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봉선의 마을 책방을 찾아書](16) 제주시 삼양일동 ‘나이롱책방’

마을책방은 단순한 기호품을 파는 곳이 아닙니다. 대형서점처럼 책을 어마어마하게 팔아치우는 곳은 더욱 아닙니다. 후미진 도심 골목이나 시골 언저리에서 마을책방을 만난다면 그것은 행운이지요. 마을 초입 팽나무 아래 마을사람들이 모여들듯 책벌레들이 도란도란 어우러질 수 있는 사랑방 같은 곳입니다. 제주도 마을 곳곳에 작은 책방들이 사람을 살리고, 다시 사람이 마을을 살리고 있습니다. 그것이 마을책방의 가치입니다. [제주의소리] 시민기자 고봉선 시인이 바람을 쐬듯 책방마실을 다니고 있습니다. 책과 사람이 만나는 곳 ‘마을 책방’에서 책방지기의 책 살림 이야기를 시인을 통해 듣습니다. [편집자 글] 

지난해 코로나19 첫 확진자가 발생하고, 이제 9만 명에 이르렀다. 처음엔 집 밖에 나가는 것조차도 불안했다. 그러나 이제 적응이 되어감인지 조금은 무뎌졌다. 그런데 아무리 경험이 쌓여도 적응 안 되는 것이 있다. 예기치 않았던 상황을 맞이하는 경우다.

분명히 인터넷에서 책방이 영업 중임을 확인했다. 그런데 한 시간가량 달려 도착한 곳에 책방은 없고 공사 중이었다. 하는 수 없이 다른 곳을 찾아갔다. 하지만 가는 곳마다 줄줄이 어긋났다.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는 땅거미 녀석이 슬금슬금 거미줄을 치는 시간이다. 할 수만 있다면 쉭, 쉭, 후줄근한 마음을 스팀다리미로 다림질하고 싶었다. 어긋난 네 군데의 책방을 거쳐 다섯 번째 책방을 찾아가는 길이다. 하루의 마지막 희망을 걸고, 검은 모래 해변의 삼양동 “나이롱 책방”을 찾았다. 청아한 목소리에 맑은 표정, 빛나는 눈동자의 소유자인 책방지기는 나의 구세주였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책방을 찾아 헤매다가 조천리 해안가에서 만난 고목 둥치. 흐린 날 내 마음을 대변해주는 것 같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좋아하는 일은 좋아하는 곳에서” 
언제부터인가 장효정 씨는 책방이란 꿈을 꾸게 되었다. 그러던 중 제주로 여행을 오게 되었다. 여행에서 만난 제주가 장효정 씨를 사로잡았다. 그렇게 장효정 씨는 제주에 빠졌다. 좋아하는 일은 기왕이면 좋아하는 곳에서 하고 싶었다.

책방지기 장효정 씨는 자신이 책을 좋아한다고 의식한 적이 없었다. 책은 그저 생활이었기 때문이다. 책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자신이 책을 좋아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언젠가는 책이랑 관련된 일을 해야겠다며 가슴에 책 씨앗을 품었다. 자신만의 공간도 갖고 싶었다. 책방이 딱, 적당한 일이었다.

책방지기는 제품을 생산하는 곳에서 16년 동안 디자인 일을 했었다. 그렇게 기업에 속한 디자이너로 일하면서 쇼핑을 즐기다 보니 소유한 물건이 많아졌다. 어느 날 불현듯, 대량 생산과 대량 소비를 떠올리면서 회의감이 들었다. 내친김에 자신의 물건들을 정리했다. 그런데 이상했다. 자신이 디자인하던 가방이나 의류는 쉽게 버려졌다. 그러나 책은 버리지 못했다.

