와 함께 달달달 암기하던 때가 새삼스러웠다. 아무튼, “아무튼 책방”을 찾아가는 길이다. 

“아무튼”이란 “아무러하든”의 준말로 앞 문장의 내용이나 흐름과 상관없이 화제를 바꾸거나 본래의 화제로 돌아갈 때 이어 주는 말이다. 책방의 이름을 고민할 즈음, 마침 책방지기는 아무튼 시리즈를 읽고 있었다. 너무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은 크기의 책, 여기에서 힌트를 얻은 책방지기는 책방도 너무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은 크기가 되기를 바라면서 “아무튼”이라고 이름을 지었다. 그렇다. 동네 사랑방이라 하든 놀이터라 하든, 아무튼 이곳은 책방이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아무튼 책방 입구. 천천히 답을 찾아가면 돼. 우리는 계속 자라는 중이니까.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이제 막 50대에 접어든 책방지기 강영선 씨, 그가 태어난 곳은 한담해변과 곽금 8경으로 유명한 애월읍 곽지리다. 중2 때 제주시로 전학하며 고향을 떠나게 되었고, 제주대학교에 입학하며 아라동에 살기 시작한 것이 지금에 이르렀다. 고향을 떠난 지도 30년이 넘었다.

“인생 후반전의 놀이터, 책방”
2019년 7월 하순, 강영선 씨는 아라중학교로 가는 길목에 책방을 오픈하며 책방지기가 되었다. 그러니까 일 년 하고도 5개월에 접어든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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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로 진열된 아무튼 책방 서가. 이곳에는 ‘아무튼 여행’, ‘아무튼 주책’ 주제와 관련 책들이 꽂혀 있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아무튼, 책방을 한다는 건 기본적으로 책을 좋아한다는 전제가 깔린다. 강영선 씨도 마찬가지다. 책방을 시작하기 전 강영선 씨는 한 달에 2십만 원 정도의 책을 구매하면서 꾸준히 읽었다. 그렇게 책과 함께하는 날들을 보내다가 퇴직과 함께 50대로 접어들게 되었다. 인생 후반전이 시작된 것이다. 

인생 후반전, 무의미하게 보낼 수는 없었다. 무엇을 해야 할까, 기왕이면 좋아하는 것을 하고 싶었다. 다행히도 남편이 응원해주었다. 조그만 책방이라도 하는 게 어떻겠냐고 한 것이다. 본인도 원하던 것이었다. 그렇게 결정은 흔쾌히 내려졌다. 책방으로 돈을 벌 수 없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기에, 그저 ‘책과 함께 놀아 볼까?’ 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다. 

혼자 노는 놀이터는 재미가 없다. 사람이 모여야 한다. 책방지기 강영선 씨는 이 궁리 저 궁리 끝에 일부분 책은 앞표지가 보이도록 배열해 놓았다. 시각적으로 보았을 때 가장 책을 읽고 싶어지도록 해주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노력 끝에 손님들이 드나들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작은 책방이라는 이미지답게 판매보다는 정을 나누는 공간이 되었다. 구멍가게 서점만이 지닐 수 있는 장점이었다.

“준비와 비밀의 책”
아무리 책을 좋아한다고 해도 손가락을 빨며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다. 비록 놀이 삼아 출발했을지언정 최소한 운영비는 건져야 한다. 준비가 필요했다. 

강영선 씨는 퇴임하기 6개월 전부터 수도권에 가서 여러 책방을 둘러보며 ‘책방을 어떻게 운영하는지, 어떤 컨셉들이 있나.’ 등을 살폈다. 돈은 차후의 문제였다. 그다지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연세가 부담될 정도로 비싸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아무튼, 연세는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도 뚜껑을 열어보기 전에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었다. 

믿는 구석도 있었다. 지인들이었다. 제주에서 근 50년을 산 토박이인 데다가 국어교육과 출신, 조금이라도 책과 더 가까운 지인들이 있었다. 그렇다. 출발의 힘은 지인들이었다. 

