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시단(詩壇)의 거장이자 재일제주인 1세대, 김시종 시인의 대담집 ‘재일(在日)을 산다-어느 시인의 투쟁사’(보고사)가 제주학연구센터 제주학총서로 번역·출판됐다.

49번째 제주학총서인 이 책은 김 시인과 일본 문예·사회비평가 사타카 마코토 간의 대화를 정리했다. 제주대학교 일어일문학과 이창익 교수가 번역했다.

김시종 시인은 일본어를 근본적으로 이해하면서 심오한 해석을 통해 새로운 어휘를 창조하는 시인으로도 평가받는다. 또한 일본사회의 우경화를 날카롭게 비판하는 사상가로 불린다.

20세 나이에 4.3을 피해 일본으로 건너간 시인은 대담에서, 일제 강점기 때 자신이 부끄러운 황국소년이었음을 고백한다. 더불어 일본으로 건너와 자신이 증오하는 일본어로 시를 써온 과정을 밝힌다. 현재 일본의 우경화와 내셔널리즘의 확산을 우려하면서 이에 동조하는 문학인들과 정치인을 예리하게 비판한다.

대담에서는 어린 시절 제주도와 4.3당시 모습도 잘 그려져 있다. 생소한 한국 전통음악 공연에 항의했던 제주도 관중들의 소동, 4.3 당시 자신에게 닥쳤던 숙부의 죽음을 둘러싼 상황을 생생하게 증언한다. 수십 년 지나서 고향에서 벌인 진혼 굿과 이를 통한 숙부 가족과의 정신적인 화해 등을 담았다.

재일제주인 작가 김석범·양석일 과의 사연, 윤동주·김사량 등 예술인들 이야기, 북한과의 관계 개선에 대한 일본정부의 자세 등 다양한 주제도 다룬다.

제주학연구센터는 “이 책의 표제인 ‘재일(在日)을 산다’는 도일 후 일본에서 조총련 활동을 하던 자신이 일본어로 시를 쓴다는 이유로 조총련에서 배척되고 조국에도 갈 수 없는 자신 뿐만 아니라, 자신과 비슷한 사람들의 온갖 상황을 함축한다”면서 “연장선상이 한국과 일본 사이의 ‘경계인’이라 불리는 현재의 재일한국·조선인의 모습임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보고사, 1만3000원.

대담집 ‘재일(在日)을 산다-어느 시인의 투쟁사’를 번역한 이창익(왼쪽) 교수와 김시종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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