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웅의 지금 제주는] (48) 토건·투기세력 위한 막개발 반복, 더 이상 없어야

제주 제2공항 추진여부를 결정하게 될 도민여론조사 일정이 확정되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설 연휴가 끝나고 바로 여론조사가 실시될 것으로 보인다. 너무나 어렵게 성사된 이번 도민여론조사는 지난 5년여 동안 이어진 논란과 갈등을 종식할 수 있는 시발점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국토교통부가 처음 제2공항 건설계획과 예정지를 발표했을 때부터 논란은 컸다. 엄청난 면적의 토지가 수용되어야 하는 사업임에도 불구하고 해당 지역주민들의 동의도 없이 계획이 발표되었다. 토지와 마을을 빼앗기게 된 주민들의 반발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더군다나 공항의 특성상 운영과정에서 발생하게 될 항공소음 피해 예상지역 주민들의 반발도 이어졌다.

과거 근대화과정을 거치면서 국책사업에 대한 우리사회의 인식은 피해지역 주민들이 아무리 저항해도 어쩔 수 없이 사업은 진행되고, 토지는 수용될 수밖에 없는 운명이라고 여겨왔다. 국가가 추진하는 사업은 당연히 무조건 진행되는 사업으로 인식되었다. 하지만 지금은 완전히 달라졌다. 시민주권이 강조되고, 시민사회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중앙정부가 추진하는 국책사업이라 할지라도 주민의 삶과 지역의 미래발전에 배치되는 계획이라면 철회되어야 마땅하다는 시민들의 인식이 보편화되었다.

실제로 주민들의 타당한 반대입장에 정부가 국책사업을 철회하는 경우도 생겨난다. 부안 핵폐기장 건설계획이나 400만평 규모의 장항갯벌 매립계획 등은 해당 지역주민들이 강하게 반대하자 정부가 이를 수용한 사례이다. 신고리 5·6호기 원자력발전 계획은 공론절차를 통해 시민들이 추진 여부를 결정했다. 과거와 달리 국책사업에 대한 주민들의 의사 표현은 직접적이고 적극적으로 변했고, 이러한 주민의견은 사업시행 여부에 대한 중요한 판단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제주 제2공항 건설계획도 마찬가지로 성산 예정지 발표 이후 주민들의 반응이 즉각적으로 나왔었다. 주민 동의 없이 추진되는 사업의 부당함은 물론이고 향후 제주도의 미래에 큰 영향을 끼칠 사업이라는 점에서 제주도민이 판단하여 결정해야 한다는 점이 강하게 피력되었다. 특히 후보지 선정과정에서 데이터 오류와 의도적인 조작으로 특정 후보지로 압축했다는 정황이 나오면서 국토부의 제2공항 건설계획의 타당성은 큰 신뢰를 잃고 말았다. 결정적으로는 제주의 환경수용력을 초과하는 과도한 관광객을 유입하는 것이 과연 제주의 미래에 도움이 될 것이냐는 문제 제기는 제2공항 건설계획에 대해 다시 한번 제주도민들이 심사숙고하는 계기가 되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국민과의 대화에서 제2공항 갈등문제의 해법을 묻는 질문에 ‘도민들의 선택을 적극 지원하겠다’는 답변도 지금의 해결방안으로 귀결되는 데 힘이 되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정부가 현 제주공항을 확장할 것이냐, 제2공항을 지을 것이냐는 직접 개입하기 어렵다’면서 ‘정부는 제주도민이 어떤 선택을 하든 적극 지원하겠다’고 밝혔었다. 결국 이번 도민여론조사를 통해 도민들이 어떤 선택을 할지 판가름이 나게 되었다. 제주의 미래를 위한 아주 중요한 결정이 도민에게 맡겨진 셈이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제주의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한 제주도민들의 현명한 선택만이 남았다. 제주도민의 판단은 제주 환경의 가치를 지키고, 지속가능한 제주사회를 위한 결정이어야 한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제주는 수백 년 설촌의 역사를 갖는 마을들이 모인 하나의 운명 공동체이다. 섬이라는 조건 하의 유한한 자원과 척박한 자연환경 속에서 공동으로 자원을 관리하고 상부상조하며 공동의 생산체계를 만들어 공동체를 유지하고 발전시켜 왔다. 공동체 내·외부에서 발생하는 현안에 대해서는 자발적 논의와 판단을 통해 결정하여 문제를 해결해 왔다. 이미 제주사람들은 지속가능한 사회의 가능성을 실험하고 경험해 왔던 것이다. 이는 현 제주사회의 공동체를 유지하는 근간이기도 하다. 

지속가능한 제주사회의 일탈은 중앙정부 주도의 제주개발이 본격화하면서 시작되었다. 외지자본에 의한 땅 투기가 심화되었고, 해안가에서부터 중산간에 이르기까지 각종 개발사업이 이뤄졌다. 지역의 경제 규모는 커졌지만 마을공동체가 파괴되고 해체되기 시작했다. 도내 산업의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던 1차산업은 소외되고 축소되었다. 일련의 과정에서 도민이 정책결정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나 통로는 없었다. 도민의 삶과 동떨어진 제주도개발특별법 제정을 반대하던 도민들의 목소리도 철저히 짓밟혔다. 그렇게 지속가능한 제주사회로의 길은 요원해졌다.

그리고 한 세대가 훌쩍 넘어 또 한 번 제주사회의 방향성을 결정해야 하는 일이 생겼다. 이번에는 중앙정부가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도민에게 그 판단의 기회가 주어졌다. 제2공항 건설계획을 찬성할 것인지, 반대할 것인지, 지속가능한 제주사회를 위한 결정의 기회를 우리 제주도민이 갖게 된 것이다. 지난 5년간 제2공항 건설계획의 문제를 지적하며 주민들이 어렵사리 얻어낸 결과물이기도 하다. 

이제 제주의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한 제주도민들의 현명한 선택만이 남았다. 제주도민의 판단은 현세대뿐만 아니라 미래세대에도 영향을 끼친다는 점에서 매우 신중한 판단을 해야 한다. 제주 환경의 가치를 지키고, 지속가능한 제주사회를 위한 결정이어야 한다. 

▲ 이영웅 제주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

또한 이번 도민여론조사는 국책사업이라고 해서 주민의 삶과 공동체를 파괴하며 강행해서는 안된다는 모범 사례가 되어야 한다. 제2공항 건설로 마을 농지의 대부분을 잃게 될 온평리는 도내 마을의 역사가 그렇듯 척박한 땅을 일구고, 고단한 노동으로 마을공동체를 일으켜 온 곳이다. 더 이상 주민 동의 없이 농지를 빼앗아 공항을 건설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농촌공동체의 생존터전인 농지를 갈아엎어 주민을 내쫓고 토건·투기세력만을 위한 막개발이 반복되는 이런 일은 더 이상 없어야 한다. 

제주의 미래는 제주도민이 결정해야 한다. 제주의 미래는 오래 지속되어야 한다. / 이영웅 제주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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