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가게, 고치가게] (1) 문순애 옥천미용실 원장...여든 앞두고도 끊이지 않는 단골들

창간17주년을 맞은 [제주의소리]가 오랜 기간 제주 곳곳을 지키며 이어온 공간과 인물을 소개하는 연중 기획 [이어가게, 고치가게]를 2021년 시작합니다. 오래된 점포(老鋪)와 그 속에 숨은 장인(匠人)들이 소개됩니다. 과거는 현재를 비추는 거울이고 미래의 나침반입니다. 제주의 기억을 이어가고 앞으로도 함께 지켜감으로써, 제주의 미래를 같이 가꾸고 조명하자는 취지입니다. 세월만큼 켜켜이 쌓인 이야기는 제주 현대사를 관통하는 타임캡슐과 같습니다. 이들의 기억을 공유하는 일이 제주의 오늘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고,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주춧돌이 됐으면 합니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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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동문시장 한복판에서 옥천미용실을 운영 중인 미용경력 60년 문순애(78) 원장. ⓒ제주의소리

1943년생. 올해로 만 일흔여덟. 미용경력 60년.

제주 동문시장 한복판에서 옥천미용실을 운영 중인 문순애 원장은 제주시 동문통에서 나고 자랐다. 과거 제주성의 동문이 있던 그 곳, 제주의 오랜 역사의 중심지를 거쳐 1970~80년대만 해도 활기가 가득한 곳이었지만 지금은 원도심으로 불리는 그 곳.

열여덟 시작한 미용일은 팔순을 바라보는 지금까지도 평생의 업이 됐다. 10년이면 변한다는 강산이 여섯번은 족히 바뀌었을 세월을 미용일에 오롯이 바쳤다. 보릿고개 시절부터, 제주 원도심의 중심이었던 시기를 거쳐 오늘 2021년까지도 그는 이 곳의 살아있는 증인이자 제주 미용계의 산 역사다.

평일 오전 문이 활짝 열린 그의 가게를 찾았다. 백발의 여성이 앉아있었다. 몇 년 단골이냐고 물었더니 답이 돌아왔다. “나? 50년째”. 문 원장에게 파마를 맡긴 한 노년의 여성은 조천읍 함덕리에서 이 곳을 30년째 찾는다고 했다. 멀리까지 오는 이유를 물었더니 “기술이 좋아서”라고 답했다. 

손기술에 대한 얘기가 나오자 문 원장이 입을 뗐다.

“젊었을 때 단골이던 손님이 70대, 80대가 돼서도 계속 와요. 동네라서? 아니, 마음에 들어야 오지, 머리를 못하면 안와요. 미용만큼은 아무리 공짜여도 안갑니다.”

보릿고개 시절 시작한 ‘미장원 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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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고 살기 어려워 미용기술을 배우고, 힘든 시다(보조) 시절을 거쳐 정식 미용사가 된 문순애 원장의 젊은 시절. 보조 미용사 시절엔 사진도 찍을 새 없이 고된 하루들을 보냈지만, 정식으로 동문통의 수많은 미용실에서 솜씨를 뽐냈던 그의 경력을 증명하는 사진들을 적잖게 남겨뒀다. ⓒ제주의소리

“옛날 우리 시대는 보릿고개였습니다. 먹고살기가 힘들었어요. 돈벌이도 없었지요. 어려우니까 사람들은 양장점을 하거나 미용기술을 배웠습니다. 사람들은 양장점을 선호했지만 미용은 좀 천하게 여겼어요. 하지만 나는 그래도 미용을 택했어요. 왜 그런 선택을 했냐고요? 선택하고 말고가 없었지요. 생활하기 너무 각박해서 기술을 배워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게 나중에 희망이 있다’ 이런 기대도 아니었어요”

소위 ‘시다’라고 불리는 보조역할로 시작했다. 기술을 열심히 배우는데 집중했다. 그러나 고생이 많았다. 누군가의 시다가 되면 그 집안 살림살이도 도맡아야하는 시대였다. 남는 시간에 눈치를 보며 미용기술을 배웠다. 그의 표현에 따르면 ‘잘 해주는 주인도 있었고, 아주 못된 주인도 있었다’고 하는데 그는 좌절하는 대신 ‘어떻게든 극복하고 이 기술은 꼭 배워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다른 미용실의 종업원으로 일하며 열심히 노력했고, 1970년도 동문통에 본인의 첫 가게를 열게 됐다. 이름은 ‘옥천미용실’. 바로 앞에 있던 옥천목욕탕의 이름에서 힌트를 얻었다.

‘독립해서 미장원을 차린다고 하니, 굉장히 기쁜 마음이었다’고 그는 회상했다. ‘손님의 얼굴을 보며 어떤 머리가 어울리는지 상상하고, 이에 맞춰 자르는 일’이 즐거웠던 그이기에 고된 일도 웃으며 넘길 수 있었다.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고, 미용에 취미가 있어서 그런지 고되거나 피곤하다 그런 걸 못 느껴봤어요. 지금도 그래요. 아무리 손님을 많이 받아도 지치다, 하기싫다 이런 감정을 느껴본 적이 없어요. 미용기술? 그 때는 불파마라고 해서 불을 기계 속에 담아서 머리 직접 꽂았어요. 이 불파마가 없어지는 때 미용일을 본격적으로 하게 됐는데, 그 때 핸드파마라고 있었어요. 불없이 약을 올려서 파마를 하게 됐지요”

손기술이 좋다는 입소문을 듣고 손님들이 하나 둘 몰려들었다. 동문통에도 활기가 돌기 시작한 시기였다. 긍정적으로 열심히 일하는 모습은 그에게 뜻밖의 인연도 가져왔다.

