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世通, 제주 읽기] (191) 현택훈, 제주어 마음사전, 걷는사람, 2019.

현택훈, 제주어 마음사전, 걷는사람, 2019. 출처=알라딘.
현택훈, 제주어 마음사전, 걷는사람, 2019. 출처=알라딘.

1. 제주어에 관한 마음과 이야기

생각해볼 문제는 세 가지이다. 서사구조를 지닌 소설이나 산문이 사전 형식을 띨 수 있는가? 이것이 첫 번째 문제이다. 두 번째는 이른바 ‘사전 소설’에 관한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은 표준어와 사투리, 제주적인 것의 문제이다. 필자의 손에 들어오는 거의 모든 책들이 그러하듯이 오늘 소개하려는 ‘제주어 마음사전’도 우연히 얻어 읽고 필연인 줄 알았다.

언제부터인지 알 수 없으나 제주에도 작은 책방들이 무수히 들어서기 시작했다. 제법 큰 책방들이 하나둘씩 문을 닫고 있는데 오히려 작은 책방들은 비온 뒤 고사리 솟아나듯 군데군데 자리를 잡기 시작하니 참으로 흥미롭다. 작은 책방이 들어선 작은 동네는 결코 작지 않다. 책방이 차지하는 시공간은 결코 크기나 길이로 잴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작은 책방에는 작은 책도 많다. 특히 제주와 관련된 책들이 적지 않은데, 그런 까닭에 체구는 작아도 결코 작다고 할 수 없다. 제주는 깊이나 너비를 한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제주어 마음사전’은 바로 그런 책들 가운데 한 권이다. 저자인 시인 현택훈도 서귀포에서 시집전문서점인 ‘시옷서점’을 운영하고 있다.

‘제주어 마음사전’은 제주에서 태어나고 자라난 저자가 어린 시절 기억과 현재의 삶을 버무려 만든 일종의 자전체 문학에 속한다. 그 안에는 돌아가신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아버지와 형제들에 대한 애틋한 마음이 담겨 있고, 주변 동료들에 대한 소소한 관심과 애정, 그리고 굳건한 연대감이 서려 있다. 그런가하면 제주 특유의 풍정(風情)과 민정(民情)이 넘쳐난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그가 하고자 하는 말들은 ‘사전’이란 단어의 집합소에 담겨져 있다. 그것도 표준어가 아닌 사투리 표제어로.

‘사전’의 사전적 정의는 이러하다. “어휘를 모아 일정한 순서로 배열하여 싣고 그 표기법, 발음, 어원, 의미, 용법 따위를 설명한 책.” 비록 어원을 모두 밝힌 것은 아니나 의미나 용법 등을 설명하고 있다는 점에서 ‘제주어 마음사전’은 분명 사전이다. 하지만 국어사전, 외국어사전, 문학사전, 방언사전, 공학사전, 심지어 동식물사전도 있지만 ‘마음 사전’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원래 마음이란 ‘사전’으로 담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바로 이런 점에서 이 책은 ‘사전’에 마음을 담겠다고 작정하여 나름의 ‘돌파’를 감행하고 있다. 그가 돌파하기로 작정한 것은 이것만이 아니다. ‘사전’에 방언, 즉 사투리를 넣겠다는 것인데, 사실 방언사전이 없는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 방언사전’처럼 전국의 방언을 담은 총집이 있는가하면 제주, 전북, 충청 등 도별, 울산, 정선, 창녕 등 시별 방언집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방언사전은 그냥 ‘사전’에 충실할 뿐이다. 당연히 그 안에는 체례와 해설, 인용문은 나오지만 이야기는 나오지 않는다. 다시 말해 이 책은 ‘사전’이란 형식에 이야기를 통해 마음을 담아내겠다는 뜻을 터이다. 마음은 제주어에 대한 마음이고, 이야기는 자신에 관한 것이다.

“나는 제주도 부루기에서 태어났습니다. 감귤 밭에 딸린 집에서 태어났습니다. 할머니가 말하는 제주어를 들으며 자랐습니다. 제주어는 내 마음속에서 감귤처럼 노랗게 익어갔습니다.……제주어는 내 마음에 들어와 집을 지었습니다. 나는 그 집에서 시를 써왔습니다.” (작가의 말)

