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칼럼 ③] 강영진 한국갈등해결연구원장·갈등해결학 박사
이번 여론조사 설계의 준거는 주민투표법...결과 처리도 동법 준용 마땅
주민투표 대신 성격의 여론조사...결국 “유효투표수 과반수 득표로 확정”
3월 공포-시행되는 행정기본법 “행정청은 합리적 신뢰보호” 행정 대원칙

강영진 한국갈등해결연구원장(갈등해결학 박사)는 국내 1호 ‘갈등해결학 박사(Ph.D in Conflict Analysis and Resolution)’다. 동아일보 기자로 10년간 일하다 산업화·민주화 이후 우리 사회에 봇물처럼 터져나오는 갈등 분쟁의 해법을 연구하기 위해 유학길에 올랐다. 하버드대 법률대학원 분쟁해결과정(PON)을 거쳐 조지메이슨대 갈등해결연구원(ICAR)에서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갈등해결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버지니아주 대법원 인증 전문 중조인으로 실무경험을 쌓았다. 성균관대 국정관리대학원 겸임교수, 갈등해결연구센터장, 서울시 갈등조정관 등을 지냈다. 현재 한양대 공공정책대학원 특임교수를 맡고 있다. 제주 제2공항과 관련해선 국토교통부의 공항갈등포럼 위원장, 제주제2공항 타당성재조사 검토위원회 위원장, 제주제2공항 여론조사 공정관리 공동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는 등 명실공히 갈등문제 해결 분야의 국내 최고 전문가다. 제2공항 여론조사 과정 전반과 이번 여론조사 결과에 기반한 국토부의 처리 방향에 대해 전문가 특별칼럼을 세차례에 걸쳐 싣는다. / 편집자   

[마지막회 결론 제시에 앞서] 이 칼럼을 처음 시작할 때 밝혔듯이, 저는 제2공항 문제 등과 관련해 국토부가 구성-운영했던 두 개의 위원회에 국토부 위촉으로 위원장을 맡았었습니다. 이번 여론조사 시행에 앞서 마지막으로 열린 이틀간의 생방송 심층토론회 또한 국토부 및 제주도 측 위촉으로 전반적인 기획-진행 및 사회를 맡은 바 있습니다. 그리고, 이번 여론조사 공정관리위원회에도 참여해 조사방법 설계 및 실행, 결과 검토-승인 전반에 관여한 바 있습니다. 
많은 독자분들의 언급대로 필자 자신의 전공도 있기 때문에 제2공항 문제에 대해 찬-반 어느 한쪽 편이 아니라, 중립적인 차원에서 이 문제가 최대한 원만하고 정의롭게 해결되도록 하는 쪽의 역할을 하려고 애써왔습니다. 중요한 고비마다 국토부가 필자에게 역할을 맡긴 것도 그래서였을 것입니다. 지난번 원희룡 지사가 국토부에 제출한 입장문의 문제점을 지적한 것도 찬반을 떠나 바로 그 점 때문이었습니다. 기존의 약속과 합의를 정면으로 위반하고, 그간의 오랜 해결노력에 찬물을 끼얹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스포츠 경기에서 심판이 엄정 중립을 지키는 것은 모두가 룰을 지키고 결과에 승복하는 한에서입니다. 선수가 게임의 룰을 어기고 일방적으로 자신의 승리를 주장하는 상황에서도 심판이 중립을 지킬 순 없고, 그래서도 안된다고 봅니다. 
그간 제2공항 문제에 대해, 특히 도민의견 수렴을 통한 문제해결과정에 깊이 관여해온 필자로선 도민 여러분들이 오랫동안 힘겹게 애써온 일이 잘 마무리되도록 해야 할 책임도 있기 때문에 굳이 붓을 들게 됐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 다시 한번 그런 관점을 확인하며 향후 해결방향을 제시하려 합니다. 너무나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글이 길어지더라도 양해하시고 끝까지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 필자  

강영진 한국갈등해결연구원장·갈등해결학 박사 ⓒ제주의소리
강영진 한국갈등해결연구원장·갈등해결학 박사 ⓒ제주의소리

[②편 칼럼에 이어] 이제 공은 국토부로 넘어갔다. 제2공항 문제는 국토부가 제주공항인프라확충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사안이다. 정책 당국으로서 문제해결의 책임이 있는 국토부는 어떻게 해야 하나?

