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기획] 역전 드라마 쓴 설향 딸기 성공기...제주감귤 97%가 여전히 일본 품종

2017년 8월부터 우리나라에서도 나고야의정서가 발효되면서 생물 유전자원 이용에 따른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일본이 2018년 우리나라 국립종자원에 감귤 품종에 대한 출원을 시작하면서 농가에도 비상이 걸렸다. 정부와 제주도는 감귤 품종 국산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지만 여전히 일본산이 97%를 차지하고 있다. 신년을 맞아 제주 감귤의 홀로서기를 조명해 본다. [편집자 주]

최근 농촌진흥청이 흥미로운 분석 자료를 내놓았다. 한국이 보유한 식물 종자 등 유전자원 수가 일본을 제치고 미국과 인도, 중국, 러시아에 이어 세계 5위라는 내용이다.

2017년 8월부터 우리나라도 나고야의정서가 발효되면서 다른 나라의 생물 유전자원을 이용할 경우 그 자원을 제공하는 국가에 사전 통보와 승인을 받고 금전적 이익을 공유해야 한다.

한국이 등록한 유전자원 수는 32만8000여개에 달하지만 최근 10년간 종자 수입액은 6848억원에 이른다. 수출액은 3114억원에 그쳤다. 같은 기간 로열티 지급액도 1357억원에 달했다.

나고야의정서 발효로 글로벌 종자 전쟁이 본격화 되면서 제주에서도 대표 작물인 감귤을 필두로 마늘, 감자 등 품종 국산화를 위한 도전이 이어지고 있다.

충남농업기술원 논산딸기시험장이 국산화에 성공한 딸기 품종 '설향' [사진제공-농촌진흥청]
충남농업기술원 논산딸기시험장이 국산화에 성공한 딸기 품종 '설향' [사진제공-농촌진흥청]

▲ 설향 딸기 등장으로 일본 품종 퇴출...중앙-지역간 연구·개발 성공 사례

1990년대만 해도 국내 재배 딸기 품종은 모두 일본산이었다. ‘장희’와 ‘육보’ 등 일본 품종이 딸기 시장을 장악하면서 2000년부터 본격적인 품종 국산화 연구가 시작됐다.

충남농업기술원 논산딸기시험장은 교배조합과 시험재배를 거쳐 2002년 ‘매향’ 품종을 개발했다. 품질은 좋았지만 막상 농가에서 재배가 어려워 보급 확대로 이르지는 못했다.

단점을 보완해 이듬해 등장한 품종이 설향이다. 시험재배에서 큰 열매가 많고 과즙도 풍부했다. 재배가 쉽고 수확량도 많아 농가 보급은 급물살을 탔다.

2005년 86%에 달했던 일본산 딸기 점유율은 2009년 40%대로 떨어졌다. 2019년에는 5%로 내려앉으면서 사실상 자취를 감췄다. 일본에 내주던 신품종 보호규정 로열티도 급감했다.

설향 딸기의 등장은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연구·개발(R&D) 협업이 주효했다. 농촌진흥청을 중심으로 지방 연구기관이 협력해 재배기술을 개발하고 표준화하면서 얻어낸 결과물이었다.

올해 3월에는 전북 부안군에서 생산한 설향 품종 딸기 480kg이 코로나19 위기를 뚫고 홍콩 수출길에 올랐다. 현재도 러시아와 베트남 등 신규 수출 시장을 두드리고 있다.

종자 보급과 함께 보호정책도 속도가 붙고 있다 농촌진흥천은 종자를 국내 유전센터 두 곳에 분산 저장하고 최근 유럽의 국제종자저장고에도 종자 1만개를 추가로 보내 보전하도록 했다.

제주도농업기술원이 8년 동안 연구해 개발한 신품종 만감류 감귤 '가을향'. [사진제공-제주농업기술원]
제주도농업기술원이 8년 동안 연구해 개발한 신품종 만감류 감귤 '가을향'. [사진제공-제주농업기술원]

▲ 일본 2018년부터 감귤 8개 품종 국내 출원...감귤 재배 국산품종 2.34%

2018년 제주 감귤농가가 발칵 뒤집혔다. 일본 정부 산하 국립연구개발법인 농업·식품산업기술종합연구기구가 그해 1월 자신들이 개발한 감귤 품종에 대해 국내 출원에 나선 탓이다.

일본 종합연구기구는 2017년 우리나라 국립종자원에 ‘미하야’, ‘아수미’, ‘리노카’ 3개 감귤 품종에 대한 품종보호를 신청했다. 이듬해 출원이 되면서 감귤농가는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출원 공개시 출원인의 허락 없이는 해당 품종의 종자(묘목)를 증식이나 판매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를 어기면 식품신품종 보호법 제131조에 따라 최대 징역 7년이나 벌금 1억원에 처해질 수 있다.

당시 농림축산식품부가 ‘품종보호출원 공개일로부터 발생되는 임시보호 권리는 수확물(열매)의 권리효력에 미치지 못한다’고 해석하면서 그해 생산물은 가까스로 출하가 가능했다.

일본 종합연구기구는 2019년 ‘이수키’ 품종에 대해서도 추가 출원에 나섰다. 현재까지 일본 연구기관이나 민간단체에서 국내에 출원한 감귤 품종은 8개에 이른다.

2017년 기준 도내 전체 감귤 재배면적 2만140ha 중 국산은 2.34%인 472ha에 불과하다. 나머지 97.6%인 1만9668ha가 외국 품종이다. 이마저 대부분이 일본산이다.

제주도와 농촌진흥청은 감귤 품종 국산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지만 신품종에 대한 농가 보급은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 1960년대 이후 일본산 제주감귤 장악...35개 품종 등록에 보급은 잰걸음

고려시대 문종 6년(1052) 문헌에 ‘제주 감귤을 왕가 공물로 바쳤다’는 기록이 있지만 현재의 신품종 귤은 1911년 천주교 신부를 통해 일본에서 제주로 들어온 것이 정설이다.

현재 재배하는 품종은 일제시대를 거쳐 1960년대 제주에 뿌리를 내렸다. 이어 1970년대에 본격적으로 보급화가 이뤄졌다. 한라봉과 천혜향도 일본 감귤을 교배해 개발한 품종이다.

제주도와 농촌진흥청은 감귤 품종 국산화를 위해 1990년대부터 연구에 나섰다. 2004년에는 농촌진흥청 감귤연구소가 ‘하례조생’ 품종을 선보였다. 국내 첫 감귤 품종의 등장이었다.

2013년부터 2020년까지 출원된 국산 감귤 품종은 감귤연구소 22개, 농업기술원 6개, 개인 및 법인 7개 등 모두 35개에 달한다. 일본산 8개를 합치면 총 출원등록은 43개 품종이다.

반면 감귤 품종 자급률은 2014년 1.0%, 2015년 1.8%, 2016년 2.0%, 2017년 2.2%, 2018년 2.3%, 2019년 2.5%, 2020년 2.8%로 성장세가 더디기만 하다.

감귤 묘목 1년생을 심으면 비닐하우스 4년, 노지는 6년을 길러야 수확할 수 있다. 농가 입장에서는 시간과의 싸움이 곧 부담이다. 이에 맞서 3년생 화분묘 보급 등의 대책도 등장했다.

농촌진흥청은 “국산 종자 주권 강화를 위해 지난해 감귤연구단도 출범시켰다”며 “유관기관과 공동 연구과제를 통해 2029년까지 국산 감귤 보급률을 20%로 끌어 올리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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