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조약골 핫핑크돌핀스 공동대표

턱이. ⓒ핫핑크돌핀스.
턱이. ⓒ핫핑크돌핀스.

위기에 처한 제주 바다

아침에 눈을 뜨면 카메라를 챙겨 들고 바다로 향한다. 약 130여 마리의 제주 남방큰돌고래들이 살고 있는 곳 해안도로를 따라 천천히 움직이며 관찰을 시작한다. 돌고래가 발견되면 갯바위에 앉아 촬영을 시작한다. 보통은 10~20마리 정도의 움직임을 관찰하는데, 그날그날의 날씨와 물때 그리고 먹이 조건에 따라 70~80마리 이상의 돌고래들이 한 곳에 무리를 이뤄 먹이활동을 하는 장관도 때때로 나타난다. 

관찰은 바다에서 납치되어 시설에 갇힌 채 원치 않는 공연노동에 동원되다 천신만고 끝에 고향 제주로 돌아온 제돌이, 춘삼이, 삼팔이, 복순이, 태산이 등이 아직도 잘 지내고 있는지 살펴보는 것부터 폐그물에 걸려 꼬리지느러미가 잘린 것으로 보이는 ‘오래’, 구강암에 걸린 것으로 보이는 ‘턱이’ 등 요주의 돌고래도 무리들과 어울려 잘 지내고 있는지 확인하기도 한다. 전체 돌고래 무리들의 건강상태는 어떤지, 활발히 움직이는지, 휴식을 취하고 있는지, 이동중인지, 부상을 입었다거나 상처가 있다거나 특별히 이상해 보이는 개체는 없는지 찬찬히 살펴본다. 돌고래뿐만 아니라 낚싯바늘에 걸린 가마우지는 없는지, 나일론 줄에 걸린 갈매기는 없는지, 해양쓰레기를 먹고 죽은 개체는 없는지, 절대보전지역 갯바위에서 불법적으로 진행되는 공사나 파괴행위는 없는지 등 전반적인 해양생태 상황을 살펴보기도 한다. 

그리고 매일 나타나는 관광선박이 얼마나 돌고래들을 가까이에서 졸졸졸 따라붙으며 휴식을 방해하는지도 확인한다. 인간들이 괴롭히지 않으면 돌고래들은 바다에서 완전히 긴장을 풀고 마음껏 수면 위로 뛰어오르거나, 서로 장난치거나, 짝짓기 행동을 하거나, 물고기를 잡아 공중으로 던지거나, 해조류를 따와 장난감처럼 갖고 놀기도 한다. 이 넓은 제주 바다가 남방큰돌고래들의 안방이기 때문에 이런 행동은 자연스럽다. 그런데 멀리서 관광선박이 나타나기 시작하면 돌고래들의 행동 패턴이 바뀐다. 이른바 ‘안방 행동’이 사라지는 것이다. 긴장하는 모습이 느껴지기도 한다. 일부는 선박의 뱃머리에 생기는 물살을 따라 헤엄치며 선수파 타기 놀이를 즐기기도 하지만 또 다른 돌고래들은 선박으로부터 멀리 피해 사라져버린다. 조금 전까지 인간들로부터 방해받지 않고 쉬면서 먹이를 먹던 돌고래들은 이제 선박을 따라 움직이거나 선박으로부터 피하는 수밖에 없다.

이런 모습을 관찰하며 하루에 보통 500~1천 컷 정도의 돌고래 사진을 찍는다. 모니터링이 길어지거나 돌고래들이 많이 나타나는 날은 하루에 5천 컷 이상을 찍는 경우도 많다. 그리고 핫핑크돌핀스 사무실이 위치한 제주돌핀센터로 돌아와 사진을 분석한다. 그날도 그랬다. 오전 관찰이 끝나고 사진들을 분석하던 중 처음 보는 이상한 모습을 발견했다. 사진을 확대해보니 돌고래가 입에 뭔가 물고 있었다. 개불이나 문어 아니면 해삼 같아 보이는 것을 물고 있는 것 같았다. 남방큰돌고래가 방어나 고등어 또는 광어를 물고 있는 장면은 사진으로 많이 찍었지만 이런 모습은 처음이었다. 

연사로 찍힌 10여장을 차례로 돌려보니 입을 벌리고 있는 그 개체의 등지느러미 모양은 ‘턱이’였다. 돌고래들은 등지느러미 모양이나 그곳에 난 상처가 모두 다르게 생겼기 때문에 이를 통해 개체를 서로 구별할 수 있는데, 턱이의 등지느러미는 중간이 파여 있는 특이한 모양 때문에 쉽게 구분이 가능했다. 턱이는 대정읍 앞바다에서 계속 자주 동료 돌고래들과 함께 있는 모습이 관찰되었지만, 대부분 등만 수면 위로 드러내기 때문에 얼굴을 제대로 본 적은 없었다.

