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웅의 지금 제주는] (47) 생태가치·지역 공동체·도민 삶의 질 향상 등 지속가능한 목표 담아야

해가 바뀌었지만 코로나 사태가 지속되면서 신년에 대한 기대와 설렘은 올겨울 추위만큼이나 꽁꽁 얼어붙은 분위기다. 여전히 안개 속인 제주사회의 주요 현안들도 이러한 분위기 유지에 한몫하는 듯하다.

지난해 제주는 코로나 정국에도 불구하고 크고 작은 다양한 현안들에 도민들의 관심이 집중되었다. 지역 최대 현안인 제주 제2공항 문제는 제주도의회가 나서서 국토교통부와 피해지역 주민 및 제2공항 반대 시민사회단체들 간의 연속 토론회를 거치면서 도민 여론조사를 통해 추진 여부를 결정하자는 합의까지 이르게 되었다. 하지만 이를 위한 세부 절차의 난항으로 제2공항 문제는 올해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4.3유족들은 물론 제주도민들이 요구하는 4.3특별법 개정은 정치권의 약속에도 불구하고 법 개정이 늦어지면서 해를 넘기고 말았다. 제주도의회의 부동의 결정으로 좌초된 송악산 개발은 후속 조치로 제주도가 송악산 일대 문화재 지정을 추진하고 있지만, 일부 주민반발로 순탄치가 않다. 논란이 되는 비자림로 확장공사, 제주동물테마파크 개발사업 등도 원희룡 지사가 송악선언을 통해 해결 의지를 비쳤지만 아직까지 원만한 해결의 길로 들어서지는 못한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제주특별법이 올해 제정 30년을 맞는다. 지난 1991년 우여곡절 끝에 국회 날치기 통과라는 불명예를 안고 제정된 제주특별법은 그동안 몇 차례의 명칭이 바뀌고, 제·개정을 거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제주지역의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전 분야의 법률 사항을 규정하고 있어 제주에서는 가히 헌법과도 같은 법률이다. 현재 지역사회에서 논란이 되는 대부분의 개발사업들은 제주특별법에 근거한 계획이거나 이 법률에 따른 승인절차를 밟고 있다.

제주지역에서 규제 완화에 따른 난개발 논란이 일고, JDC의 주민토지 강제수용, 기초자치단체의 부활 요구, 권한 집중으로 인한 제왕적 도지사 논란 등 주요 현안과 이슈들을 직·간접적으로 만들어내는 것은 제주특별법에서 기인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제주국제자유도시 또한 제주특별법을 근거로 한 제주의 미래비전으로서 이 법에 따라 최상위 법정계획인 제주국제자유도시 종합계획을 수립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지역에서 중산간 개발, 해안경관 파괴 등 난개발 논란은 그칠 줄을 모른다.

제주특별법 제정 이후 지속된 개발논쟁은 제주를 동양의 하와이로 만들려고 했던 애초 제주특별법 제정의 배경에서부터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제주지역은 1960년대부터 중앙정부 주도의 개발계획이 구상되기 시작했고, 1970년대 중문관광단지개발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제주개발계획들이 추진되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재벌과 외지인에 의한 땅 투기가 성행하였고, 개발이익의 도외 유출과 도민주체 개발 배제, 1차산업 보호방안 부재 등의 문제가 대두되었다. 농업 중심의 제주공동체는 불안과 동요가 엄습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앙정부와 외지자본 주도의 제주개발은 가속화되었고, 심지어 규제 완화와 개발촉진을 위한 제주특별법 제정의 필요성까지 제기되었다. 이에 중앙정부의 개발계획과 무분별한 개발사업들로 인해 생존권까지 위협받던 제주도민들은 특별법 제정에 반대입장을 분명히 했다. 범도민적 차원의 제주특별법 제정 반대운동이 확산되었고, 급기야 특별법 제정을 반대하며 투신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제주의소리
올해로 제주특별법이 제정 30년을 맞는다. 지방분권과 주민자치 실현이라는 목적을 달성했다기보다 정치적 권한과 참여자치는 후퇴했다는 평가가 높다. 30년이 지난 현 제주특별법의 자화상을 바라봐야 한다. 제주섬의 생태적 가치와 지역 공동체를 살리고, 도민 삶의 질 향상을 위한 지속가능한 발전목표를 담은 특별법의 전면적인 제·개정이 필요하다. [그래픽이미지=김찬우 기자] ⓒ제주의소리

그리고 30년이 흘렀다. 현재 제주특별법은 지난 2006년 7월 제주특별자치도 출범을 계기로 제정되어 시행되고 있는 ‘제주특별자치도 설치 및 국제자유도시 조성을 위한 특별법’이다. 지방분권과 주민자치 실현을 목적으로 제주특별자치도가 출범하였지만 오히려 주민들의 정치적 권한과 참여자치는 후퇴했다는 평가가 높다. 제주국제자유도시 조성을 목표로 하는 제주국제자유도시종합계획은 각종 토건사업과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일관한다는 비판을 받으며 제주의 비전을 새롭게 설정하자는 목소리가 높다. 30년이 지난 현 제주특별법의 자화상이다.

현재 제주특별법에는 논란이 되어 온 독소조항들도 여전히 건재하다. 공익사업이 아닌 개인의 이익창출을 위한 개발사업도 사업자가 일정 부분만 토지를 확보하면 나머지는 토지주의 의사와 상관없이 토지수용을 허용하고 있다. 외지자본의 투자를 유치하기 위한 토지비축제도는 도민사회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그대로 남아있다. 지하수의 상품화와 사유화를 인정하는 조항도 문제다. 제주특별법 개정 과정에서 그 근거가 사라져 버려 효력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한진그룹의 먹는샘물 개발허가 연장을 위해 부칙조항을 만들어 억지 주장의 근거로 삼고 있다. 개발사업 과정에서 도지사 승인을 받으면 각종 개별법에 따른 인·허가 등을 받은 것으로 보는 의제처리 규정도 개발사업의 남발을 부추겨 난개발 논란을 일으키는 요인이 된다.

이처럼 제주특별법은 이 법이 지향하는 목표는 물론 법안의 내용까지도 도민들로부터 지속적인 문제제기를 받아오고 있다. 하지만 좀처럼 개선의 여지를 찾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정치권에서도 도민의 목소리를 담은 제주특별법 개정을 약속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구체적인 실행에 옮기지는 못하고 있다. 제주도는 제주특별법이 제주사회를 어떻게 규정하고, 어떤 방향으로 변화시키고 있는지에 대한 문제의식이 없어 보인다. 현행 특별법 체제를 유지하면서 일부 중앙정부 권한을 이양받아 오는 정도의 제도개선에 관심을 집중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는 사이 과거 개발주의 시대의 낡은 이념을 기초로 만들어진 제주특별법은 청정과 공존을 핵심가치로 내세우는 제주도정의 방향성을 지배해 버린다.

이영웅 제주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

따라서 주민의 삶과 지역공동체 보호와 무관한 개발중심으로 기울어진 제주특별법을 바꿔야 한다. 청정환경 제주의 가치를 지키고, 평화의 섬 제주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제주사회를 규정하는 제주특별법의 전면적인 제·개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제주섬의 생태적 가치와 평화의 섬 제주를 지향하는 새로운 비전을 목표로 하며, 지역의 공동체를 살리고, 도민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한 지속가능한 발전목표를 담은 특별법으로 가야 한다. 이제 제주특별법을 바꾸기 위한 도민들의 논의가 지금 시작되어야 한다. / 이영웅 제주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