책을 좀 더 다양하게 접근하고 싶었던 책방지기는 ‘비밀의 책’이라는 코너도 마련해 놓았다. 다른 책방에서는 ‘블라인드 북’이라고 불리는 것이 이곳에선 ‘비밀의 책’이었다. 우리말이 더 매력 있어서일까? 비밀의 책이라고 하니 정말 무언가가 베일에 싸인 것 같기도 하고 신비스러운 느낌마저 들었다. 블라인드 북이라고 불리는 것보다 훨씬 더 비밀스럽게 와 닿았다. 가능한 손님들이 책을 읽고 싶도록 배열하는 것도 있지만, 조금이라도 더 색다르게 접근하면서 노력하는 책방지기의 모습이 뭉클하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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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책방 ‘비밀의 책’ 코너. 책을 좀 더 다양하게 접근하고 싶은 책방지기가 마련해 놓은 코너이다. ‘비밀의 책’은 에세이를 중심으로 선정하고 있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아무튼, 책방을 시작하고 5개월째 접어들자 연말이 되었다. 연말이 되자 사람들은 책을 찾기 시작했다. 소위 선물하기 위한 것이었다. “와, 되겠다. 연세는 뽑겠구나.” 책이 팔리기 시작하자 책방지기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시작할 때 연세가 나올 가능성은 어림 반 푼어치도 없었다. 하지만 버티다 보니 12월이 되었고, 시간이 지날수록 ‘되겠다.’라는 확신은 굳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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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표지가 보이게 책을 배열해 놓았다. 시각적으로 보았을 때 가장 책을 읽고 싶어지도록 해주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필사 모임”
이미 각오했던 바와 같이 책방으로 돈을 벌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그렇기 때문에 욕심 또한 부리지 않았다. 그런데 의외다. 막상 시작하고 보니까 생각했던 것보다 책방은 훨씬 더 재미있는 놀이터였다. 

누구든 책 읽는 모습은 아름답다. 하지만 지금까지 책방을 탐방해본 결과 가만히 앉아서 책만 읽는 책방지기는 없었다. 아무리 책이 좋다 하더라도 ‘밥 빌어다 죽도 못 쒀 먹는 상황’은 피해야 했다. 그렇기 때문에 책방지기들은 모임이며 이벤트 등 치열하게 움직였다. 그 모습은 대책 없이 책만 읽는 것보다 훨씬 더 아름다웠다. 책방지기 역시 마찬가지였다. 다양한 모임을 주도하면서 책방을 알리는 등 고군분투했다. 

흔히 책방이라 하면 독서모임부터 생각할 것이다. 그런데 책방지기가 가장 먼저 시작한 것은 필사 모임이었다. 처음엔 고민도 되었다. ‘사람들이 과연 필사할까?’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독서모임보다 필사 모임이 우선일 것 같았다. 책방지기의 생각은 맞아떨어졌다. 

필사 모임을 위해 책방지기 강영선 씨는 필사 노트를 마련해 놓았다. 필사는 그 노트 위를 빼곡하게 채우면서 차곡차곡 앞으로 나갔다. 1기 때는 일곱 명이 모여서 김소연의 “한 글자 사전”을 거의 4개월 동안 필사했다. 사람들은 필사 모임을 정말 좋아했다. 부담이 없었기 때문이다. 

최승필의 “공부머리 독서법”을 읽어보면 머리보다 손끝이 기억하는 힘이 크다. 문득 나도 필사하던 때가 떠오른다. 2010년 1년은 무식할 정도로 필사에 매달렸었다. 단순한 작업이라 부담 없었기 때문이다. 1월부터 열 달 동안 하루에 세 시간씩 최명희의 “혼불” 필사에만 매달렸다. 어쩌다 거를 때도 있었다. 그럴 땐 일요일에 채워놓았다. 화장실 가는 거 빼고 꼬박 열 시간을 앉아서 필사만 했다. 그러다 보니 한 달에 한 권씩 필사되었다. 처음엔 까마득했던 것이 열 달이 되자 끝났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아무튼 필 받아서, 필사 모임에서 책방지기는 필사 노트를 마련해 놓았다. 그리고 필사는 그 노트 위를 빼곡하게 채우면서 차곡차곡 진행되었다. 사람들은 필사 모임을 정말 좋아했다. 부담이 없기 때문이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필사는 온갖 잡념들을 물리칠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이었다. “혼불” 필사를 마치고, ”태백산맥“ 필사로 들어갔다. 하지만 제동이 걸렸다. 태백산맥 3권을 마치고 4권째 들어갔을 때, 어깨에 통증이 왔다. 가방조차 들 수 없었다. 그렇게 멈춘 것이 지금이다.