해양동물생태보전연구소(MARC) 연구원들이 2019년 여름 제일 처음 존재를 확인하고 육상관찰과 드론 촬영을 통해 구강에 심각한 문제가 있음을 알아챈 돌고래, 해양동물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돌핀맨’ 이정준 감독이 수중 촬영에 성공해 마침내 그 충격적인 구강 구조가 드러났던 제주 남방큰돌고래 턱이가 맞았다. 턱이의 구강 구조를 확인한 해양동물 전문 수의사 이영란 (세계자연기금 한국본부 해양보전팀장)은 보통 돌고래와는 달리 입안에 있어서는 안 되는 구조가 자라나 구강을 변형시키고 있음을 지적하며, 조직검사를 해봐야 더 정확히 알겠지만, ‘악성종양’으로 보인다고 진단했다. 암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수면 위에서 선명하게 촬영되어 확인한 턱이의 구강 안 모습은 너무나 참혹해보였다. 입안에서 자라난 종양이 턱뼈의 모양까지 변형시킨 것으로 보였고, 부풀어 오른 덩어리 때문에 입을 다물지 못한 채 살아가는 암에 걸린 제주 돌고래라니! 암이 아직 식도를 완전히 가로막지는 않았기 때문에 겨우 먹이를 먹을 수 있었고, 동료 돌고래들과 함께 사냥하면서 힘든 삶을 지내고 있을 그 고통이 턱이에게서 느껴져 솔직히 너무나 충격을 받았고, 가슴이 아팠다. 이 소식을 널리기로 마음먹었다. 

턱이. ⓒ핫핑크돌핀스.
턱이. ⓒ핫핑크돌핀스.

인간과 같은 포유류지만 일반적으로 고래류는 암에 잘 걸리지 않는다. 북극고래는 200년 이상을 살며 암을 비롯한 성인병에 걸리지 않는데, 연구결과 노화에 대응하는 유전자가 진화과정에서 발현한 것으로 파악되었다. 과학자들은 야생 혹등고래의 피부조직에서 DNA를 추출해 분석한 결과 고래류에서 암 발병을 억제하는 시스템이 매우 효율적임을 밝혀내기도 했다. 9종의 고래류를 대상으로 진행한 연구를 통해 야생 상태의 고래류가 암에 잘 걸리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건강한 바다에 사는 고래류는 암에 이겨내는데, 캐나다 세인트로렌스강이 대서양과 만나는 하구에 서식하는 야생 벨루가(흰고래) 무리의 많은 개체들에서 종양발생이 보고되어 충격을 준 사건이 발생했다. 

과학자들이 1983년부터 1999년까지 17년간 이 지역에서 사체로 발견된 125마리의 벨루가를 대상으로 연구한 결과 18%의 벨루가 사체에서 암이 발견되었는데, 연구자들은 그 원인으로 세인트로렌스강 하구에서 PCB(폴리염화 바이페닐), DDT 등의 맹독성 화학물질이 높은 농도로 발견되었음을 지적하면서 환경적 요인에 의해 벨루가들에게서 종양이 발생한 것으로 결론내렸다. 그렇다면 제주 바다의 턱이도 환경적 요인에 의한 종양 발생이 아닐까 의심해보게 되었다. 핫핑크돌핀스가 이런 합리적인 의심을 하게 된 것은 제주도 산하 해양수산연구원이 지난 2017년부터 2019년까지 ‘육상오염원에 의한 연안어장 복원 중장기 계획 수립을 위한 해양생태환경 실태조사’를 진행한 이후 발표한 보고서의 충격적인 내용 때문이었다. 

