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열 시인, 신간 ‘호모 마스크스’ 발간

김수열 시인의 새 시집 호모 마스크스. 출처=yes24.

2020년을 훗날 사람들은 어떻게 기억할까? 키다리 제주시인 김수열은 “마스크로 시작해서 마스크로 한 해가 저문다”고 돌아봤다. 

'물에서 온 편지' 이후 4년 만인 새 시집 ‘호모 마스크스’(아시아)에서 김수열은 익숙한 습관과 행동을 거세하고, 얼굴을 가린 채 거리를 둬야만 하는 새로운 시대를 살핀다.

시인은 마스크를 흡사 호흡기에 비유한다. “집 밖으로 나선다는 건 물속으로 들어간다는 것 마스크 없으면 물속으로 갈 수가 없다”는 구절은 지난 한 해를 버틴 인류라면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코로나19가 확산되면서 마스크를 비롯한 일회용품 사용량이 급격히 증가했다는 소식도 들린다. “고원의 비둘기는 마스크에 발 묶여 허우적거리고 늙은 어부의 그물에는 해파리 대신 마스크가 올라온다”면서 “집안에 들어서야 마스크 벗고 숨비질 하는 오늘”은 자연과 사람 모두에게 고된 시기라는 공감대를 형성한다.

코로나로 인한 낯선 일상은 책 말미 짧은 에세이를 통해서도 잘 드러난다. “보온병에 물을 담고 모자를 눌러쓰고 스틱을 챙기고” 자연 속을 거닐며 다시 돌아오는 산책은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다. 그러나 나갔다가 다시 돌아와 마스크를 챙기고, 길에서 조우한 사람들과 반가운 인사를 나누는 대신, 벗었던 마스크를 쓰는 습관은 아직 어색하다.

김수열은 새 책에서 사회 문제, 아픈 역사에 대한 시선을 변함없이 간직한다.

▲비자림로 확장 공사(작품명 : 낭 싱그는 사람을 생각한다) ▲기후변화(계속 밀고 가라) ▲디아스포라(달보다 먼 곳-김시종) ▲베트남전쟁 학살과 제주4.3(데칼코마니) ▲문형순 경찰서장(아름다운 일생) ▲광주5.18(오월, 아침 한때 비) ▲사북항쟁(사북의 여인들) ▲세월호 사건(풍랑경보가 내려진 아침) ▲안중근 의사(다시 쓰는 최후진술) 등등.

꽃다운 아홉 살 나이에 뇌출혈로 세상을 떠난 뒤 장기 기증으로 감동을 선사한 제주소년 故 고홍준 군은 “멀리서 휘파람 소리 들리면 네가 오는 거라 믿으며 살아갈게 사랑하고 고마워”라는 엄마의 마지막 인사로 기억한다.

언젠가 시인은 “사람들의 입에서 나오는 그대로를 옮기면 시가 된다”고 밝힌 바 있다. 이런 시 철학은 ‘호모 마스크스’에서도 잘 나타난다. 

일본으로 건너간 지 반세기, 제주는 참 멀었습니다
달보다 먼 곳이었습니다

- ‘달보다 먼 곳-김시종’ 중에서

우리 하르방
얼굴 곱닥허니까 누게가 업엉 가불지도 몰라
내가 얼른 가사주
근데 난 쭈그리 할망 되어부난
하르방 날 알아봄이나 헐 건가

고만시라, 얼레빗 어디시니?

- ‘발효된 사랑’ 가운데

여기에 애틋한 가족사랑, 풍경과 세상에 대한 고찰 등… 시인의 새 책은 87쪽 안에 29편의 시를 채웠다. 

김수열은 작가노트에서 “여기저기 발품을 팔면서 끄적인 것들을 그러모았다. 그나마 막힘없이 쏘다니던 시간의 기록이다. 그런 날이 다시 오기나 할까”라며 “돌아보면 다 내 탓이다. 생각 없이 살아온 지난날이 오늘의 나를 예의 주시하고 있는 것이다. 할 말이 없다. 가만히 조용히 앉아서 세상 읽는 법을 배워야겠다”는 차분한 마음가짐을 전했다.

작품 해설을 쓴 홍기돈 문학평론가(가톨릭대 교수)는 “김수열은 이미 지나가버린 것과 아직 오지 않은 것 사이에 자연과 더불어 존재해 나갈 삶의 여백을 만들어내고 있다. 그에게 이순 이후의 시간은 그러한 여백 속에서 존재의 깊이를 이루어 가는 과정으로 펼쳐지지 않을까 싶다고 평했다.

시인이 좋아하는 산책과 막걸리를 마스크 신경쓰지 않고, 코로나 걱정 없이 즐길 날이 언제나 찾아올까. 당분간은 기대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체감하며 '호모 마스크스'로서의 자세를 되새겨본다. 마스크와 거리두기는 필수.

‘호모 마스크스’는 출판사 아시아가 한국어와 영어 시집을 함께 출간하는 ‘K-POET’ 시리즈의 열여덟 번째 책이다. 

김수열은 제주에서 나고 자랐다. ‘실천문학’으로 등단해 ‘어디에 선들 어떠랴’, ‘바람의 목례’, ‘빙의’ 등의 시집을 펴냈다. 4.3항쟁 70주년을 맞아 쓴 4.3시선집 ‘꽃 진 자리’과 산문집 ‘김수열의 책읽기’, ‘섯마파람 부는 날이면’ 등이 있다. 제4회 오장환문학상, 제3회 신석정문학상을 받았다.

87쪽, 아시아, 9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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