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예술칼럼, Peace Art Column] (38) 김준기

제주도는 평화의 섬입니다. 항쟁과 학살의 역사를 가지고 있기에 평화를 염원하는 마음은 더욱 간절할 수 밖에 없습니다. 제주4.3이 그렇듯이 비극적 전쟁을 겪은 오키나와, 2·28 이래 40년간 독재체제를 겪어온 타이완도 예술을 통해 평화를 갈구하는 ‘평화예술’이 역사와 함께 현실 속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2018년부터 세 나라 세 섬의 예술가들이 연대해 평화예술운동을 벌이고 있어 이에 대한 창작과 비평, 이론과 실천의 공진화(共進化)도 매우 중요합니다. 독립언론 <제주의소리>가 세 섬 예술가들의 활동을 ‘평화예술칼럼(Peace Art Column)’을 통해 매주 소개합니다. 필자로 국외 작가들이 참여하고 있어 일어, 영어 번역 원고도 동시 게재합니다. [편집자 글]
사진=김준기. ⓒ제주의소리
최평곤, 통일부르기, 파주 평화누리공원사진=김준기. ⓒ제주의소리

경기도 파주시 임진각의 평화누리공원에는 바람의 언덕이 있다. 그 언덕에는 거대한 대나무 인간들이 북쪽을 바라보고 서 있다. 최평곤의 작품, '통일바라기'이다. 그의 작품들은 대나무를 쪼개서 긴 선재를 만들고 그것을 얽어서 거대한 인간 형상을 만들어 야외공간에 세우는 설치작업이다. 선으로 볼륨을 만드는 그의 설치조각들은 DMZ 경계선을 시작으로 포천 산정호수, 서울 용산가족공원, 대전시립미술관, 경기도미술관, 제주현대미술관, 김제 벽골제, 순천만국가정원, 제주도 알뜨르비행장 등 전국 곳곳에 자리잡고 있다. 장소의 서사를 끌어들인 인간 형상의 거대한 구조물은 관람자를 압도하는 거대한 크기와 부드러운 곡선으로 깊은 울림을 주며 각각의 장소성을 살려낸 생평과 평화의 메시지를 담아낸다.

평화누리공원의 설치미술 작품 '통일부르기' 또한 DMZ를 마주하고 있는 임진각의 분단 서사를 담고 있다. 최평곤 작품의 주요 모티프인 거대한 인물상이 크기를 달리하여 언덕이라는 지형에 타고 넘으면서 통일을 염원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대변해주고 있다. 실향민들이 찾는 망향의 상징 임진각 일원에는 슬픔의 서사 만큼이나 서늘한 냉전의 유산들이 자리잡고 있다. 그곳에 서있는 최평곤의 대나무 인간들은 북녘을 바라보고 서 있는 실향민들의 슬픔만이 아니라 그 슬픔을 통일의 염원으로 승화하는 예술의 힘을 발산한다. 그것은 특정 장소에서 특정 메시지를 발산하는 장소특정적 예술이다.

평화누리공원의 랜드마크로 자리잡은 '통일부르기' 바로 옆에 지난 한달반 동안 낯선 텐트가 자리잡고 있었다. 공원 언덕에 위치한 텐트는 안내소나 쉼터 역할을 하는 것일 가능성이 높지만, 이 텐트의 특이점은 ‘행정공무원의 집무실’이라는 데 있다. 바로 이재강 경기도 평화부지사의 임시 집무실이다. 경기도정의 주요 당사자인 평화부지사가 찬바람부는 DMZ 접경으로 집무실을 옮긴 것은 예사롭지 않은 일이었다. 핵심 의제는 ‘재성공단 재개’이다. 처음에는 캠페인을 벌이며 접경지역인 경기도의 남북교류 사업 관련 행정력을 집중하려는 것으로 보였다. 그런데 이 문제는 어느새 국제적인 갈등의 요소까지 겹쳐지기 시작했다.

사진=김준기. ⓒ제주의소리
이재강 경기도 평화부지사의 평화누리공원 임시 집무실. 사진=김준기. ⓒ제주의소리

“대한민국의 행정력이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 영토는 어디까지인가?”

대한민국의 고위 공무원인 경기도 평화부지사가 묻는다. 이 질문에 대해 우리는 어떤 대답을 할 수 있을까? 안타깝게도 우리는 ‘UN사령부가 허락하는 곳까지’ 라고 답할 수밖에 없다. DMZ의 관할 주체는 대한민국 정부가 아닌 UN사령부다. 분단과 전쟁 이후 지금까지 대한민국은 아직 자국의 헌법이 규정한 영토에 실효적인 권한을 행사할 수 없다. 분단 국가의 북쪽은 물론이고, 완충지대인 DMZ에서도, 게다가 DMZ 안쪽이 아닌 그 바깥의 접경에서조차, 우리나라는 군사는 물론 행정 영역에서도 그 권한이 매우 제한적이다. 이재강의 질문은 바로 이 대목, 분단국가의 정치적, 군사적, 행정적 권한의 제한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제기이다.

그가 DMZ에서 벌인 일련의 행위들은 당연히 정치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가 정치인 출신의 행정가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DMZ 자체가 워낙에 정치적인 함의를 가지고 있는 공간이자 의제이기 때문이다. 이재강이 이러한 질문을 던진 까닭은 개성공단 재개를 위한 캠페인 과정에서 UN사령부의 제재(制裁)에 걸렸기 때문이다. 분단 이후 전쟁을 겪고 정전 협정을 맺은 지 70여년이 지났는데도 DMZ 구역에 대한 대한민국 정부의 행정력은 제한적이다. 개성공단 재개를 공론화하기 위하여 집무실을 분단의 현장, 도라산 전망대 앞에 설치하겠다는 그의 계획은 한국 정부가 아니라 UN사령부에 의해 가로막혔다. 한반도 허리에 존재하는 비무장지대 바깥에 한국의 민간인은 물론 정부조차도 실질적 효력을 발생할 수 없다는 것을 확인한 셈이다.

이재강은 정치인의 힘으로도, 행정가의 노력으로도 한숨에 풀 수 없는 금기의 영역에 뛰어들었다. 그가 넘어서려는 벽은 한반도 분단이라는 벽이다. 역사적 연원으로부터 동시대 국제정치의 역관계까지 복잡하게 얽힌 문제틀 속에서 어느 하나의 원인을 지목하기가 간단치 않다. 하지만 분명하게 눈에 띄는 것은 한반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아직 근대국가의 기틀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전근대에서 근대로 전환하는 대목에서 민족공동체를 기반으로 한 단일국가 건설에 실패한 상황을 70년 이상 지속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재강과 UN사령부의 갈등은 국제사회의 공론장을 촉발했다. 미국의 언어학자 노엄 촘스키를 비롯한 미국과 유럽의 평화운동가들은 ‘유엔사는 경기도 부지사 집무실 설치 허용하라’는 청원서에 연대서명을 했다. 다음은 시몬천 박사가 작성한 청원서 전문이다.

