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봉선의 마을 책방을 찾아書](12) 금요일의 아침, 조금 + 한 뼘 책방

마을책방은 단순한 기호품을 파는 곳이 아닙니다. 대형서점처럼 책을 어마어마하게 팔아치우는 곳은 더욱 아닙니다. 후미진 도심 골목이나 시골 언저리에서 마을책방을 만난다면 그것은 행운이지요. 마을 초입 팽나무 아래 마을사람들이 모여들듯 책벌레들이 도란도란 어우러질 수 있는 사랑방 같은 곳입니다. 제주도 마을 곳곳에 작은 책방들이 사람을 살리고, 다시 사람이 마을을 살리고 있습니다. 그것이 마을책방의 가치입니다. [제주의소리] 시민기자 고봉선 시인이 바람을 쐬듯 책방마실을 다니고 있습니다. 책과 사람이 만나는 곳 ‘마을 책방’에서 책방지기의 책 살림 이야기를 시인을 통해 듣습니다. [편집자 글] 

흔히 카페라 하면 목이 좋은 곳, 즉 사람이 많이 드나드는 곳이어야 한다는 게 일반적인 생각이다. 하지만 요즘은 주택가에서도 작은 카페의 모습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그 심심찮은 풍경을 파고든 동네 책방 “금요일의 아침, 조금 + 한 뼘 책방”을 찾아가기로 했다. 그런데 발길을 떼기가 두렵다. 빳빳하게 고개를 치켜든 코로나19가 칼날을 겨누기 때문이다. 책방지기님께 양해를 구했다. 기꺼이 휴일을 할애해 주셨다.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이도이동에 위치한 “금요일의 아침, 조금 + 한 뼘 책방” 책방지기 조은영 씨를 만났다.

“금요일의 아침, 조금 + 한 뼘 책방”
“금요일의 아침, 조금 + 한 뼘 책방”

“2021년의 목표”
처음엔 주택가의 작은 카페로 시작했다. 물론 카페로만 이어갈 생각은 아니었다. 오픈과 동시에 같이 시작하지 못했을 뿐, 책방을 겸할 생각이었다. 그렇게 1년여를 브런치 카페로 운영하다가 계획했던 책방을 시작하게 되었다. 한 뼘의 출발인 셈이다. 

카페를 시작하면서도 커피에 큰 뜻을 둔 것은 아니었다. 커피를 좋아하지만, 더 좋아하는 것들을 함께 하고 싶었다.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했던가. 책이 친구였던 조은영 씨는 문화의 퓨전, 즉 찾아오는 분들이 커피와 함께 브런치를 먹으며 책 읽는 모습을 꿈꾸었다. 시작이 반이랄까, 천릿길도 한 걸음부터랄까. 카페로 출발하고 책을 갖추는 데까지는 1년여, 다시 책과 함께 1년 반. 어느덧 2년 반이 되었다. 

처음엔 50여 권의 책으로 시작했다. 책방이라 하기도 민망하고 미안했던 조은영 씨는 책방의 면모를 갖추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였다. 그 결과 이제 제법 번듯한 동네 책방이 되었다. 하지만 책방지기가 보기엔 아직도 부족하다.

책방지기의 2020년 목표는 가능한 서가를 많이 채우는 것이었다. 이 목표를 이루기 위해 책방지기는 서점과 관련된 행사를 꾸준히 진행했다. 이 모든 건 브런치 카페만이 아닌, 서점이라는 이미지를 심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올해는 목표한 것들을 이룰 수 없는 해였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다. 지금까지는 고객들이 커피를 마시러 왔다가 책을 보거나 사는 거였다면, 2021년엔 책을 찾아왔다가 커피를 마시거나 브런치를 즐길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비록 목표한 것들을 이루지 못했다고 해도 처음 세웠던 계획을 포기하지 않았다.

책방 앞. 구석에 놓인 싸리비와 나무 의자가 서로 대화를 나누는 것처럼 보인다. 향토적인 느낌은 보고만 있어도 동화책을 읽고 있는 것 같다.
책방 앞. 구석에 놓인 싸리비와 나무 의자가 서로 대화를 나누는 것처럼 보인다. 향토적인 느낌은 보고만 있어도 동화책을 읽고 있는 것 같다.

