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시선] 특별법 개정안, 역사적인 국회 통과 기대하며…

인간은 망각의 동물. 너무 당연해서 진리랄 것도 없는 이 말을 최근 실감했다. 지난 18일 제주4.3특별법 개정안이 국회 행안위를 통과한 후 기억을 더듬어봤다. 여야가 원만히 합의한 게 얼마만인가 했다. 

4.3특별법은 1999년 제정됐다. 벌써 20여년이 지났다. 그 동안 여러차례 개정됐다.

가물가물했다. 그만큼 나의 뇌리엔, 4.3 하면 어느 한쪽의 역할만 각인돼 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실은 그게 아니었다. 내 기억에서 사라졌을 뿐이었다. 4.3에 관한 한 ‘잃어버린 9년’으로 일컫는 MB·박근혜 정부의 영향이 컸다. 

불통의 세월이었다. 아니, 두 정부에서 4.3의 시계는 거꾸로 흘렀다. 4.3특별법, 4.3위원회 폐지가 시도됐다. 희생자 결정 취소 움직임도 있었다. 헌법소원심판, 행정소송, 국가소송이 끊이지 않았다. 두 대통령은 4.3추념식에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국가추념일 지정이 웬일인가 싶을 정도였다.

ⓒ제주의소리
2003년 10월 제주를 찾아 도민과 4.3유족들에게 과거 잘못된 국가공권력 행사에 대해 사과하는 노무현 대통령(왼쪽), 2000년 1월11일 청와대에서 4.3유족 대표들과 제주 시민사회 관계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제주4.3특별법에 서명하는 김대중 대통령(오른쪽 아래). 오른쪽 위는 지난 18일 4.3특별법 개정안이 국회 행안위를 통과한 뒤 오영훈 의원 등이 환호하는 모습. <그래픽 디자인=김찬우 기자> ⓒ제주의소리

2000년 1월11일, 김대중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4.3특별법에 서명하는 역사적인 장면을 떠올려봤다. 4.3유족 대표와 제주 시민사회 리더들이 지켜보고 있었다. 그 환희의 순간을 다시 느껴보고 싶었다. 이날 김 대통령의 서명으로 4.3특별법은 비로소 제정·공포되었다.

지난주 4.3특별법 개정안의 상임위 통과는 그 못지않게 의미가 있다고 여겼다. 희생자에 대한 위자료 등의 특별지원 방안 강구, 추가 진상조사, 수형인 명예회복 등의 내용을 담은 개정안은 어느덧 4.3이 완전한 해결의 길로 접어들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21년 전 벅찬 감동’을 전한 관련 기록을 뒤적이다가 망각을 깨우는 8년 여 전 [제주의소리] 기사가 눈에 들어왔다. 2012년 5월19일 4.3평화공원 기념관에서 열린 노무현 대통령 3주기 추모 학술토론회(‘제주4.3특별법과 사과, 그리고 위령제’)를 다룬 기사였다. 

4.3해결의 여정에 있어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조명은 지당한 일이었다. 국가 차원의 진상조사와 보고서 채택, 첫 공식사과, 첫 추모제 참석 모두 노 대통령의 몫이었다. 

기사에서 정작 시선이 멈춘 지점은 당시 주제 발표에 나섰던 고희범 전 한겨레신문 사장의 발표 내용이었다. 

서울에서 민주인사들이 분위기를 잡고, 한나라당이 단초를 제공하고, 김대중 대통령이 획기적 전기를 마련했으며, 노무현 대통령이 방점을 찍었다. 

지난했던 4.3특별법 제정과 그 이후의 과정을 고 전 사장은 이렇게 정리했다. 훗날 제주시장을 역임한 고 전 사장은 4.3진상규명 운동이 본격화할 무렵 범국민위원회 공동대표를 지냈다. 

제1야당 국민의힘의 할아버지 격인 한나라당이 4.3특별법 제정에 단초를 제공했다니…. 처음엔 우리 기사를 보고도 믿기지 않았다. 순간 망각이 두려워졌다. 

사실이 그랬다. 4.3특별법안을 먼저 발의한 것은 한나라당이었다. 때는 1999년 11월18일. 당시 여당인 새정치국민회의는 하루 전 4.3특위 구성 결의안을 제출하는데 그쳤다. 이미 국회에는 1996년 제주 출신 변정일, 양정규, 현경대 의원 주도로 여야 의원 151명이 발의한 특위 구성 결의안이 계류돼 있었다. 외려 국민회의가 이 결의안을 방치해온 상황. 

지금으로 치면, 당시 여야가 제출한 법안은 둘 다 일정한 한계를 지녔지만, 한나라당 안에는 국가추념일 제정과 부당한 유죄판결을 받은 자에 대한 재심 규정까지 있었다.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고, 명예를 회복하는 일은 여와 야, 진보와 보수가 따로 없음을 오래전 정치권이 몸소 보여준 셈이다. 새정치국민회의 안에는 4.3평화인권재단 설립과 정부의 지원근거가 눈에 띄었다. 비록 제정 과정에 갈등은 많았지만, 4.3특별법은 1999년 12월16일 ‘여야 합의’로 국회를 통과했다. 

이제는 여야가 희생자들의 피해를 ‘사실상 배상’하는데 합의하는 단계까지 이르렀으니 한 때 옆길로 샜던 4.3이 제 경로를 찾은 것 같아 적이 안심이 된다.  

더 말할 필요가 없는 일인데도, 4.3유족들은 오랜기간 피해 배상을 입에 담지 않았다. 진상규명이 우선이라는 판단에서다. 다음 순서는 명예회복이었다. 국가 공권력에 의해 무고하게 희생된 피해자에 대한 국가 배상은 정의를 회복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다. 이 당연한 일을 국회가 매조지하려 한다. 예정대로라면 25일 법사위, 26일 본회의가 열린다. 오늘과 내일이 무척 기대된다. <논설주간 / 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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