“로버트 에이브럼스 UN사령부 사령관께. 2020년 10월 23일 UN사령부는 DMZ 내 도라산 전망대 앞에 평화부지사의 임시 집무실 설치에 대한 경기도의 요구를 거절했습니다. 우리는 “경기도의 고유행정에 대한 UN사령부의 부당한 주권침해”라며 반대한 이재강의 발언에 동의합니다. 그가 지적했듯이, UN사령부의 DMZ 관할권은 적대행위를 단속하고 방지하는 것입니다. UN사령부는, 한국 정부 관청의 합법적인 행위를 막고 자신들의 권한을 남용하여, 국가 주권을 존중해야 한다는 UN의 설립 원칙을 위반했습니다. 우리는 UN사령부가 한국의 주권을 존중하고, 한국 영토 내에 집무실을 설치하려는 시도를 방해하지 않음으로써, UN의 설립 원칙을 지킬 것을 촉구합니다.“

이렇듯 국제적인 공론장이 작동하고 있는 이번 사건의 핵심은 한반도의 평화체제 구축을 위하여 개성공단을 재개해야 한다는 데 있다. 개성공단은 남북의 경제협력을 위한 공업단지이다. 그것은 남측의 자본과 북측의 인력이 만나서 경제적 상생을 만들어내는 기구이다. 북측에 존재하는 도시에 남측의 공장을 세워 가동한다는 것이 꿈같았지만, 실제 그렇게 작동했던 곳이다. 그것은 경제적 실익 이상의 상징가치를 가지고 있다. 그것은 평화의 상징이다. 상징이란 실질적인 효과를 기반으로 하되 그것이 영향을 미치는 범위가 해당하는 실재의 장을 넘어서는 또다른 소통기재로 작동하는 것이다. 개성공단은 경제적인 협력만이 아니라 남과 북의 평화공존을 노력을 행동으로 옮긴 상징의 장이기도 하다.

이런 맥락에서 개성공단은 남과 북이 상호간 실리를 추구한 평화프로젝트다. 남측의 자본과 기술력, 북측의 우수한 인력이 협력하여 남북의 화해와 협력의 시대를 열어나간 한 시대의 유산이다. 그것은 남북 통일의 희망을 안겨주었다. 이제 한반도에서는 더 이상 전쟁 위협이 지속되지 않을 것만 같았고, 조금만 더 나아갔으면, 서해바다가 분쟁이 아닌 공동어로구역으로 확장될 수도 있었다. 그러나 한순간, 그 꿈은 사라지고 말았다. 남과 북의 화해와 공존 노력은 당사자들만의 노력으로 되는 일이 아니었다는 것을 깨닫는 데는 그리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정권이 바뀐 후 몇 년 안에 금강산과 더불어 개성공단은 폐쇄되었고 남북 관계는 다시 냉전으로 되돌아갔다.

남북이 미래를 향해 대화하고 협력할 수 있는 채널을 가로막는 힘의 실체를 한두 가지로 특정하여 단언하기는 쉽지 않지만, 통일의 희망을 멈추게 한 힘이 ‘분단체제라는 괴물’이라는 점은 익히 잘 알려져있다. 개성공단이 중단된 후 몇 년이 흘렀지만, 아직도 닫힌 문을 열고 공단을 재가동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재강은 그 냉전의 고리를 끊고 개성공단의 상생과 평화를 잇고자, 한국의 지방정부 공무원으로서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노력을 다하고 있다. 그는 자신의 집무실을 DMZ 접경의 파주 평화누리공원으로 옮기고는 개성공단 재개를 촉구하는 행정적/정치적 행동을 취했다. 미술평론가로서 내가 주목하고자 하는 것은 그의 행동이 행정가/정치가의 일반적인 유형 이상의 것이라는 점이다.

이재강이 벌인 일련의 행위들은 정치적 행위이면서 동시에 고도의 예술적 장치들을 동반한 상징행위이다.

사진=김준기. ⓒ제주의소리
UN사령부에 항의하는 이재강의 삼보일배 퍼포먼스. 사진=김준기. ⓒ제주의소리

그는 UN사령부에 항의 하는 뜻으로 통일대교 남단에서 북단까지 1.25㎞ 구간을 홀로 삼보일배를 했다. 125개의 개성공단 입주 기업 숫자를 상징하며, 315번 몸을 낮춰 찬 바닥에 엎드려 절을 했다. 삼보일배는 불교에서 고행의 방법으로 행하는 종교적 행위이다. 그런데 이 삼보일배를 한국의 노동운동가들이 시위의 방식으로 도입하면서 새롭게 주목받아 해외에서도 이와 같은 방식으로 시위를 벌이곤 한다. 그것은 종교적 의식으로서의 가치와는 또다른 코드로 보이는 이들로 하여금 감동의 코드를 자극한다. 이런 맥락에서의 행동가의 삼보일배는 일종의 퍼포먼스다. 퍼포먼스란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하여 몸으로 수행하는 상징 행위이다. 영하 10도이 혹한에 벌인 분단 현장에서 한국의 공위공무원이 벌인 삼보일배. 그것이 상징하는 바, 분단체제에 대한 처절한 비판과 저항이다.

그는 최평곤의 '통일부르기' 바로 옆에 임시 집무실을 설치함으로서 장소특정적인 예술의 아우라를 자신의 처소와 연결했다. 집무실 텐트를 펼친 평화누리 공원 언덕에서 서서 북쪽을 바라보고 서 있는 예술작품 바로 옆에서, 그는 분단국가의 현실을 몸소 느끼며 추운 겨울 칼바람을 맞았다. 분단 현장의 랜드마크인 최평곤의 작품은 이재강의 개성공단 재개 선언과 맞물려 상징의 위력을 배가했다. 바람부는 언덕에 우두커니 서서 한없이 북녘을 바라보고 있는 거대한 조형물은 그 거대한 크기만큼이나 압도적으로 슬픔과 희망의 심상이 뒤섞인 채 분단과 평화의 서사를 발산한다. 현장을 방문한 수많은 지지자들은 언덕에서 공연을 펼칠 때도 거대한 대나무 인간들은 그 현장을 지켜주는 버팀목이었다.