동네 책방이 주는 이점”
동네 책방에서 브런치 카페를 겸하면 책을 좋아하는 사람에겐 더없이 반가운 곳이다. 하지만 2년 반이란 시간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이곳이 뭐 하는 곳인지 모르는 사람은 많다. 지나가다가 “여기 뭐 하는 데죠? 책도 파나요? 커피를 마실 수 있나요?” 등 여쭈는 사람도 종종 있다. 

그래도 한 번 왔다가 두 번 찾고, 커피를 마시러 오는 사람들이 늘어간다. 단골손님이 생겨나고 있다는 뜻이다. 커피를 마시러 왔다가 책을 사는 비율도 늘어나고 있다. 다행이다. 노출하면 노출할수록 책을 구매하는 빈도도 높아지고 있다. 다시 말하면, 동네 책방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독서인구도 늘어날 거라는 뜻이다.

동네 책방이 주는 가장 큰 이점은 큐레이션이다. 거래 비용의 관점에서 보면 동네 책방의 장점을 보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외형상의 경제 관념을 걷어내고 깊이를 들여다본다면 생각은 달라질 것이다. 예를 들어 읽고 싶은 책이 있어서 서점을 찾았다고 치자. 그런데 해당 책이 없을 수 있다. 그러면 그냥 돌아서야 한다. 하지만 동네 책방은 다르다. 제목은 달라도 그 분야의 다른 책을 추천해 주거나 큐레이션 해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책방을 찾는 몇몇 분들은 책방지기가 추천해주는 데로 책을 사 갔다. 그리고 만족해하며 다시 찾아온다. 이렇듯 깊이를 들여다봤을 때 동네 책방을 이용한다는 것은 거래 비용이 더 절약된다는 뜻이다.

2019년 여름, 5학년 아이들과 역사 기행을 갔다가 영풍문고에 들렀었다. 정말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매장은 컸다. 그 많은 책 앞에서 선택의 폭은 무척 넓었다. 하지만 난 한 권도 고르지 못하고 그냥 왔다. 책이 너무 많아서 선택할 수 없었다. 늘 인터넷으로만 책을 사버릇해서인지도 모른다. 어쨌든 대형서점에서 책 한 권을 고른다는 건 힘들었다. 하지만 딱 요만큼, 동네 책방이라는 범위 안에서는 달랐다. 지금까지 동네 책방을 탐방하면서 구매한 책은 적잖다. 그 책들은 한결같이 나를 만족시켰다. 책방지기들과 나누는 이야기도 유쾌하지만, 책을 한 권씩 사는 재미 또한 쫀득했다. 내가 책을 고를 수 있는 선택의 범위는 오히려 더 넓었다. 

그래서일까. 금방 도착하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굳이 책방에서 책을 주문하는 분들도 종종 있다. 직접 주문하면 고스란히 집으로 배달되고, 애써 책을 찾으러 오지 않아도 된다. 그런데도 주문해 달라고 부탁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건 아마도 동네 책방이 유지되길 바라기 때문일 것이다. 동네 책방을 사랑하는 증거이기도 하다. 그렇지 않다면 굳이 이곳에 와서 주문해 달라고 부탁할 필요가 없다. 이들은 책방지기가 추천해주는 책을 샀다가 그 책이 마음에 들어서 다시 찾는, 이미 단골이 된 사람들이다.

아직은 책 손님보다 카페 손님이 압도적으로 많다. 조금 비좁은 것도 같지만 걱정할 필요 없다. 여러 팀씩 오는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코로나19로 불안한 이때, 더없이 좋을 듯싶은 책방이다. 책이라는 연결 고리가 있어 책방지기와 여담을 나누는 재미 또한 쏠쏠하다. 

책방 내부에 걸린 그림. “낮과 밤의 공존”이라는 이 그림은 책방지기의 딸이 카페 안에서 밖을 내다보며 그린 그림이다. 하늘은 낮이고 땅은 밤이다.
책방 내부에 걸린 그림. “낮과 밤의 공존”이라는 이 그림은 책방지기의 딸이 카페 안에서 밖을 내다보며 그린 그림이다. 하늘은 낮이고 땅은 밤이다.

“자연을 읽다”
책방 앞에 놓여 있는 조그만 화분. 겨울은 여기에도 거르지 않고 찾아왔다. 안간힘으로 버티고 있는 두 개의 이파리가 안쓰럽다. 문득 무슨 나무일지 궁금했다. 나무 전문가인 지인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수형으로만 봐서는 ‘느릅나무를 수양형으로 개량한 것 같다.’고 하셨다. 하지만 확실하지 않으니 겨울눈을 찍어서 보내 달라고 했다. 휴대폰 속에 든 접사 사진을 보냈다. 그랬더니 “이건, 느릅나무가 아닌데요?”라는 답장을 보내왔다. 

