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 과거사 사건 공소사실 특정된 것으로 판단...4.3특별법 개정시 일괄 재심 기준 될 듯

제주4.3 재심 사건에 대한 검찰과 법원의 판단이 불과 2년 만에 바뀌면서 ‘제주4·3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 개정시 일괄재심에도 적지 않은 영향이 예상된다.

제주지방법원 제2형사부(장찬수 부장판사)는 내란실행과 국방경비법 위반 등의 혐의로 억울하게 옥살이를 한 생존수형인 송순희(95) 할머니 등 7명의 재심재판에서 21일 무죄를 선고했다.

7일 국방경비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수감생활을 한 김두황(93) 할아버지의 군법회의 사건에서 무죄를 선고한 사례가 있지만 일반재판 재심에서 무죄 판결은 이번이 처음이다.

재판과정에서 변호인측은 줄곧 공소기각을 주장했지만 검찰과 법원의 판단은 무죄였다. 공소기각은 형사소송법 제327조에 따라 공소제기 절차가 법률에 위반해 무효일 경우 적용한다.

제주지방법원은 2019년 1월17일 양근방(88) 할아버지 등 생존수형인 18명이 제기한 재심 청구 사건에서 공소기각을 선고했다. 당시 검찰 구형도 무죄가 아닌 공소기각이었다.

역사적 동일 사건에 대한 검찰과 법원의 기조 변화는 올해 연이어 이뤄진 보도연맹과 여순사건 재판 영향이 컸다.

재심사건은 공소사실 자체가 특정되지 않으면 형사소송법에 따라 유무죄를 판단할 수 없다. 4.3과 여순사건, 보도연맹은 공소장과 판결문 등 공식적인 재판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

때문에 법원이 재심사건에 대한 개시결정을 내려도 검찰은 공소사실을 특정 짓지 못했다는 이유로 공판에서 줄곧 공소기각 의견을 유지해 왔다.

반면 올해 1월20일 광주지법 순천지원 제1형사부가 내란죄와 국권 문란죄로 사형이 집행된 故 장환봉씨에 대한 재심사건에서 사상 첫 무죄를 선고하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

여순사건은 1948년 10월19일 여수에 주둔하던 국방경비대 제14연대 소속 군인 일부가 제주 4.3 사건 진압을 위한 출병을 거부하면서 벌어진 반란 사건이다.

검찰은 사형집행명령서 외에 판결문 등 재판 기록을 찾지 못했지만 역사적 사실과 관계인의 증언 등을 바탕으로 공소사실을 특정했다. 

올해 2월14일에는 창원지방법원 마산지원 형사1부가 보도연맹에 휘말려 국방경비법 위반 혐의로 사형 선고를 받은 故 박영조씨 등 6명의 재심사건에서 첫 무죄를 선고하기도 했다.

보도연맹은 1949년 4월 좌익 전향자를 계몽한다며 만들어진 관변단체다. 1950년 한국전쟁 직후 정부는 보도연맹원이 인민군에 동조할 수 있다며 불법으로 체포하고 학살했다.

두 사건 모두 법원은 70년 전 공소사실에 대한 재판 기록이 없지만 당시 시대적 상황과 내란죄 등 혐의 적용의 특수성 등을 고려해 검찰의 공소사실이 특정된 것으로 판단했다.

제주지방법원도 과거사 관련 재심사건의 공소사실 특정 기준을 폭넓게 해석했다. 이 경우 형사소송법 제327조 2의 공소기각 절차 문제 대신 제325조의 범죄사실 증명력만 다투면 된다.

재판부는 “국가의 사법 절차나 한국전쟁 등 역사적 상황을 고려하면 4.3 당시 재판이 이뤄졌다고 강하게 추정된다. 공소 제기를 전제로 재심 개시 결정도 이뤄진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4.3사건은 판결문 등 재판기록 자체가 없지만 검찰이 수형인명부와 당시 상황, 피고인의 진술 등을 토대로 공소사실을 특정한 것으로 봐야 한다”며 유무죄 판단 배경을 설명했다.

검찰과 법원의 법리 해석이 바뀌면서 향후 4.3특별법 개정에 따른 검찰의 4.3 군법재판 일괄 재심에서도 이 같은 기조가 적용될 가능성이 높다. 이 경우 검찰의 구형 역시 무죄다.

생존수형인 재심 사건을 이끈 법무법인 해마루의 임재성 변호사는 동일한 피해자에 대한 법률적 판단이 달라진 만큼 향후 학자들 사이에 논쟁이 있을 수 있다고 밝혔다.

임 변호사는 “4.3 재심 사건에서 형사소송법 제325조 또는 제327조 중 어느 것이 더 실체적 사실에 부합하는지 논의가 있어야 한다. 이는 법률적으로 중요한 쟁점이다”라며 의미를 부여했다.

그러면서 “이번 판결이 행불수형인 재심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될 것으로 보인다. 권리 구제 측면에서 두 판결은 큰 차이는 없다. 결과적으로 살아생전에 명예회복이 빨리 이뤄지길 바란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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