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왓 칼럼] (24) 법 사각 지대 '5인 미만' 입법 재보완 이뤄져야

편견으로 무장한 이들이 사회적 약자들에게 여전히 반인권적 발언과 행동을 주저하지 않는 일들을 우리는 종종 목격하곤 합니다. 존재 자체로 차별받는 사회적 약자들이 있어선 안됩니다. 여성, 장애인, 성소수자, 이주노동자, 난민 등 대상은 다르나 일상 곳곳에서 여전히 차별이나 혐오, 폭력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독립언론 <제주의소리>가 인권문제에 천착한 '인권왓 칼럼'을 격주로 연재합니다. 인권활동가들의 현장 목소리를 싣습니다. [편집자 글]

‘모든 국민은 근로의 권리를 가진다.’(32조 1항) 

우리 헌법은 노동권을 누구나 누릴 수 있는 기본권의 하나로 천명한다. 여기서 노동권이란 생존권적 기본권으로서의 ‘일할 자리에 관한 권리’뿐만 아니라, 노동자가 인간다운 삶을 누리도록 건강한 작업 환경, 적정 임금, 합리적인 노동 조건을 보장해야 하는 국가와 사회 구성원의 의무까지 포함한다.

이와 함께 노동자에게 노동3권인 ‘자주적인 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33조 1항)을 부여하고 있는데, 노동권과 노동3권을 통틀어 노동기본권이라 한다. 또한, 헌법은 ‘근로조건의 기준은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하도록 법률로 정한다’(32조 3항)고 규정하고 있다. 이처럼 법률로서 노동기본권을 담보하기 위해 근로 조건의 최저 기준을 정한 것이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근로기준법을 비롯한 노동법이다.

하지만 인간 존엄성의 최저 기준인 근로기준법조차 온전히 누리지 못하는 노동자들이 있다. 현행 근로기준법은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일부 규정을 제외하고는 5명 미만 사업장은 법을 적용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5명 미만 사업장 노동자들은 해고제한, 법정근로시간, 연차휴가, 연장·야간·휴일수당 등에 관한 조항을 적용받지 못한다.

출처=박기형, 오마이뉴스.
노동기본권 사각지대 해소를 위해, 사업장 규모로 차별 없는 2021년을 위해, 온전한 전태일 3법 제정을 위해 다시 입법을 추진해야 한다. 출처=박기형, 오마이뉴스.

이들은 정당한 사유 없이 갑자기 해고되더라도 부당함을 주장하며 구제받을 방법이 없다. 코로나19로 휴업을 해도 법이 정한 휴업수당조차 받을 수 없다. 법정 근로 시간에 제한이 없는 이들에게 대통령이 공약한 근로시간 단축을 통한 ‘저녁이 있는 삶’은 딴 세상 이야기다. 집안일이나 급한 일이 있어도 사용할 연차휴가도 없고, 사업주의 양해가 있어야 그나마 무급휴가를 사용할 수 있다, 연장·야간·휴일 노동에 대한 가산 수당도 받을 수 없다.

최근에 제정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에서도 5명 미만 사업장은 적용 제외되었다. 생명과 안전 앞에서 조차 이들은 차별받는다. 2019년 제정된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에서 조차 이들은 배제되었다. 상황이 이러다보니 이를 악용해 사업체를 분리하거나 가족이나 타인 명의로 복수의 사업자 등록을 하는 가짜 5명 미만 사업장이 늘어나고 있다.

제주 지역 노동자 3명중 1명꼴인 9만명이 5명 미만 사업장에 일한다. 사업체수로는 10곳 중 8곳이 해당한다. 적지 않은 노동자들이 근로기준법의 최소한의 보호 조치를 받지 못한 채 차별받고 있다. 이들은 코로나19 재난 상황에서 가장 먼저 고통 받는 영세 사업장 노동자이기도 하다.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하도록 법률로 정한 최소한의 노동 조건을 사업장의 규모로 차별하는 것은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 될 수 없다. 헌법이 국민의 권리이외에 노동자에게만 따로 노동기본권을 보장하고 있는 이유는 그것이 공공의 이익에 부합하고, 사회 전체에 이롭기 때문이다.

지난해 민주노총과 시민사회가 전태일 열사 50주기를 맞아 추진한 ‘전태일 3법’이 국민동의청원을 시작한 지 한 달 만에 10만명의 동의를 얻어 국회가 법안을 논의하게 됐다. 전태일 3법은 5명 미만 노동자에게 근로기준법을 적용하는 근로기준법 개정안, 모든 일하는 사람에게 노조 할 권리를 보장하는 노조법 개정안과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안이다. 하지만 온전한 전태일 3법은 지난해 국회에서 입법이 무산됐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역시 5명 미만 사업장 적용제외 등 여러 문제점을 남긴 채 통과되었다. 

그렇다고 낙담하거나 멈춰서는 안 된다. 노동기본권 사각지대 해소를 위해, 사업장 규모로 차별 없는 2021년을 위해, 온전한 전태일 3법 제정을 위해 다시 입법을 추진해야 한다. 모든 노동자가 인간다운 삶을 위해 차별 없는 노동 조건을 누리도록 하는 것은 국가와 사회 구성원 모두의 책임이기 때문이다. / 민주노총 제주본부장 임기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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