전문가가 보는 눈은 확실히 달랐다. 나는 그저 이파리만 보고 ‘느릅나무가 아닐까.’ 짐작했는데, 지인은 겨울눈을 눈여겨보셨다. 그리고는 겨울눈 하나에 동그라미를 쳐서 보내왔는데 때죽나무일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동그라미 속 겨울눈은 아기를 업은 것처럼 겹쳐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쪽 세계에서는 일반적인 겨울눈과 달리 아기를 업고 있는 듯 보인다고 하여 ‘어부바’라 부른다고 했다. 이는 ‘주눈[主芽]’에 ‘세로덧눈’을 예비로 만들어서 잘못될 걸 대비하는 형태로 추측하는데, 나뭇가지가 늘어지는 건 가꾸는 사람이 그럴 수도 있다는 것이다. 기어이 새싹을 틔우려는 이들의 노력이 눈물겨웠다.
 
어느 짓궂은 개구쟁이 짓일까? 나뭇가지에 웬 도마뱀이 걸려 있다. 그 개구쟁이는 다름 아닌 때까치였다. 지인은 내가 보낸 사진을 보더니 “때까치가 먹이를 걸어놨네요.”라고 하셨다. “때까치요?”라는 나의 반문에 지인은 나뭇가지에 개구리가 걸려 있는 사진을 보내주셨다. 

책방 앞. 화분에 있는 때죽나무 가지에 도마뱀이 걸려 있다. 이는 때까치 먹이 활동의 특징이다. 짝짓기 시에 하는 행동이란 설도 있다.
책방 앞. 화분에 있는 때죽나무 가지에 도마뱀이 걸려 있다. 이는 때까치 먹이 활동의 특징이다. 짝짓기 시에 하는 행동이란 설도 있다.
때까치가 사냥한 개구리를 나뭇가지에 걸어 놓았다. 나무 전문가 지용주 님께서 보내온 사진이다.
때까치가 사냥한 개구리를 나뭇가지에 걸어 놓았다. 나무 전문가 지용주 님께서 보내온 사진이다.

참새목 때까칫과의 육식성 새인 때까치는 까치와 별개의 종으로 작고 귀여운 외모를 지녔다. 그런데 외모와 달리 쥐, 뱀, 개구리 등을 먹는 육식조다. 게다가 특이한 행동은 먹이를 나뭇가지나 가시에 꽂아 놓고 먹는다. 

때까치의 부리는 육식조라라는 걸 증명이라도 하듯 맹금류처럼 휘어 있다. 하지만 다리나 부리는 맹금류보다 약하다. 다시 말해 먹이를 찢기가 힘들다는 뜻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뭇가지에 먹이를 고정하고 뜯어먹는 습성이 생긴 게 아닐까 추측한다는데, 이 같은 행위가 정말 먹이를 먹기 위한 것인지는 미스터리다. 짝짓기 시에 하는 행동이란 설도 있기 때문이다. 

우스운 이야기도 있었다. 때까치가 사냥한 먹이를 나뭇가지나 가시에 걸어 놓을 때, 그곳을 다시 찾기 위해 하늘에 흘러가는 구름을 기준으로 삼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구름은 이미 사라지고, 때까치는 영영 저장한 먹이를 찾지 못한다. 고사성어 각주구검(刻舟求劍)이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뜻하지 않게 난 “한 뼘 책방” 앞에서 겨울눈과 때까치에 관한 정보책을 읽은 셈이었다.

책방 내부. 외국 문학(아래) 한국문학(가운데) 인문 관련(위) 서적이 진열되어 있다.
책방 내부. 외국 문학(아래) 한국문학(가운데) 인문 관련(위) 서적이 진열되어 있다.

“입꼬리를 올리는 추억”
책방지기 조은영 씨는 원래 서울에서 출판과 잡지사 일을 하고 있었다. 잡지사에서 조은영 씨가 처음으로 하게 된 일은 영화인의 인터뷰 녹취를 푸는 일이었다. 녹취를 푸는 일은 지금도 조은영 씨가 좋아하는 일 중 손에 꼽히는 일이다. 

