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길웅의 借古述今] 204. 이쪽저쪽에 치우치지 않은 중간이 좋다

* 중중다리 : 중간이,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은 중도(中道)
* 반갑나 : 좋다

어떤 일이나 한쪽으로 치우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부모가 그 자녀를 사랑함에도 애정이 골고루 미쳐야지 맏이가 막내다 해서 치우치면 부모와 자식 간에, 자식들 간에 갈등이 생기고 그 갈등은 형제자매 간에 우애를 깨뜨려 불화를 조장하는 근본이 된다. 매우 민감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교우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우정이란 서로 주고받으면서 싹트고 도타워지는 것이지, 일방적으로 또는 무조건적으로 베푼다고 다 좋은 것이 아니다.

이를테면 한 친구를 좋아해 매일 친구를 찾아 그의 집을 방문한다고 생각해 보라. 그 친구가 좋아하겠는가. 친구 사이에도 일정한 거리가 필요한 이유다. 그렇게 친구에게 분별없이 쏠리다 보면 오히려 상대가 싫어하게 될 수가 있다. 

우리 제주에선 이런 경우에, ‘아이고 중중다리가 반갑주’라 했다. 너무 치우치지 말고 반의 반 정도로 적당하게 하라, 곧 너무 심하게 할 것이 아니라 중간쯤, 중도에 그치면 훨씬 좋다고 이른 것이다.

1984년 11월 조천읍 신촌리에서 촬영한 원시 어로시설 ‘돌코지원’ 모습. 출처=고광민, 제주학아카이브.
요즘처럼 말과 행동이 혼란스러운 때에 중간적 입장, 중도적 자세를 견지하는 일이야말로 문제를 절충하고 접근해 나아가는 데 한몫을 할 게 틀림없다. 사진은 1984년 11월 조천읍 신촌리에서 촬영한 원시 어로시설 ‘돌코지원’(원담) 모습. 출처=고광민, 제주학아카이브.

배고프다고 음식을 닥치는 대로 폭식하는 것도 같은 이치에 해당한다. 요기(療飢)를 했으면 그에 한두 술 더 먹으면 되는 것이 아닌가. 지나치게 먹었다가 탈이 나게 마련이다.

끼니를 잇기 어려운 어린 시절, 농촌에 살면서 많이 들었던 말이 있다.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들 입에 바르다시피 했던 말, “배 혼 먹였저.(배 한 먹었다.)” 식량(食量)껏 먹었다는 것인데, 옛날 그렇게 배가 포만할 만큼 먹을 밥이 없었다. 다른 식구들을 편안케 하느라 속 다르게 해 본 소리였을 것이다.

그런 중 “없는 양식에 배가 터지게 먹을 일이냐, 그만저만 먹어 시장함을 면하면 되는 것이지.” 하고 우회적으로 에둘러서 했던 말일 수도 있다. 역시 ‘중중다리가 반갑나’다.

‘중중다리가 반갑나’는 그러니까 자신을 규율하는 언행의 기준이나 원칙으로 삼아도 좋을 듯하다. 어떤 일에 참여해 나서되 너무 한쪽으로 편중하지 말고 삼가고 분별해서 중도(中道)를 벗어나지 말라는 자신에 대한 깨달음. 

요즘처럼 말과 행동이 혼란스러운 때에 중간적 입장, 중도적 자세를 견지하는 일이야말로 문제를 절충하고 접근해 나아가는 데 한몫을 할 게 틀림없다. 편협은 큰 물줄기에 합류할 수 없는 하나의 지류(支流)에 불과할 뿐임을 알아야 한다.

# 김길웅

동보(東甫) 김길웅 선생은 국어교사로서, 중등교장을 끝으로 교단을 떠날 때까지 수십년 동안 제자들을 가르쳤다. 1993년 시인, 수필가로 등단했다. 문학평론가이자 칼럼니스트이기도 하다. 도서관에 칩거하면서 수필, 시, 평론과 씨름한 일화는 그의 열정과 집념을 짐작케한다. 제주수필문학회, 제주문인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대한문학대상, 한국문인상 본상, 제주도문화상(예술부문)을 수상했다. 수필집 <마음자리>, 시집 <텅 빈 부재>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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