설치미술과 음악공연, 퍼포먼스가 결합한 행정가 이재강의 ‘개성공단 잇기 퍼포먼스’는 정치적 경색을 예술적 소통으로 톨파하는 상징정치이다. 그의 임시 집무실은 정치인이나 운동가들이 종종 실행하는 천막 당사, 광장 텐트 등과 유사한 코드로 ‘위기를 톨파하는 현장의 위급성’을 전달했다. 여기에 예술 작품이나 행위를 결합함으로서 이재강은 훨씬 더 강렬하게 상징의 정치를 수행했다. 그는 한달 반동안 벌인 현장에서의 상징투쟁은 일단락을 지었다. 분단의 장에서 대화와 소통으로 평화의 씨앗을 뿌리며 새로운 희망을 만들기 위해 나선 긴 여정의 서막을 마친 이재강은 자신의 SNS를 통하여 이렇게 말했다.

“경기도청 집무실로 돌아왔습니다. 43일 간의 임진각 현장 집무실이 퍽이나 익숙해졌나 봅니다. 여러 곳에서 응원의 발길이 이어 질 거 같습니다. 춥지만 따뜻했고, 혼자지만 더불어 하나였습니다. 감동과 감사의 나날들이었습니다. 우리의 주권이 유엔사라는 모자를 쓴 미국 앞에서는 한 없이 작아지는 비통한 현실도 목도 했습니다. 개성공단 재개라는 남북 정상의 약속 이행이 제자리 걸음인 이유를 곱씹어 볼 수 있었습니다. 분통과 염원의 연속이었습니다.

개성공단 재개. 다시 남북의 시간은 제재와 승인의 문제가 아닙니다. 용기와 결단의 시간입니다. 자주와 자결이라는 판문점선언의 철학. 금강산과 개성을 열었던 김대중 노무현 두 전직 대통령의 결단. 제 작은 외침과 미력한 몸짓이 남북 양 정상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움직였길 바래봅니다. (가칭)<개성공단재개선언 범국민연대회의>가 꾸려집니다. 개성공단 재개 선언이 조속히 이뤄 질 수 있도록 연대회의와 끝까지 함께 하겠습니다. 개성공단 재개 선언은 신뢰의 축적을 통한 남북 관계 발전의 시작입니다. 평화의 시작입니다. 우리 땅! 우리의 평화! 우리 손으로!“

대한민국에 존재하는 많은 지방정부에는 경제부지사, 문화부지사 등 다양한 역할의 부지사들이 있다. 이 가운데 이재강 부지사처럼 평화부지사는 직함을 쓰는 경우는 경기도가 유일하다. 서울을 둘러싸고 있는 경기도는 북쪽으로 DMZ를 접하고 있는데, 이 지역에는 접경지역으로서 각별한 정책사업이 있다. DMZ를 주제로 한 예술프로젝트 <레츠디엠지(Let’s DMZ)>다. 공연과 전시, 영화, 투어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하여 DMZ의 가치를 공유하는 축제의 장이다. 이재강이 평화부지사로서 총괄하는 DMZ평화예술프로젝트는 분단의 상징을 평화의 상징으로 바꾸고, 금기와 절망의 땅을 소통과 공감의 땅으로 바꾸려는 에술행동이다. 이재강의 실험과 도전은 정치적 행위를 넘어서 예술적 실천과 결합하며, 정치와 예술의 공진화를 향해 더 큰 걸음을 내딛고 있다.

사진=김준기. ⓒ제주의소리
경기팝스앙상블의 개성 있는 콘서트. 사진=김준기. ⓒ제주의소리
사진=김준기. ⓒ제주의소리
개성공단 재개 촉구 및 종전선언 지지 캠페인을 벌이는 예술인들. 사진=김준기. ⓒ제주의소리

 

▷ 김준기

홍익대학교 예술학 석사, 미술학 박사.
현(現)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실장, 경기문화재단 '평화예술대장정' 프로젝트 총감독 겸 정책자문위원장, 예술과학연구소장, 지리산프로젝트 예술감독, 미술평론가.
전(前) 부산비엔날레 전시기획 팀장, 부산시립미술관 큐레이터, 대전시립미술관 학예연구실장, 제주도립미술관


LEE Jae-gang's Politics of Symbol, Connecting the Kaesong Industrial Complex and the DMZ Peace Art
GIM Jungi

There is a “hill of wind” in Imjingak Park in Paju City, Gyeonggi Province. On the hill, a group of large bamboo men stand facing north. This is Choi Pyung-gon's work,<Call for Unification.> His works are the installation of splitting bamboo into long beams, intertwining them and creating huge human figures in outdoor spaces. His structures that create volume with lines have been installed at many places in South Korea such as the DMZ border, Lake Sanjeong in Pocheon, Yongsan Family Park in Seoul, Daejeon Municipal Museum of Art, Gyeonggi Provincial Museum of Art, Jeju Museum of Modern Art, Geumje Bokkolje, Suncheonman National Garden. The human-shaped structures overwhelm visitors with their huge size and soft curves, giving them a deep sense of resonance and a message of life and peace that revitalized by the uniqueness of each place.

The installation work <Call for Unification> at Peace Nuri Park also incorporates the division epic of Imjingak facing the DMZ. A giant figure, which is the main motif of Choi's work, is of varying size and rides over the terrain of the hill, representing the people’s wish for unification. In the area of Imjingak, a symbol of nostalgia visited by the displaced people, you can find the remains of the Cold War as cool as the narrative of sadness. Choi's bamboo men standing there not only express the grief of the displaced people standing there looking at North Korea, but also exude the power of art to sublimate that grief into the desire for reunification. It is a site-specific art that emanates a specific message in a specific place.

Right next to the <Call for Unification>, a landmark of Peace Nuri Park, an unfamiliar tent has been standing. Tent located on the hillside of the park are likely to serve as information center or a place to relax, but the peculiarity of this tent lies in the fact that it is the "office of administrative official." It is the temporary office of Lee Jae-gang, the vice governor for peace in Gyeonggi Province. It was unusual for the vice governor of Gyeonggi Province to move his office to the cold-winded DMZ border. The key agenda was the " Resumption of the Kaesung Industrial Complex. At first, it appeared that he was trying to launch a campaign and concentrate his administrative power related to the inter-Korean exchange project in the border region of Gyeonggi Province. Before long, however, the issue began to overlap with elements of international conflicts.

How far is the territory over which the ROK’s administration can exercise its authority?