예전엔 인터뷰 된 발음이 뭉개지는 등 녹음기술이 지금보다 훨씬 떨어졌다. 정확하지 않은 부분도 많았다. 그러므로 녹취를 풀 때는 테이프를 수시로 돌려가면서 듣고 또 들어야 했다. 또 인터뷰는 글로 쓰는 것과 달리 생각하는 대로 이야기하는 사람도 흔치 않다. 그러므로 녹취를 푸는 사람은 문맥의 흐름에 맞게 앞 이야기와 중간, 뒷이야기를 편집하는 능력도 발휘해야 한다. 때에 따라서는 머리에 쥐가 날 법도 한데, 조은영 씨는 이게 재미있다는 것이다.

조은영 씨가 맨 처음 풀었던 녹취는 어느 영화감독의 인터뷰였다. 첫 임무인지라 몇 날 며칠 동안 테이프를 돌리며 듣고 또 들었다. 그러다 보니 거의 외울 지경이 되었다. 그렇게 녹취를 다 풀고, 이제 파일을 넘기면 끝이었다. 그런데 문제가 터졌다.

요즘은 흔히 유에스비에 파일을 저장한다. 예전과 달리 저장 기술은 좋아졌지만, 그래도 간혹 파일이 날아가는 경우가 있다. 2000년대 초반엔 보통 플로피디스크에 저장했는데, 파일이 날아가는 경우는 더 허다했다. 아니나 다를까, 뭐가 잘못됐는지 파일이 사라져 버렸다. 

물론 어딘가에 저장되어 있어도 찾지 못했을 수 있다. 어쨌거나 당장 내일 아침이면 파일을 넘겨야 했다. 그런데 녹취를 풀어 놓은 파일이 사라졌으니 환장할 노릇이다. 녹음테이프는 이미 다른 인터뷰로 덮어씌운 상태, 변명으로 때울 수는 없었다. 조은영 씨는 밤새도록 기억에 의존하여 녹취를 풀었다. 그리고 거의 90%를 복원하며 자신에게 주어진 첫 임무를 멋지게 마무리했다. 

또 하나는 유명 가수의 인터뷰 녹취를 푸는 일이었다. 인터뷰에선 뉴욕의 어느 거리가 나오는데, 가수의 발음만으로는 풀어놓을 수가 없었다. 조은영 씨는 가보지도 않은 뉴욕의 어느 거리를 계속해서 듣고 또 들으며 인터넷에서 찾아 지명들을 옮겨냈다. 그렇게 하다 보니 저도 모르게 인터뷰 가수가 추억하는 그곳으로 뒤따라가는 듯한 착각에 빠져버리고 말았다. 

그 후 출판계로 넘어오며 조인영 씨는 출판 관련 잡지들을 만들었다. 출판계에서나 잡지사에서나 맨땅에 헤딩하듯 열심히 일했다. 그랬기에 지금은 입꼬리를 올리는 추억이 되었다.

아마란스와 칼랑코에가 자유를 추구하듯 책방 안 창가에서 자라고 있다.
아마란스와 칼랑코에가 자유를 추구하듯 책방 안 창가에서 자라고 있다.

“기왕이면 즐겁게 할 수 있는 일”
제주에서 하는 일은 기왕이면 즐겁게, 그게 책을 파는 일이었으면 좋겠다. 남편은 소식지나 신문 등 매체 발행하는 일을 좋아했고 또 하고 싶어 했다. 이렇듯 남편도 조은영 씨와 비슷한 일을 해왔기에 별다른 마찰은 없었다. 책방이 자리 잡히면 부부만의 성격을 닮은 매체를 발행하는 것까지 생각하며 책방을 하자고 합의 보았다. 

50여 권으로 시작한 처음, 그야말로 한 뼘이었다. 그 한 뼘의 책은 철저하게 책방지기의 취향대로 선정했다. 기본적으로는 소설 등 문학을 위주로 선정했고, 작은 출판사들에서 나오는 독특한 에세이들이 강세일 때라 함께 시작했다. 그런데 먹혀들지 않았다. 뭔가 대책을 세워야 했다. 차츰 범위를 넓히며 지금은 인문학, 예술, 사회 분야, 더 나아가서 의미 있는 과학 환경 책들을 다루고 있다. 하지만 과학 환경 분야의 책은 아직 부족한 편이라고 한다.

