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형인 명부 발굴, 21년만에 4.3수형인 333명 '무죄'...일괄재심 카드로 4.3특별법 통과 공로

지난 3월16일은 제주4.3의 완전한 해결을 위한 역사적인 날이었다. 

배보상과 특별재심 내용이 포함된 제주4.3특별법 전부개정안이 대통령이 참여한 가운데 국무회의에서 의결됐고, 제주지방법원에서는 4.3 당시 군사재판을 받고 육지형무소로 끌려갔다가 한국전쟁으로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수도 없이 행방불명이 됐던 333명에게 72년만에 재심을 통해 '무죄'가 선고됐다.

재판부는 4.3 당시 군사재판이 증거가 없는 '불법 재판'으로 판단했다. 이번 재판이 중요한 이유는 4.3 수형인에 대한 명예회복이 이뤄졌기 때문이다.

4.3특별법 개정과 4.3수형인의 재심 '무죄'를 이끌어낸데 가장 큰 역할을 한 인물이 있다. 추미애 전 법무부장관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추미애 전 장관은 17일 오후 1시 제주4.3희생자유족회와 4.3평화재단으로부터 '4.3 해결의 은인' 감사패를 받았다. 

추미애 전 법무부장관
지난 17일 [제주의소리]와 인터뷰를 진행한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 ⓒ제주의소리

[제주의소리]는 이날 오후 5시께 제주시 4.3트라우마센터를 방문한 추미애 전 장관과 인터뷰를 갖고 장관 사퇴 이후 근황과 4.3에 대해 애기를 나눴다.

추미애 전 장관은 1999년 수형인 명부를 발굴하면서 제주와 인연을 맺었다. 수형인 명부 발굴은 4.3 당시 군사재판과 일반재판이 제대로 진행하지 않은 명부상 재판으로 '불법'이었다는 것을 세상에 처음으로 알린 것이다.

추 전 장관은 "어제(16일)는 재심을 통해 수형인 명부에 있었던 335명이 무죄선고를 받은 기쁜 날이었다"며 "우리 역사 속에 슬픔만 있는 것이 아니구나, 기쁜 날도 있구나, 저는 현장에 없었지만, 뉴스를 보면서 막 몰입이 됐다"고 말했다.

추 전 장관은 "수형인 명부를 최초로 발굴할 때 제주4. 3이 제주만의 문제가 아니고 대한민국 인권사 가운데 하나의 참사이고 풀어야 할 과제라고 생각했다"며 "수형인 명부가 단초가 돼서 여기까지 온 것이고, 그래서 유족회 측에서 저에게 감사패를 수여한다고 초청해 주셔서 제주에 오게 됐다"고 밝혔다.

1999년 수형인 명부 발굴 당시 추 전 장관은 초선 국회의원이었다.

추 전 장관은 "4.3 문제를 풀어달라고 제주도민들께서 찾아오셨다. 당시 국회에서 제주4.3을 주제로 한 최초의 공청회 사회를 봤는데 일부에서 항의하고, 공청회를 방해하는 행위도 있었다"며 "4.3 문제를 어떻게 풀까 고민하던 중에 가장 객관적이고 증명할 기록을 찾기 위해 여기저기 찾아다녔다. 제주언론인과 함께 노력하다보니 수형인 명부를 손에 쥘 수 있었다"고 과거 기억을 끄집어냈다.

추 전 장관은 "수형인 명부를 보는 순간 이건 정부 공권력이 너무 참혹한 짓을 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명부 속에 있는 사람들은 10대 후반과 20대 초반 청년들이 많았고, 학생, 교사, 공무원, 농부 등 다양한 직업군이 있었다. 이런 평범한 분들이 엄청난 내란죄를 한 것 같지 않은데 구체적인 판결근거는 없고 형을 선고받고 육지 형무소 곳곳에 분산 수용된 것을 보고 4.3은 정말 규명돼야 하는 것이라는 것을 깨닫고 기자회견을 하게 됐다. 4.3이 전국적인 관심을 받게 되고, 국민의 마음을 흔들 수 있는 힘이 주어진 것"이라고 말했다.

