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시선] ‘21년 役事’ 제주돌문화공원, 생각 나는 두 사람

헌사가 과하다 여길 수 있다. 개의치 않겠다. 속에서 우러나왔기 때문이다. 기념비적 작품으로도 손색없는 제주돌문화공원. 이곳을 일군 두 주역 얘기를 할 참이다. 백운철(77) 민·관합동추진기획단장과 신철주(2005년 작고) 전 북제주군수가 장본인이다. 굳이 역할을 구분하자면 한 분은 통 큰 결단을 했고, 또 한 분은 공원에 인생을 걸었다. 

하필 이 시점에 두 분을 떠올리는 건 지금이 아니면 마땅한 기회가 없을까봐서다. 늦지않게 공로를 조명하는 것도 역작을 만든 이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고 생각했다. 더구나 백 단장은 처음부터 공원 조성이 끝난 후에는 ‘철저히 잊혀지기로’ 작정한 터였다. 뭔말인고 하니, 1999년 1월19일 북제주군(제주도)과 백 단장이 공원 조성 협약을 맺을 당시, 장차 공원 어느 귀퉁이에도 ‘백운철’ 이름 석자를 남기지 않기로 했다. “후세에 세계적으로 자랑할 만한 아름다운 공원을 남길 수 있다면 그만”이었다. 공원 조성 공사는 지난해말로 사실상 마무리됐다. 

21년 대역사(大役事)가 빚어낸 공원은 방대하면서도 격조 높은 향토종합문화공간 그 자체였다. 제주의 정체성과 가치를 잘 녹여내고 집대성했지만, 정작 제주인보다 세계인들이 더(?) 매료됐다. 공원을 찾은 각국 인사들마다 극찬을 쏟아냈다. 국제평화 네트워크 그룹 유니티 어스(Unity Earth)의 창시자 벤 보울러는 2019년 1월 공원을 찾아 방명록에 이렇게 썼다. “세계적인 특별한 보물, 제주돌문화공원 유일무이” 이보다 더한 찬사가 있을까 싶다. 

백 단장의 열정과 헌신이 아니고선 엄두도 못낼 일이었다. 평생 모은 기암괴석과 석물(石物) 2만여점을 쾌척한 그는 공원 한쪽의 컨테이너 건물에서 먹고 자며 공원 조성에 매달렸다. 어떤 일이 있어도 자연을 최대한 살린다는 원칙을 철저히 지켰다. 맨손에 의지하다 보니 공사에 속도가 붙지 않았다. 이게 화근이 되기도 했다. 파견 공무원과의 관계에서 종종 부조화가 빚어졌다. 어느 누구의 책임은 아니었다. 합이 맞지 않은 것 뿐이었다. 자유로운 영혼과 틀에 갇힌 사고, 여기서 오는 차이? 게다가 서로를 알아갈 때 쯤이면 공무원들은 다른 곳으로 발령이 나버렸다. 그래도 나중에 공원의 진가를 알고는 재직 경험을 긍지로 삼는 공무원들이 많다고 들었다. 

뭔가를 이루기 위한 그의 집념이 얼마나 대단한 지를 보여주는 별칭 아닌 별칭들이 있다. 장인(匠人)은 점잖은 표현이다. 어떤 지인은 그를 ‘미친 장인’이라고 불렀고, 아예 광인이라고 일컫는 이도 있었다. 11년 전 광활한 돌문화공원을 샅샅이 둘러본 벨기에 국적의 세계적인 미술 컬렉터는 다음과 같은 감탄사를 내뱉었다고 한다. “이걸 만든 사람은 미쳤어!”

ⓒ제주의소리
제주돌문화공원 하면 떠오르는 두 사람 고(故) 신철주 전 북제주군수(왼쪽)와 백운철 단장. 신 군수는 공원 조성에 주춧돌을 놓았고, 백 단장은 인생을 걸었다. <그래픽 디자인=김찬우 기자> ⓒ제주의소리

돌문화공원 하면 신철주 전 군수도 빼놓을 수 없다. 의욕 만으로는 안되는게 세상만사다. 백 단장의 꿈과 열정은 신 군수를 만나 비로소 꽃을 피웠다. 평생 수집품은 어마어마했다. 15톤 크레인으로 500대 분량이 넘었다. 금전적으로 따질 일도 아니었다. 비록 그걸 다 내놓겠다고는 했지만, 공원 부지로 100만평을 내어달라는 제안을 흔쾌히 수용할 군수는 이 세상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그걸 신 군수가 받아들였다. 

처음에 신 군수가 망설이자 ‘산 깎고 바다 메우는 행정을 하면 지금은 1등 군수로 대접받아도 후세에 꼴등 군수로 욕먹는다’는 논리를 들이댔다지만, 신 군수인들 선견지명이 없었겠는가. 오히려 누구보다 ‘미래 가치’에 대한 확신이 강했을 것이다. 평소 배포도 컸다.

더 높이 올라갈 수 있었음에도, 항상 그 자리를 고집했던 ‘만년 군수’. 또한 작은 거인이었다. 지금도 자그마한 체구에서 뿜어져나오는 특유의 아우라를 잊을 수 없다. 신 전 군수와 백 단장은 처음부터 합을 잘 맞춘 경우였다. 

민·관 협약 기간 만료를 7개월 쯤 앞둔 지난해 5월15일 백 단장은 ‘입장문’ 하나를 슬며시 내놓았다. 말이 입장문이지, 협약 기간 내 완성된 시설물과 미완의 주요 시설물, 그리고 향후 필요한 기획(안)들을 정리한 문서였다. 훗날 공원 측이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사용할 수 있도록 묶어뒀다는 설명을 달았다. 그만 일어서야할 순간까지도 공원의 앞날만 그리고 있었던 것이다.

입장문에서 그는 “연말이 되면 아무런 미련없이 공원을 떠나야 될 것 같다”고 했지만, 발길이 떨어지지 않을 것 같았다. 21년 공원과 결혼해 살았던 집념의 사나이에게서 이별의 아픔 같은 게 느껴졌다. 

아니나다를까, 그는 “다시 일정기간을 정하여, 공원 조성 사업을 잘 마무리 해 놓고 떠나고 싶은 것이 솔직한 심정”이라고도 썼다. 

부모의 심정이 이럴 것이다. 그에게는 올해 개원 15주년을 맞은 돌문화공원이 여전히 보듬어야할 어린 아이인 셈이다.

20년 넘게 이어져온 대장정에 마침표를 찍는다고 하니 두 분 생각이 났다. <논설주간 / 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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