“우리집 단골 손님 중에 나를 주시해서 보던 분이 있었어요. 그러던 어느날 ‘내 사촌동생이 있는데, 당신이라면 배필이 될 것 같다’면서 중매를 해줬지요. 남편이 어떤 사람이었냐고요? 경찰관으로 35년을 근무했는데, 우리집 아빠는 정말 너무 맘이 좋고, 나를 편하게 해줬어요. 남편을 잘 만나서 내가 정말 고통스럽거나 속상한 일이 없었습니다.”

그는 남편 사이에 4명의 아들과 1명의 딸을 뒀다.

“우리 남편은 나이 예순에 아파서 돌아가셨어요. 사실 그 뒤 2년 동안은 일을 못했지요. 너무너무 속상하고 괴로워서... 그래도 나의 천직은 미용이라는 생각으로 계속 온 게 지금까지 됐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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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용실 단골 손님이 중매를 해줘 만난 남편과의 결혼식 사진. 문순애 원장은 부군께서 정말 좋은 분이셨고, 남편을 참 잘 만났다며 함박 웃음을 지어보였다.ⓒ제주의소리

봉사와 함께한 반세기

문 원장의 미용인생에는 봉사를 빼놓을 수 없다. 요양원과 보육시설, 노인복지관 등에 미용봉사를 이어오고 있는데 이를 시작한 게 1970년대 초니 벌써 50년이 됐다. 미용봉사와 함께 학습지, 목욕용품, 건강식품, 생필품 등 개인적으로 기부도 엄청나다. 편부모가정의 자매결연을 맺고 후원을 이어갔다. 

꾸준한 봉사를 인정받아 도지사 표창패와 보건복지부장관 표창을 받았다. 봉사를 하는 날이면 가게 문을 닫고 가지만 ‘그날은 돈을 안 벌어도 기분이 너무 좋다’고 표현한다.

“삶의 원칙? 그저 남에게 해롭지 하지 않고, 남을 돕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봉사하는 날은 너무 기분이 좋고 만족이 돼요. 몸으로 때우면서 한 게 세월이 이렇게 됐네요.”

옥천미용실은 터를 2번 옮겼지만 동문통 인근을 떠난 적이 없다. 시대의 흐름은 그의 눈과 귀로 다가왔고 기억 속에 켜켜이 쌓였다.

“처음 미장원을 차렸을 땐 동문통이 발전도 되고 좋았지요. 그런데 다른 상권이 생기면서 동문통이 죽었어요. 그게 너무너무 아쉬워요. 내가 동문통에 났고, 동문통에서 컸고, 동문통에서 몇십년을 미장원을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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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용봉사를 하고 있는 문순애 원장. 봉사를 통한 보람이 곧 삶의 원동력인 문 원장은 현재도 끊임없이 봉사를 이어가고 있다. ⓒ제주의소리

“언제까지 할 거냐고요? 글쎄...”

30년, 40년, 50년 단골이 이 미용실에서는 놀라운 일이 아니다. 다만 단골들의 수는 줄었다. 같이 나이가 들어가면서 누군가는 아프고, 누군가는 세상을 떠났다.

자녀들은 그에게 이제 일을 그만하라고 재촉한다지만 본인은 그럴 생각이 없다. “이 나이에 집에서 놀면 견딜 수 없다. 건강하려고 나온다”는 게 그의 얘기다. 실제로 문 원장은 몇 시간을 서 있어도 지친 기색이 없었다. 일흔여덟이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다.

“나는 미용하는 게 제일 행복해요. 앞으로도 행복하다 느낄 거에요. 앞으로 10년은 더 해볼까 싶은데 내 건강이 따라줄지, 손님들이 나를 인정해서 와줄지 그건 모르지요. 소망? 큰 소망은 없고, 내가 미용을 하는 동안 건강하게 손님들이 와주었으면 좋겠어요. 언제까지 할런지는 모르겠지만, 하는 날까지 손님들이 와줬으면 좋겠어요. 그 손님들이 너무 감사할 뿐이에요. 오는 손님들에게는 항시 고마움을 느껴요. 오래오래 내 기술을 인정해서 와주는 것이 너무 고맙고 감사합니다.”

문 원장이 가게 한 켠에서 옛날 흑백사진들을 모은 앨범을 꺼냈다. 그의 유년시절부터 지금까지의 기억을 함께 살펴보다 보니 그의 얼굴에도 잔잔한 미소가 번졌다. 

문득 궁금해졌다, 이제와서 돌아보면 60년 전 선택, 어떻게 생각하는지.

“미용을 선택한 일이 참 잘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후회해본 적이 없어요. 그때 미용을 택한 게 감사하게 생각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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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시 동문시장에 위치한 옥천미용실. 그 속에는 세월을 느낄 수 있는 미용도구와 정든 단골 손님들의 대화, 60년 동안에도 식지않은 미용에 대한 열정과 봉사정신을 보여주는 문순애 원장이 있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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