좌고우면할 것 없이 명백하다. 그동안 제주도민과 국민들께 누누이 약속해온 대로 하면 된다. 제2공항 문제와 관련, 국토부가 2년전 당정협의 이후 수차례에 걸쳐 문서로 거듭 확약해온 게 있다. 도민의견 수렴결과를 정책결정에 충실히 반영하겠다는 것이다. 거기에 내건 조건은 단 하나, “제주특별자치도가 합리적, 객관적 절차에 의해 도민의견을 수렴하여 제출할 경우”였다. 

제주도와 도의회가 공동으로 구성한 「제주제2공항 여론조사 공정관리 공동위원회」는 2월 19일 장시간의 검토-심의 끝에 △이번 도민여론조사 결과가 “합리적, 객관적이고 공정한 도민의견수렴 결과”임을 확인하고 △도지사는 도민여론조사 결과를 그대로 국토부에 제출하도록 의결했다. 그에 따라 제주도지사는 23일 “가감없이” 그대로 여론조사 결과를 국토부에 제출했다. 국토부가 내건 조건이 완전히 충족됐으니, 이제 국토부가 약속을 이행하는 일만 남았다. 도민의견 수렴 결과를 정책결정에 충실히 반영하면 되는 것이다. 

그 후에 국토부로선 조금 고민스러울 수 있는 문제가 벌어지긴 했다. 국토부는 관련 법규상 “관할 지방자치단체의 장의 의견”을 듣도록 한 조문 때문에 제주도에 공식 입장을 요구했다. 제주도지사가 여론조사 공관위 의결대로 이번 도민의견 수렴결과를 그대로 반영한 ‘제주도의 의견’을 제출했으면 아무 문제가 없었을 터였다. 그런데, 원희룡 지사는 지난 10일 도민의견 수렴결과가 아닌 성산읍민 ‘별도조사’ 결과만 앞세운 “제주도 입장”을 국토부에 제출해버렸다. 

처음 공식 제출한 도민의견 수렴결과와는 전혀 다른, 정반대의 결론이 담긴 “관할 지방자치단체의 장의 의견”을 받아든 국토부로서는 당혹스럽기도 했을 것이다. 이럴 때일수록, 책임있는 국가기관으로서 중심을 잡고 분명히 할 것은 분명히 해야 한다. 관련 법규상 관할 단체장의 의견을 듣는 절차는 일단 이행했다. 단체장의 의견을 들은 후 어떻게 처리할지에 대한 별다른 의무규정은 없다. 국토부의 재량에 맡겨진 셈이다. 

지난 10일 “제주도 입장”을 국토부에 제출하면서 기자회견에서 원지사가 언성높여 강조한 것이 있다. 제주도에 떠넘기지 말고 “국토부와 대통령이 결정하라”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이제 국토부와 대통령이 결정해야 한다. 원지사측의 의견을 듣긴 하되, 원지사측이 그간 강조해온 대로 ‘참고용’이니 그야말로 참고만 하면 된다. 내용 상으로 보면 더더욱 그렇다. 대다수 도민의견을 반영하지 않고 도지사 개인의 의견을 제출한 것이어서 관련 법규의 취지에도 맞지 않기 때문이다.  

제주도와 도의회의 합의로 제2공항 도민갈등 해소를 위해 전체 도민을 대상으로 실시한 엠브레인퍼블릭, 한국갤럽의 제주 제2공항 도민여론조사 결과. ⓒ제주의소리
제주도와 도의회의 합의로 제2공항 도민갈등 해소를 위해 전체 도민을 대상으로 지난 달 실시한 엠브레인퍼블릭, 한국갤럽의 제주 제2공항 도민여론조사 결과. 두 곳 모두 전체 도민여론조사 결과 '반대'가 '찬성'을 앞섰다.  ⓒ제주의소리

  도민의견 수렴결과, 어떻게 판단-반영해야 하나?

국토부가 이번 도민의견 수렴결과를 정책결정에 반영하는 문제와 관련, 며칠 전 고위 관계자가 필자와의 대화 중에 조심스레 언급한 것이 마음에 걸린다. 이번 여론조사 결과에서 한 기관(엠브레인)의 조사는 반대가 찬성에 비해 오차범위 이상으로 많고 과반수여서 결과가 분명한데, 다른 한 기관(갤럽)의 조사는 반대가 많긴 하나 오차범위 이내로 애매하게 나와서 문제라는 취지였다.   