2. 사전 소설

이른바 ‘사전 소설’이 처음 등장한 것은 세르비아의 작가 밀로라드 파비치의 ‘하자르 사전(Dictionary of the Khazars)’(열린책들, 2011)이다. 역사 미스터리 소설로 알려져 있는데, 아쉽게도 아직 읽지 못했다. 이외에 또 하나의 책은 소개할 수 있다. 중국 소설가 한사오궁(韓少功)의 ‘마교사전(馬僑詞典)’(민음사, 2009)이다. 문화대혁명 시절 중국 호남(湖南) 멱라현(汨羅縣)의 산골마을 마교(馬橋)로 하방된 지식인 청년의 경험담이자 언어에 대한 작가 자신의 사유를 총결한 소설이다. 오랫동안 외부와 단절된 채 독자적인 역사와 문화 속에서 자신들만의 고유한 언어세계를 유지하고 있는 마교인들의 삶을 사전 형식을 빌어 서술하고 있다. 전체 115개의 마교 방언을 표제어로 내세우고 있는데, 굳이 사전의 형식을 빌린 것에 대해 저자는 전통적인 소설에 대한 불신을 이유로 내걸고 있다.

“이 책을 집필하기 전 나는 야심만만하게 마교의 모든 것에 대한 내력을 전부 밝히기로 결심했다. 나는 소설을 쓴 지 10년이 넘었지만 점차 소설을 쓰는 것은 물론이고 읽는 것조차 싫어졌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소설은 줄거리가 중시되는 전통적인 소설을 말한다. 그런 소설 속에서 주도적인 인물, 주도적인 줄거리, 주도적인 정서는 손으로 하늘을 가리듯이 작가와 독자들의 시야를 독점하고 주위를 돌아보지 못하게 만든다. 설사 가끔 주제와 무관한 부분이 있긴 해도 이 역시 주도적인 흐름에 자잘한 장식품 역할을 할 뿐이다. 그것은 독재하의 간헐적인 군주의 성은과 다름없다……모든 개인은 각기 둘, 셋, 넷 혹은 이보다 훨씬 많은 인과의 실마리가 교차하는 가운데 생활하고 있다. 또한 각각의 인과관계 외부에는 또 다른 사물과 물상이 존재하여 우리의 삶에 불가결한 한 부분을 형성하고 있다. 이처럼 복잡다단한 인과의 그물 속에서 소설의 주된 줄거리가 누리는 패권(인물, 줄거리, 정서를 모두 포함하여)이 무슨 합법성이 있겠는가?

이처럼 작가는 이른바 ‘전통적인 소설’의 글쓰기를 거부한다. 그렇다면 “마교의 모든 것에 대한 내력을 전부 밝히기” 위해 역사를 쓰면 어떨까? 그러나 작가는 ‘전통적인 소설’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사서(史書)에 대한 믿음도 포기한다. 어쩌면 그는 지난 과거에 대한 의식적 배열로서 사서가 역사가의 모종의 의도에 따라 편찬되며, 이를 통해 또 하나의 권력, 즉 담론의 권력을 형성하게 된다는 것을 눈치 챘거나, 포스트모던 역사학자인 젠킨스(Keith Jenkins)가 말한 “(역사란) 일종의 언어적 허구이자 서사 산문체의 논술이다.”라는 발언에 동의하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대신 그는 ‘사전’이란 장치를 들고 나왔다.

사전은 한 시대나 지역(나라를 포함하여)에서 통용되는 단어를 해석하고, 그 용례를 밝히는 한편 그 문화를 모두 포함하려는 문화적 의도를 감추지 않는다. 그것은 일종의 문화적 시공간에 대한 해석의 총집이자 언어로 표현되거나 기술된 문화의 반영물이다. 다시 말해 그가 ‘사전’의 글쓰기를 시도한 까닭은 단순히 한 지역의, 또는 한 두 사람에 대한 ‘기억’이나 ‘경험’을 토대로 서사구조를 만들겠다는 것이 아니라 마교에서만 통용되는 언어를 통해 그들의 언어가 일정한 시공간에서 어떻게 그들의 문화심리를 반영하고 있는지, 그리하여 어떻게 그들의 삶을 정의하고 규정지으며, 예언하고 있는지를 묘사하기 위함이라는 뜻이다. 한사오궁이 책에서 지속적으로 언어와 권력의 문제에 집착하는 까닭 역시 이 때문이다.

'제주어 마음사전'은 이러한 의도와 전혀 무관하다. 오히려 ‘사전’에 충실하다고 할 정도로 그의 이야기는 ‘제주어’에 몰입한다. 아마도 이는 그가 언어의 미감에 예민한 시인이기 때문일 것이다.

