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칼럼 ①] 강영진 한국갈등해결연구원장·갈등해결학 박사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제2공항 갈등 해소를 위한 제주도민 여론조사는 추진측과 반대측 간의 거듭된 합의와 약속에 의해 이뤄진 조사였다.  10일 원희룡 지사의 도민사회 민의를 거스른 "제2공항 정상 추진" 입장 발표는 도민 대의기관인 도의회와의 합의를 위반하고 민의를 거스르는 배임행위에 해당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 이미지 = 최윤정 기자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강영진 한국갈등해결연구원장(갈등해결학 박사)는 국내 1호 ‘갈등해결학 박사(Ph.D in Conflict Analysis and Resolution)’다. 동아일보 기자로 10년간 일하다 산업화·민주화 이후 우리 사회에 봇물처럼 터져나오는 갈등 분쟁의 해법을 연구하기 위해 유학길에 올랐다. 하버드대 법률대학원 분쟁해결과정(PON)을 거쳐 조지메이슨대 갈등해결연구원(ICAR)에서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갈등해결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버지니아주 대법원 인증 전문 중조인으로 실무경험을 쌓았다. 성균관대 국정관리대학원 겸임교수, 갈등해결연구센터장, 서울시 갈등조정관 등을 지냈다. 현재 한양대 공공정책대학원 특임교수를 맡고 있다. 제주 제2공항과 관련해선 국토교통부의 공항갈등포럼 위원장, 제주제2공항 타당성재조사 검토위원회 위원장, 제주제2공항 여론조사 공정관리 공동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는 등 명실공히 갈등문제 해결 분야의 국내 최고 전문가다. 제2공항 여론조사 과정 전반과 이번 여론조사 결과에 기반한 국토부의 처리 방향에 대해 전문가 특별칼럼을 세차례에 걸쳐 싣는다. / 편집자    

 

강영진 한국갈등해결연구원장 ⓒ제주의소리
강영진 한국갈등해결연구원장 ⓒ제주의소리

필자는 국토교통부의 공항갈등포럼 위원장, 제주제2공항 타당성재조사 검토위원회 위원장을 맡았었고, 최근에는 제주도와 도의회가 공동으로 구성한 제주제2공항 여론조사 공정관리 공동위원회 위원으로서 이번 여론조사 전반을 기획하고 조사결과를 검토-승인하는 일을 한 바 있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어제 원희룡 지사가 국토부에 제출한 「제주 제2공항 건설 관련 제주특별자치도 입장」(이하 「제주도 입장」으로 약칭)은 대단히 중대하고 심각한 문제점들을 안고 있다. 필자가 직접 관여했거나 또는 관련 자료로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을 토대로 이번 여론조사가 어떻게 이뤄진 것인지, 향후 국토부 및 중앙정부는 그 결과를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밝히고자 한다.    

 원희룡 지사 입장문은 합의 위반, 민의 거스르는 ‘배임행위’  

어제 원희룡 지사가 내놓은 「제주도 입장」은 짚어야 할 문제점이 너무나 많다. 무엇보다 심각한 문제는 그동안 그 자신을 포함해 관련 기관‧단체 간 쌓아온 합의를 정면으로 깨뜨리는 행위라는 사실이다. 현대 민주사회는 사회 구성원간 계약과 합의에 기초한다. 명시적 ‧묵시적 약속을 지킬 것이란 믿음으로 모든 행위와 거래가 이뤄지고 사회가 유지‧운영된다. 원지사의 어제 발언과 입장문은 제2공항 문제와 관련한 그간의 모든 합의와 약속을 일방적으로 어기는 내용이었다. 자치단체 장으로서 자격이 없음은 물론이거니와, 민주주의 사회에서 함께 살아갈 기본조차 안돼 있음을 드러낸 처사다.    
 
모두 알다시피, 이번 제2공항 여론조사는 여느 단순한 여론조사가 아니었다. 5년여간 지속돼온 제주사회의 최대 갈등현안을 해결하기 위해 국토부, 정부여당, 제주도, 제주도의회, 반대단체 등 책임있는 기관과 관련 당사자들 간 합의로 시행된 조사였다. 조사 결과에 따라 제2공항 사업의 계속추진 여부를 사실상 최종 결정짓는다는 전제 하에, 추진측과 반대측 간의 거듭된 합의와 약속에 의해 이뤄진 조사였다.  

국책사업 추진여부를 어떻게 여론조사로 결정하느냐는 시각도 있는데, 국내에도 그런 예가 없지 않다. 대표적인 예가 제주해군기지다. 해군기지 사업 강행에 대해 강정마을을 비롯한 도민사회에서 반발이 크자 2007년 5월 당시 김태환 도지사 주도로 제주도민 1500명, 그리고 후보지로 거론된 3개 읍·면·동 주민 각 1000명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실시했고, 그 결과 찬성 의견이 많음을 앞세워 해군기지 건설을 강행한 바 있다. 