4.3특별법 전부개정안이 배보상과 관련해서는 기재부, 불법 군사재판 무효화와 관련해서는 법무부의 반대로 지지부진한 상태에 있었다. 4.3특별법 개정에 돌파구를 낸 것도 추미애 전 장관이었다. '일괄 재심' 카드를 사용하게 된 것이다.  

ⓒ제주의소리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은 인터뷰에서 "수형인 명부를 최초로 발굴할 때 제주4. 3이 제주만의 문제가 아니고 대한민국 인권사 가운데 하나의 참사이고 풀어야 할 과제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제주의소리

추 전 장관은 "판결문이 없는데 어떻게 재심이 되느냐라는 토론이 많았다. 하지만 국가의 형벌권이 행사된 근거가 없었다. 유일한 자료인 수형인 명부를 봐도 그 근거가 없다"며 "그러면 이것은 공소기각이라는 논리로 무죄 취지로 공소기각 판결이 있었다. 그 후에 얼마든지 재심으로 무죄가 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추 전 장관은 "4.3특별법 개정안이 마련될 때 '군사재판 무효화'를 해달라는 제안이 있었다. 정부부처에 의견 조회를 했더니 삼권분립을 침해한다는 의견이 있었다. 사법부의 판결을 입법부가 법을 만들어 무효화 하면 사법부 영역을 침해하는 것이라 반대한 것"이라며 "그래서 법무부장관 지시로 검사가 직권으로 재심 청구를 일괄하면 일일이 유족들이 개별적으로 노력하지 않더라도 재심 재판을 받아서 명예회복을 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는 생각에 특별재심을 제안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3월16일 4.3 재판은 개별 유족들이 재심을 청구해서 무죄를 선고받은 경우다. 이제 4.3특별법 전부개정안이 통과되면서 남은 2000여명의 수형인 유족들은 특별법에 따라 일괄로 특별재심을 통해 무죄를 선고받을 수 있게 됐다. 

추 전 장관은 제주와 직접적인 인연은 없다. 1999년 수형인 명부를 세상에 발표하면서 제주4.3 관련 1호 명예도민증을 받았다.

추 전 장관은 "제주4.3은 한국 현대사의 비극 중에서도 가장 끔찍한 비극이다. 4.3 문제를 직시하고 제대로 풀지 않으면 똑같은 비극은 어디서든 일어난다"며 "4.3을 과거에 일어난 일이라고 덮어버려서는 우리는 앞으로 더 나아갈 수 없다. 그래서 제가 4.3 문제를 풀어야 된다고 결심하게 된 이유였다"고 말했다.

추 전 장관은 "제주도민들께서 연대를 잘 하시고, 인내심을 갖고 한단계씩 4.3 문제를 풀어오셨다"며 "평화와 인권 관련해서도 제주4.3은 다른 외국 사례에서 보기 드믄 아주 훌륭한 모델이라고 생각하고, 평화와 인권 교육의 장이 바로 제주가 가지고 있는 독보적인 가치"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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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7일 [제주의소리]와 인터뷰를 진행한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과 이승록 제주의소리 부장. ⓒ제주의소리

'제주4.3 해결의 은인' 감사패를 받은 것에 대해 추 전 장관은 "4.3 문제 해결을 위해 수형인 명부 발굴 등으로 유족회로부터 감사패를 주셨지만 너무나 과분하고 영광스럽다"며 "제주도민들이 오랜 시간 인내하고 연대하면서 4.3해결을 아주 합리적이며 이성적으로 풀어주셨다"고 공을 제주도민에게 넘겼다.

추 전 장관은 "제주도민이 4.3을 통해 평화의 가치를 더 높였고, 상생의 길을 열었다. 4.3 문제 해결의 주인공은 유족들과 제주도민"이라며 "앞으로도 인권과 평화를 지키는 상징과 교육의 공간으로 제주가 빛나기를 끊임없이 성원하겠다"고 말했다.

향후 행보에 대해서는 "정치를 해 온 입장에서 우리가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살아가야 되는 지, 경제나 남북문제, 평화, 외교문제 등 모든 문제에 대해 고민하고 해법을 낼 생각"이라며 "국민들이 대전환기에 저에게 역할이 필요하다고 요구하면 저도 긍정적으로 제 역할을 다하겠다. 어떤 자리를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가지 고민을 하고 있다"고 대권 도전 의지를 에둘러 피력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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