십분 공감할 수 있었다. 나도 정말 책은 버리지 못한다. 정리는 젬병이면서 똑같은 책이 있어도 버리지 못한다. 어디 그뿐인가, 심지어는 버려진 책을 들고 오기도 한다. 언젠가 폐지를 들고 부녀회에서 재활용품 수거하는 곳에 갔었다. 거기서 난 버려진 1990년대판 “아라비안나이트(저자 리처드 프랜시스 버턴, 역자 김병철, 범우사)” 두 권을 들고 왔다. 그리고 인터넷 중고서점을 뒤져서 나머지 여덟 권도 주문했다. 그렇게 열 권을 채웠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마치 독서 선생님인 듯 한가운데 셀로움 화분이 놓여 있다. 책방지기의 의도가 깔렸는지 모르지만, 셀로움의 꽃말 중에는 ‘나를 사랑해 주세요.’라는 뜻도 있다. 마치 책을 사랑해 달라는 애교처럼 보인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작은 책방의 역할과 고충” 
하던 일을 그만두고, 장효정 씨는 짐을 싸 들고 제주로 내려왔다. 책방을 하기 위해서였다. 삼양이라는 지역에 꽂힌 건 아니다. 말 그대로 제주 자체가 그냥 좋았을 뿐이다. 인연이 맞았던 것일까. 때마침 자리가 나왔다. 지금 이 자리다. 아마 다른 곳을 먼저 알게 되었다면 그곳으로 갔을지도 모른다.

책방에서는 판매자의 입장보다 대부분 책방지기 본인이 읽고 공감되었던 책을 중심으로 선정한다. 고객들과 공감하고 싶은 책들이다. 책방지기가 좋아하는 이야기를, 또는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들을 좀 더 많은 사람에게 전해 주고 싶어서이다. 이게 곧 작은 책방의 역할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책방에서는 독립출판물을 메인으로 취급하고 있다. ‘홍보와 유통의 어려움을 겪는 분들과 연결해 줄 수 있지 않을까.’ 해서이다. 베스트셀러야 거대 자본으로 홍보를 하겠지만, 그렇지 못한 작가며 책도 많다. 있는 그대로 고스란히 드러나는 책방지기의 맑고 고운 심성을 읽을 수 있었다.

마진이 적은 것도 있지만, 작은 책방의 어려움 중 하나가 바로 재고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그다지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독립출판물을 위탁으로 판매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책방지기는 못 팔 수도 있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않는다. 그리고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반품해보지 않았다. 당장 주목받지 못한다고 가치가 없는 건 아니다. 시간이 흐른 뒤 찾는 이들도 많다. 가지고 있으면서 정성껏 소개하다 보면 마음이 통하지 않을까. 무엇이든 인연을 찾아가기 마련이라고 생각하는 책방지기다.

독립출판물은 전국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초반엔 장효정 씨가 직접 독립출판을 찾아 메일을 보냈다. 그렇게 하면서 책을 받고 판매하기 시작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책방을 알아주는 분들이 늘어나고, 입고를 문의하는 작가도 많아졌다. 이제 책방지기는 어떤 작가들이 어떤 책을 썼는지 찾고, 보내주는 소개를 읽으면서 보내는 게 하루 중 가장 큰 업무가 되었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마치 독서 선생님인 듯 한가운데 셀로움 화분이 놓여 있다. 책방지기의 의도가 깔렸는지 모르지만, 셀로움의 꽃말 중에는 ‘나를 사랑해 주세요.’라는 뜻도 있다. 마치 책을 사랑해 달라는 애교처럼 보인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책방을 찾는 고객은 도민과 관광객 50:50 정도, 의외로 도내 고객이 많다. 뭍에서 오는 관광객들은 아무래도 밀집된 도시보다는 변방을 찾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의외로 제주도에 거주하는 분들이 많이 찾는다. 책방지기는 이 사실이 감사할 뿐이다.

고향을 떠나 그야말로 낯설고 물선 곳, 시작은 힘들었다. 순진했다고 할까, 안일했다고 할까. 타지에 적응할 시간도 없이 책방부터 오픈했다. 너무 쉽게 생각했던 것만은 확실했다. 생활이라도 적응한 뒤에 책방을 시작했어야 했다. 이러한 사실도 시간이 흐른 다음에야 깨달았다. 그러나 이쯤에 이르고 보니 생각이 달라졌다. 정말 그랬다면 책방을 하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생각 없이, 즉 뭘 모를 때 시작한 게 어쩌면 잘한 것도 같다. 만날 마음이 오락가락하지만, 결론은 ‘잘했다!’이다.