The vice governor of Gyeonggi Province, a high-ranking government official of ROK asks. How can we answer to this question? Unfortunately, we have to answer "As far as the UN Command allows. The UN Command, not the ROK government, has jurisdiction over the DMZ. Until now, after the division and the war, the ROK has not yet been able to exercise its effective authority over the territory as defined by its own constitution. Not only in the north of the divided country, but also in the buffer zone, the DMZ, and even on the outer borders of the DMZ, the ROK has very limited authority, not only in the military but also in the administrative sphere. His question is precisely about this point that raises the fundamental question of the limits on the political, military, and administrative authority of the divided nation.

His series of actions in the DMZ naturally have political implications. This is because he is an administrator with a political background, and the DMZ itself is a space and an agenda with much political implications. The reason why Lee asked this question was because he was sanctioned by the UN Command during his campaign for the resumption of the Kaesong Industrial Complex. The ROK government's administrative power over the DMZ is limited, despite the fact that it has been almost 70 years since the country was divided, experienced war, and signed a ceasefire agreement. His plan to set up his office in front of the Trasan Observatory, the site of the division, in order to discuss the resumption of the Kaesong Industrial Complex was blocked by the UN Command, not the ROK government. This confirms that not only South Korean civilians but also the government cannot take effect outside the demilitarized zone that exists at the waist of the peninsula.

Lee has ventured into the realm of taboos, which cannot be solved by the power of politicians and administrative efforts. The wall he is trying to overcome is the division of the Korean Peninsula. It is not easy to pinpoint one cause in a complex problem framework from historical origins to the inverse relations of contemporary international politics. However, what is noticeable is that the people living on the Korean Peninsula have not laid the foundation for a modern state. This is because the government has failed to build a single state based on the national community for more than 70 years in the transition point from pre-modern to modern era. The conflict between Lee and the UN Command has inspired public debate in the international community. Peace activists in the United States and Europe, including American linguist Noam Chomsky, signed together in the petition saying that the UN should allow the establishment of the office of the vice governor of Gyeonggi Province.”

Thus, the core of this incident, which has activated the international public debate, is that the Kaesong Industrial Complex must be restarted in order to build a peace regime on the Korean Peninsula. The Kaesong Industrial Complex is for economic cooperation between North and South Korea. It is a mechanism to create economic symbiosis by matching capital from the South with human resources from the North. It is a place where the dream of building and operating South Korean factory in a city of North Korea has actually came true. It has a symbolic value beyond its economic utility. It is a symbol of peace. Symbols are based on substantive effects, but operate as another communication device beyond the field of reality in which the scope of their influence is. The Kaesong Industrial Complex is not only a place of economic cooperation, but also a symbolic place where efforts for peaceful coexistence between North and South Korea have been put into action.

In this context, the Kaesong Industrial Complex is a "peace project" in which the North and South pursued mutual benefits. It is a legacy of an era in which the capital and technological capabilities of the South and the excellent human resources of the North worked together to usher in an era of reconciliation and cooperation between the North and South. It gave hope for the unification of North and South Korea. We thought that the threat of war would no longer persist on the Korean peninsula, and with a little more progress, the West Sea could be expanded into a joint fishing zone rather than a disputed area. But in an instant, that dream was gone. It did not take much time to realize that reconciliation and coexistence efforts between the South and the North were not done by the parties alone. Within a few years of the regime change, the Kaeseong Industrial Complex, along with Mount Geumgang, was shut down and inter-Korean relations returned to the Cold War.

It is not easy to pinpoint and assert one or two entities that are blocking the channels through which the North and South can dialogue and cooperate toward the future, but it is well known that the force that has stopped any hope of reunification is the "monster of the division system. Years have passed years since the Kaesong Industrial Complex was shut down, but there is still no sign of opening the closed doors and restarting the industrial complex. Lee is doing everything he can as a local government official in South Korea to break the chains of the Cold War and connect the Kaesong Industrial Complex to symbiosis and peace. He moved his office to Paju Peace Nuri Park, near the DMZ, and took administrative and political actions to urging the Kaesong Industrial Complex to resume. As an art critic, I would like to draw attention to the fact that his actions are more than the general type of administrator/politician.
Lee's series of actions are both political and symbolic with a high degree of artistic device.

He walked the 1.25 km section of the Unification Bridge from the south end to the north end alone by himself, taking three steps and one bow in protest to the UN Command. Symbolizing the number of 125 companies in the Kaesong Industrial Complex, he lowered his body 315 times and knelt down on the cold floor to bow. The three steps and one bow is a religious act in Buddhism in a method of asceticism. However, since the South Korean labor activists introduced this practice as a method of demonstration, it has gained new attention and has been held in the same way overseas. It stimulates the code of emotion for those who appear to be different from their values as religious ceremonies. In this context, the actors is a kind of performance. Performance is a symbolic act performed by the body to convey a message. The three steps and one bow performed by a high-ranking South Korean local government official at the site of the division in the bitter cold of 10 degrees below zero. What it symbolizes is a fierce criticism of and resistance to the system of division.

He connected the aura of a place-specific art to his place by setting up a temporary office next to Choi Pyong-gon's work <Call for Unification.> 
Standing on the hill of Peace Nuri Park, where he spread out his tent, right next to the artwork standing facing the north, he felt the reality of the divided nation and was exposed to the cold winter breeze. The work of Choi, a landmark of the site of the division, doubled its symbolic power in line with Lee's announcement to reopen the Kaesong Industrial Complex. The huge sculpture standing on the windy hill and staring endlessly at the North gives off an epic of division and peace, overwhelmingly mixed with grief and hope as large as its size. Countless supporters who visited the site were also supportive of the huge bamboo humans when they performed on the hill.

The "Performance Connecting Kaesong Industrial Complex" by Lee, an administrative official who combined installation, music performance, and performance, is a politics of symbol that resolves political infarction through artistic communication. Lee's temporary office delivered "the urgency of the site to overcome the crisis" in a code similar to the square tents often executed by politicians and activists. By combining artworks and actions, Lee carried out a much more intense politics of symbol. He ended the month-and-a-half symbolic struggle at the scene. Lee who finished the prelude to a long journey to create new hope by sowing the seeds of peace through dialogue and communication at the site of division, said on his SNS.

"I'm back in my office at the Gyeonggi Provincial Office. After 43 days in the field office at Imjingak, I've gotten used to it. I'm sure support will continue to come from all over the place. It was cold but warm, and I was alone and in unity. It was a touching and gratifying time. 
I also witnessed the grieving reality that our sovereignty is infinitesimally small in front of the U.S., which wears the hat of the U.N. military commander." "I could understand why the implementation of the promise made by the leaders of North and South Korea to reopen the Kaesong Industrial Complex has been stalled." “It was a series of resentments and aspirations,” he said.