이번 여론조사에서 “제2공항 건설”에 대한 전체 도민의 찬반 결과는 다음과 같았다. 
• [엠브레인] 찬성 43.8%, 반대 51.1%. 찬반 차이 7.3% = 오차범위(±2.19%) 이상
• [갤럽] 찬성 44.1%, 반대 47.0% . 찬반 차이 2.9% = 오차범위(±2.2%) 이내

엠브레인 조사결과는 명확하지만, 갤럽 조사결과가 좀 애매하게 나오게 된 것은 “잘 모르겠음/무응답”의 비중이 8.9%로 유난히 높게 나왔기 때문이다. 당초 여론조사 공관위에서 이번 조사의 틀을 짤 때는 이런 결과가 나올 것을 우려해서 아예 “잘 모르겠음”의 선택지를 없애고 찬-반 중에서만 택일하도록 하여 무효표를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설계했었다. 그런데, 안심번호 문제로 인해 여론조사 주관이 도내 9개 언론사로 넘어가고, 조사업체에서도 엄밀하게 조사를 수행하느라 결과적으로 무효 응답비율이 예상 외로 많아진 것으로 보인다.   

사실 이런 문제는 여론조사 방식으로 정책‧사업 추진여부나 후보단일화 등 어떤 결정을 내리려 할 때 종종 벌어지는 일이다. 이런 경우 주로 쓰이는 해결 방법은 두가지다.  

첫째, 관련 법규정을 준용하는 것이다.
공관위에서 이번 여론조사를 설계할 때 주된 준거로 삼은 것은 주민투표법이다. 우선, 조사 대상을 정할 때부터 제주도측 요구에 따라 주민투표법을 적용하기로 했다. 일반적인 여론조사는 선거법상 기준을 적용해 만18세 이상을 대상으로 한다. 그러나 이번 제2공항 여론조사의 경우, 여러 사정상 주민투표를 대신하는 성격의 조사이므로 주민투표법의 기준을 준용해 만 19세 이상을 대상으로 하기로 했다. 

이번 여론조사의 문항도 주민투표의 형식과 똑 같도록 했다. 주민투표법 제15조는 “주민투표는 특정한 사항에 대하여 찬성 또는 반대의 의사표시를 하거나 두 가지 사항중 하나를 선택하는 형식으로 실시하여야 한다.”고 못박고 있다. 이번 여론조사에서도 제2공항 찬반만 묻는 형식을 취하게 됐다. 그런 취지에 따라 “잘 모름”의 선택지는 안넣는 걸로 했다. 

이번 여론조사 방법과 형식에서 주민투표법을 준용했으므로, 조사결과를 처리하는 기준과 방법도 주민투표법을 준용하는 것이 논리상 맞을 것이다. 주민투표법 제24조는 주민투표 결과의 확정 방법을 다음과 같이 정하고 있다. 
“주민투표에 부쳐진 사항은 주민투표권자 총수의 3분의 1 이상의 투표와 유효투표수 과반수의 득표로 확정된다.” 

즉, 투표함에 투입된 투표지 중에서 표시가 찬반 양쪽 사이에 어중간하게 걸쳐 있거나 찬반 어디에도 표시가 없는 무효표는 모두 빼고 유효표만 계산하는 것이다. 그러면 한 표라도 많은 쪽이 과반수로 이기게 되고 이것으로 투표결과를 확정하는 것이다.  

이런 방법을 갤럽 조사결과에 적용해보면 결과가 보다 더 분명해진다.  “잘 모르겠음”, 무응답 등의 무효표 8.9%를 제외하고, 유효투표만을 대상으로 다시 계산하면 반대 51.6%,  찬성 48.4%가 된다. 결국, 주민투표법을 준용하면 갤럽 조사결과도 “반대”가 과반수 이상으로 많고 그 차이도 3.2%로 더 벌어져 그대로 최종 확정되게 되는 것이다. 

또다른 방법은, 유사한 전례나 관행을 적용하는 것이다. 여론조사 결과로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대표적인 예가 선거에서의 후보단일화다. 여론조사를 통한 후보단일화 사례는 대단히 많은데, 이번 조사와 비슷한 경우로 참고할 수 있는 대표적인 사례는 2002년 대선 때의 정몽준-노무현 단일화다. 