월급쟁이로 16년을 일하다가 본인의 일을 하게 되었다. 그렇다. 이건 내 일이다. 그래서 내 맘대로 해도 될 것 같았다. 하지만 그건 철없는 생각이었다. 알고 봤더니 내 것이라서 더 맘대로 못 하는 게 내 일이었다. 

하고 싶은 일, 게다가 내 일을 한다는 설렘은 컸다. 하지만 그 설렘 못지않게 힘든 것도 많았다. 회사에 다닐 땐 볼펜 한 자루조차도 회사에 가면 있었다. 그러나 이젠 다르다. 볼펜 한 자루도 본인이 챙겨야 한다. 이처럼 크고 작은 일 모두를 챙겨야 한다는 사실이 가장 힘들다. 또 가족이나 친구들이 보고 싶을 때 볼 수 없다는 사실도 힘들다. 가까이 있다고 항상 보는 건 아니다. 하지만 멀리 있어서 보지 못하는 것과 가까이 있어도 보지 못하는 것과는 달랐다. 심리적 거리는 몇 배나 더 멀었다. 바다라는 거리, 이 부분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지 못했다. 

어차피 육지에서 살 때도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다. 따지고 보면 지금이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여기서 느끼는 건 심리적 외로움이다. 그러므로 마음을 어떻게 먹느냐에 따라 충분히 해소할 수 있다. 그 외로움이라는 구멍은 책방을 찾는 손님들을 만난다는 신선함으로 채우고 있다. 얼굴을 익히고 인사라도 한번 더하는 고객이 있고 단골손님도 계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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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세먼지 제거에 효과적이라는 벵갈고무나무 화분이 서가의 품위를 한층 높여주고 있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중고책의 가치와 재미” 
이곳에서는 중고책도 판매하고 있다. 중고책은 책방지기 본인이 소장하던 것도 있지만 친구나 지인들이 보내준 것도 있다. 중고책을 다룰 거라고 했더니 보내준 책들이다. 중고책을 채워 넣는 과정에서 책방지기는 새 책을 큐레이션 하듯이 기준을 두고 세심하게 고른다. 즉 중고책을 팔고자 하는 사람이 있어도 모든 책을 다 받지 않는다는 뜻이다. 

중고책은 느낌이 참 좋다. 더군다나 지인들이 보내줬다면, 보내는 이의 마음이 더해져 그 느낌은 배가 될 것이다. 십여 년 전, 중학교 1학년 남자아이가 독서 수업하러 왔었다. 아이는 수업을 기다리는 동안 공부방에 한 권 있는 “해리포터 ‘마법사의 돌’”을 읽고 또 읽었다. 그 모습이 하도 애틋해서 내가 사준다고 했다. 인터넷 중고서적을 뒤져 15만 원 주고 한 세트 구매했다. 그런데 말이 중고지 한 장도 들춰보지 않은 새 책이었다. 그런 책보다 약간은 도톰하게 부풀어 오른, 게다가 시간을 발효시킨 듯 빛바랜 중고책은 푸근한 정을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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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가에는 책을 고르는 데 도움이 되도록 설명이 적힌 메모지도 붙어 있다. 책방지기의 섬세함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이사 다니면서 “임꺽정(홍명희 저, 사계절 출판)” 두 권이 오간 데 없이 사라졌다. 인터넷 중고서점에서 1985년 출판본을 겨우 찾았다. 그런데 값은 새 책과 똑같았다. 게다가 각각 권마다 택배비가 붙으며 더 비싸졌다. 아니나 다를까, 절판된 책들은 새 책보다 몇 배로 더 받는 책도 있다고 했다. 법정 스님의 “무소유” 같은 경우엔 10배 이상 받는 사람도 있다고 했다. 

