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르포] 제주 제2공항, 주민 간 찬반 갈려 여론전 '올인'...고소·고발까지 긴장감 팽팽

"난 그런 머리 아픈거 잘 몰라. 저기 젊은 사람들에게나 물어봐요."

서귀포시 성산읍 거리에서 만난 한 노인은 '제주 제2공항 여론조사를 앞두고 마을 분위기가 어떤지?'를 물으려는 기자의 질문이 채 끝나기도 전에 손사래를 치며 급히 발걸음을 옮겼다. 조금은 신경질적인 반응이기도 했다.

노인의 뒤로는 제주 제2공항에 대한 반대 주장을 펴는 현수막이 내걸려 있었다. '제2공항'이라는 단어에 대한 노인의 모습은 마치 알레르기 반응과 같았다.

설 연휴 직후 실시되는 제2공항 도민 여론조사를 앞두고, 지난 4일 찾은 제2공항 예정지인 성산읍의 분위기는 뒤숭숭했다.

이번 여론조사는 연휴 다음날부터 사흘간 제주도민 2000명과 성산읍 주민 500명을 대상으로 실시된다. 제2공항 건설에 대한 찬성과 반대 의견을 묻고, 조사 결과는 제주도를 통해 제2공항 사업의 주무부처인 국토교통부에 공식적인 '도민의견'으로 전달된다.

제주 제2공항 찬반 도민 여론조사를 앞둔 지난 4일 찾은 제2공항 예정지 서귀포시 성산읍. ⓒ제주의소리

사실상 제2공항 사업의 운명을 가를 중차대한 기로다.

여론조사의 중요도를 인식한듯 마을 내부 분위기도 심상치 않다. 올해 설 연휴도 주민 간의 화합을 기대하기는 요원해졌다. 주민들이 한데 모여 새해인사를 주고받았던 것은 벌써 제2공항 예정지가 발표되기 전인 5년 전의 일이다.

연휴기간 마을 내 공식적인 행사는 거의 없다시피 하다. 고향 사람들의 귀경도 여의치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물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따른 영향도 있지만, 지난해 추석과도 분위기가 또 사뭇 다르다는게 주민들의 전언이다. 

제2공항에 사활이 걸린 여론조사를 목전에 두고있다는 점에서 찬반 서로 간의 신경전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또 한편의 주민들은 갈등에 피로감을 느끼고 거리를 두는 모습도 역력했다.

성산읍 주민 A씨(66)는 "어느 순간부터 마을 안에서는 제2공항의 '2'자도 꺼내지 않게 됐다. 찬성이나 반대 입장이 확실히 갈린 사람들은 서로 상종하지 않으려고 하고, 그 외의 사람들은 한 번 말실수 했다가 민망해지는 상황도 종종 있었다. 찬성하는 사람에게 제2공항에 대한 부정적인 이야기를 하게되면 갑자기 역정을 내는 경우"라고 어려움을 털어놨다.

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또 다른 주민 B씨(47)는 "같은 성산읍이라 하더라도 제2공항 예정지의 마을 사람들과 그외 주변 마을 사람들의 분위기가 판이하게 다르다. 앉은 자리에서 땅을 뺏기는 사람들은 당연히 목숨 걸고 반대할 수 밖에 없는 것이고, 공항이 들어서면 땅 값이 올라 이득을 취하는 사람들은 기를 쓰고 찬성할 수 밖에 없는 것 아니냐"며 "언론에서라도 확실히 구분을 지어서 입장을 대변해줘야 한다"고 쓴소리를 냈다.

제주 제2공항 찬반 도민 여론조사를 앞둔 지난 4일 찾은 제2공항 예정지 서귀포시 성산읍. 제2공항 찬성과 반대를 주장하는 현수막이 어지러이 내걸려있다. ⓒ제주의소리
제주 제2공항 찬반 도민 여론조사를 앞둔 지난 4일 찾은 제2공항 예정지 서귀포시 성산읍. ⓒ제주의소리

제2공항 예정지와 조금은 거리가 있는 마을의 주민 C씨(46)도 "성산읍 내에서도 지역에 따라 엇갈리는 것은 맞다. 다만, 어디까지는 주민 의견으로 치고, 어디까지는 주민이 아니라고 할 수는 없는 것 아니냐. 주변에 사는 사람들도 소음이든 교통이든 어쨋건 피해를 나눠야 하는 주민들"이라며 "찬성을 하든, 반대를 하든 서로 거짓된 주장을 펴지는 말아야 하는데, 지금은 도를 넘어선 느낌"이라고 말했다.