오른쪽 벽 선반에는 에세이가 진열되어 있다. 정면에 있는 책들은 책방지기가 애정을 가진 ‘책에 관한 책들이거나 글쓰기에 관한 책’들이다. 책에 관한 책을 읽으면서 다른 사람이 어떻게 읽었는지를 알 수 있어서 좋다는 것이다. 가운데 아래 칸이 시크릿 북이다.
오른쪽 벽 선반에는 에세이가 진열되어 있다. 정면에 있는 책들은 책방지기가 애정을 가진 ‘책에 관한 책들이거나 글쓰기에 관한 책’들이다. 책에 관한 책을 읽으면서 다른 사람이 어떻게 읽었는지를 알 수 있어서 좋다는 것이다. 가운데 아래 칸이 시크릿 북이다.

“전작 읽기 계획과 시크릿 북”
여느 책방들처럼 책방지기도 읽기 모임과 글쓰기 모임은 기본적으로 하고 있다. 이제 그 기본을 넘어서 전작 읽기 모임도 시작했다. 2020년은 전작 읽기 1탄으로 김훈 작가의 전작 읽기를 진행하고 있다. 진작 끝났을 텐데 코로나19로 계속 미뤄지며 현재 세 권이 남았다. 김훈 작가의 전작 읽기가 끝나면 레이첼 카슨으로 넘어갈 예정이다. ‘침묵의 봄’부터 ‘잃어버린 숲’까지 ‘레이첼 카슨’을 좀 더 알리는 작업을 하고 싶다는 것이다. 

리베카 솔닛의 작품도 계획하고 있다. 리베카 솔닛은 이 시대 페미니즘적인 모토를 가장 잘 전달하는 여성 작가이다. 그가 유명하게 된 건 ‘맨스플레인(mansplain, man+explain)’이다. 남자들이 자꾸 여자를 가르치려 든다는 것도 있지만, 페미니즘의 전서로만 알려진 그의 책은 인문학적인 고찰이 담겨 있다. 선견지명이 있었던 걸까. “이 폐허를 응시하라(펜타그램 출판)”라는 작품은 옛날에 나온 책이다. 그런데도 전염병 재난 시대에 가장 필요한 연대의 모습에는 어떤 것이 있을 수 있는지 다루고 있다. 현대의 모습에서 한 치 어긋남이 없는 것이다. 문학적인 에세이를 수준 높게 쓰는 작가라서 2021년엔 그 작가에 대한 읽기 모임을 해보고 싶다는 것이다. 전작은 각자 읽고 그날 이야기할 것들을 써오고 있다. 

책방 내부. 제라늄 화분과 재봉틀 다리, 한글 타자기며 포인세티아가 책방의 분위기를 한결 멋스럽게 연출하고 있다.
책방 내부. 제라늄 화분과 재봉틀 다리, 한글 타자기며 포인세티아가 책방의 분위기를 한결 멋스럽게 연출하고 있다.

이곳 역시 다른 곳에서 ‘블라인드 북’ 혹은 ‘비밀의 책’이라고 부르는 ‘시크릿 북’ 코너가 있었다. 이곳 ‘시크릿 북’은 크기도 일정하고 포장지도 알록달록 예뻤다.

시크릿 북은 동네 책방 주인장들께서 적극적으로 추천해 주셨다. 시크릿 북을 살 수 있다는 건 해당 서점의 신뢰를 바탕으로 한다. 게다가 독자의 흥미도 끌 수 있고, 책을 팔면서 재미도 있다. 2021년부터는 책방 이미지를 쌓기 위한 해로 잡았으니, ‘한번 해 보자.’ 하고서는 12월이 되며 일곱 권으로 시작하게 되었다. 일단 문학으로 시작했고, 약간은 클래식으로 다루었다. 이제 막 태어나 대중에게 선보일 야들야들하고도 보드라운 시크릿 북이다. 

시크릿 북은 책방지기가 고른 책과 동네 작가들의 작품이 콜라보가 된 구성을 하고 있다. 한 뼘 책방 고객 중에는 아주 가까이 사는 작가, 일러스트 디자인 작가, 가죽 공예 작가도 있고 바리스타도 있다. 이들의 전문성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책만 있는 게 아니다. 책과 어울릴 수 있는 다른 작업물들도 같이 들어 있다. 크건 작건 책방지기는 동네 책방의 역할을 다하기 위해 무던히도 애쓰고 있다. 이쯤 되고 보니 책방지기도 분명히 글을 쓰고 있을 것 같다. 아닌 게 아니라 환경운동연합과 서울 잡지사에 띄엄띄엄 기고하는 글을 쓰고 있었다.