그때 사용된 여론조사 구조는 이번 제2공항 여론조사와 아주 유사한 방식이었다. 두 여론조사 기관이 각각 2,000명씩 대상으로 조사하고, 그 결과를 가지고 승부가 결정되도록 한 것이다. 양측 차이가 오차범위 이내더라도 조금이라도 높은 쪽이 이기는 것으로 하기로 두 후보가 합의했다. 다만, 한나라당 지지자들의 역선택을 방지하기 위해 본선 상대인 이회창 후보의 지지도가 해당 기간 최저치보다 낮게 나온 조사결과는 무효 처리하기로 했다. 

조사 결과, 한 기관의 조사에서 노무현 후보가 46.8%의 지지를 얻어 42.2%에 그친 정몽준 후보를 눌렀다. 또다른 조사기관의 결과도 노무현 후보 지지표가 38.8%로 정몽준 후보의 37.0%보다 조금 높았다. 그런데 한나라당 이회창후보의 지지율이 당시 최저 지지도보다 낮아 무효 처리됐다. 결국, 노무현 후보가 “1 : 0”으로 이겼고, 정몽준 후보는 곧바로 승복하고 결과를 받아들였다. 

이러한 두가지 처리방식‧기준을 제2공항 여론조사 결과에 적용했을 때 나오는 결론을 종합하면 이렇게 정리된다.
앞서 제시한 대로 주민투표법을 준용하면 최종 결과는 “2 : 0”이 되어 “제2공항 반대”로 확정되게 된다. 

통상적인 후보단일화 방식을 준용해도 최종 결과는 “2 : 0”이 된다. 특히 이번 여론조사의 경우 도민들의 높은 관심과 참여열기로 인해 응답률이 비상하게 높았기 때문에 신뢰도도 그만큼 높아져 오차범위가 크게 줄거나 상쇄하게 된다. 전체 도민 대상 조사의 응답률이 갤럽은 35.5%, 엠브레인 퍼블릭은 31.5%에 달했다. 지난해 중앙선관위 여론조사심의위의 집계에 의하면, 선거여론조사의 평균 응답률은 9.1%다. 이번 조사도 선거여론조사 형식을 취했는데, 응답률은 평균치의 근 4배 가까이 높았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일 통계학상 원칙을 엄밀하게 적용해 오차범위를 엄격히 적용한다면 최종 결과는 “1 : 0”이 되게 된다. 이 경우에도, 정몽준-노무현 후보단일화의 경우처럼 복수 기관의 조사결과 처리의 보편적 룰대로 이번 여론조사 결과는 “반대”로 확정되게 된다. 

원희룡 지사가 전체 도민 2000명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 결과를 제외한채 성산주민 500명 조사 결과만을 골자로  「제주 제2공항 건설 추진 제주특별자치도 입장」을 국토부에 제출하면서 찬반으로 나뉜 도민사회 갈등이 다시 최고조로 치닫는 가운데, 제주공항 인프라확충사업의 책임자인 국토부가 이 문제를 어떻게 처리할지 도민사회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제주의소리
원희룡 지사가 전체 도민 2000명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 결과를 제외한채 성산주민 500명 조사 결과만을 골자로  「제주 제2공항 건설 추진 제주특별자치도 입장」을 국토부에 제출하면서 찬반으로 나뉜 도민사회 갈등이 다시 최고조로 치닫는 가운데, 제주공항 인프라확충사업의 책임자인 국토부가 이 문제를 어떻게 처리할지 도민사회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제주의소리

  행정기본법 상 “신뢰보호 의무”, 적법한 조치 “철회” 가능

국토부가 요구해온 도민의견 수렴결과가 이렇게 명확히 도출됐으니, 이제 국토부가 해야 할 일 또한 명백하다. 그동안 누누이 확약해온대로 도민의견 수렴 결과를 정책결정에 충실히 반영한다는 방침을 재천명하고, 도민 의견에 따라 제2공항 추진계획을 철회하는 조치를 취하는 것이다. 항공정책위원회를 여는 일도 필수 절차 중 하나일 것이다. 제2공항 사업은 법정 상위계획인 항공정책기본계획, 공항개발 종합계획에 따른 것이기도 한데, 항공사업법 및 공항시설법 상 이런 상위 법정계획 또는 기본계획을 수립 또는 변경할 때 항공정책위원회의 심의를 거쳐야 한다. 