당시 그 여론조사의 가장 큰 문제점은 해군과 김태환 도지사측에서 일방적으로 추진한 조사였다는 점이다. 그 때문에 지탄과 반발의 대상이 됐을 뿐이다. 반면, 이번 제2공항 여론조사는 관련 주요 당사자들간 합의로 시행된 것이란 점에서 그와 다르다. 조사결과에 큰 의미와 효력이 생기는 것도 합의에 기반한 조사였기 때문이다.  

합의의 시발점이 된 것은 2019년 2월 당정협의였다. 국토부는 “합리적, 객관적 절차에 의해 도민의견을 수렴하여 제출할 경우 이를 정책결정에 충실히 반영, 존중한다.”고 문서로 확약했다. 그런데, 그후 근 2년이 지나도 진척이 없자 지난해 12월 8일 국토부 고위 당국자가 제주도 및 도의회를 방문해 도‧도의회가 서로 합의해 여론조사를 실시하도록 촉구했다. 그에 따라 3일 후(12월 11일) 원희룡 지사와 좌남수 도의회 의장이 합의해 성사된 것이 이번 여론조사다. 

도와 도의회 간 합의로 「제주제2공항 여론조사 공정관리공동위원회」가 구성돼 조사기관 선정, 조사방법 설계 등 세부 사항까지 합의했고, 안심번호 문제로 도내 9개 언론사까지 적극 나서서 이뤄지게 된 것이 이번 여론조사다. 우여곡절 끝에 여론조사가 실제 이뤄지고, 지난 2월 19일 여론조사 공관위가 열렸다. 장시간의 검토와 언쟁 끝에, 이번 조사결과는 “합리적, 객관적 절차에 의한 도민의견 수렴결과”라는 데 만장일치로 합의했다. 공관위는 제주도가 도민의견 수렴결과로 이번 여론조사 결과를 가감없이 그대로 국토부에 제출하도록 의결했다. 이와 같이 특정 갈등·분쟁 사안에 관한 당사자간 합의와 그에 따른 결과는 법률적으로 재판상 화해 또는 확정판결과 동일한 효력을 인정받는 게 통례다. 

그후 제주도는 공관위 의결대로 국토부에 도민의견 수렴결과를 제출했다. 문제는 그 다음부터 벌어지게 된다. 국토부측에서 여론조사 보고서와 별도로 제주도의 입장을 요구해온 것이다. 공항시설법 상 국토부 장관은 공항개발 종합계획 또는 기본계획을 수립하거나 변경할 때 “관할 지방자치단체의 장의 의견을 들은 후 관계 중앙행정기관의 장과 협의”하도록 규정돼 있다. “책임 떠넘기기”란 비판이 있긴 하지만, 국토부의 요구는 이런 법규정에 의거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문제는 그에 따라 어제 제주도가 제시한 의견의 내용이다. 공항시설법 시행령 상 국토부 장관으로부터 의견제시를 요청받은 관할 지방자치단체의 장은 “주민의 의견을 들어야 한다.”고 규정돼 있다. 국토부측도 제주도의 입장을 요구하는 공문에 아래와 같이 적시했다.

“제주특별자치도는 공항시설법 등 관계법령에 따라 제주 제2공항과 관련한 도민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그를 반영한 사업추진 필요 여부 등에 대한 제주도의 입장을 파악해서 전달해야 하는 책임이 있습니다.”  

즉, 도민의견 수렴결과와는 별도로 제2공항 문제에 대한 제주도(혹은 도지사)의 입장을 제출하라고 한 것이 아니라, 도민의견 수렴결과를 그대로 반영한 입장을 정리해 제출하라는 게 법률상, 행정상 요구였던 것이다. 그런데, 막상 제주도가 어제 국토부에 제출한 입장은 그렇지 않았다. 이번 여론조사 결과와는 정반대의 의견을 제출했다. 도민들 다수의 의견과는 정면으로 배치되는 도지사 자신의 의견을 “제주도의 입장”이라 칭하며 제출한 것이다. 

이것은 그동안 이뤄진 수많은 합의사항을 정면으로 위반하는 것이다. 도민 의견수렴 결과를 그대로 반영하는 의견을 제출하도록 한 관련 법령 및 국토부의 요구에도 어긋나는 일이다. 이는 약속 위반 차원을 넘어서는 문제다. 도지사로서 이번 여론조사 결과 확인된 제주도민의 뜻을 정면으로 거부하고 거역하는 행위다. 위임받는 권한을 행사하는 공직자로서는 결코 해선 안될 배임행위에 해당하는 처사다. / ②편 칼럼은 12일에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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