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원의 영어어휘 톡톡 talk-talk] (54) fast 빨리

fast [fæst, fɑːst] ɑd. 빨리
이추륵 더 뽈리만 가믄?
(이렇게 더 빨리만 가면?)

fast의 어원적 의미는 “굳게/꿋꿋하게(=firmly)”이다. 이 어원적 의미를 유지하고 있는 낱말이 fasten “묶다”, steadfast “확고부동한” 등인데, 1550년경부터는 그 의미가 확대(expansion)되면서 “빨리”라는 뜻으로도 쓰이게 된다. 한 예로 ‘It is raining fast.’에서 fast의 뜻은 ‘줄기차게’ 정도로 번역(translation)이 되는데, 그 경우의 ‘줄기차게’에는 “빨리”와 “꿋꿋하게/끊임없이(=constantly)”라는 뜻이 함께 들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아무튼 그때쯤부터 삶의 속도를 느끼기 시작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우리는 과거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급속히, 줄기차게, 끊임없이 변화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Life is the pace, not the race (인생은 이기는 게 아니라 즐기는 거지).
-미국드라마 ‘위기의 주부들(Desperate Housewives)’ 중에서-

서둘러서는 안 돼
된장을 담가 보면 알 수 있지.
하루하루가 아주 한가롭게 달라 보이고
내 손의 움직임이 비로소 확실히 보이게 되지.

-요시다 히로시의 「된장 담그기」 중에서-

우리는 늘 서두르고 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남보다 빨라야 살아남는다'는 속도 강박(obsession)에 빠져있다. 그런 생각에서 조금이라도 자유스러워질 순 없는 것일까? 서두르지 않고 조금만 더 시간을 들인다면, 자동차로 가는 대신 걸어서 갈 수 있고 매일 버리는 쓰레기를 다시 잘 정리해서 버리게 될 것이며 불도저(bulldozer)로 땅의 모양을 완전히 바꾸어 버리기 전에 모든 주민이 납득할 수 있을 때까지 인내심(patience)을 가지고 대화를 나눌 수도 있다. 그리고 바다 속 물고기들이 멸종(extinction) 상태에 이르기 전에 세계의 바다에 어떤 어류가 얼마나 남아 있고 어느 정도 기간이 지나야 새끼 물고기가 자라 다시 알을 낳게 되는지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연구할 수 있다.

우리는 늘 '남보다 빨라야 살아남는다'는 속도 강박(obsession)에 빠져있다. 모든 것을 천천히 진행시켜 나가야만 우리가 지금까지 경험한 실패(failure)를 되풀이하지 않을 것이다.ⓒ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우리는 늘 '남보다 빨라야 살아남는다'는 속도 강박(obsession)에 빠져있다. 그런 생각에서 조금이라도 자유스러워질 순 없는 것일까? 모든 것을 천천히 진행시켜 나가야만 우리가 지금까지 경험한 실패(failure)를 되풀이하지 않을 것이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속도를 줄이면서 천천히 걸어가면 길가에 핀 꽃의 향기(fragrance)를 느낄 수 있다. 그리고 생활의 리듬을 조금 늦추면 지금까지 잊고 있었던 우리의 몸(body)도 느낄 수 있다. 일정표(schedule)에 빼곡히 적혀 있는 해야 할 일들을 잠시 접어두고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여행을 다녀올 수도 있으며, 패스트 푸드(fast food)를 허겁지겁 입에 쑤셔 넣는 대신 손수 재배하고 수확한 슬로우 푸드(slow food)로 만든 음식을 보기 좋은 그릇에 담아 여유롭게 즐길 수도 있을 것이다.

천천히 산다는 것은 최신 기술(the latest technology) 개발을 위해 쏟아 붓는 막대한 에너지나 원료(raw material) 등을 소비하지 않고 사는 것을 의미한다. 웬만하면 기존에 있던 도구들을 그대로 사용하고 시간 절약을 해준다는 신제품(new products)을 사지 않고 사는 것이다. 생각해보라. 그 동안 시간을 절약해 준다고 해서 집안에 사 들여놓은 최신 가전제품(electronic appliances)들이 절약해준 시간은 지금 모두 어디로 갔는지를. 모든 것을 천천히 진행시켜 나가야만 우리가 지금까지 경험한 실패(failure)를 되풀이하지 않을 것이다. 상대방의 말에 좀 더 귀를 기울이게 되고, 서로 상처(wound)를 주고받는 일도 적어질 것이다. 어떤 문제에 대한 해결책(solution)을 강구할 때에도 좀 더 시간을 들여 곰곰이 생각하고, 현실적으로 어떤 효과와 역효과(reverse effect)가 있을지 다시 검토해 볼 마음의 여유도 생길 것이다. 코로나 팬데믹(pandemic)으로 인해 지난해에서 올해로 연기된 도쿄올림픽 개막(opening)이 6개월 앞으로 다가온 지금, 일본에서는 올림픽 취소(cancellation)론이 확산되고 있다. 100여년을 훌쩍 넘긴 올림픽 모토(motto) ‘더 빨리. 더 높이, 더 멀리(faster, higher, and further)’가 오늘따라 공허한(empty) 메아리로 다가온다. 

* ‘김재원의 영어어휘 톡톡 talk-talk’ 코너는 제주대학교 통역번역대학원 한영과에 재직 중인 김재원 교수가 시사성 있는 키워드 ‘영어어휘’를 통해 그 안에 담긴 어원적 의미를 들려주는 스토리텔링 해설 코너입니다. 제주 태생인 그가 ‘한줄 제주어’로 키워드 영어어휘를 소개하는 것도 이 코너를 즐기는 백미입니다.

김재원 교수는?

제주대학교 통역번역대학원 한영과 교수(現)
언론중재위원회 위원(前)
미래영어영문학회 회장(前)
제주대학교 통역번역대학원장(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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