The resumption of Kaesong Industrial Complex reopens. Once again, the time between North and South is not a matter of sanctions or approval. It is a time for courage and determination. The philosophy of the Panmunjom Declaration is "independence and self-determination.”  The decision of former presidents Kim Dae-jung and Roh Moo-hyun to open Geumgangsan and Kaesong. I hope that my small cry and feeble gesture will move the hearts of the leaders of North and South, even if only a little. The "Pan-Korean Solidarity Conference on the Declaration of the Kaesong Industrial Complex " (tentative name) will be held. We will work together with the Solidarity Conference until the end so that the declaration of the reopening of the Kaesong Industrial Complex can be made as soon as possible. The declaration of the resumption of the Kaesong Industrial Complex is the beginning of the development of inter-Korean relations through the accumulation of trust. It is the beginning of peace. Our land! Our peace! With our hands! "

Many local governments in the ROK have vice governors with various roles, such as an economic and an cultural vice governors. Of these, Gyeonggi Province is the only one that has peace as its title, like vice governor Lee. Gyeonggi Province, which surrounds Seoul, is bordered by the DMZ in the north, and as a border region, the province has special policy projects. It is an art project on the theme of the DMZ, "Let's DMZ. It is a festival to share the values of the DMZ through various programs such as performances, exhibitions, films, and tours. The DMZ Peace Art Project, which Lee oversees as vice governor for Peace, is an artistic action to transform a symbol of division into a symbol of peace, and a land of taboo and despair into a land of communication and empathy. Lee's experiments and challenges go beyond political action and combine with artistic practice, taking a greater step toward the resonance of politics and art.

Photo 1  Choi Pyung-gon, <Call for Unification> Peace Nuri Park, Paju, SK
Photo 2   Temporary Office of Peace Governor Lee Jae-gang of Gyeonggi-Province, Peace Nuri Park, Paju, SK 
Photo 3  Performance of Lee Jae-gang protesting the UN Command
Photo 4  Gyeonggi Pops Ensemble's concert connecting uniqueness
Photo 5  Artists Promoting Resumption of Kaesong Industrial Complex and Supporting the Declaration of the End of the War


李在康(イ・ジェガン)の象徴政治-開城工業団地とDMZ平和芸術を接続する
金俊起(ギム・ジュンギ)

京畿道坡州市・臨津閣の平和ヌリ公園に「風の丘」がある。その丘に竹の大男たちが北を向いて立っている. 崔平坤(チェ・ピョンゴン)の作品<統一の願い>だ。彼は、竹を割って長い線材を作り、それを編んで巨大な人間を形作って野外空間に設置する。線でボリュームを生み出す彼の作品は、DMZ(非武装地帯)をはじめ、抱川の山井湖、ソウル龍山家族公園、大田市立美術館、京畿道美術館、済州現代美術館、金堤碧骨堤、順天湾国家庭園、済州道アルトゥル飛行場など、全国各地にある。場所の敍事を織り込んだ人間の形の巨大な構造物は、観覧者を圧倒するスケールと柔らかな曲線で深い響きをもたらし、それぞれの場所性を生かして生命と平和のメッセージを籠める。

平和ヌリ公園のインスタレーション作品<統一の願い>もまた、DMZと向き合う臨津閣の分断叙事を盛り込む。チェ・ピョンゴン作品の主要モチーフである巨大な人物像が、さまざまな大きさで丘の地形を乗り越えていくことで、統一を願う人々の心を代弁している。還れぬ人々が訪れる望郷の象徴である臨津閣一帯には、悲しみの物語と同じくらい冷たい冷戦の遺産が存在する。そこに立つチェ·ピョンゴンの竹の男たちは、北朝鮮を眺めて立っている失郷民たちの悲しみだけでなく、その悲しみを統一の念願に昇華する芸術の力を発散している。それは特定の場所で特定のメッセージを発するサイト・スペシフィック・アートだ。

平和ヌリ公園のランドマークとなった<統一の願い>のすぐ隣に、ここ1ヶ月半、見慣れないテントがあった。公園の丘に位置するテントは案内所や憩いの場としての役割を果たしていそうなものだが、このテントの特徴はそれが「行政公務員の執務室」ということにある。京畿道平和担当副知事の李在剛(イ・ジェガン)氏の臨時執務室だ。京畿道庁の主要担当者である副知事が寒風吹くDMZ境界線に執務室を移したのは尋常ではないことだった。核心の議題は「開城工業団地再開」だ。最初はキャンペーンを展開し、京畿道の境界線地域で南北交流事業関連の行政力を集中しようとしているように見えた。 ところがこの問題はいつの間にか国際的な葛藤の要素にまでオーバーラップし始めた。

「大韓民国の行政が権限を行使できる領土はどこまでか」

大韓民国の高位公務員である京畿道平和副知事が尋ねる。この質問に対して私達はどんな答えができるだろうか? 残念ながら「国連軍司令部が許すところまで」と答えざるを得ない。DMZの管轄主体は大韓民国政府ではなく国連軍司令部だ。分断と戦争以降、大韓民国はいまだ自国の憲法が規定した領土に実効的な権限を行使できない。分断国家の北側はもとより緩衝地帯であるDMZでも、さらにDMZの内側ではなく外側の境界線ですら、わが国は軍事のみならず行政分野でもその権限が非常に限定的だ。この質問はまさにこの部分、分断国家の政治的、軍事的、行政的権限の制限に対する根本的な問題提起だ。

彼がDMZで行った一連の行為は、当然政治的意味を持っている。彼が政治家出身の行政家ということもあり、DMZ自体が政治的含意を持つ空間であり議題だからだ。李がこう質問をした理由は、開城工業団地再開キャンペーンの過程で国連司令部の制裁が問われたことにある。分断後、戦争を経て停戦協定を結び約70年が経ったが、DMZに対する大韓民国政府の行政力は制限的だ。開城工業団地再開を公論化するために執務室を分断の現場である都羅山展望台の前に設置する彼の計画は、韓国政府ではなく国連軍司令部によって阻止された。韓半島の腰部に存在する非武装地帯の外側で、韓国の民間人だけでなく政府までも実質的な効力を発揮できないことを確認したわけだ。

李在康は政治家の力でも行政家の努力でも解決できないタブーの領域に飛び込んだ。彼が越えようとする壁は、韓半島の分断という壁だ。歴史的淵源から同時代の国際政治の力関係まで複雑に絡み合った問題の中から、その原因を特定することは簡単ではない。しかし明らかなのは、韓半島に住む人々はまだ近代国家の基礎を築けていないということだ。前近代から近代に転換する時点で、民族共同体を基盤とした単一国家建設に失敗した状況を70年以上続けているからである。李と国連司令部の葛藤は国際社会の公論の場を触発した。アメリカの言語学者ノーム・チョムスキーをはじめとする欧米の平和活動家たちは「国連軍司令部は京畿道副知事執務室設置を許容せよ」という請願書に連帯署名した。以下は、その請願書全文だ。