성산읍을 관통하는 일주도로를 달리다보면 50~100m 간격으로 제2공항 찬성 또는 반대 현수막이 내걸려 있는 것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사거리 등 요충지에는 찬.반이 앞다퉈 눈에 띄는 위치에 현수막을 게재했다. 대부분 공식적인 허가를 거치지 않은 현수막이지만, 어느 순간부터 양 측 다 아랑곳하지 않게 됐다.

결국 주민 간 고소·고발까지 난무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제2공항 반대 측은 자신들이 내건 현수막이 고의로 훼손됐다며 경찰에 고소장을 접수했고, 찬성 측 역시 현수막이 훼손되고 사라졌다며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감정 대립도 격화되는 모양새다. 지난 4일 동시에 열린 '제2공항 백지화 삼보일배'와 '제2공항 찬성 거리선전전'은 대표적인 장면이다.

제주 제2공항 성산읍 반대대책위원회가 제주 제2공항 백지화를 촉구하는 삼보일배를 진행하고 있다. ⓒ제주의소리

제2공항 성산읍 반대대책위원회는 4일 성산읍 신천리 평화교 앞에서 가진 기자회견을 시작으로 엿새에 걸쳐 성산읍을 남북으로 종단하는 '제2공항 백지화 염원 삼보일배'를 이어가고 있다. 총 거리 18km에 달하는 대장정이다.

강원보 제2공항반대위 위원장은 "제2공항이 들어오면 어떤 문제가 있는지 도민들에게 알려드리고, 지역 내에서도 반대 여론을 고무시키기 위해 삼보일배 행사를 기획하게 됐다"며 "그동안 찬성 측의 물량공세와 제주도의 관권 개입 등으로 여론조사가 지연돼 왔는데, 아무쪼록 이번 기회에 도민들께서 제주를 지키고, 지역주민들의 삶을 지키기 위해 제2공항 반대표를 던져달라"고 호소했다.

같은날 약 10km 떨어진 고성리 고성우체국 사거리에서는 제2공항 성산읍 추진위원회의 거리선전전이 진행됐다. 찬성측 주민들은 '제주의 미래는 제2공항이 답이다'라는 타이틀을 내건 전단지를 나눠주며 홍보전을 이어갔다.

오병관 제2공항추진위 위원장은 "제2공항 발표 당시 토지 수용 피해를 입는 분들은 당연히 사업 반대를 주장했지만, 그렇지 않은 대부분의 주민들은 사업에 기대를 많이 했던 것도 사실이다. 나라에서 하는 일이니 잘되겠지 하고 기다렸는데, 4~5년이 지나도록 반대 목소리만 나오니 적극적으로 찬성 의지를 알리게 된 것"이라며 "제2공항은 제주도민들에게는 대중교통이나 다름 없다. 지역발전을 위해서라도 찬성에 동참해줬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제주 제2공항 찬성 거리 선전전을 바라보고 있는 서귀포시 성산읍 주민들. ⓒ제주의소리

한편 제2공항 찬·반 여론조사는 제주도기자협회 소속 9개 언론사(KBS, MBC, JIBS, KCTV, CBS, 연합뉴스, 제민일보, 제주일보, 한라일보)가 주관이 돼 설 연휴 다음날인 15일부터 17일까지 사흘간 진행된다.

여론조사전문기관 2곳에 의뢰해 각각 제주도민 2000명과 성산읍 주민 500명을 대상으로 ‘제2공항 건설’에 대한 찬성과 반대 의견을 묻는다.

조사결과는 18일 오후 8시 9개 언론사를 통해 동시에 공개될 예정이다. 각 매체별로 시스템이 달라 방송과 인터넷, 페이스북, 유튜브 등 다양한 방식을 통해 전파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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