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조사 핵심 안심번호 선관위-개인정보위 제공 '안돼'...언론사-정당 가능하나 공정-선거법 논란

원희룡 제주지사와 좌남수 제주도의회 의장이 지난 12월11일 도청 기자실에서 제2공항 도민의견수렴 관련 합의문을 들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원희룡 제주지사와 좌남수 제주도의회 의장이 지난 12월11일 도청 기자실에서 제2공항 도민의견수렴 관련 합의문을 들고 기념촬영을 하는 모습. 

제주 제2공항의 운명을 결정할 여론조사가 자칫 좌초될 위기에 놓였다.

제주도와 제주도의회는 지난 11일 제2공항 도민의견수렴 방안으로 여론조사를 실시키로 합의한 바 있다. 전체 도민 2000명에 대한 찬반 조사를 실시하고, 이와 별도로 성산읍 주민 500명에 대한 조사까지 1월11일까지 실시하기로 했다.

전체 제주도민 여론조사는 2곳 조사기관에서 각각 1000명씩 총 2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하며, 별도 성산읍 주민 500여명을 대상으로한 여론조사도 실시키로 했다. 

설문문항은 성별과 연령대, 거주지역을 제외하고는 '국토교통부가 성산읍 지역에 추진하려는 제주 제2공항 건설에 대한 선생님의 의견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에 찬성과 반대로 답변하는 내용이다.

여론조사는 2021년 1월11일까지 완료하기로 하고, 단 불가피한 사유가 발생할 경우에는 1회에 한해 10일 이내 연장할 수 있다고 합의했다. 10일 연장 예외 조항은 안심번호 발급에 따른 물리적 시간이 추가될 가능성 등을 염두에 뒀던 것. 

이후 여론조사 결과는 국토부에 제출키로 했고, 도민의견 수렴 후 제주도와 도의회는 갈등을 유발하는 행위를 해서는 안된다는 내용도 합의문에 포함시켰다. 결과에 승복하자는 것이다.

합의문에는 여론조사를 공정하게 관리하기 위한 공동위원회를 구성하고, 기관별로 각 2명씩 추천해 여론조사 기관 선정과 일정 등을 1월11일까지 관리키로 했다. 

이에 따라 제주도는 김주경 제주대 행정학교 교수와 이상헌 공항확충지원단장, 도의회는 강영진 한국갈등해결연구원장과 홍명환 도의원 등 4인으로 구성된 '여론조사 공동관리 공정위원회'를 구성했다.

여론조사 공정위원회는 공정하고 객관적이며 신뢰도 있는 여론조사를 수행할 수 있는 여론조사 기관을 선정하고, 조사기간까지 선정된 조사기관명을 공개하지 않도록 합의했다.

원희룡 제주지사와 좌남수 제주도의회 의장이 지난 12월11일 도청 기자실에서 제2공항 도민의견수렴 관련 합의문을 들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제주도와 제주도의회의 제2공항 도민의견수렴 관련 합의문

여기까지는 속전속결로 제주도와 도의회가 합의에 이르렀다.

하지만 여론조사를 위한 가장 중요한 '안심번호' 발급 문제가 예상치않게 발생했다.

당초 제주도와 도의회는 선거관리위원회를 통해 안심번호를 발급받으려고 계획했다. 하지만 선관위는 "선거 관련 여론조사가 아니어서 안심번호를 제공할 수 없다"고 통보했다. 첫 설계부터 얼크러진 셈이다. 

이에 부랴부랴 제주도와 도의회는 개인정보보호위원회를 통해 안심번호 발급을 추진하려 했다. 개인정보보호위원회를 통해 안심번호를 발급할 수 있는 제도가 마련돼 있다.