「ロバート·エイブラムス国連軍司令部司令官へ。 2020年10月23日、国連軍司令部はDMZ内にある都羅山展望台の前に平和副知事が臨時執務室を設置するという京畿道からの要求を拒否しました。我々は「京畿道の固有行政に対する国連軍司令部の不当な主権侵害」として反対した李在康の発言に同意します。彼が指摘したように、国連軍司令部のDMZ管轄権は敵対行為を取り締まり防止することです。国連軍司令部は、韓国政府官庁の合法的な行為を妨害し、自らの権限を乱用して、国家主権を尊重しなければならないという国連の設立原則に違反しています。我々は国連軍司令部が韓国の主権を尊重し、韓国の領土内に執務室を設置しようとする試みを妨害することなく、国連の設立原則を守ることを求めます。」

このように国際的な議論の場が作動する今回の事件の核心は、韓半島和平体制の構築に向けて開城工業団地を再開しなければならないことにある。開城工業団地は南北の経済協力のための工業団地だ。それは、韓国側の資本と北朝鮮側の人材が一致して経済的共生を作り出す機構だ。北側に存する都市に南側の工場を建設して稼動するという夢が、実際そのように作動した場所だ。それは経済的実益以上の象徴的価値を有する。それは平和の象徴だ。象徴とは、実質的な効果を基盤とするが、その影響を及ぼす範囲が該当する実在の場を超える新たなコミュニケーション・ツールとして働くことだ。開城工業団地は経済的な協力だけでなく、南北の平和共存の努力を行動に移した象徴的な場でもある。

このような脈絡で、開城工業団地は南北が相互の実利を追求した「平和プロジェクト」となる。南の資本と技術力、北の優秀な人材が協力して南北の和解と協力の時代を切り開いた一時代の遺産だ。それは南北統一の希望を抱かせた。もはや韓半島では戦争の脅威は持続しないと考え、もう少し進展すれば西海が紛争地域でなく共同漁労区域に拡大する可能性もあった。しかし一瞬でその夢は消えてしまった。南北の和解と共存は当事者だけの努力で得られるものではないことを知るのに、それほど長い時間はかからなかった。政権が変わって数年内に金剛山とともに開城工業団地は閉鎖され、南北関係は冷戦に戻った。

南北が未来に向けて対話し協力できるチャンネルを遮る力の実体を1つや2つに特定して断言することは容易ではないが、統一の希望を止めた力が「分断体制という怪物」であることはよく知られている。開城工業団地が停止して数年が経つが、まだ閉じたドアを開いて工業団地を再稼動する気配はない。李は冷戦の鎖を断ち切り、開城工業団地の共生と平和をつなぐために、韓国の地方公務員としてできる限りの努力を尽くしている。彼は自分の執務室をDMZに接する坡州平和ヌリ公園に移し、開城工業団地の再開を促す行政/政治的行動をとった。美術評論家として私が注目したいのは、彼の行動が行政家政治家の一般的なタイプ以上のものであるという点だ。李の一連の行為は政治的行為であると同時に高度の芸術的装置を伴った象徴行為である。

彼は国連軍司令部に抗議する意味で統一大橋南端から北端まで1.25キロ区間を一人で三歩一拝した。開城工業団地125社の数を象徴し、315回体を低くして冷たい床にひざまずいて礼をした。三歩一拜は仏教における苦行として行う宗教的行為である。だがこの三歩一拜を韓国の労働運動家たちがデモの方式として導入してから新たに注目され、海外でもこのようなやり方でデモをすることがある。それは宗教的儀式の価値とはまた違うコードに見えて、人々の感動のコードを刺激する。このような脈絡での行動家の三歩一拜は一種のパフォーマンスだ。パフォーマンスとはメッセージを伝えるために身体を用いる象徴行為である。零下10度の厳寒の中、分断の現場で韓国の高位公務員が繰り広げた三歩一拜。それが象徴するのは、分断体制への凄絶な批判と抵抗だ。

彼はチェ・ピョンゴンの作品<統一の願い>のすぐそばに臨時執務室を設置し、サイト・スペシフィックな芸術のオーラを自分の居場所と連結した。執務室のテントを広げた平和ヌリ公園の丘で北を向いて立つ芸術作品の傍らで、彼は分断国家の現実を身をもって感じながら冬の極寒の風にさらされた。分断現場のランドマークであるチェの作品は、李の開城工業団地再開宣言とあいまって、象徴の威力を倍加した。風の吹く丘に佇み限りなく北を眺めている巨大な造形物は、その圧倒的な大きさに悲しみと希望の心象が入り混じったまま分断と平和の叙事を放つ。現場を訪れた多くの支持者たちが丘で公演をする時も、巨大な竹の男たちは、その現場を守る支えだった。

インスタレーションと音楽公演、パフォーマンスを結合した行政官・李による「開城工業団地をつなぐパフォーマンス」は、政治的梗塞を芸術的コミュニケーションによって解消する象徴政治である。李の臨時執務室は、政治家や活動家がたびたび実行する広場テントなどと似たコードで「危機を乗り越える現場の緊急性」を伝えた。芸術作品や行為を結合することで、李ははるかに強烈に「象徴の政治」を行った。1ヵ月半にわたって繰り広げた現場での象徴闘争は一段落した。分断の現場で、対話と疎通による平和の種を蒔きながら新しい希望を作るための長い旅程の序幕を終えた李は、自分のSNSを通じて次のように語った。
「京畿道庁の執務室に戻ってきました。43日間の臨津閣の現場執務室は大分慣れていたようです。いろんな所から応援が続くでしょう。寒いけど暖かかったし、一人だけであると共に一体でした。感動と感謝の日々でした。我々の主権が国連軍司令部という帽子をかぶったアメリカの前では限りなく小さくなるという悲痛な現実も目撃しました」「開城工業団地の再開という南北首脳の約束の履行が足踏み状態である理由がよく分かりました」「悔しさと念願の連続でした」。

開城工業団地再開。再び、南北の時間は制裁や承認の問題ではありません。勇気と決断の時間です。「自主と自決」という板門店宣言の哲学。金剛山と開城を開いた金大中、盧武鉉、両元大統領の決断。私の小さな叫びと微力な身振りが、南北両首脳の心を少しでも動かすことを願います。「開城工団再開宣言汎国民連帯会議(仮称)」が開かれます。開城工業団地の再開宣言が迅速になされるよう、連帯会議と最後まで共に行動します。」 開城工業団地の再開宣言は信頼の蓄積を通じた南北関係の発展の始まりです。平和の始まりです。 私たちの土地!私たちの平和! 私たちの手で!“