필사는 단순하면서도 참으로 지독한 나와의 싸움이었다. 일본에 사는 오빠가 오셨을 때, 우연히 혼불 열 권을 필사했다고 말했다. 그랬더니 오빠는 나더러 지독한 놈이라고 하셨다. 하지만 세상엔 나보다 지독한 놈이 널리고 널렸다. 능력과 상관없이 그저 단순해서, 정말 무식하게 했던 필사였다. 그 필사가 있었기에 힘든 시간을 다 견뎌낼 수 있었다. 책방에서 필사 모임에 참여하는 사람들 역시 나와 같은 마음은 아닐까. 1기 때 참여했던 멤버들이 3기까지 이어져 왔다. 물론 한 차례의 필사가 끝나고 다시 모집할 땐 새로운 분도 오신다. 

책 한 권을 필사하는 데는 약 3~4개월이 걸린다. 그래도 시집 같은 경우에는 줄글보다 빨리 마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책방지기 말로는 시 필사 역시 마치는 기간은 똑같다. 필사는 분량을 정해놓고 하기 때문이다. 필사는 너무 빨리 마쳐도 의미가 없다. 주어진 시간 내에 다 쓰지 못해도 상관없다. 집에서 쓰면 된다. 

필사 시간은 한 시간 30분이다. 주어진 시간이 끝나면 30분 동안 필사한 내용에서 느낌이나 인상 깊었던 문장 등을 이야기 나눈다. 그러다 보면 샛길로 빠지기도 한다. 샛길로 빠지는 것, 이 또한 새로운 맛을 안겨준다. 1주일에 한 번, 한 시간 반을 오로지 집중할 수 있다는 자체가 좋다. 필사에 반해서, 필사는 죽어도 하겠다는 사람들의 호응 또한 책방지기는 기쁘다. 아무튼, 필사는 부담 없어서 좋다. 내면이 변하는 효과는 덤으로 얻는다. 

현대인은 너나없이 모두 바쁘다. 그만큼 또 풍족하게 살기도 한다. 하지만 이에 따른 스트레스도 적잖다. 이런 상황에서 뭔가 하나에 오로지 집중할 수 있는 것, 이게 바로 필사였다.

손이 기억한다는 것도 있지만, 책방지기가 주도하는 필사는 더 오래 남는다. 3단계의 과정을 거치기 때문이다. 눈으로 읽고 손으로 옮겨 적지만 맹목적으로 옮기지 않는다. 필사 후 이야기를 나누려면 생각하고 또 생각하면서 옮겨 적어야 한다. 그렇게 정해진 분량을 마치면 다시 이야기를 나눈다. 이처럼 한 권의 책을 마무리할 때까지 두세 번의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그 깊이 또한 만만치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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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이 구매한 책을 계산하고 있는 책방지기 강영선 씨.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현재 진행되는 필사 모임 3기에서는 “사랑을 나는 너에게서 배웠는데-허수경이 사랑한 시(허수경 지음, 난다 출판)”를 필사하고 있다. 시를 필사하다 보면, 때로는 그 옛날 즐겼던 암송도 같이하게 된다. 그러면서 색다른 경험도 즐기게 된다. 필사 모임은 매주 화요일 11시부터 1시까지 이어진다.

“필사 외 모임”
다음은 글쓰기 모임이다. 온라인이 득세인 현실에서 강영선 씨는 오프라인 서점이 살아났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크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글쓰기 모임이다. 

아무튼, 멤버들이 모두 여성이라서 그런 걸까. 주제를 하나로 정해놓은 것도 아닌데 결과물을 얻고 보니 평소의 발견, 혹은 나의 발견, 사랑의 발견 등 본의 아니게 여성주의 글쓰기를 한 셈이 되어 있었다. 

책방지기의 경우는 몸의 서사를 정리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자신의 몸을 거쳐 갔던 이야기를 꺼내고 쓴 것이다. 살면서 우리는 전혀 내 잘못이 아님에도 잘못인 양 인지하고 있는 것이 너무나 많다. 글쓰기 모임에서는 가능한 이런 소재들을 끄집어냈다. 

