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 3기 대학생기자단] 17시간 고강도 노동 택배노동자 동행취재

독립언론 [제주의소리] 제3기 대학생기자단이 지난해 6월29일부터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기성세대와는 차별화된 청년들의 시선과 목소리를 통해 제주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저널리즘에 특별한 관심을 갖거나 저널리스트를 꿈꾸는, 그리고 누구보다 제주를 사랑하는 대학생기자단들의 이야기입니다. 아직 성글지만 진심이 담겼습니다. 제주의 미래를 꾸려갈 인재들의 다듬어지지 않은 청춘의 날 것을 만나보십시오. [편집자]

#하루 최소 17시간 노동 

“나쁜 아빠죠. 아이들이 자고 있을 때 나갔다고 자고 있을 때 집에 들어가니까요. 아빠가 놀아주지도 않고 집에도 잘 안 들어온다고 많이 서운해하더라고요.”

새벽 4시. 롯데택배 제주지부에서 애월읍을 담당하는 2년 차 택배기사 고길환(38)씨의 하루는 남들보다 조금 일찍 시작된다. 그래야만 본인이 맡은 ‘구역’의 택배들을 그날 하루에 다 배송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로 정해진 점심시간이나 휴식시간이 없어요. 있더라도 바쁘니까 최대한 빨리 해결하고 다시 일을 시작해야 돼요.”

새벽부터 일을 시작해도 업무를 끝내고 집으로 귀가하면 밤 10시가 지난 시간이다. 어린아이들은 이미 잠자리에 든지 오래. 뒤늦은 저녁식사를 마치고 씻고 잠자리에 들면 5시간 후에는 다시 또 고된 하루를 시작해야만 한다. 제대로 된 휴식시간도 없이 하루 17시간씩 반복적으로 일을 하다 보니 그는 입사 때 보다 체중이 25kg나 감소했다.

택배 기사들의 임금은 택배 한 건당 떨어지는 수수료로 이뤄져 있다. 지난해 기준 택배비 평균단가 2200원에서 택배기사에게 떨어지는 수수료는 약 700원이다. 하지만 하루 4시간 이상 해야 하는 분류작업의 경우 별도로 지급되는 인건비 없이 무임금으로 일하는 ‘공짜 노동’인 셈이다. 이것이 택배 기사들을 ‘과로’로 이끄는 주원인이 돼왔다.    

“저희가 택배 분류작업을 점심 먹고 한시쯤 시작해서 보통 5시까지 하게 되는데, 이 일이 정당한 대가를 받으면서 일한다기 보다는 공짜노동처럼 되는 거예요. 그 시간만 빼도 저는 7시면 퇴근할 수 있어요. 그러면 가족들이랑 밥도 같이 먹고, 아이들과도 놀아줄 수도 있고, 여가시간을 보낼 수 있는 거죠.”

#택배 노동자들이 짊어진 ‘책임’의 무게

설 연휴가 다가오면 택배 물량은 평소의 20%가량 증가한다. 특히 올해는 코로나19로 인한 방역지침에 따라 비대면 명절이 강조되면서 이를 대신할 택배의 양은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이면서, 택배 노동자들의 근심은 더욱 깊어진다.

“특히 추석이나 설날처럼 물량이 많아지는 명절이 다가오면 더 눈코 뜰 새 없이 바쁘죠. 일을 빨리하는 요령도 없었던 입사 초기에는 집에 가서 씻고 잠잘 시간이 부족해서 차에서 쪽잠을 자고 출근할 때도 있었어요.”

택배 노동자들은 택배회사에 소속되어 있지만 개인 사업자로 분류되기 때문에 아플 때에도 마음 편히 쉴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자기가 배송을 맡은 동네를 ‘구역’이라고 하는데 택배기사들은 자기 구역에 들어오는 물량은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책임을 져야 해요. 남한테 대신해달라고 할 수도 없고. 그래서 아파도 약을 먹고서라도 끝내야 해요. 하루를 쉬어버리면 다음 날은 또 이틀 분량의 택배를 배송해야 하니까 결국 제가 다 감당해야 하거든요.”