大韓民国に存在する多くの地方政府には、経済副知事、文化副知事など様々な役割の副知事がいる。このうち、李副知事のように平和を肩書きとするケースは京畿道が唯一だ。ソウルを取り囲む京畿道は北でDMZに接しているが、この地域は境界地域として格別な政策事業がある。 DMZをテーマにしたアート・プロジェクト<Let's DMZ>である。公演や展示、映画、ツアーなど様々なプログラムを通じてDMZの価値を共有する祭りの場だ。李が平和副知事として総括するDMZ平和芸術プロジェクトは、分断の象徴を平和の象徴に変え、タブーと絶望の地を疎通と共感の地に変えようとする芸術行動だ。李の実験と挑戦は、政治的行為を越え、芸術的実践と結合し、政治と芸術の共振化に向けて、より大きな一歩を踏み出している。

写真1 崔平坤 <統一の願い> 坡州平和ヌリ公園
写真2 李在康, LEE Jae-gang京畿道平和副知事の臨時執務室 坡州平和ヌリ公園
写真3  国連軍司令部に抗議する李副知事の三歩一拜パフォーマンス
写真4 京畿ポップス・アンサンブルの個性をつなぐコンサート
写真5  「開城工業団地再開要求および終戦宣言支持」キャンペーンを展開する芸術家たち


李在康的符號性政治-串聯開城工業園區與DMZ的和平藝術
金俊起 

京畿道坡州市的臨津閣和平公園有座「風之丘」。上面有一組竹編巨人面北豎立站著,這是崔平坤的作品《統一的呼喚》。他將竹子劈成長條,編織交纏,並創造出一個個巨大的人形裝置,將其安裝在戶外。他創造出許多線條豐富的作品,包括DMZ(非武裝地帶),抱川的山井湖,首爾龍山家族公園,大田市立美術館,京畿道美術館,濟州現代美術館,金堤碧骨堤,順天灣國家公園它遍布全國,包括濟州島的阿德勒機場。巨大的人形結構編織著各地方的風土事物,給人以深刻的聲音,其柔和的曲線和形體規模使觀眾感受強烈,利用每個場域來傳遞生命與和平的信息。

和平公園的裝置作品《統一的呼喚》還包括面向DMZ的臨津閣部門。是崔平坤作品的主要主題巨大的人物,它大小不一,跨越山丘,代表了人們對統一的渴望。臨津閣地區是流離思索的人們懷舊之情的象徵,你會發現冷戰的遺產像悲傷的敘事一樣冷酷。崔平坤所作站在那的竹子人不僅表達站在那裏看著北朝鮮離散者的悲傷,而且散發著將這種悲傷昇華為統一祈願的藝術力量。它是現地設置的藝術品,在特定位置傳達出特定訊息。 

在過去的一個半月裡,有一個不熟悉的帳篷,就在《統一的呼喚》旁邊,它已經成為平和努里公園的地標。一般位於公園山丘上的帳篷很可能充當著資訊中心和休閒場所的角色,但該帳篷的特點是它是「行政官員辦公室」。這是京畿道和平副省長李在康先生的臨時辦公室。副省長是京畿道政府的主要負責人,將辦公室搬到冷風吹拂的非軍事區邊界是不尋常的。核心議程是“重新開放開城工業園區”。起初,它似乎正在試圖開展一場運動,並將與南北交流項目有關的行政權力集中在京畿道邊境地區。但是,這個問題開始與國際衝突的要素重疊。 

“大韓民國政府可以在多大範圍內行使職權?” 

韓國政府高級官員京畿道副省長提問。我們可以對這個問題回答什麼?很不幸的是,我們別無選擇,只能回答:「在聯合國陸軍司令部允許的範圍內。」聯合國司令部而非韓國政府對非軍事區擁有管轄權。到目前為止,在分裂和戰爭之後,韓國尚未能夠行使其職責。 不僅在分裂國家的北部,而且在緩衝區,非軍事區以及甚至在非軍事區的邊界上,韓國都具有非常有限的權力,而不是在自己的憲法所定義的領土上 他的問題正是關於這一點,這提出了對分裂國家的政治,軍事和行政權力加以限制的根本問題。

因此,他在非軍事區採取的一系列行動自然具有政治意義。因為他是一名政治家的行政人員,所以DMZ本身是一個具有政治含義的空間和議程。李在康問這個問題的原因是,在重新開放開城工業區的運動中,聯合國司令部要求制裁。分裂結束並戰後簽訂停戰協議已有70多年的歷史,但是大韓民國政府對DMZ的行政權力是有限的。他計劃在該部門所在地的都羅山瞭望台前面設立辦公室,以宣傳重新開放開城工業區的計劃遭到了聯合國司令部(而非韓國政府)的反對。這證實了,不僅韓國平民而且政府都無法在半島腰部存在的非軍事區之外生效。

李已經冒險進入禁忌領域,政治家的力量和行政努力無法解決這一禁忌。他試圖克服的高牆是朝鮮半島的分裂。在一個複雜的問題框架中,從歷史淵源到當代國際政治的逆向關係,找出一個原因並不容易。但是,值得注意的是,朝鮮半島上的人民並未為建立現代國家奠定基礎。這是因為政府在從前現代時代過渡到現代時代的七十多年來,一直未能建立起基於民族社區的單一國家。李在康與聯合國司令部之間的衝突激起了國際社會的公開辯論。包括美國語言學家諾姆·喬姆斯基(Noam Chomsky)在內的美國和歐洲的和平主義者在請願書中共同簽字,稱聯合國應允許設立京畿道副省長辦公室。

以下是請願書的全文:「致聯合國陸軍司令部司令羅伯特·艾布拉姆斯。2020年10月23日,聯合國陸軍司令部將在和平區DMZ的都羅山展望台前設立副省長的臨時辦公室。我們拒絕了這一要求,我們同意李金安的話,他反對這是“聯合國軍事總部對京畿道的原住民政府的無理侵犯”。正如他指出的那樣,聯合國陸軍司令部的非軍事區管轄權是打擊敵對行動並防止這種敵對行動。聯合國陸軍司令部違反了聯合國成立的原則,即妨礙朝鮮政府機構的合法行為,濫用職權並尊重國家主權。我們敦促聯合國武裝部隊司令部尊重韓國的主權,並堅持聯合國的建國原則,而不會干涉在韓國領土內設立辦事處的企圖。 」

