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詩 한 편] (63) 봄은 평등한가/ 이남순

오후 해가 지나는 골목. ⓒ김연미
오후 해가 지나는 골목. ⓒ김연미

쪽방 촌 막다른 길 오후 해가 지나간다
독거노인 안부 묻는 이웃돕기 박스 하나
그 누가 안고 왔는지 온기 아직 남았네요

못 보고 사는 것쯤 이젠 제법 길 났는데
찾아올 낌새 없던 내 자식 다녀간 양
황노인 닫힌 가슴이 볕살 바라 열리네요

오래된 형광등에 불빛이 깜빡대듯
밭은 숨결 풀어가며 한 발짝씩 다가서는
여기도 봄이 오느라 바람 죽지 부푸네요

- 이남순 <봄은 평등한가> 전문-

영국의 소설가 더글라스 노엘 애덤스는 그의 소설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에서, 삶과 우주 그리고 모든 것들에 대한 궁극의 해답은 42라고 했다. 그러나 곧 그 답에 도달하기까지 궁극의 질문이 필요하다는 걸 깨닫게 된다. 그들은 42라는 해답을 찾아낸 컴퓨터보다 더 큰 ‘지구’라는 컴퓨터를 만들어 궁극의 질문을 찾으려 했지만 끝내 질문을 찾아내는 데는 실패를 하고 만다. 

답은 알고 있지만 그 답까지의 길을 찾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과정보다 답을 먼저 찾는 교육에 길들여져 있는 것도 그 원인 중 하나일 것이다. 질문이 차단된 사회에서 너무 오랫동안 살아왔다. 질문과 질문이 이어지면서 하나의 길을 만들고, 그 길을 삶이라 부른다는 걸 알고 있는데도 말이다. 

시인은 당연하게 보이는 것들마저 질문하기를 멈추지 않는 사람이다. 시인이 던진 질문에 꼬리를 달고 다른 질문이 연이어지는 걸 유도하는 사람들이다. ‘못 보고 사는 것’이 왜 ‘제법 길’이 나야 하는 것인지, ‘오후’의 햇살은 ‘쪽방촌 막다른 길’에도 골고루 비춰지고 있는지 들여다보기를 멈추지 않는다. 그가 던진 질문에 답을 찾으면서 계단을 오르다 보면 우리는 어느덧 정답에 가까이 다가서게 되는 것이다.  

‘봄은 평등한가’ 시인이 던진 질문에 와글와글 또 다른 질문들이 따라 붙는다. ‘우리의 봄은 언제쯤 오게 될까’, ‘이 코로나 한파는 언제 물러가게 될까’, ‘우린 지금 뭘 해야 하는 것일까’...

김연미 시인은 서귀포시 표선면 토산리 출신이다. 『연인』으로 등단했고 시집 『바다 쪽으로 피는 꽃』,  『오래된 것들은 골목이 되어갔다』, 산문집 <비오는 날의 오후>를 펴냈다.

젊은시조문학회, 제주작가회의 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현재 오랫동안 하던 일을 그만두고 ‘글만 쓰면서 먹고 살수는 없을까’를 고민하고 있다.

<제주의소리>에서 ‘어리숙한 농부의 농사일기’ 연재를 통해 초보 농부의 일상을 감각적으로 풀어낸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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