이 보고서의 내용을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제주도내 하천으로부터 해안으로 유입되는 각종 육상 쓰레기와 하수처리장, 육상양식장에서 배출하는 오염물질로 인해 제주바다가 자정능력을 상실하고 죽어가고 있으며, 제주 연안어장은 황폐화되었다는 것이다. 제주도 관내 하수처리장에서 방류된 오염물질이 외해로 빠져 나가지 못하고 조류의 영향으로 제주 연안으로 재유입되고 있는 현상도 연안정착성인 제주 돌고래들의 암 발병과 연관된 것으로 설명하기에 충분했다. 인간도 암에 자주 걸리는데, 같은 포유류인 돌고래 한 마리가 암에 걸린 것이 뭐 그리 대수냐는 반박도 가능했다. 한국의 암발생률이 인구 10만 명 당 264.4명인데, 이 정도 암발생률이 돌고래에게도 적용된다면 제주 남방큰돌고래 무리들에서는 거의 암에 걸린 개체가 나오지 말아야 한다. 그런데 지금 건강에 이상을 보이고 있는 개체는 턱이 하나가 아니다. 종양이 확인된 개체는 하나지만, 신체의 변형을 가져올 정도로 이상증상이 발생하고 있는 제주 돌고래는 턱이 말고도 더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원래 돌고래들은 암에 잘 걸리지도 않지만 적은 개체군에서 자꾸 암에 걸리는 개체들이 나온다는 것은 인간의 기준으로 봐도 자연 상태의 암발생률을 월등히 초과하는 비상한 상황이라는 말이다. 결국 생태계의 건강함을 나타내는 지표종인 돌고래가 암에 걸리고 있다는 것은 제주 연안 생태계의 상황이 심각함을 보여준다.

자연스런 인간의 연민 감정에 따라 나 역시 턱이를 구조해 치료해주고 싶었으나 이내 이것이 거의 불가능함을 알게 되었다. 진단과 치료를 하려면 먼저 턱이를 포획해야 하는데, 항상 수십 마리 제주 남방큰돌고래들과 함께 빠른 속도로 헤엄치는 턱이만을 포획하기가 매우 어렵다. 돌고래 포획은 일본 다이지마을에서 하는 것처럼 약 15척의 쾌속선단이 돌고래들을 빙 둘러 에워싸고 시끄러운 소음을 내 공포에 빠뜨린 뒤 그물이 쳐진 만으로 몰아 무리 전체를 포획하는 매우 잔인한 방법을 사용하거나, 과거 제주도에서 정치망이라는 그물을 바다에 쳐놓고 아무 돌고래나 우연히 걸리게 함정을 판 뒤 그물을 조여 잡아들이는 방식 등이 있는데, 두 방식 모두 턱이라는 개체만을 안전하게 포획하기에 적절한 방식이 아니었다. 게다가 제주 남방큰돌고래는 전체 개체수가 너무 적기 때문에 포획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개체군에 상당한 스트레스와 신체적, 정신적 충격을 줄 가능성이 높다는 단점도 있었다. 이는 전체 개체군의 생존에도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다. 결국 한 마리의 포획을 통해 치료해주려는 시도 자체에서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더 큰 상황이었다.

또한, 만에 하나 턱이의 포획에 성공했다고 해도 조직검사후 구강암 수술을 성공적으로 진행한 뒤 건강을 회복시켜 다시 야생으로 방류하는 일련의 과정 역시 거의 불가능해 보였다. 심각한 질병에 걸린 돌고래를 대상으로 마취 수술 등의 의학적인 치료를 한 사례는 미국 시월드와 캐나다 밴쿠버 수족관 등에서 사육 중이던 돌고래들의 사례가 있다. 하지만 야생 돌고래를 수술 후 수조 시설에서 회복시켜 다시 야생으로 돌려보내기 위해서는 먼저 그 야생성을 박탈하고 비좁은 수조에서의 사육과 냉동생선 급이 등 감금생활에 먼저 적응시켜야 했기 때문에 이마저도 불가능했다. 결국 안타까움과는 별개로 턱이에 대해 인간들이 치료를 해주기란 애초에 가능하지 않았다. 

턱이는 우리에게 제주의 자연이 회복 불가능할 정도로 망가지고 있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다. 무엇이 턱이에게 치료 불가능한 고통을 주고 있는가? 제주의 오름을 깎고, 숲을 베어내고, 숨골을 메우고, 콘크리트를 들이붓고, 아스팔트를 깔고, 갯바위를 부수고, 바다를 매립하여 초호화 호텔과 쇼핑몰과 골프장과 카지노를 세우고 또다시 도로를 넓히고, 신항만을 만들고, 제2공항을 건설하는 개발관광 때문이다. 양적 팽창과 이윤만을 추구했던 코로나 이전 시대의 탐욕관광 때문이다. 위기는 일상이 되었으며 이제 과거로는 되돌아갈 수 없다. 지금은 제주 제2공항 같은 무분별한 환경파괴 사업을 진행할 때가 아니다. 어떻게 하면 독성물질과 화학물질로 오염되고 있는 제주 연안을 치유해 돌고래들이 안심하고 살아가게 할지 대책을 내놓을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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