한차례 결과물을 얻고, 하반기에는 조금 더 시야를 넓혀보자며 도서를 선정한 글쓰기로 들어갔다. 책을 읽고, 도서 주제에 맞는 글을 쓰면서 늙어감에 대하여 다시 생각해 본다. 전태일 평전과 함께 노동에 대한 것들을 읽고 같이 쓰다 보니 서로에게 버팀목도 되었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팔리면 파는 거고, 비록 팔리지 않는다고 해도 상관없다. 엄마 손을 잡고 오는 아이들이 맘 놓고 읽을 수 있도록 책방지기가 마련해 놓은 그림책이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잘 쓰기 위해서 쓰는 게 아니다. 잘 살기 위해서, 제대로 한 번 살아보려고 쓰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글쓰기 모임에서는 합평회를 하지 않는다. 자신이 쓰고 온 글을 읽을 뿐이다. 읽으며 때론 울기도 한다. 애써 공감하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 주관에 의해서 쓴 것이기 때문에 자신의 감정이 다 들어 있다. 이런저런 경험이 그저 좋기만 하다. 

40~60대로 이루어진 글쓰기 모임 멤버는 책방지기 포함 다섯 명이다. 이들은 강사 없이 자유 주제로 지금까지 모두 여덟 편씩 썼다. 장르도 정하지 않았는데, 단 한 분만이 시를 썼을 뿐 공교롭게도 모두 에세이를 썼다. 

서정시는 감미롭게 다가와서 우리 마음을 살살 간지럽히고 어루만져 준다. 하지만 에세이도 만만치 않다. 아니, 실상 가슴을 더 달래주는 건 에세이인지도 모른다. 이렇게 8개월 정도의 모임에서 얻은 결과물로 이들은 문집도 만들었다. 모임의 진행자로서 책방지기는 문집만으로 만족할 수가 없었다. 작품성이 뛰어났기 때문이다. 책방지기는 이 결과물에 대하여 전자출판도 생각하고 있다. 

글쓰기 모임은 원래 금요일 격주로 진행된다. 하지만 12월엔 약간 방향을 틀어 장혜령 작가와 함께 월요일에 진행하고 있다. 장혜령 작가가 세 번은 강의하고, 세 번은 워크숍 하면서 글을 쓰고 있다. 

좋은 책을 같이 읽는 모임도 있다. 이 모임은 매월 마지막 주 수요일로 오전 11시 반에 진행된다. 그런데 직장인이 문제다. 하고 싶어도 시간이 맞지 않아서 할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걱정할 필요가 없다. 책방지기는 직장인을 위해 마지막 주 목요일 오후 7시에도 시간을 열어 놓고 있다. 아무튼, 이 모든 모임을 책방지기가 이끌거나 참여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모든 모임에는 운영자가 따로 있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아무튼 책방 내부. 때로는 길가는 행인을 바라보면서 여유롭게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이다. 좌우로는 편안하게 읽을 수도 있고 판매도 되는 중고책이 꽂혀 있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낭독 모임도 있다. 그런데 낭독 모임 모집 안내가 보이지 않는다. 이미 모집이 끝났기 때문이었다. 낭독 모임은 매주 토요일에 진행되는데, 지금은 니체의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읽고 있다. 니체를 읽고 싶은데, 토론할 만한 능력이 되지 않아서 책방지기는 이 모임을 만들었다고 한다. 구성원들은 한 챕터를 낭독한 후 각자 해석한다. 그러다 보니 해석도 다양하다. 웬걸, 이게 오히려 더 재미있다. 이들은 낭독 모임을 충분히 즐기고 있었다. 내가 보는 책방지기는 충분한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그런데도 능력이 안 된다고 말하는 건 겸손이었다. 

비록 문어체라 할지라도 낭독을 할 땐 감정을 이입시키게 된다. 그렇게 읽다 보면 혼자 읽는 것보다 훨씬 공감에 무게를 싣게 된다. 가슴에 더 와 닿는 건 두말할 필요도 없다. 이 모임 또한 부담이 없기 때문에 많은 이가 즐긴다. 엄마들의 그림책 읽기 모임도 있다.

“책의 순환”
세상 어디에나 양면성이 존재하는 법. 늘 유쾌한 손님만이 오진 않을 것이다. 그래도 아직은 불쾌한 손님이 없었다고 한다. 알고 봤더니 그 비결은 바로 책방지기에게 있었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이곳은 누구나 책을 읽을 수 있는, 즉 중고책이 진열된 ‘아무튼 서재’이다 오른쪽이 ‘아무튼 서재 1’, 왼쪽은 ‘아무튼 서재 2’이다. 책방지기는 꼭 소장하지 않아도 되는 책을 가져오면 어긋나지 않는 선에서 가격을 매기고 서재에서 팔아드린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책방은 다양한 삶과 이야기를 만나기 위해서 가는 곳이다. 그러다 보니 갈등이나 다툼의 요소를 만들기보다는 오히려 해소해준다. 불쾌한 손님이 없다는 뜻이다.

