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왓 칼럼] (22) 제주시민 성소수자 닉네임 '낫'이 보내는 글

편견으로 무장한 이들이 사회적 약자들에게 여전히 반인권적 발언과 행동을 주저하지 않는 일들을 우리는 종종 목격하곤 합니다. 존재 자체로 차별받는 사회적 약자들이 있어선 안됩니다. 여성, 장애인, 성소수자, 이주노동자, 난민 등 대상은 다르나 일상 곳곳에서 여전히 차별이나 혐오, 폭력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독립언론 <제주의소리>가 인권문제에 천착한 '인권왓 칼럼'을 격주로 연재합니다. 인권활동가들의 현장 목소리를 싣습니다. [편집자 글]

2020년 12월 23일, 저는 이날을 잊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제주도의회에서 학생인권조례안이 가결된 날입니다. 차별조항에 ‘성적 지향’이 삭제된, 교육상임위의 대체안으로 말이지요. 그리고 도의회 단상에서 마이크를 통해 이런 말이 울려 퍼진 날이기도 합니다. 

“저는 동성애, 동성애자 싫어합니다. 그러나 저는 그분들을 이해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우리 자식들에게 동성애가 괜찮다, 정상적이다, 문제가 없다는 것을 계속적으로 학습하고 이해시키는 것에 대하여 납득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동성애를 권장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 강충룡 의원(국민의힘, 서귀포시 송산동·효돈동·영천동 선거구)

저는 제주에서 태어나 지금까지 평생을 살아온 성소수자 낫입니다. 이 말을 듣고 오늘까지 매일 마음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제 삶을 반대하고, 권장할 수 없는 것이라 이야기하는 강충룡 의원님에게, 그리고 도의회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강충룡 의원님의 이력에 대해 조금 찾아보다, 눈에 띄는 기사가 있었습니다. 언젠가 ‘젊은 농가를 육성해 청년들이 고향을 등지지 않아도 꿈을 펼칠 수 있도록 하겠다’ 고 말했더군요. 맞습니다. 정말로 많은 청년들이 제주를 떠납니다. 최근 20년간 20대 이하 인구는 지속적으로 순유출 되었습니다. 30대 유입 인구도 아주 크게 감소했지요. 청년들은 대학 진학이나 취업을 위해 제주를 떠납니다. 의원님 말처럼, 꿈을 펼치기 위해 떠난다고도 볼 수 있겠네요. 

저 역시 가끔 서울로 떠날 고민을 했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그 와중에도, 꿋꿋이 제주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오래전부터 봐 온 고향 사람들이 있고, 아름다운 자연이 있는 제주가 정말 좋아서입니다. 그런데 제 삶을 부정하는 의원님의 지난 발언을 들으며, 제주를 떠나야 하나 잠시 고민했습니다. 의원님, 청년들이 고향을 등지는 이유는 돈과 일자리가 없어서 아닐 수도 있습니다. 청년들에게는 어쩌면 거대도시의 진보성과 인권 감수성 같은 것이 간절한 것일지도 모르지요. 제가 제주를 떠나 서울로 가고 싶은 이유가 그랬듯이요.

그렇지만 서울 역시도 천국은 아닙니다. 여전히 시민들은 서울광장에서 퀴어퍼레이드를 하기 위해 몇 날 밤을 지새워 집회신고를 해야 하고, 성소수자라는 것이 직장에 밝혀지면 일자리가 위태로워지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제주에서의 삶은 어떨까요.

성소수자의 인권을 상징하는 6색 무지개기. ‘촛불혁명’ 이후에도 여성과 소수자들은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다. 민주화 세대는 ‘민주시민’의 젠더가 무엇인가에 대해 스스로 묻고, 성찰하고, 행동해야 한다.
성소수자도 가끔 친구들과 만나 이야기 나누고, 코로나 소식에 주변인들의 안부를 걱정하는 평범한 시민이다. 원래 모습 그대로 행복하게 지내는 것이 성소수자 시민에게는 왜 이렇게 어려운가. 12월 23일 제주도의회 본회의에서의 말은 성소수자의 삶이 불법이며,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것이며, 찬성하지 않는 것이며, 권리 보장 범위에 대한 합의가 필요한 것이 됐다.사진의 6색 무지개기는 성소수자의 인권을 상징한다.