카페와 책방 마스코트 조금이. 카페를 시작한 후 입양한 조금이는 이제 카페와 책방의 마스코트가 되었다.
카페와 책방 마스코트 조금이. 카페를 시작한 후 입양한 조금이는 이제 카페와 책방의 마스코트가 되었다.

“최근에 읽은 책과 추천하는 책”
책방지기는 책을 재미로 읽는 사람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에게 책은 재미있어야 한다. 20대에서 30대 초반까지 배수아 작가를 좋아했다. 그가 말하는 배수아 작가는 한국 문단에서 약간 이상한(?) 여자 같은 느낌이다. 그런데 책방지기는 오히려 작가 특유의 그런 아우라가 마음에 든다는 것이다. 책방지기는 러시아어를 전공했다. 당연히 20대 초반엔 도스토옙스키의 작품에서 우러나오는 이미지 등 러시아 문학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하지만 이와 상관없이 배수아 작가의 감각이나 감성을 책방지기는 좋아한다.

최근 책방지기는 이라영 작가를 눈여겨보고 있다. 이라영 작가의 “정치적인 식탁(동녘 출판)”과 “여자를 위해 대신 생각해줄 필요는 없다(문예출판사)”란 책은 메시지 전달이나 주제 의식이 좋다. 그래서 손님들한테 많이 추천하고 있다. 

최근에 또 흥미롭게 읽는 책은 스나우라 테일러의 “짐을 끄는 짐승들(이마즈 유리 옮김, 오월의봄 출판)”이다. 장애 인권과 동물권을 연결한 작품이라 사회적으로 의미가 큰 책이다. 인상 깊게 와 닿으면서 책방지기 기억에 오래 남을 것 같은 이 책도 요즘은 많이 추천하는 편이다. 
책방지기에게도 책은 그저 문학을 읽는 것으로만 생각했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진작에 무너졌다. 세계 확장 등 여러 가지를 생각했을 때, 비문학작품이 더 충격적으로 자신을 열게 만드는 것임을 일찌감치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침묵의 봄”도 그렇다. 침묵의 봄에서 각 장을 시작하는 부분을 보면, 레이첼 카슨은 굉장히 서정적이다. 그 서정성을 바탕으로 현실의 이야기를 끌고 가는 것들, 여럿이 공감해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전작 읽기도 생각하게 되었다. 비문학 작품이지만 세계에 대한 시각을 확장하고 열어줄 수 있는 책들, 조금 더 절박하게 읽을 수 있는 책들을 요즘은 많이 추천하고 있다.

‘옥타비아 버틀러’의 책 역시 많이 추천하는 중이다. 옥타비아 버틀러는 SF를 쓰는 작가이다. 그의 작품은 충격적이면서도 아름답고, 슬프면서 또한 묵직하다. 문학작품인 데다가 SF라 흥미로운 요소도 많고, 문제의식 등을 새롭게 환기해줄 수 있는 책이다. 추천하는 이유이다.

책방 내부. 비록 코로나19로 체감온도가 더더욱 낮아진 크리스마스지만 와인과 포인세티아가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키고 있다.
책방 내부. 비록 코로나19로 체감온도가 더더욱 낮아진 크리스마스지만 와인과 포인세티아가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키고 있다.

“기타 모임”
2019년엔 카페 손님 몇몇이 제주문화예술재단 지원사업으로 연구모임을 진행했다. 제주의 옛 이름을 살려서 “영주 살롱”이라고 한 연구모임에서는 일곱 가지 키워드로 제주도를 이야기하는 토론이 진행되었다. 이 모임에서 약 석 달가량 토론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책방지기는 구성원들과 돈독한 관계가 되었다. 연구모임의 일원이었다가 지금은 절친이자 동네 주민이자 단골손님이 된 것이다. 이런 게 모임의 묘미인지도 모른다.