그러나 제주도의 요청을 받은 개인정보위원회는 "개인정보 수집목적 범위를 벗어나는 것 같다"며 "이동통신사를 통해 성별과 연령, 거주지역이 포함되기 때문에 여론조사를 위한 용도로는 안된다"고 안심번호 발급에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이 때문에 1월11일까지, 불가피한 경우에  1회에 한해 10일 연장할 수 있도록 제주도와 도의회가 합의한 제2공항 도민의견수렴 '여론조사'가 자칫 물건너 가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국토교통부는 지난해 2월16일 더불어민주당과 당정협의를 통해 '국토부는 향후 제주 제2공항 추진에 있어 제주도가 합리적, 객관적 절차에 의해 도민 등의 의견을 수렴해 제출할 경우 이를 정책 결정에 충실히 반영, 존중키로 했다'고 합의한 바 있다. 

도민의견수렴 방안으로 주민투표와 공론조사, 여론조사 등 3가지 대안이 있었지만 주민투표는 국토부가 반대하면서 무산됐고, 공론조사의 경우 법적 근거가 없다며 제주도가 반대하면서 결국 최종 합의한 게 여론조사였다.

결과적으로 제주도와 도의회가 '제2공항 도민의견수렴 관련 합의문'을 작성할 때까지 안심번호 발급 문제를 제대로 검토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안심번호를 발급 받으려면 선거법을 통해 언론사나 정당의 경우 가능하다. 

문제는 여론조사를 언론사에 위탁하는 방안도 제주도와 의회에서 내부적으로 검토했지만 '선거법' 위반 논란과 공정성 논란 때문에 일찌감치 불가능한 것으로 판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제주도가 만약 안심번호를 발급받을 수 있는 언론사에 예산을 지원하는 경우 '선거법 위반' 논란이 당장 불거질 수 밖에 없다. 

만약 특정 언론사가 자체 예산으로 여론조사를 실시할 경우에는 신뢰성과 공정성 논란이 생긴다. 국토부 역시 도민의견수렴은 주체가 '제주도'라고 명시한 바 있다. 

안심번호를 발급받을 수 있는 정당 여론조사 역시 신뢰도와 공정성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공정위원회 일부에선 안심번호 대신 무작위로 면접 조사를 실시하자는 주장도 있었지만 표본오차를 산정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2개월 이상 걸린다는 여론조사 전문기관의 조언에 따라 면접 조사도 이미 대안이 될 수 없는 상황이다. 

제주도와 도의회는 여론조사기관을 1월4일 선정하고, 1월11일 여론조사를 실시하고, 2~3일 이내에 공표할 계획이었다. 

이처럼 자칫 제2공항 도민의견수렴 방안인 여론조사가 무산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홍명환 도의원은 "개인정보보호위원회를 통해서 안심번호를 발급받으려고 했는데 이미 부정적 입장이 통보됐다"며 "개인정보보호법 18조를 보면 안심번호를 줄 수 있는 경우는 2가지 방안이 있는데 본인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 2000명의 조사를 하려면 6만명의 동의를 받아아 한다. 쉽지도 않고 가능하지도 않다"고 말했다.

홍 의원은 "두번째는 법률에 의해 개인정보를 주도록 규정은 선거법 뿐인데, 언론사나 정당의 경우 가능하지만 이 역시 공정성과 예산지원 문제 등 쉽지 않다"며 "안심번호 문제를 제대로 검토하지 못했다"고 토로했다.

이상헌 제주도 공항확충지원단장 역시 "안심번호 발급 문제에 부딪혔다. 언론사의 경우 선거 여론조사를 할 수 있는데 선거에 관한 조사를 해야 하고, 제주도가 의뢰할 경우 선거법 위반이 된다"며 "정당도 할 수 있는데 만약 정당 독자적으로 여론조사를 하면 국토부가 수용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이 단장은 "현실적으로 법령을 제대로 검토하지 못했다"고 실토하고, "국토부에도 여론조사 관련 안심번호 발급 문제를 전달했다. 도민의견수렴 방안에 대해 국토부와 제주도, 도의회 3자가 다시 논의해야 할 상황"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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