해가 바뀐 뒤 무심코 입은 옷 주머니에서 지폐 한 장을 발견할 땐 횡재한 기분이 든다. 중고책을 구매할 때도 이와 비슷한 경우가 있지 않을까. 책방지기에게 여쭤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책방지기 장효정 씨가 중고책에서 캐는 즐거움은 많았다. 옛날엔 출판사 사서함에 의견을 보내 달라는 엽서가 거의 모든 책 뒤에 붙어 있었다. 책방지기는 중고책에서 부치지 못한 이 엽서를 발견했다. 그 엽서는 아득한 저편의 세계로 여행을 다녀올 수 있는 티켓이 되었다. 연인인지는 모르지만, 남자 친구한테 선물했던 것 같은 책 속표지에 앳된 메모도 있었다. 글씨도 귀엽고 애교 넘치는 내용이었다. 그 메모를 보는 순간 책방지기는 ‘아, 이 오빠는 이처럼 소중한 책을 팔아버렸네.’라는 생각이 들며 안타까웠다. 하지만 이내 생각을 돌렸다. 반전이란 건 어디든 있으니까 말이다. 대형서점이 없던 시절, 동네엔 서점들이 꽤 있었다. 그런데 이제 이름조차 사라진 동네 서점의 책갈피가 나올 때도 있다. 책방지기는 그 책갈피를 보면서 옛날 책방들을 찾아다니는 상상에 빠지기도 한다. 괜히 행복해진다. 

딸이 엄마한테 보내는 편지가 통째로 들었던 경우도 있었다. 어렴풋이 기억하기로는 ‘엄마, 생일 축하해. 엄마가 OO 갔을 때 이런 책을 좋아하는 거 보고 생각나서 샀어.’라는 내용이었다. 그나저나 그 책의 주인은 엄마였을까, 딸이었을까. 물론 엄마의 책일 확률이 높다. 딸한테서 선물로 받은 책을 읽으며 끼워 놓았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 편지를 발견한 날은 장효정 씨 생일이었다. 순간, ‘뭐지? 내 미래의 딸인가?’라는 생각이 들며 들뜨기도 했다. 묘한 기분이었다. 

요즘은 계산기 시대이다. 컴퓨터에서는 아무리 어려운 계산도 순식간이다. 그런데 중고책을 읽다 보면 공백에다가 펜으로 계산했던 흔적도 있다. 가계부를 대신한 흔적일지도 모를 일이다. 때로는 연락처, 이름, 전화번호가 쓰여 있는 책도 있다. 그런데 이 번호들은 이제 없어진 017, 016, 018 등이다. 그래서 더 재미있다. 손님 중에는 더러 이런 발견이 재미있다고 중고책을 사가기도 한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제주의 고가구인 궤짝 위에 시집이 진열되어 있다. 사기요강에는 아이비가 자라고 있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칸트의 ‘순수이성비판’”
가장 잊을 수 없는 중고책의 추억은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이다. 책방지기 장효정 씨는 이미 칸트의 “순수이성비판” 읽어보려고 했었다. 하지만 어려워서 포기했다. 그런데 책방을 하면서 중고로 나온 이 책을 다시 만났다. 쉽게 읽을 수 있도록 재편집한 책이었다. 이 책을 중고로 들이고, 판매자 입장에서 책을 들춰보았다. 그런데 낙서 비슷한 메모가 너무 많았다. 도저히 팔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러면서도 이 사람은 이 책을 어떻게 읽었는지 궁금했다. 

이 메모의 주인공은 칸트를 무척이나 싫어하는 사람 같았다. 책에는 많은 밑줄이 그어져 있었다. 그런데 밑줄마다 “그러면 어쩌란 말이야.”에서부터 시작해서 끝까지 온갖 욕설이 쓰여 있었다. ‘아, 이렇게 책을 읽을 수도 있구나.’ 장효정 씨에겐 중고책을 읽는 경험이 새롭게 다가왔다. 한편으로는 ‘만약에 칸트가 현대에 태어났다면, 이 사람은 칸트 뒤를 따라다니면서 악플을 엄청나게 달았겠다.’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게 책방지기 장효정 씨는 낙서인지 메모인지 모를 흔적을 따라가며 그 책을 다 읽을 수 있었다. 칸트의 “순수이성비판”만 읽은 게 아니라 그 책을 읽었던 어느 독자의 글까지 덤으로 읽은 셈이었다. 비록 낙서는 많았지만, 오히려 그 낙서가 책을 끝까지 읽을 수 있는 요소가 되었다. 