“제주어는 귀엽기도 하다. ‘요자기’라는 말도 그렇고, 내일모레를 뜻하는 ‘늴모리’, 숨바꼭질을 뜻하는 ‘곱을락’ 등.” (147쪽)

“제주어 중에서 의성어나 의태어는 아주 감각적이다. 그 소리나 모습을 적절히 나타낸다. 타글락타글락(터덜터덜), 벨롱벨롱(불빛이 멀리서 번쩍이는 모양), 돌락돌락(들먹들먹),……주왁주왁(기웃기웃. 주먹을 연해서 내미는 모양), 화륵화륵(당황하여 이리저리 바삐 헤매는 모양, 부리나케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모양) 등. 언어가 감각적인 건 그 언어가 삶 가운데 살아 있는 언어라는 증거가 된다.” (173쪽)

언어는 상황이나 장소, 사람과 대상에 따라 맛이 달라질 수 있다. 게다가 언어는 태생이 운율적이니 더욱 그러하다. 그럼에도 귀여운 것은 귀여운 것이고, 아름다운 것은 또한 아름다운 것이다. 반대로 탁한 것은 그저 탁한 것이고, 거친 것은 또한 거친 것이다. 그럼에도 제주어에는 묘하게 끌리는 아름다움이 존재한다. 시인은 제주어가 삶 가운데 살아 있는 언어이기 때문에 감각적이라고 했는데, 한 걸음 더 나아가 제주어가 아름다운 까닭은 그 안에 제주 토착민의 삶이 녹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가 사투리를 구수하다고 여기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3. 표준어와 사투리

언어란 인간이 음성이나 문자를 이용하여 의사소통을 하는 도구이다. 언어의 다양성은 인간이 다른 동물과 차별되는 가장 큰 무기이자 문명 발전의 토대이다. 언어가 역사를 만들고 문화를 축적하며 상호 소통을 통해 집체, 즉 사회를 구성할 수 있도록 했기 때문이다. 사회구성에서 언어는 절대적이기 때문에 누가 언어의 주도권을 확보하느냐에 따라 권력이 좌우된다. 언어는 곧 권력이란 뜻이다. 실제로 우리는 언어에 의해 죽음을 강요받기도 하고, 행복을 느끼기도 하며, 등급이 나뉘고 차별을 당하며, 심지어 존재 자체를 확인받거나 무시되기도 한다. 언어는 그저 도구에 불과하지만 실제로 우리의 삶 자체를 지배하는 거대한 장막인 셈이다.

이런 점에서 표준어 또는 통일된 문자는 대단히 정치적인 의도의 산물이다.

사투리는 본색이다. 아무리 덧입혀도 바탕색을 완전히 지울 수는 없다. 말은 음악이다. 음악의 속성은 리듬이다. 언어의 운율인 셈이다. 옹아리부터 시작되었을 그 고유한 음색을 어찌 지울 수가 있겠는가? 언어가 문화를 대변한다면, 사투리는 한 사회의 문화 본색이다. 하지만 본색은 지울 수 없으되 흔히 가려지고 무시될 수 있다. “유네스코는 제주어를 소멸 위기 언어로 지정했습니다.” 시인이 말한 것처럼 제주어의 본색이 점점 가려지고 있다는 사실에 심히 우려를 금할 수 없다.

‘제주어 마음사전’이 소중하고 귀한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지금도 시인은 일요일이 되면 이러할 것이다.

“오름에 올라 제주의 바람을 맞을 겁니다.……어떤 바람은 자울락자울락 붑니다. 눈물이 스며 있는 바람, 그 바람의 언어를 맞기 위해 운동화 끈을 단단히 묶겠습니다.”

‘제주어 마음사전’에는 산문과 시, 그리고 그림과 사진이 함께 어울리고 있다. 문득 산문이 시 같고, 시가 산문 같으며, 사진이 그림 같고, 그림이 사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먹구름이 비가 되어 내리면 세상은 물보라로 뒤덮인다. 비 오는 날엔 제주도 전체가 수망리다.”

시 같은 산문이다.

첨언 한 가지. 시는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읊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게 만든 한 구절.

“글라. 혼잔해불게. 날도 우치잰 햄신디사, 하간디가 뽀삼져.”

시인이 인용한 강덕환 시인의 시. 정확하게 이해할 수는 없지만 읽어보면 느껴진다.

# 심규호

한국외국어대학교 중국어과 졸업, 동대학원 중문학 박사. 제주국제대 교수, 중국학연구회, 중국문학이론학회 회장 역임. 현 제주중국학회 회장, 제주문화포럼 이사장. 저서로 ▲육조삼가 창작론 연구 ▲도표와 사진으로 보는 중국사 ▲한자로 세상읽기 ▲부운재(수필집) 등이 있다. 역서는 ▲중국사상사 ▲중국문학비평소사 ▲마오쩌둥 평전 ▲덩샤오핑과 그의 시대 ▲개구리 ▲중국문화답사기 ▲중국사강요 ▲완적집 ▲낙타샹즈 등 70여 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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