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시선] 팬데믹이 삼킨 경자년, 새해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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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은 코로나가 집어삼킨 한해였으나, 팬데믹 와중에도 제주에서는 크고 작은 일들이 많이 벌어졌다.  제2공항, 원희룡 지사의 입당, 유례없는 물폭탄, 송악선언, 4.3수형인 사상 첫 무죄 등이 대표적이다. <그래픽 디자인=최윤정 기자>

코로나로 시작해 코로나로 막을 내리게 됐다. 2020년은 코로나가 집어삼킨 한 해였다. 

일상은 무너졌다. 모든 리듬이 깨지고 말았다. 삶의 패턴은 순식간에 바뀌었다. 뭘 하든 코로나가 판단 기준이 됐다. 심지어 어딜 가고, 어딜 가지 말아야 할지도. 우리만이 아니다. 코로나는 인류사의 흐름마저 바꿔놓을 판이다.  

코로나가 종식돼도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고들 한다. 어쩌면 일상은 무너진게 아니라, 새로운 일상이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름하여 ‘뉴 노멀’ 시대. 뉴 노멀이 등장하면, 기존의 기준 혹은 표준은 ‘올드 노멀’이 된다고 했다. 세상의 이치가 그러하듯이.

시·공간적 경계가 무너진 글로벌시대라지만, 제주는 딴 세상 같았다. 10월말까지는 그랬다. 약 9개월 동안 코로나 확진자가 60명에 불과했다. 한달로 치면 7명이 채 안되었다. ‘청정 제주’라 해도 지나치지 않았다. K방역을 본 뜬 J방역이란 신조어가 나타났다. 장차 코로나가 물러났을 때, J방역은 일상을 회복하는데 든든한 밑천이 되리라 믿었다. 경제가 다시 기지개를 켤 때, 제주는 즐거운 비명을 지르리란 행복한 상상을 했었다.

일장춘몽이었다. 한층 영악해진 바이러스, 코로나는 제주라고 비켜가지 않았다. 11월 이후 급증세는 자못 심각했다. 자화자찬성 J방역은 자취를 감췄다. 중앙의 방역지침과도 연계돼 있으니 실패했다고 단정하지는 못하겠다. 결과적으로 제주도의 대응은 허점이 많았다. 

앞으로가 문제다. 팬데믹 종료 이후를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지 결단을 주저하면 안된다.

코로나는 우리네 삶을 송두리째 흔들어놓았지만, 경자년 제주에 코로나만 있었던 건 아니다. 

원희룡 지사의 정치 행보가 단연 눈에 띄었다. 타이밍 또한 절묘했다. 국내에 코로나 첫 확진자가 나온 1월20일이었다. 박형준 당시 통합신당(→미래통합당→국민의힘) 추진위원장과 만난 원 지사는 박 위원장의 합류 요청을 즉시 수락했다. 그리고 2월17일 출범한 미래통합당에 최고위원으로 들어갔다. 박근혜 탄핵 이듬해인 2017년 1월4일 새누리당을 탈당한지 3년만에 돌고돌아 원래 자리로 회귀하는 순간이다. ‘제주도민당’이라던 무소속은 임시 거처는 될지언정 안식처는 아니었던 셈이다. 

‘도민 의견 구하기’는 없었다. 곁눈질 않고 도민만 바라보겠다고 한 약속도 어겼다. 도정을 소홀히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했지만, 팬데믹 와중에도 중앙 정치권을 향한 ‘전지적 참견’은 계속됐다. 국회 국정감사 격인 도의회 행정사무감사 기간이라고 예외가 아니었다. 지사 재임 6년동안 연평균 출장 일수가 113일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설상가상. 코로나로 무기력해진 제주도민들은 유례없이 긴 장마와 잇단 초강력 태풍에도 시달려야 했다. 장마는 무려 49일동안 이어졌다. 1973년 기상관측 이래 최장 기록이었다. 장마기간 강수 일수도 29.5일로 역대 1위였다. 8월27일 제8호 태풍 ‘바비’를 시작으로 제9호 ‘마이삭’, 제10호 ‘하이선’은 섬 전체에 깊은 생채기를 남겼다. 더위까지 기승을 부렸다. 올 여름 평균 열대야 일수는 27.5일로 평년(13.5일) 보다 2배 많았다.

단비 같은 소식도 없지는 않았다. 4.3수형인들을 평생 옥죄던 족쇄가 마침내 풀렸다. 일반재판과 군사재판을 통해 억울하게 옥살이를 한 수형인들에게 잇따라 무죄가 선고됐다. 무죄는 대세가 될 듯 싶다. 판결 후 환하게 웃던 김두황 할아버지(92)의 한마디는 순진무구해서 오히려 처연했다. “따뜻한 봄이 왔다. 유채꽃이 활짝 피었다. 기분이 너무 좋다”

난개발과 결별을 고한 ‘송악선언’도 제주 가치를 지키겠다는 측면에서 의미가 크다. 일각에선 알맹이가 부족한 이벤트에 지나지 않는다고 평가절하했지만, 과거 도정에선 꿈도 꾸지 못할 일이었다. 선언 이후 원 지사는 연속적으로 후속조치를 발표해 빈말이 아님을 과시했다. 다소 못미더워하는 시민사회의 시선을 우호적으로 돌리는 것은 원 지사의 몫이다. 

제주 사회 최대 갈등 현안인 제2공항은 중대 전환점을 맞았다. 도민 여론조사 결과가 주목된다. 여론조사 자체가 진통의 산물이었다. 원 지사가 제2공항은 국책사업이므로 제주도가 나설 수 없다고 버티는 바람에 험난한 여정을 밟았다. 도민의 자기결정권을 도백이 외면한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끝까지 개운치 않은 뒷맛을 남겼다. 제주도와 도의회는 도민에게 여론조사의 목적을 ‘정부 정책에 참고하기 위한 조사’라고 설명하기로 했다. 수동적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러한 합의와 달리, 최근(12월24~25일) KBS 여론조사에서는 국토교통부가 그 결과를 따라야 한다는 응답이 65.1%나 나왔다. 결국 민심이 제2공항의 운명을 가르는 최대 변수가 될 전망이다. 

이틀 뒤면 ‘하얀 소의 해’ 신축년이다. 소는 부지런하고 우직한 동물로 통한다.

해가 바뀌어도 화두는 여전히 코로나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지구촌 곳곳에서 백신 소식이 들려오지만, 코로나가 언제쯤 걷힐지 아직 가늠하기 어렵다. 새해에는 더더욱 소와 같은 인내심이 필요해 보인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새해 첫날 찬란한 해돋이는 볼 수 없게 됐다. 꼭 첫날이 아니면 어떤가. 신축년에는 제주의 밝은 미래를 암시하는 서광이라도 비추었으면 좋겠다. <논설주간 / 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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