누군가 읽은 흔적이 있는 중고책은 대부분 처음에만 열심히 밑줄을 그어놓지 뒷부분은 안 읽은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 독자는 책을 끝까지 읽으면서 밑줄을 긋고 친절하게 일일이 욕도 써 놓았다. 어찌 보면 칸트에게 불만이 많은 것도 같았다. 이는 다시 말하면 사상이 다르다는 뜻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읽다가 덮으면 그만이다. 그런데 끝까지 온갖 욕을 해대며 읽었으니, 죽이고 싶도록 칸트를 좋아했던 사람은 아닐까.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에 깃든 중고책 이야기를 듣다 보니, 문득 중세 시대 사본을 만들기 위해 필사하던 수도사들이 생각났다. 인쇄술이 발달하기 전, 중세 시대에는 수도사들이 필사실에서 성경이나 그 밖의 중요한 여러 책의 글자를 베끼며 사본을 만들었다. 손으로 일일이 필사하며 두꺼운 책을 만드는 것은 지루하고 고된 작업이다. 능숙한 수도사조차도 1년에 고작 두세 권밖에 만들지 못했다. 필사실에서 작업하는 수도사들은 서로 말을 해서도 안 되었다. 날마다 오랜 시간을 작업하면서 말조차 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할까? 분명히 이들에겐 숨구멍이 필요할 것이다. 중세의 필사본을 보면 가끔 페이지 여백에 수도사들이 옆 사람과 주고받던 이야기가 틀림없는 글이나 그림이 발견된다고 한다. 이게 곧 그들의 숨구멍은 아니었을까. 나도 책을 읽을 땐 낙서를 많이 하는 편이다. 옛날에야 책을 포장지에 싸면서 읽었지만, 요즘은 넘쳐나는 게 책이다. 게다가 읽지도 않고 버려지는 책들이 많다. 그래서 난 아이들에게 책을 읽을 땐 밑줄을 긋고 메모도 하면서 걸레로 만들라고 한다. 책을 걸레로 만들어 두뇌를 반짝반짝 광나게 닦으라고 한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제품을 생산하는 곳에서 디자이너로 일하던 책방지기 장효정 씨가 어느 날 물건들을 정리하다 보니 남은 건 책이었다. 그때 비로소 자신이 책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급기야는 책방지기가 되었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난설헌 초희와 헨리 데이비드 소로” 
책방을 둘러보다가 “난설헌(저자 최문희, 출판 다산책방)”과 “소로우의 노래(헨리 데이비드 소로, 강은교 옮기고 엮음)” 두 권의 중고책을 구매했다. 공교롭게도 이 두 권은 모두 책방지기가 소장하던 책이었다. 

책방지기는 강원도 여행에서 난설헌의 생가를 방문했다. 그리고 거기서 난설헌의 동상과 시비를 보았다. 거기서 만난 난설헌의 시는 책방지기의 가슴을 울렸다. 그 울림 후, 책방지기는 난설헌의 시집에 목이 말랐다. 난설헌의 시집을 찾던 중 “난설헌”이란 책을 만났다. 너무 반가웠다. 앞뒤 가리지 않고 덥석 구매했다. 그런데 소설이었다. 얼마나 난설헌을 애틋하게 여겼는지 알 수 있었다.

난 가끔 난설헌과 사임당을 비교해 본다. 사임당은 1504년, 난설헌은 1563년에 태어났다. 겨우 반세기 남짓한 차이다. 태어난 곳도 두 사람 모두 강릉이다. 그런데도 사임당과 난설헌의 삶은 너무 다르다. 유교적 가부장제가 만들어낸 현모양처의 표상으로 알려진 사임당은 자신의 정체성을 확연하게 드러낸 인물이다. 결혼과 함께 모든 재능을 묻어야만 했던 조선에서 사임당은 자신의 자질을 인정해 주는 남편이 있었다. 하지만 난설헌은 어떤가. 만약에 난설헌이 이원수와 같은 남편을 만났다면 어땠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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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는 시집이 진열되어 있고, 뒤편에 보이는 서가가 중고책 코너이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난설헌 초희는 초당 허엽의 금지옥엽 막내딸이다. 난설헌의 오빠 허봉은 초희와 막냇동생 균의 스승으로 손곡 이달을 천거했다. 조선이란 나라에서 짓눌린 누이동생을 자유롭게 해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여느 사대부집이라면 어림없는 일이다. 남녀칠세부동석이라는 법도가 높다란 울타리를 친 조선에서 누이의 스승으로 이달을 천거한 것은 파격 그 자체였다. 

