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칼럼] 김원 환경건축가·제주를 사랑하는 예술인 모임 대표

그동안 제주도는 온갖 난개발로 섬의 모든 지표가 그 임계점에 와있습니다. 한때 항공인프라 확충이라는 이름으로 제주 신공항 또는 제2공항이 도민숙원사업처럼 여겨지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제주도는 2006년 특별자치도 출범 당시 500만 명대였던 관광객이 불과 10여년 만에 벌써 한해 1500만 명 이상의 관광객이 오가는 세계에서도 보기 드문 메가 관광시티가 되었습니다. 여기서 관광객을 더 받아들이겠다는 것이 제2공항의 전제인데 이 전제가 옳은지 그른지를 따져봐야 합니다. 이 첫 단추를 제주도민이 결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설 연휴 직후 도민여론조사로 운명이 갈릴 제2공항 문제와 관련해 오늘날 한국사회의 양심적 지식인을 대표하는 네 분 원로의 특별칼럼을 독립언론 [제주의소리]가 차례로 싣습니다. 한국천주교 주교회의 의장을 지낸 강우일 주교, 한국문단의 거장 소설가 조정래 선생, 건축계 원로인 환경건축가 김원 선생,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판화가 이철수 화백이 바라보는 제주 미래와 제2공항 이야기입니다. / 편집자 

 

김원 건축가 / 사진제공 = 김원
김원 건축가 / 사진제공 = 김원

젊은 시절 근대화부터 겪어온 대한민국의 건축가, 도시계획가로서 지난 시간 과다한 개발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를 가까이에서 절감하며 지내왔다. 그 개발들은 모두 시기적으로 그 나름의 정치적 이해와 경제적 성과라는 명분을 앞세웠지만 지나고 나서는 회복되지도 않고, 되돌릴 수도 없는 무참한 결과만 반복되었다. 그 엄청난 책임은 지금까지 그 누구도 짊어지지 않았다. 더욱 비감한 것은 선진국의 문턱에 다다른 지금 시대에도 이런 사례가 여전하다는 사실이다.  

대지의 사용과 기능적 필요를 절충해야 하는 직업적 특성 때문에 ‘적정한 개발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은 어쩌면 벗어나지 못할 평생의 화두라 할 수 있다. 완전한 답과 해결을 단정하기 어렵지만, 결국 삶과 환경에 대한 사회적 태도가 어떠한지, 필요와 타당성에 대한 지나칠 정도의 엄밀함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새삼 반복하고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지난 4대강 사업이 우리를 얼마나 부끄럽게 했는가를 잊지 말아야 한다. 지금 제주에서 진행 중인 제2공항 건설 논란도 그런 위험에서 벗어나 있지 않다. 

제주와 첫 인연을 맺은 대학시절, 제주가 고향인 친구 덕분에 섬에 첫 발을 내디디며 “대한민국에 제주가 없었으면 어찌했을까...”라고 느낀 모순적 감동이 아직 선연하다. 그 처음의 기분과 감정을 50여년이 지난 지금도 잊지 못한다. 척박하지만 따뜻한 대지, 거세지만 삶을 품은 바다, 지치지 않는 바람과 끝없는 푸른 하늘, 그 독특한 사투리와 음식 속에 묻은 질박한 정서와 문화, 시간이 지나 알게 된 4·3의 역사적 아픔까지 이 모든 것들이 제주라는 하나의 세계를 구성하고 있었다. 제주는 그 자체로서 넘치는 가치를 갖고 있다. 그러나 최근 경험하는 제주는 원래의 고유색보다 도시화된 ‘서울색’을 흉내 내며 혼란을 겪는 듯해 안타까움이 크다. 

지금도 앞으로도 제주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한 사람으로서, 마침 지인을 통해 이 지면에서 제2공항에 대한 의견을 전할 수 있게 된 만큼 짧지만 간곡한 청을 하고자 한다. 

