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칼럼 ②] 강영진 한국갈등해결연구원장·갈등해결학 박사
입지갈등 '주민수용성'의 주민은 이득 아니라 피해 주민...온평·신산·난산·수산1리

강영진 한국갈등해결연구원장(갈등해결학 박사)는 국내 1호 ‘갈등해결학 박사(Ph.D in Conflict Analysis and Resolution)’다. 동아일보 기자로 10년간 일하다 산업화·민주화 이후 우리 사회에 봇물처럼 터져나오는 갈등 분쟁의 해법을 연구하기 위해 유학길에 올랐다. 하버드대 법률대학원 분쟁해결과정(PON)을 거쳐 조지메이슨대 갈등해결연구원(ICAR)에서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갈등해결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버지니아주 대법원 인증 전문 중조인으로 실무경험을 쌓았다. 성균관대 국정관리대학원 겸임교수, 갈등해결연구센터장, 서울시 갈등조정관 등을 지냈다. 현재 한양대 공공정책대학원 특임교수를 맡고 있다. 제주 제2공항과 관련해선 국토교통부의 공항갈등포럼 위원장, 제주제2공항 타당성재조사 검토위원회 위원장, 제주제2공항 여론조사 공정관리 공동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는 등 명실공히 갈등문제 해결 분야의 국내 최고 전문가다. 제2공항 여론조사 과정 전반과 이번 여론조사 결과에 기반한 국토부의 처리 방향에 대해 전문가 특별칼럼을 세차례에 걸쳐 싣는다. / 편집자   
강영진 한국갈등해결연구원장·갈등해결학 박사
강영진 한국갈등해결연구원장·갈등해결학 박사

[①편 칼럼에 이어] 지난 10일 원희룡 지사가 국토부에 제출한 「제주 제2공항 건설 관련 제주특별자치도 입장」(이하 「제주도 입장」으로 약칭)은 들여다보면 볼수록 가관이고, 문제가 정말 심각하다. 상식, 논리, 합리라곤 찾아볼 수 없이, 지극히 옹색하고 옹졸하기 짝이 없는 아전인수, 견강부회의 전형을 시전하고 있을 뿐이다. 단적인 예 하나만 짚자면 다음과 같다. 

이번 여론조사는 2년전 당정협의 이후 계속돼온 합의사항대로 도민의견수렴을 통해 갈등을 해소하기 위한 것이었다. 제2공항은 성산만이 아니라 제주도민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사안이다. 따라서 의견수렴의 대상은 언제나 예외없이 일관되게 “도민”이었다. 성산지역 주민의견은 단 한번도 따로 의견수렴 대상으로 거론된 적이 없었다. 오로지 딱 한번 등장하는 게 이번 여론조사 시행 직전, 제주도와 도의회 간 협상과정에서였다. 처음엔 50% 가중치를 요구하던 원지사측이 성산지역 조사를 강력히 요구했고, 도의회 협상대표가 여론조사의 성사를 위해 마지못해 받아주게 된 게 성산주민 대상 조사였다. 단, 그것도 도민 의견수렴의 본질인 전체 도민대상 여론조사와는 별도 조사로 하여, 그야말로 도정에 ‘참고용’으로 하라고 별책부록처럼 덧붙여지게 된 것이 성산주민 대상 조사였다.  

 전체 도민대상 여론조사 쏙 뺀채 제주도 입장문 

이번 여론조사가 이뤄진 경위와 취지가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원지사측이 국토부에 제출한 「제주도 입장」은 본말전도, 주객전도 그 이상이다. 국토부에 제출하는 제주도의 입장에서 본(本)이자 주(主)가 되어야 할 것은 전체 도민대상 여론조사에서의 찬반 결과다. 그런데 원지사측이 국토부에 제출한 입장문에는 그에 대한 내용은 전혀 없고, 맨 첫 대목부터 성산주민 대상 조사결과만 드러내 강조하고 있다. 

반면, 전체 도민 대상 조사결과는 다음과 같이 딱 한 문장으로 처리돼 있다. 
“전체 도민 여론의 가장 큰 특징은 제2공항 인근 지역은 압도적으로 찬성한 반면, 공항에서 먼 지역은 반대가 우세하다는 점임.”
두 기관의 조사결과 모두 반대가 다수로 나왔다는 사실은 전혀 언급조차 없다. 그게 이번 여론조사 결과의 본질이고 핵심이란 건 누구도 부인 못할 사실인데도, 애써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 도민들의 찬-반 의견이 단지 제2공항과 가깝고 먼 거리에 따라 나뉜 걸로 간단히 재단하고 있는 것도 심각한 문제다. 그게 사실이라면 과거에 찬성이 높게 나오던 여론조사 결과는 어떻게 설명할 건가? 

