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길웅의 借古述今] 203. 위 좋은 효자는 있어도 아래 좋은 효자는 없다

* 우 존 : 위(가) 좋은
* 알 존 : 아래 좋은
* 소전 : 효자는
* 셔도 : 있어도
* 엇나 : 없다

효(孝)에 관한 미묘한 심리적 효능이라 할까. 자식이 부모에게 지성으로 효도한다고 해도 효도하는 것만큼 부모가 만족해하지 않는 수가 있다는 의미다. 자식 생각으로는 할 수 있는 데까지 성의를 다하겠지만, 부모의 마음 한구석에 자식에 대한 서운함이 남아 있으면 그럴 수밖에 없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고 했다. 효에 관한 한 베푸는 자식과 받는 부모 간에 갈등이 없으란 법이 있겠는가.

문제는 자식이 부모에게 효도를 잘한다고 말해 보아야 부질없는 일, 부모가 좋아해야 비로소 효자 효녀가 된다는 말이다. 자식이 그 부모를 잘 모신다고 해도 부모가 ‘내 자식 덕분에 더운 밥 좋은 반찬 차려 공양하고, 고운 물색 두꺼운 옷 입어 호강하고 있다.’고 남에게 말을 해야 효도하는 것이 된다. 뒤집어 말하면, 자식이 아무리 부모를 잘 모셔도 그 부모가 나쁘게 말하면 효도하는 것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효도란 진정 어린 마음과 시종여 일한 실천 없이 되는 것이 아닌데다, 결국 그것을 생광(生光) 나게 하는 것은 부모의 마음이다.

제주의 선인들은 생활력이 강했으며, 모질게도 강인한 생활력은 독립심으로 나타났다. 노경(老境)에 들어 운신이 어려워도 좀처럼 자식에게 기대려 하지 않는다. 밭뙈기에 농사짓고 몸소 밥해 먹고 빨래하고…. 등굽고 오금 저려 걷기 힘들어하면서도 자식에게 업혀 살려 하지 않는 노후가 청승맞기도 하다.

밭 일하는 소와 부부. 1991년도 제주에서 촬영한 사진. 출처=강만보, 제주학아카이브.
밭 일하는 소와 부부. 1991년도 제주에서 촬영한 사진. 출처=강만보, 제주학아카이브.

불만족스럽고 서운하고 허전한 데가 왜 없으랴. 하지만 부모가 자식을 효자 만드는 법이다. 속으로 섭섭하고 미흡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라 하더라도, 겉으로는 내 자식이 효도해 잘살고 있다고 얘기해야 자기 자식이 효자라는 좋은 평판을 들을 수가 있는 것이다. 

제주에서는 지금도 “저식 효저 맹그는 건 부모주(자식 효자 만드는 건 부모지)”라는 말이 흔히 쓰인다. 제 자식이 남들로부터 칭찬받기를 원하는 부모 마음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유사한 것 둘이 있다.

애기가 조앙 소저가 아니곡, 부모가 조앙 소전다.
(아기거 좋아 효자가 아니고 부모가 좋아 효잔다.)

어멍 입에서 소저 나곡, 각씨 입에서 존 서방 난다.
(어머니 입에서 효자 나고, 아내 입에서 좋은 서방 난다.)

역시 자식을 효자 만드는 건 그 부모란 말이 맞다.

# 김길웅

동보(東甫) 김길웅 선생은 국어교사로서, 중등교장을 끝으로 교단을 떠날 때까지 수십년 동안 제자들을 가르쳤다. 1993년 시인, 수필가로 등단했다. 문학평론가이자 칼럼니스트이기도 하다. 도서관에 칩거하면서 수필, 시, 평론과 씨름한 일화는 그의 열정과 집념을 짐작케한다. 제주수필문학회, 제주문인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대한문학대상, 한국문인상 본상, 제주도문화상(예술부문)을 수상했다. 수필집 <마음자리>, 시집 <텅 빈 부재>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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