난설헌은 살림살이보다는 서책을 가까이하였다. 어머니는 그런 딸을 질책하거나 제재하지 않았다. 아버지도 법도와 예절을 강요하지 않았다. 그러나 조선에 태어난 아녀자의 분수란 죽어지내야 한다는 것이었다. 단지 남자라는 이유 하나로 하늘이라는 위치를 확보해놓은 지상의 행운아가 바로 남자였다.

김성립은 다른 여자들과는 너무나 다른 초희가 부담스러웠다。무엇보다도 초희의 빼어난 글재주가 신경을 자극했다。시어머니 송 씨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들 성립은 과거급제도 못 했는데, 사돈인 초당 허엽이 딸자식한테 서책을 읽게 하고, 시를 논하고, 사서삼경을 읽게 했다는 것부터가 불쾌했다. 남편도 시어머니 송 씨도 난설헌에게 심한 열등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 열등감은 결국 초희를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초희의 남편 김성립은 글 읽기보다 외박이며 기생집을 드나드는 등 쾌락을 즐겼다. 그래도 어머니 송 씨의 유별난 성정만 아니었다면 초희에게 정을 주었는지도 모른다. 당신의 생각과 당신의 결정만이 절대적이라는 어머니 송 씨의 성격은 아들 성립에게도 속수무책이었다.

조선 땅에 태어난 것도, 여자로 태어난 것도, 김성립을 낭군으로 맞이한 것도 운명이었을까. 그렇다면 운명은 참으로 얄궂은 존재가 확실하다. 초희는 딸 소헌을 홍역으로 잃고 아들 제헌마저 잃었다. 서러운 사람 초희는 스물일곱에 저승사자를 불러들였다.

난설헌의 생가에 갔을 때 책방지기를 사로잡은 건 배롱나무였다. 연상하던 난설헌의 이미지와 달라서 그랬을까. 조금 뜻밖이었다. 시비에 새겨진 난설헌의 시를 보면서, 조선 시대에 그런 감성으로 시를 썼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장효정 씨는 감동의 물결을 안은 채 난설헌의 시집을 찾았다. 그렇게 덥석 구매했던 책이 “난설헌”이었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책방 입구. 오후 2시에 집을 나와 책방을 찾아 돌아다니다 보니 이미 날이 어두웠다. 기꺼이 인터뷰해 주신 책방지기가 눈물 나게 고마웠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오래전,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역자 강승영, 출판 은행나무)”를 읽다가 멈추고는 잊고 있었다. 이곳에서 “소로우의 노래”를 보는 순간 “월든”과 비교해 보고 싶었다. 

시대를 가리지 않고 읽히는 게 고전이라 했던가. 19세기 미국을 배경으로 하는 “소로우의 노래”나 “월든”은 시대를 거슬러 국경까지 넘나들며 21세기에도 팔딱팔딱 살아 숨 쉬고 있다. 1845년부터 2년간 월든 호숫가에 통나무집을 짓고 생활한 경험을 기록한 이 책은 사실 출간 당시에는 별다른 시선을 끌지 못했다. 하지만 오늘날엔 전 세계로부터 많은 독자를 확보하며 꾸준히 사랑받고 있다. 삶에 지쳤던 것일까, 낭만에 젖었던 것일까. 환경에 대한 염려인지도 모른다. 책방지기가 제주에 내려온 이유엔 헨리 데이비드 소로도 있었다. 비록 지금은 일장춘몽이 되고 말았지만, 도시를 떠나 월든의 호수에 등장하는 자연처럼 살고 싶었다. 아니,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흉내라도 내보고 싶었었다. 

