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길웅의 借古述今] (211) 여물만 까먹었던 놈 송편 주어도 소만 파먹는다

* 요물 : 여물, 알맹이
* 곤떡 : 송편
* 쉬 : (송편 같은 떡 속에 넣는 팥 등으로 만든) 소
* 옹파먹나 (또는 옴파먹나) : 파먹는다

질을 까서 속에 든 알맹이만 먹는 것들이 상당히 많다. 귤, 밤, 콩, 팥, 녹두, 수박…. 셀 수 없이 많다. 식물의 열매는 거의 다 껍질을 까 벗겨 버려두고 속만 먹는다. 껍질째 먹는 토마토나 감 따위도 있지만, 그런 부류마저도 먹는 이의 습관에 따라선 껍질을 벗기고 먹는 경우가 적지 않다. 원래 과일의 열매에서 껍질을 벗겨 먹는 것이 상례로 돼 있다.

이 말을 두 번만 음미해 읽으면 다 읽기 전에 웃음부터 나온다. 하도 어처구니없기 때문이다. 아니, 세상에. 완두콩도 먹을 때는 삶아서 껍질을 벗겨서 먹는 게 정한 이치이거늘, 송편을 까서 속에 든 소만 파먹다니…. 열매처럼 떡도 그 속에 든 것만 파먹는다면, 세상천지에 이런 어리석음이 없다.

송편이 어떤 떡인가. 떡 전체의 8할은 쌀가루로 빚고 그 속에 넣는 팥소는 맛을 돋워 주기는 하지만 그 양이 적다. 이를테면 쌀이 주를 이루는 떡이지, 팥소는 안에 조금 넣어 있다. 

그럼에도 쌀로 만든 알짜는 열매의 껍질처럼 그냥 내버려 두고 소만 파먹는다면, 이런 천치바보는 없을 것 아닌가. 이야말로 웃음거리가 아닐 수 없다. 웃음거리 이전에 우둔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상식을 저버리면 웃음거리가 되기도 하는 세상이다. 하지만 대충하고 넘어가야지, 웃기는 데도 분수가 있는 법이다.

차마 정신 멀쩡한 사람이 송편을 그렇게 속에 든 소만 먹으랴. 

세상에는, 앞뒤를 헤아리지 못하거나. 누가 주인인지 누가 나그네인지, 무엇이 핵심이고 무엇이 주변인지를 분별하지 못하고 엄벙대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그런 세태를 송편을 속에서 소만 먹는 것에 비유해 배꼽을 잡게 한 것이다. 참 해학적이라 익살맞다. 우둔한 사람을 직설적으로 말하지 않고 간접적으로 빗댄 화법에 구수하기까지 하다. 은근히 골계미(滑稽美)가 빛나는 글이다. 행간을 읽었으면 참 좋겠다.

애초 어느 입심 걸쭉한 이가 한가한 농한기인 긴긴 겨울밤에 동네 사람들과 담소하며 능글맞게 풀어놓은 객담이 아닐까 싶다. 우리 제주의 선인들 언어 감각이 때로는 온화하다가도 경우에 따라서는 에둘러 콕 짜르는 맵짠, 자극적인 맛이 있다.

# 김길웅

김길웅

동보(東甫) 김길웅 선생은 국어교사로서, 중등교장을 끝으로 교단을 떠날 때까지 수십년 동안 제자들을 가르쳤다. 1993년 시인, 수필가로 등단했다. 문학평론가이자 칼럼니스트이기도 하다. 도서관에 칩거하면서 수필, 시, 평론과 씨름한 일화는 그의 열정과 집념을 짐작케한다. 제주수필문학회, 제주문인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대한문학대상, 한국문인상 본상, 제주도문화상(예술부문)을 수상했다. 수필집 <마음자리>, 시집 <텅 빈 부재>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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