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길웅의 借古述今] (215) 그걸 해내면 내 손에 장을 지지겠다

* 해내민 : 해내면, 해내기만 하면
* 장을 지지티여 : 장을 지지겠다

감각적이면서 아주 지독한 표현이다. 전국적으로 통용되는 속담을 통틀어 아마 이만큼 서릿발 같은 언어는 없을 것이다.

‘그게’ 어떤 일인지, 무엇을 뜻하는지 모르나 사생결단의 독기를 품어서 하는 말이다. ‘손에 장을 지진다.’ 함은 웬만한 상황이 아니다. ‘지진다’란 반찬을 만들 때 물이 펄펄 끓는 냄비 속에 고기와 채소 등을 넣고 장으로 간을 맞춰 물이 다 잦게 조린다는 표현이기 때문이다.

고열로 끓는 냄비의 화기(火氣) 속에 다른 것이 아닌 자신의 손을 넣겠다는 것이니, 그냥 대충해 보는 소리가 아니잖은가.

풀어서 말하면, “힘이 장사엔 허여도 안될 건디, 시상에 게난 느가 그걸 해지켄 말가? 경허민 나 앞에서 해보라. 허기만 허민 나 손에 장을 지지키여. (힘이 장사라도 안될 건데, 세상에 그러니까 네가 그걸 할 수 있다는 말이냐?)”다.

할 말은 거리낌 없이 하고, 사리에 맞지 않으면 밖으로 내놓아 만인 앞에서 바로 잡으려 했다. 마을에 있는 ‘비석거리’가 공론(公論)으로 공판(公判)하던 곳이었다. 출처=제주학아카이브, 강만보.
할 말은 거리낌 없이 하고, 사리에 맞지 않으면 밖으로 내놓아 만인 앞에서 바로 잡으려 했다. 마을에 있는 ‘비석거리’가 공론(公論)으로 공판(公判)하던 곳이었다. 출처=제주학아카이브, 강만보.

세상엔 될 수 없는 일을 할 수 있다고 허풍을 떠는 사람, 자신 없으면서도 그쯤이야 해낼 수 있다고 공연히 으름장을 놓는 사람이 뜻밖에 많다. 도저히 가능하지 않을 일을 면전에서 바로 해 보일 것처럼 으스대니, 들이대고 어디 한 번 해 보아라 맞설밖에. 그냥 심심하게 해 보는 소리가 아니다. 만일 내 눈앞에서 해내기만 하면 손에 장을 지지겠다고 하고 있다.

말 속에 팽팽히 긴장감이 감돈다. 하지만 아무래도 결과는 뻔한 것이다. 처음부터 황당한 일이 아니잖은가. 해내겠다 호언장담했던 사람이 ‘내 손에 장을 지지겠다’고 선언한 쪽에 백기를 들고 말 테니까. 안되는 건 안되는 것이다.

상식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일인데, 주제 파악도 못하고서, 너무 허장성세로 나올 것이 아니었다. 머쓱해도 당장에 기고만장했던 헛말을 거두어야 한다. 손에 장은 아무나 지지는가, 가능하기나 한 것인가.

우리 선인들, 시시비비를 가리는 데 머뭇거리거나 서슴지 않았던 것을 이 말에서 읽고도 남는다. 사철 비바람 속에 힘들게 농사 지으며 살았으니 웬만한 불의나 소소한 거짓 앞에 당당했다. 할 말은 거리낌 없이 하고, 사리에 맞지 않으면 밖으로 내놓아 만인 앞에서 바로 잡으려 했다. 마을에 있는 ‘비석거리’가 공론(公論)으로 공판(公判)하던 곳이었다.

옳지 않은 것을 응징하되, 한마디 말 못하고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게 하는 육성이 쟁쟁(錚錚)하개 들러 오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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