학생인권조례가 동성애를 권장하는 것이기 때문에 반대한다는 강충룡 의원님에게, 1977년 성소수자 인권운동가로서 최초로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시정 감시관으로 당선된 하비 밀크의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하비 밀크는 동성애자 교사를 퇴출시키는 법안을 추진하는 정치인들에게 이렇게 답했습니다. ‘동성애를 어떻게 가르치나요, 저는 이성애자 부모 사이에서 자라고, 이성애자 선생님에게 배웠고, 지독한 이성애자 사회에서 자랐습니다. 그럼 저는 왜 동성애자가 된 것인가요?’

제주에서 누군가는 머리를 짧게 자르면 ‘레즈비언이냐’라는 이야기를 듣고, 강당에서 교복 바지를 입거나 투블럭 커트를 하면 맞았다고 합니다. 한국 성소수자 사회의식조사(2007)에서는 “성 정체성으로 인해 학교를 그만두고 싶었던 적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25.6%가 “그렇다”고 답했습니다. 실제로 전학을 가거나 학교를 그만둔 적이 있다고 답한 사람도 7%에 달합니다. 국가인권위가 진행한 「성적지향 성별정체성에 따른 차별 실태조사」에도 혐오 표현 경험에 대해 응답자의 80%가 교사로부터, 92%가 다른 학생으로부터 경험한 적 있다고 응답했습니다. 저의 삶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학창시절에 용기 내었던 커밍아웃 이후에 ‘더럽다’는 말을 듣기는 예사였고, 직장에서는 성희롱을 경험하기도 했습니다. 저에게는 학생인권조례가 필요했고, 차별금지법이 필요합니다.

제주에서 계속 살아가기 위해 결국 제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드러내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여전히 제 동성 연인을 가족과 친구들에게 숨깁니다. 미디어에서는 매일 연애를 축복하고, 심지어 연애하지 않으면 이상한 사람인 것처럼 말하지만 저의 사랑은 어디에서도 축복받지 못합니다. 

그렇지만 제 삶은 여전히 여기에 있습니다. 저는 오전이면 일을 하고 저녁이면 퇴근해 집으로 돌아오는, 주거비를 걱정하고, 좋은 일자리를 가지고 싶은 평범한 청년입니다. 제주에서 태어나 자랐고, 가끔 친구들과 만나 이야기 나누고, 코로나 소식에 주변인들의 안부를 걱정하는, 평범한 시민입니다. 저는 제가 태어나고 자란 제주라는 곳을 사랑해서 여기에서 계속 살고 싶은 한 사람입니다. 그런 제가 다른 것이 있다면 동성 연인이 있다는 것뿐입니다. 

12월 23일 제주도의회 본회의에서, 저의 삶이 또다시 불법이며,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것이며, 찬성하지 않는 것이며, 어디까지 저의 권리를 보장할지에 대해서도 합의가 필요한 것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 있는 단 한 명의 도의원도 강충룡 의원의 혐오 발언을 제지하지 않았다는 것이 비참합니다. 

제가 바라는 것이 있다면 그저 살던 대로 사는 것입니다. 원래 모습 그대로 행복하게 지내는 것이 성소수자 시민에게는 왜 이렇게 어렵습니까. 도민의 권익 신장을 위해 노력해야 할 도의원이 도민의 삶을 부정하는 말을 내뱉고 도의회가 그것을 방기했다는 사실이, 제주를 너무도 사랑해서 제주에서 살고 있는 저의 모든 시간들을 부정하게 합니다. 제 삶은 왜 청와대에서, 도청에서, 도의회에서, 모든 곳에서 가로막힙니까. 

저는 여전히 숨어있습니다. 그렇지만 계속 묻겠습니다. 의원님은 저의 삶을 반대할 수 있습니까? / 제주시민 성소수자 닉네임 '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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