這種情況的核心是國際討論論壇以此方式運作,其核心是必須重新開放開城工業區,以在朝鮮半島上建立和平系統。開城工業園區是南北經濟合作的工業園區,它是通過使南方的資本與北方的人力資源相匹配來創造經濟共生的一種機制。在這個地方,在朝鮮城市建造和運營韓國工廠的夢想實際上實現了。它具有超越經濟用途的象徵性價值。這是和平的象徵。符號是基於實質性效果的,但在其影響範圍所在的現實領域之外,它可作為另一種通信設備運行。開城工業園區不僅是經濟合作的場所,還是朝韓之間為和平共處而採取的行動的象徵性場所。

在這種情況下,開城工業園區是一個“和平項目”,南北雙方互惠互利。這是一個時代的遺產,在這個時代中,南方的資本和技術能力與北方的優秀人力資源共同努力,迎來了北方與南方之間和解與合作的時代。它給北朝鮮和朝鮮的統一帶來希望。我們認為,朝鮮半島將不再存在戰爭威脅,而且只要取得更多進展,西海就可以擴大為聯合捕魚區,而不是有爭議的地區。但是瞬間,那個夢想就消失了。不需要花費太多時間就可以意識到,南方和北方之間的和解與共存努力並非僅由當事方來完成。政權更迭後的幾年內,開城工業園區與金剛山一起被關閉,朝韓關係又回到了冷戰時期。

查明並確認阻礙南北對話與未來合作渠道的實體並不容易,但是眾所周知,阻止任何統一的希望的力量是「分裂制度的怪物」。自開城工業園區關閉以來,已數年過去了,但仍然毫無打開關閉的大門並重新啟動工業園區的跡象。李在康和當地政府盡其所能他打破了冷戰的束縛,將開城工業園區與共生與和平聯繫起來,他將辦公室搬到了DMZ附近的坡州和平公園,並採取了行政和政治行動,敦促開城工業園區恢復營業。評論家,我想提請注意一個事實,即他的行為不僅是管理員/政客的一般類型。 李的一系列動作既具有政治意義又具有像徵意義,具有高度的藝術意味。

為了抗議聯合國軍司令部,他親身走過了統一大橋大橋北端至北端1.25公里的一段,象徵著開城工業園區內的125家公司;每走三步,便跪在冰冷的地板上鞠躬。「三步一躬」原為在佛教中一種苦行修持。但是,自從韓國勞動主義者引介這種方法以來,它就引起了新的關注,並且有時以這種方式在海外進行演繹。對於那些似乎不同於宗教儀式價值觀的人們,它激發了情感規範。在這種情況下,演員是一種表演。表演是身體為了傳達信息而進行的象徵性行為。在零度以下10度的嚴寒中,一名韓國高階公務員在該處所在地進行如此的行為表演,它象徵著對分裂制度的巨大批評和抵抗。

他在崔平根的作品《團結的願望》旁邊設立了一個臨時辦公室,並將特定地點的藝術氛圍與他聯繫在一起。他站在和平公園(Heiwa Nuri Park)山上向北站立的藝術品旁邊,感受著一個分裂的國家的現實,感受著一個分裂國家的現實。根據李宣布重新開放開城工業園,崔的作品作為該部門的地標建築,其標誌的象徵力量也因此倍增。站在巨大的山丘上,無休止地凝望著北方,雕塑的巨大尺寸散發出關於分裂與和平的史詩,充滿了悲傷和希望。當他在山上進行表演,四周湧入許多的支持者,巨大的竹子人也支持這想望。

結合裝置,音樂表演和表演的高階行政人員李在康(Lee)的『連接開城工業園區的表演』是一種符號藝術,通過藝術交流解決了政治梗塞。李的臨時辦公室傳達了『克服危機的緊迫性』,符號類似於政客和激進分子經常經營的方形帳篷。通過將藝術品和行為結合起來,李進行了更為激烈的「象徵政治」。在地面上進行了長達一個半月的象徵性抗爭已經結束。李在其SNS上說,他結束了漫長的旅程的序幕,他通過在分裂現場通過對話和交流播下和平的種子來創造新的希望。「我回到了京畿道辦事處。在臨津閣的外地辦事處待了43天後,我已經習慣了。我確信各地都會繼續提供支持。天氣很冷。但是很溫暖,我雖隻身一人,但心卻跟眾人團結一起,那是一段感人而又可喜的時刻。我還親眼目睹了一個悲痛的現實,即在美國面前,我們的主權是極其渺茫的,美國的頭上戴著聯合國軍事指揮官的帽子。」「我能理解為什麼朝鮮和南韓領導人履行了重新開放的諾言開城工業園區已經停頓了。」「這是一系列的怨恨和願望。」他說。

關於開城工業園區重新開放。再一次,這與南北的時間制裁或批准無關,這是勇氣和決定的時刻。《板門店宣言》的哲學是“獨立和自決”。金大中、盧武鉉等前任總統皆決定開放金剛山和開城。我希望我的那小小的哭泣和微弱的姿態能夠打動南北領導人的心,即使只是一點點,能舉行「再談開城工業園區宣言全國團結大會(暫定名稱)」。我們將與團結會議一起合作直到最後,以便可以立即宣布重新開放開城工業園區。宣布重新開放開城工業園區是通過積累信任發展南北關係的開始。這是和平的開始。我們的家園!我們的和平!以我們的雙手達成!“ 

大韓民國的許多地方政府都設有各職能的副省長,其職責各不相同,例如經濟副省長和文化副省長。其中,京畿道是唯一擁有和平的頭銜,例如李副省長。環繞首爾的京畿道北部與DMZ接壤,但該地區有一項特別政策項目作為邊界地區。以DMZ為主題的藝術項目<Let's DMZ>。這是一個通過各種節目(如表演,展覽,電影和遊覽)分享DMZ價值的節日場所。李主持的的非軍事區和平藝術項目是一項藝術行動,旨在將分裂的象徵轉變為和平的象徵,把禁忌和絕望的土地轉變為交流與同情的土地。李的實驗和挑戰超越了政治行為,與藝術實踐相結合,並朝著使政治和藝術產生共鳴邁出了更大的一步。

照片1崔平坤《統一的呼喚》坡州和平公園 
照片2京畿道和平公園李在康副省長臨時辦公室(Rashu Peace Nuri Park) 
照片3李副省長以「三步一躬」的行為表演抗議聯合國司令部
照片4將京畿道獨樹一幟的樂團聯繫一起的音樂會
照片5「重啟開城工業園區和支持戰爭結束宣言」的藝術家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