택배가 파손되거나 분실될 경우에도 그 책임은 택배기사가 져야 한다. 그나마 롯데택배의 경우에는 배송한 사진을 찍어서 전송한 건에 한하여, 배송 분실 사고가 일어났을 경우 본사에서 일정 부분 책임을 공동으로 부담하지만 시간적인 여유가 턱없이 부족한 택배기사의 노동환경에서는 그마저도 녹록지가 않은 것이 현실이다.

택배 기사들이 떠안은 책임의 범위는 이뿐만이 아니다. 배송차량의 주유비나 수리비, 우천 시 배달 물건을 덮는 비닐 등과 같이 업무에 필수적인 지출을 택배기사의 사비로 충당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택배노동자 고길환. ⓒ제주의소리
택배노동자 고길환 씨. ⓒ제주의소리

#특급배송의 역설

비대면 쇼핑이 늘어남에 따라 배송 경쟁도 심화되고 있다. 빠른 배송을 뜻하는 일명 ‘로켓 배송’, ‘새벽배송’ 이라는 표현을 경쟁적으로 사용하고 소비자가 원하는 시간에 배송하는 맞춤형 배송까지 보편화되고 있다. 사람들의 편의는 나날이 좋아지고 있으나 이것을 가능케하는 택배 노동자들의 일상은 더욱 붕괴되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필요한 것은 ‘택배를 받는 고객들의 배려와 제도적인 보호’라고 말했다.

“예전보다 많이 좋아졌다고들 하지만 여전히 택배가 조금이라도 늦으면 저희한테 전화해서 욕을 하시는 분들도 계시거든요. 또 물건을 회수하러 가는 것도 저희 일인데, 우선적으로 처리해야 할 배송을 마치고 9시에 가면 ‘시간이 몇 시인데 이 시간에 회수를 하러 오냐’고 욕하시는 분도 계시고.. 나름의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 속상할 때가 많죠. 가장 힘 빠지는 일이기도 하고요.”

지난 한 해만 해도 과로 등으로 인한 택배 노동자 사망 사건이 16건이다. 택배 노동자들을 과로사로부터 보호해 줄 제도와 여건이 마련되지 않은 것이 가장 큰 문제인데, 당장은 파업으로 인해 잠정적인 합의안을 마련했지만 언제 또다시 파기될지 모르는 상황이라고 택배 노동자들은 말한다.

“저희가 이렇게 파업도 하면서 합의까지 거쳤어도 언제 또 흐지부지, 바쁘다는 핑계로 저희가 다시 또 분류작업에 투입되고 이럴지 모르거든요. 이럴 때일수록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져주시면 좋겠어요. 안타까운 소식이 계속 들리는데도 사실 다들 남 일이라고 생각해서인지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으시는 것 같아요. ‘누구나 다 힘들지’ 라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많은 것 같고.. 근데 저희가 바라는 건 단지 최소한의, 그런 평범한 일상이라고 생각을 해요.”

강민정 대학생기자(사진 왼쪽)=모두가 밝은 사회를 꿈꾸지만 여전히 빛의 사각지대에는 어둠에 깔린 이들이 있다. 이를 외면하고 있을 수만은 없기에, 더 밝은 세상을 위해 옳은 목소리로나마 보탬이 되고자 한다.

김미림 대학생기자(사진 가운데)=세상을 위해 일하는 다양한 방법 중 지켜보고 알리는 방법을 선택했다. 내가 바라보고 알리는 사실들이 세상에 옳은 영향력을 끼치길 바란다.

김보혜 대학생기자(사진 오른쪽)=주변의 소리에 귀기울여 더 나은 일에 보탬이 될 수 있는 그런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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