성산 제2공항이 계획이 발표된 직후인 2015년말 KBS 조사 결과는 이번 조사와 정반대였다. 전체 도민 중 71.1%가 찬성이었고, 반대는 28.9%였다. 그럼, 그 당시엔 도민들 대다수가 사는 곳이 모두 제2공항에 가까웠고 지금은 다 멀어진 것인가? 반면, 성산읍 주민 중에선 오히려 반대가 51.4%로 찬성보다 더 많았다. 제2공항에 제일 가까운 성산읍 주민들 다수가 반대한 건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명색이 도정을 이끈다는 측이 도민들의 의견을 이런 식으로 자신들 입맛에 맞게 아전인수로 해석하고 아주 간편하게 재단하고 한 것을 도민들 앞에 떡하니 내놓고 중앙정부에  당당하게 제출하는 광경 앞에, 뭐라고 해야 할지 말문이 막힐 따름이다.  

제주도가 국토부에 제출한 '제주 제2공항 건설 관련 제주특별자치도 입장'. 이번 제2공항 갈등해소를 위한 도민여론조사의 핵심인 전체 제주도민 여론조사 결과는 아예 빼놓고 성산 주민 여론조사 결과만 부각시켜 언급하고 있다.  ⓒ제주의소리
제주도가 국토부에 제출한 '제주 제2공항 건설 관련 제주특별자치도 입장'. 이번 제2공항 갈등해소를 위한 도민여론조사의 핵심인 전체 제주도민 여론조사 결과는 아예 빼놓고 성산 주민 여론조사 결과만 부각시켜 언급하고 있다.  ⓒ제주의소리

주민수용성은 피해 보는 인접 주민들이 중요 

원지사측이 국토부에 제출한 「제주도 입장」의 핵심 결론을 간추리면, 성산주민들의 찬성률이 압도적으로 높아 “공항 입지에 대한 주민수용성에 문제가 없다는 것을 확인했”으니 제2공항을 그대로 추진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전체 도민의견도 중요하지만 공항 인근 지역 주민들의 수용성도 중요한 고려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것은 맞다. 그렇지 않으면 사업 추진과정에서 계속 해당 지역 주민들과 갈등이 벌어지고 사업에도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 

50년 넘게 인근 주민들과 갈등을 빚고 공항안전에 심각한 위협까지 초래하고 있는 일본 나리타공항의 경우가 그 대표적인 예다. 이번 도민 여론조사의 의미가 컸던 것도 그 때문이다. 피해지역 주민들을 대표하는 성산대책위측에서 만일 자신들로선 받아들이기 힘든 결과가 나오더라도 전체 도민의견 조사결과에 승복하기로 약속함으로써 도민의견 수렴절차가 추진될 수 있었다.

원래 입지갈등에서 주민수용성을 논할 때의 그 ‘주민’은 해당 시설로 인해 이득을 보는 주민들이 아니라, 피해를 보는 주민들을 가리킨다. 공항으로 인해 집과 밭을 수용당하거나 자손 대대로 소음피해를 안고 살아가야 하는 인근 주민들의 수용성이 인권 차원에서도 그렇고 사업의 원만한 추진을 위해서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원지사측이 내세우는 높은 찬성률의 성산주민들은 공항 부지로부터 거리가 꽤 멀리 떨어져 피해는 거의 없고, 개발이익만을 기대하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그 점에서 원지사측 입장문은 주민수용성의 개념을 전혀 잘못 갖다붙여 억지로 끌어낸 결론인 셈이다.  

이런 식으로 해당 시설 입지로 인해 피해를 보게 되는 인접 주민들이 아니라, 대다수는 멀리 떨어져 별 영향을 안 받거나 이득을 기대하는 주민들을 대상으로 수용성 운운하며 사업을 강행하려는 것은 제주해군기지 추진 당시 김태환 지사가 취했던 것과 똑 같은 방식이다. 당시 김태환 지사측은 여론조사로 해군기지 유치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하면서, 막상 해군기지가 들어설 강정마을만이 아니라 대천동 전체를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실시해 지탄과 비웃음을 샀다. 당시 강정마을 인구는 대천동 전체의 28% 정도였다. 이번 성산지역 별도 여론조사에서도, 온평 신산 난산 수산1리 등 피해지역 4개 마을 주민 숫자는 4,208명으로 성산읍 전체 인구(15,412명)의 27% 정도다. 공교롭게도, 강정마을의 경우와 거의 같은 비율이다. 우연의 일치치곤 소름끼친다. 아픈 역사는 반복된다는 신호탄인 걸까. 

이 외에도, 원지사의 기자회견 발언과 「제주도 입장」에는 허점, 맹점, 허위, 잘못된 점들이 너무나 많다. 안 그래도 길어진 글로 독자들께 미안해 더 이상 언급을 삼갈 따름이다. / 14일 ③편 칼럼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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