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길웅의 借古述今] (208) 입으로 한 몫한다

* 혼 놈 : 한 놈, 한 사람
* 역혼다 : 몫한다. 역할(구실)을 한다

세상에는 태어난 얘기꾼들이 있다. 말재주에 능한 사람, 말이라면 좌중을 들었다 놓았다 하는 그런 사람들.

한데 말하는 재간은 누구에게나 있는 게 아닌, 집안 내력이라 할까, 천부적으로 타고난 재능이라 할 것이다. 문제는 타고난 재능이라 할지라도 어느 정도를 벗어나 넘치면 좋은 게 못 된다. 

말이라는 것은 하다 보면 말에 말이 덧붙어, 그게 부풀려 과장이 되고 때로는 사실이 아닌 거짓부리로 흐르는 수가 적지 않다. 반찬을 조리할 때 이것저것 양념을 쳐야 맛깔이 나는 것과 똑같은 이치다. 사람들은 음식의 식감을 가린다. 말도 일단 귀가 즐거워야 한다.

누군 '저게 꿩이다' 할 줄 모를까, 이건 꿩이고 저건 매라 못할까, 입으로야 못할 일이 있을까. 너무 말이 많으면 값어치 없어 보인다. 출처=픽사베이.
누군 '저게 꿩이다' 할 줄 모를까, 이건 꿩이고 저건 매라 못할까, 입으로야 못할 일이 있을까. 너무 말이 많으면 값어치 없어 보인다. 출처=픽사베이.

하지만 진실이 아닌 말, 없는 일을 있는 것처럼 지어내거나 꾸며서 하는 것은 허구(虛構)는 들을 때는 좋을지 모르나, 듣고 나면 참 허무할 뿐이다. 소설이면 치밀하게 구성된 체계적 전개이면서 그 속에 가공(架空)된 인생의 진실이 담겨 있으니 살아가는데 알게 모르게 도움이 되지만, 그냥 말꾼의 얘기는 대부분 ‘빈 깡통에 자갈’ 같은 쓸데없는 것이다.

그러나 말솜씨가 빼어나 좌중을 압도하니 한때나마 현혹되지 말란 법이 없다. 나중에야 입맛을 다시게 된다. 곧 말꾼의 말에 대한 비판이 나오고 빈축을 하게도 되는 것이다. 

말솜씨를 유감없이 발휘했던 사람에게 화살이 돌아간다. 구설수다. 사람들이 그냥 있겠는가. 입방아를 찧는다. ‘무슨 사람이 그러냐? 없는 일까지 있었던 것처럼 그럴싸하게 꾸면가면서 말하더니. 그럴 게 뭐 있어.’ 한다.

‘입으로 혼 놈 역혼다’를 가만 음미해 보면, ‘말만, 말만 한다’는 어감이 강한 걸 느끼게 된다. 

‘그 사름 엇었던 일꼬지 잇어난 것 모냥으로 들엄직이 잘도 곹나게.’
(그 사람 없었던 일까지 있었던 것 모양으로 들음직이 잘도 얘기한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말이 많은 게 사람이 사는 세상이다. 귀에 솔깃하게 말 잘하는 사람이 어느 시대엔 없었겠는가.

타고난 말재주로 언변이 좋은 사람이 남을 흉보거나 없던 거짓을 갖다 붙여서 결국 화(禍)를 자초하게 마련이다. 말을 하려다 그 자리에서 삼켜 버리는 사람도 적지 않은 세상이다. ‘말로써 말 많으니 말 말을까 하노라’고 노래한 고시조도 있다.

언변만 그럴싸한 사람은 경박한 사람이지, 참된 사람으로 대우받지 못한다.

유사한 말들이 있다.

‘입으로 꿩 고리친다’, ‘입으로만 꿩이여 매여’, ‘입으로 못헐 일 엇나.’

누군 '저게 꿩이다' 할 줄 모를까, 이건 꿩이고 저건 매라 못할까, 입으로야 못할 일이 있을까. 너무 말이 많으면 값어치 없어 보인다.

# 김길웅

동보(東甫) 김길웅 선생은 국어교사로서, 중등교장을 끝으로 교단을 떠날 때까지 수십년 동안 제자들을 가르쳤다. 1993년 시인, 수필가로 등단했다. 문학평론가이자 칼럼니스트이기도 하다. 도서관에 칩거하면서 수필, 시, 평론과 씨름한 일화는 그의 열정과 집념을 짐작케한다. 제주수필문학회, 제주문인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대한문학대상, 한국문인상 본상, 제주도문화상(예술부문)을 수상했다. 수필집 <마음자리>, 시집 <텅 빈 부재>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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