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길웅의 借古述今] (213) 정이월 바람살에 검은 암소 뿔 오그라진다

* 보름살 : 바람살, 바람결
* 암쉐 : 암소

정이월은 음력으로 하는 말이니 양력으로 대충 3월에 해당한다. 

3월이면 유채꽃이 밭 한가득 피어 밭담 너머로 남실거리고, 길가 둔덕에 개나리가 피어 샛노랗다. 버들개지에 움이 트는 걸 신호로 초목들이 다투어 새잎을 내밀기 시작하니, 그야말로 만물이 회생하는 절기다. 생기발랄한 생영의 계절이다. 햇볕이 따사롭고 살랑거리는 봄바람이 낯을 간지럽힌다.

4월 제주 유채꽃 위에 강한 바람을 동반한 싸라기눈이 내리고 있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봄철 만발한 제주 유채꽃 위에 차고 강한 바람을 동반한 싸라기눈이 내리고 있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한데 추위가 아주 물러난 것이 아니다. 겨울이 지나갔다고, 이젠 따뜻하고 화창한 봄이라고 한시름 놓았다가는 크게 혼쭐이 난다. 그렇게 호락호락 물러날 추위가 아니다.

초봄이 지나 따뜻해지고 꽃이 다투어 필 무렵쯤, 갑작스럽게 날씨가 추워진다. 며칠 따사로운 볕을 쬐다 몰려온 추위에 사람들이 몸을 움츠리게 된다.

꽃샘추위다. 일시적이지만 맹렬한 기세다. 꽃이 피는 걸 시샘한다 해서 ‘꽃샘추위’다. 꽃을 샘내는 추위라 함이다.

영하로 기온이 내려가 낮과 밤의 기온 차가 곤두박질 펴 10~20도까지 벌려지기도 한다. 일교차다.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는 계절의 교차로, 홀연히 겪는 추위에 사람들이 안절부절못한다. 급격히 일교차가 우심하므로 환절기에 면역력이 떨어질 우려가 크므로 건강관리에 유의해야 할 시기다. 

꽃샘추위는 그렇게 이미 와 있는 봄의 뒤통수를 한 방 치는 격이다. 이를테면 그 질투 많은 추위가 가는 척하다가 한 번 슬쩍 들르는 이상한 버릇 아닌가 말이다. 이런 걸 보면, 자연이라고 선순환구조는 아니다.

“꽃샘추위는 꾸어다 해도 한다”는 말을 한다. 어느 해 봄이건 꽃샘추위 없이 지나간 적이 없다. 꼭 있다는 뜻이다. 얄궂게도 만물이 봄 치장하느라 부산한 3월에 온다.

제주흑우. 천연기념물로 지정 관리되고 있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제주흑우. 천연기념물로 지정 관리되고 있다. 제주에는 정이월(음력 2월) 찾아오는 꽃샘추위가 얼마나 매서웠으면 ‘정이월 보름살에 검은 암쉐 뿔 호그라진다’는 속담이 전해진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정이월 보름살에 검은 암쉐 뿔 호그라진다’는 사실적이면서 과장적이다.

음력 정이월 바람살은 흔히 하는 말로 ‘알아주어야’ 한다. 봄 날씨에 농에 넣었다 꺼내 입은 덧옷 새로 냉기가 스며들 정도로 바람살이 매섭다. 보통 몰풍스럽지 않다. 이 말은 꽃샘추위가 혹독하다 한 것이니 기후현상 그대로 표현한 것이나, 그 바람살에 검은 암소 뿔이 오그라진다 함은 지나친 과장이다. 아무려면 추위에 소의 뿔이 오그러들겠는가.

그러니까 꽃샘추위가 어지간히 추움을 실감 있게 나타내고자 한 의도다. 실제 상황이 아님은 말할 것도 없다. 강조하려 한 것이다.

그만하면 꽃샘추위의 위력을 한마디로 잘 풀어냈다.

요즈음 3월 초순, 완연한 봄 날씨다. 아직 꽃샘을 까맣게 잊고 있지만, 며칠 후면 비바람이 혹은 눈비를 몰고 맹위를 떨치며 꽃샘추위가 입성해 올 것이다. 꽃샘추위는 꼭 있다. 한두 번만 하고 넘어갔으면 좋겠다. 

암쉐 뿔 오그라질 걱정은 그만두고 우리들이 다시 몸을 잔뜩 움츠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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