“책방 이름이 가볍다고요?”
이미 언급했다시피 책방지기 장효정 씨는 스포츠 의류, 등산 가방 등을 만드는 의류계에서 일했었다. 그러다가 책방을 하게 되자 자신이 가장 잘 아는 게 무엇일까를 생각하게 되었다. 그건 다름 아닌 나일론 원단이었다. 

나이롱은 나일론의 일본식 발음에서 유래한 은어로 진짜 행세를 하는 가짜를 뜻한다. 환자가 아니면서 보험금 등을 목적으로 병원에 입원한 사람을 비하하는 데 많이 쓰인다. 장효정 씨가 생각하기엔 자신도 책에 관한 한 나이롱이다. 나일론 원단은 전문가지만 책의 전문가는 아니기 때문이다. 이렇게 책 전문가가 아닌 사람이 운영하는 책방이라는 의미에서 “나이롱책방”이 탄생했다. 막상 그렇게 지어 놓고 보니 조금은 장난스럽고 가벼워도 보인다. 삶을 장난으로 치부할 수는 없지 않은가. 고심 끝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한자를 조합하였다. 그렇게 하여 탄생한 것이 那(어찌 나), 利(이로울 리), 弄(희롱할 롱), ‘어떤 이로운 장난 책방’이다. 책을 너무 진지하게 혹은 너무 무겁게 생각하지 말고 장난감처럼 친근하게 접근하고 다뤄줬으면 좋겠다는 뜻을 담았다. 

흔히 희롱이라고 하면 부정적인 의미를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여기엔 ‘가지고 놀다, 즐기다, 좋아하다, 흥에 겨워하다’ 등 긍정의 뜻으로 여길 수 있는 요소도 많다. 설령 그렇지 않다고 해도 책을 가지고 논다는 건 분명히 이로운 일이다. 어찌 이로운 장난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책방은 시작부터 지금까지 힘들었다. 작년엔 투잡도 시도했었다. 하지만 코로나19 대유행은 투잡의 길마저 막아버렸다. 그래도 띄엄띄엄 찾아오는 분들이 계셔서 다행이다. 이런 손님에게서 희망을 품는다. 감사할 뿐이다. 

이제 책방지기는 한 우물만 파기로 했다. 부디 그 한 우물에서 하루빨리 안정의 샘물이 퐁퐁 솟아나기를 바랄 뿐이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천리향의 계절이다. 외도동을 지나다 어느 주택 화단에 핀 천리향이 코를 찌르며 내 발목을 잡는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어떤 이로운 장난, 나이롱책방은”
하루쯤 어떤 이로운 장난을 하면서 놀아보는 건 어떨까요? 문득 책과 놀고 싶어질 때, 모든 걸 훌훌 털고 가까이 검은모래해변이 있는 어떤 이로운 장난 책방 “나이롱책방”을 찾아가 보세요. 아리따운 책방지기와 차를 마시면서 영양가 높은 이야기도 나눌 수 있습니다. 그 어떤 향기보다 좋은 책의 향기를 맡으면서 심신의 안정을 누릴 수 있습니다. 

찾아가는 길 : 제주시 선사로2길(삼양일동) 37
영업시간 : 월, 화, 금, 토, 일 10월~4월 12:00 ~ 18:00, 5월~9월 12:00~19:00
인스타 : www.instagram.com/nylong.bookshop

고봉선은?

제주시 애월읍 고성리에서 농부의 딸로 태어나 식물과 함께 자랐다. 지금은 허름한 고향 시골집에서 꽃과 함께, 독서지도사를 하며 아이들과 지내고 있다. 한국해양아동문화연구소 운영위원, 애월문학회 회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독립언론 [제주의소리]에서 [고봉선의 마을 책방을 찾아書]를 통해 격주로 독자들을 만난다. 마을 책방에 깃든 사람과 책 이야기가 소개된다.저서로는 시집 ‘詩를 먹고 자라는 식물원’, 꽃과 함께 사는 이야기 ‘詩가 사는 기행식물원1, 2, 3, 4’, 동화집 ‘지우개’가 있다. 식물원 시리즈로 전자도서관에 식물원을 꾸미는 게 소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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