책방이라면 빼놓을 수 없는 글쓰기 모임, 이 모임의 리더는 김재훈 시인이다. ‘시 쓰기’와 ‘산문 쓰기’로 나누어서 금요일과 토요일에 진행되는데, 하나의 주제로 글을 써 오면 구성원끼리 합평하는 방식이다. 작가가 되려고 글을 쓰는 사람도 있고, 굳이 작가가 되려는 생각이 없어도 글을 쓰는 사람이 있다. 꼭 작가만이 글을 쓰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온종일 자기 작업을 하다가 가는 작가들도 있다

필사 모임도 있다. 현재 네 명이 참여하고 있는데 따로 정해진 도서가 있는 건 아니다. 주어진 두 시간 중 한 시간은 각자 책을 읽으면서 마음에 드는 문장이나 대목을 부분 필사한다. 나머지 한 시간은 자기가 읽는 책을 소개하고, 어떤 이유에서 그 부분을 필사했는지 공유한다. 서로 이야기하는 것이 좋다며 필사는 빠지지 않으려는 열성적인 멤버도 있다. 

비록 소수의 모임이지만 모임마다 꼭 오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다. 책방지기가 모임을 계속 진행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글쓰기, 읽기, 전작 읽기, 필사. 주 5일 영업에 모임이 네 개다. 이것으로 끝이 아니다. 간헐적으로 북 토크 쇼나 무비토크도 이루어진다. 숨쉬기조차 힘들 것 같다. 그래도 재미있단다. 이 모든 건 그날을 살게 하는 원동력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쉽게도 이 모임들은 코로나19 때문에 잠정적으로 보류하고 있다.

“금요일의 아침, 조금”은 카페를 말하고, “한 뼘 책방”은 이름 그대로 책방이다. 주말을 앞둔 금요일, 직장인들에겐 설레는 요일이기도 하다. 이렇듯 주말을 기다리는 시간이라는 의미에서 카페 이름도 “금요일의 아침, 조금”이라고 했다. 다시 말하면, ‘금요일의 아침’이 곧 ‘조금(朝金)’이다. “한 뼘 책방”은 카페 안에 있는 또 하나의 가게 책방이다. 우리는 늘 책을 읽어야겠다고 생각하며 산다. 그런 면에서 보면 누구나 한 뼘 만한 정도의 서고는 가진 셈이다. 게다가 가게는 공간도 작다. 그래서 “한 뼘 책방”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커피를 마시든 책을 판매하든 지금까지 갔던 책방에서는 관광객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이곳은 의외다. 시내에 자리해서 그런 걸까. 외지인과 주민들을 비교했을 때 2대 8로 주민이 훨씬 많다. 주민들은 커피를 마신다는 이유도 있지만, 분위기를 즐기러 오는 분이 더 많다. 

 

책방 뒤뜰 정원. 12월은 애기동백의 계절이다. 높다란 울타리 너머엔 어떤 사람이 살고 있는지 모르지만, 이웃은 대나무 밀림이다. 오스카 와일드의 “거인의 정원”이 떠오른다.
책방 뒤뜰 정원. 12월은 애기동백의 계절이다. 높다란 울타리 너머엔 어떤 사람이 살고 있는지 모르지만, 이웃은 대나무 밀림이다. 오스카 와일드의 “거인의 정원”이 떠오른다.

“금요일의 아침, 조금 + 한 뼘 책방은”
주말을 앞둔 금요일, 당신의 가슴에 들어 있는 ‘한 뼘 만한 책방’을 꺼내 보는 건 어떨까요? 지금, “금요일의 아침, 조금 + 한 뼘 책방”을 찾아보세요. 분위기 만점의 와인 혹은 향긋한 커피 한 잔과 브런치를 앞에 두고, 책 읽는 행복을 누릴 수 있을 거예요.

찾아가는 길 : 제주시 가령골1길 12
카페 인스타 : @friday_morning_ 
책방 인스타 : @btween_fingers
영업시간 : 11:00 ~ 오후 8:30 (일요일, 월요일 정기휴무) 

고봉선은?

제주시 애월읍 고성리에서 농부의 딸로 태어나 식물과 함께 자랐다. 지금은 허름한 고향 시골집에서 꽃과 함께, 독서지도사를 하며 아이들과 지내고 있다. 한국해양아동문화연구소 운영위원, 애월문학회 회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독립언론 [제주의소리]에서 [고봉선의 마을 책방을 찾아書]를 통해 격주로 독자들을 만난다. 마을 책방에 깃든 사람과 책 이야기가 소개된다.

저서로는 시집 ‘詩를 먹고 자라는 식물원’, 꽃과 함께 사는 이야기 ‘詩가 사는 기행식물원1, 2, 3, 4’, 동화집 ‘지우개’가 있다. 식물원 시리즈로 전자도서관에 식물원을 꾸미는 게 소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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