물론 어쩌다가 언짢은 일이 발생할 수도 있다. 하지만 책방지기는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사전에 방지한다. 처음 오는 손님에게는 파는 책과 중고 책이 정리된 서가에서 조심스럽게 혹은 편안하게 볼 수 있도록 안내한다. 갈등이 발생할 수 있는 소지를 미리 막는 것이다.

아무튼, 책방 내부에는 파는 책 외에도 손님들이 편안하게 볼 수 있도록 마련한 중고책이 꽂힌 ‘아무튼 서재’가 있다. 책방지기는 손님들에게 꼭 소장하지 않아도 되는 책이면 책방에 가져오도록 한다. 그리고는 너무 어긋나지 않는 선에서 가격을 매기고 팔아드린다. 그 책이 팔리면 새 책을 구매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책의 순환 세계다. 중고책을 좋아하는 사람은 의외로 많다. 중고 책이 꽂힌 서가를 둘러보다가 소장하기 위해 일부러 구매하기도 한다.

“책 속에는 길이 있다”
50대에 접어든 책방지기 강영선 씨, 그가 10대일 때는 다들 가난했다. 학교 도서관이 잘 되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렇기 때문에 책을 많이 읽지 못했다. 또 20대 때는 대부분 공부하기 위한 이론서를 읽었다. 세상을 어떻게 봐야 하는지는 철학의 문제다. 비록 다양하게 읽지는 못했지만, 책방지기에겐 모두 소중한 경험이었다. 그런데 20대 후반부터 달라졌다. 다양하게 세상을 바라보는 책을 읽은 것이다. 그러면서 삶이 풍부해졌고 생각도 말랑말랑해졌다. 

책방지기는 모든 걸 책으로 시작한다. 책 속에는 길이 있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걸 책으로 시작하는 책방지기의 모습은 지극한 정답인지도 모른다. 지리산을 종주하던 30대 때도 그랬고, 국토 종단에 도전할 때도 그랬다. 관련된 책이란 책은 모두 사서 읽었다. 책방지기만의 책 읽기 방식이다. 아무튼, 책은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다. 

대부분 나이 들수록 변화를 두려워하게 된다. 하지만 모든 풍경은 어디에 서 있느냐에 따라 달리 보이는 법이다. 책과 함께 시대를 호흡하다 보면 다양하게 풍경을 바라보게 되고 변화도 받아들이게 된다. 아무튼, 뭐니 뭐니 해도 책이 가장 좋은 건 평생의 벗이라는 것이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책방지기의 자전거일까? 그 뒤로 금송 한 그루와 다정큼나무가 자라고 있다. 책방 안에서 바라보는 바깥 풍경을 더 아름답게 해 주는 나무들이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아무튼 책방은”
평생의 벗을 찾고 계시는가요? 지금, 아라중학교 가는 길목 아무튼 책방을 찾아가 보세요. 마음에 쏙 드는, 평생의 벗이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찾아가는 길 : 제주시 간월동로 12
인스타 : ahmuteun_bookshop
영업시간 : 11:00 ~ 오후 6:00 (일요일 정기휴무) 
가끔, ‘하루 책방지기’가 앉아 있습니다.

고봉선은?

제주시 애월읍 고성리에서 농부의 딸로 태어나 식물과 함께 자랐다. 지금은 허름한 고향 시골집에서 꽃과 함께, 독서지도사를 하며 아이들과 지내고 있다. 한국해양아동문화연구소 운영위원, 애월문학회 회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독립언론 [제주의소리]에서 [고봉선의 마을 책방을 찾아書]를 통해 격주로 독자들을 만난다. 마을 책방에 깃든 사람과 책 이야기가 소개된다.

저서로는 시집 ‘詩를 먹고 자라는 식물원’, 꽃과 함께 사는 이야기 ‘詩가 사는 기행식물원1, 2, 3, 4’, 동화집 ‘지우개’가 있다. 식물원 시리즈로 전자도서관에 식물원을 꾸미는 게 소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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