제주는 한정된 공간 환경이다. 공간이 한정될수록 시설의 규모보다 시간운영과 관리효율을 점검하고 고민해야 하는 것이 첫 번째 해결방안이다. ADPi(파리공항공단엔지니어링)에서도 관제시스템의 개선을 권고했다고 들었다. 이런 방식을 통해 점진적으로 개선방법을 검토하는 것이 당연히 상식적이다. 작은 섬에 2개의 공항을 만들겠다는 생각은 누구나 의문을 가질 만큼 비합리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더구나 이를 위해 오름 몇 개를 손쉽게 깎아내고 섬 안에 어마마한 토지를 고정하고 전용한다는 생각은 환경에 대한 무지를 드러낸 단연코 폭력적 훼손이다.

두 번째는 현대기술의 진전을 통해 가능한 대안 검토를 충분히 시도해도 늦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오랫동안 네덜란드 등에서 연구가 축적된 Floating Airport 기술을 소규모로 적용해 보는 혁신계획과 현재 우리가 보유한 세계 제일의 수중용접기술을 접합하는 시도는 실현가능성이 충분히 있다고 본다. 더 나아가 향후 비행기술의 진보를 예측하고 참작하는 지혜도 필요하다. 또 물류를 넘어 인구의 이동 역시 해상교통을 통해 증진하고 다변화시키는 노력이 요구된다. 특히나 이런 대규모 SOC 사업에서 단순증가를 당연시하는 수요예측은 부실과 거짓일 가능성이 크다. 또한 기술변수를 의도적으로 무시하고 누락한 것은 누군가의 이익을 전횡코자 하는 기존의 단순한 토건적 사고에 기반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런 이해관계 속에서 저질러지는 무책임한 결과는 그 부채를 미래세대에게 떠넘기는 또 하나의 폭력이다.  

마지막으로, 제주는 섬 정체성을 지키면서 질적으로 성장해야 한다. 공간과 환경에 있어 밀도는 아주 중요한 문제다. 이것이야말로 궁극적인 경쟁력이다. 개인적으로 근래 항공기의 잦은 지연으로 제주를 오가는 불편함이 커진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몇 년 전 관광객이 1,500만을 넘었다는 소식에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제주라는 섬이 그 숫자를 감당할 수 있을까하는 우려였다. 역시나 쓰레기와 하수, 심지어 지하수 고갈을 우려하는 보도가 이어졌다. 무분별한 개발로 인한 호텔들의 운영난과 도산도 짧은 시간 반복된 것으로 안다. 제2공항의 건설에 대한 장밋빛 전망은 이런 전철을 반복하는 문제로 보인다. 더구나 코로나 이후 관광산업은 과거 방식으로 돌아가지도 돌아갈 수도 없을 것이다. 근본적인 섬의 정체성을 지켜내지 못한다면 이제 그 누구도 제주를 찾지 않을 수 있다. 숫자에 대한 환상에서 벗어나자. 자연에 대한 경외감과 거주민의 삶과 행복, 문화적 자산을 통해 ‘보는 제주’가 아니라 ‘체험하는 제주’가 되었으면 한다. 대규모 개발은 지양하고 쾌적함과 풍부함이 있는 밀도의 조절이 제주를 진짜 제주답게 할 것이다. 근본적인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대한민국은 섬이 3,300여개고, 세계에서 네 번째로 섬이 많은 나라다. 이는 대한민국의 어마마한 미래 자산이다. 섬에서 한 평의 땅은 육지의 한 평과는 비교할 수 없는 가치를 지닌다. 대한민국의 헌법조문은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라고 규정한다. 개인적으론 ‘대한민국의 영토는 그 경계를 이루는 섬들과 바다와 한반도로 한다’로 변경하여 영해와 영공을 좀 더 중요한 개념으로 확장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제주도는 이 모든 섬들의 모섬이고 대한민국의 보물섬이다. 제2공항 찬반논쟁은 ‘제주를 어떤 가치로 보는가’라는 우리 삶의 태도에 대한 물음일 것이다. 사랑하는 제주인들에게 깊은 고심을 청한다. 

김원 건축가는?

김원 건축가. 사진=김원 제공. ⓒ제주의소리
김원 건축가 / 사진 제공=김원

건축환경연구소 광장 대표(現)
제주를 사랑하는 예술인 모임 대표(現)
김수근문화재단 이사장(前)
대통령자문 건축환경문화특위 위원장(前)
대한민국 건축대전 심사 위원장(前)
서울특별시 광화문시민위원회 위원장(前)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