이와 관련, 국토부 등 정부당국에서 필히 참고할 것이 있다. 공공정책 및 행정업무의 금과옥조라 할 수 있는 행정기본법이 이제 비로소 국내 관가에 도입되게 됐다는 사실이다. 지난 2월26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 3월 중 공포-시행하게 되는 행정기본법은 “신뢰보호의 원칙”을 법조문으로 올려 의무화했다. 이 법 제12조 “행정청은 행정에 대한 국민의 정당하고 합리적인 신뢰를 보호하여야 한다.”는 규정인데, 이는 공공기관이 무엇보다 우선해서 반드시 지켜야 할 행정의 대원칙이다. 

국토부가 지난 2년간 제주도민들에게 누누이 약속해온 것이 있다. “객관적, 합리적인 도민의견 수렴결과를 정책결정에 충실히 반영한다”는 사실이다. 그에 따라 모든 관련 기관‧단체이 합의하고 도내 9개 언론사까지 직접 참여해 이뤄진 것이 이번 도민 여론조사다. 이러한 공적 약속에 대한 도민들의 정당하고 합리적인 신뢰를 보호하는 것이 국토부의 가장 중요한 의무임은 너무나 분명하다.    

한편, 특히 갈등 상황에서 공공기관 정책당국자들이 겪는 가장 큰 애로점 중 하나는 후진기어나 취소버튼을 찾기가 대단히 힘들다는 점이다. 법규정에 맞춰 추진하던 사업을 스스로 취소하거나 철회하는 일은 관가의 최고 기피‧금기사항이기도 하거니와,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에 가깝기도 하다. 이 점은 공공갈등 해결을 힘들게 하는 가장 주된 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이런 문제와 관련, 얼마전 국회를 통과한 행정기본법은 국토부 당국자들의 고민을 크게 덜어준다. 위법‧부당한 처분만이 아니라 “적법한 처분”도 철회할 수 있는 길을 제도적으로 터주고 있기 때문이다. 행정기본법 제19조에 의하면, 행정청은 △사정변경으로 처분을 더 이상 존속시킬 필요가 없게 된 경우 △중대한 공익을 위하여 필요한 경우 등에는 적법한 처분도 철회할 수 있게 돼 있다. 제2공항 계획은 이번 여론조사 결과에 따라 위 두가지 경우에 모두 해당하게 된다.

남는 문제는 도민들 중 찬성 의견을 가진 분들도 적지 않다는 사실이다. 제2공항 계속 추진여부는 도민의견 수렴결과에 따라 결정하도록 하고, 아쉬움이 크겠지만 그분들도 그 점은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그분들이 제2공항 사업에 찬성했던 이유나 바람마저 도외시해선 안될 것이다. 

많은 도민들이 제2공항 사업에 찬성했던 것은 꼭 그 사업 자체라기보다는 그 사업을 통해 기대하는 것들이 있기 때문이다. 공항을 좀더 편리하고 안전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하고, 경기 활성화와 소득증진, 지역균형 발전이 강력히 추진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제2공항 사업에 찬성했던 것이다. 외지 투기꾼들을 중심으로 한 개발붐이나 부동산 투기와 같은 부당한 사유가 아니라, 도민분들의 이러한 희망과 관심사는 정당한 것으로서 존중받아야 한다. 

다행인 점은, 도민들의 이런 희망이나 기대, 관심사는 제2공항 건설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얼마든지 이뤄지도록 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국토부와 중앙정부, 제주도와 도의회는 앞으로 힘을 모아 제2공항 갈등과정에서 명확히 드러난 도민들의 정당한 관심사와 바람이 실현되도록 하는 대안을 만들어가야 한다. 아울러, 그동안 성산지역 주민들이 개발행위제한, 토지거래허가 등으로 재산권 행사에 제약을 받은 데 따른 피해도 어떤 형태로든 정당하게 보상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제2공항 문제와 관련, 제주도민들은 지난 5년여간 징글징글한 고민과 토론과 분투 끝에 뚜렷한 의견과 의지를 분명히 드러냈다. 이제 남은 것은, 그에 따른 국토부 그리고 대통령의 결정이다. 그동안 거듭해온 약속에 부합하는, 도민들의 신뢰를 보호하는, 나아가 모든 제주도민 그리고 제주도를 진정 아끼는 많은 국민들에게 박수와 존경을 받을 수 있는 결정을 내리기를 기대한다.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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