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댁, 정지에書] (21) 몸국, 고사리육개장 / 김진경 베지근연구소장, 제주음식연구가

밥이 보약이라 했습니다. 바람이 빚어낸 양식들로 일상의 밥상을 채워온 제주의 음식은 그야말로 보약들입니다. 제주 선인들은 화산섬 뜬 땅에서, 거친 바당에서 자연이 키워 낸 곡물과 해산물을 백록이 놀던 한라산과 설문대할망이 내린 선물로 여겼습니다. 제주에서 나고 자란 김진경 님은 제주 향토음식에 대해 공부하고 있는 젊은 연구자입니다. 격주로 '제주댁, 정지에書'를 통해 제주음식에 깃든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편집자 글]
몸국. 사진=김진경.
몸국. 사진=김진경.

※ [제주의소리] 관리자입니다.
아래아 표기에 대한 일부 독자님에 대한 답변입니다.
'제주댁, 정지에書'의 '몸국과 고사리육개장, 제주 청년들의 힐링음식'에서 본래 필자의 원고에는 '몸국'에 대해 아래아로 표기됐으나, 현재 모든 온라인 시스템 상 아래아는 현재 기술로는 구현할 수 없는 상황이기에 한글 모음 'ㅗ'로 차용하고 있음을 양해드립니다. 

[기사 수정=23일 오전 9시 5분]

“우린 몸국 안 끓였지. 우린 나물국으로 하객들 맞았던 거라.”

2018년 6월, 소길리의 양oo 할아버지의 이 한마디에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제주에서 가장 경사스러운 날인 가문잔치에 하객들을 대접하는 국으로는 으레 몸국을 꼽기 때문이다. 실제 많은 매체나 제주의 향토음식점도 몸국을 그렇게 소개한다. 우선, 최근의 경향을 보면 ‘가문잔치 하객접대 음식=몸국’이라는 인식이 보편화 된 것은 확실해 보인다.

사실, 제주의 가문잔치의 모습이나 거기에 쓰인 음식은 시기별로 큰 차이를 보인다. 나는 2000년 이후 결혼식을 치렀고 대부분의 친구들도 그 시기에 결혼을 했기 때문에 가문잔치에서 몸국은 단 한 번도 받아본 적 없다. 그 대신 성게미역국이나 전복미역국에 수육 한 접시, 돗수애라고 불리는 제주식 피순대와 모른 둠비라 불리는 단단한 두부가 한 접시에 담겨져 있는 하객상을 받아본 경험은 있다. 게다가, 나의 세대에게는 그런 하객상도 흔하지 않은 풍경이다. 내가 다녀온 대부분의 결혼식은 대부분 호텔이나 전문 예식장에서 치러졌고 따라서 하객 음식은 당연히 뷔페 음식이었다.

그래서 가문잔치에는 몸국이나 고사리육개장을 끓여서 대접했다는 이야기에는 어쩌면 82년생인 나에게는 영 어색한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 오히려 몸국은 엄마가 집에서 돔베고기를 만들던 날 상에 오르던 별미였다.

고사리육개장을 처음 맛보았던 것은 지금으로부터 고작 10년, 2010년 제주시 관덕정의 한 식당에서였다. 그 당시 11시 정도의 늦은 시간이었는데 처음 받아 본 고사리육개장을 마주하고는 “이게 뭐지? 내가 시킨 이 죽 같은 국이 고사리육개장이라고?”라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었다.

그러나 이미 대중들은 몸국이나 고사리육개장을 하객들이 받는 음식으로 인지하고 있었고 나도 여러 책과 매체를 통해 그렇게 학습했기 때문에 이 두 개의 제주 음식을 가문잔치 음식이라고 소개하고 있었다.

그런데 3년 전, 소길리에서 부도감을 하셨다는 양oo 할아버지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해 주셨다.

소길리는 중산간이라 그 때 당시 (50년대) 몸국으로 하객을 맞이하지 않았다고. 당연히 돼지를 잡아 고기와 순대를 만들었고 그 돼지 삶은 물에 배추와 무를 넣은 “나물국”을 만들어 하객들을 대접했다고 한다. 실로 놀라웠다. 몸국, 고사리해장국은 그렇다 치더라도 성게미역국이나 전복미역국도 아니고, 우리가 일상적으로 먹었던 배춧국, 뭇국이라니.

그렇다면, ‘제주 가문잔치에서 하객음식의 국은 몸국과 고사리육개장’이라는 말이 정말 맞는 것일까?

고사리육개장은 말 그대로 육개장이라는 단어를 채택하여 사용하고 있다. 아니면 고사리 해장국이라고도 부르기도 한다. 자료에 따르면 제주도에는 ‘고사리국’이라는 음식이 있었는데, 이 음식이 식당의 메뉴가 되면서 이름이 고사리 육개장 혹은 고사리 해장국이라고 변한 것 같다. 육개장이라고 하지만 분명 제주의 고사리육개장은 육지의 육개장과 그 모습, 재료, 맛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육지의 육개장은 소고기로 육수를 낸 붉고 칼칼한 국물에 고사리, 소고기 등의 재료가 그 모양을 그대로 살려 들어가 있다. 반면, 제주의 고사리육개장은 마치 죽과 같은 형태이다. 고사리는 푹 삶아 손으로 조물조물 주물러 형체를 알아 볼 수 없도록 만든 다음 메밀가루를 풀어 넣어 걸죽한 느낌을 살린다. 또 육수는 육지의 소고기 육수 대신 베지근한 돼지고기 육수를 사용한다. 여기에 사용된 돼지고기 역시 푹 익혀서 흐물흐물하고 풀어진 형태이다. 베지근한 돼지고기 국물에, 듬삭한 메밀가루와 퍼진 고사리를 넣은 국 한 그릇이면 제주의 산과 들의 향을 온전히 느낄 수 있다.

그럼 과연 몸국은 언제부터 먹었을까?

돼지를 삶은 육수는 분명 우리 어르신들이 평소에 쉽게 얻을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가정에서는 일상의례에서 결혼을 하거나 상을 치르게 될 때만 돼지를 잡는다. 그리고 그 돼지를 이용하여 순대와 수육을 만들어 괴깃반(접시 하나에 수육, 피순대, 마른두부를 올려 준다)을 만들어 1인1반을 원칙으로 나눈다. 그리고 순대와 돼지고기를 삶은 국물로 손님들을 대접했다. 적어도 지금 노년층들에게는 돼지는 특별한 날만 먹을 수 있었던 음식이었다. 이 돼지 삶은 육수에 여러 번 빨아 불린 모자반(몸)을 넣고 메밀가루를 풀어 걸죽하게 만든 국이 몸국이다. 역시 베지근한 돼지고기 육수에 듬삭한 메밀가루와 푹 불어난 몸을 넣은 국 한 그릇이면 제주의 바다의 향을 온전히 느낄 수 있다.

몸국. 사진=김진경.
고사리육개장. 사진=김진경.

내가 아는 것은 여기까지이다. 몸국과 고사리육개장이 언제부터 하객음식으로 등장했는지는 내가 알아내야 할 수수께끼가 된 듯 하다.

그런데 나는 여기서 엉뚱한 상상을 한번 해 보았다. 모자반과 고사리는 제주사람들에게 중요한 환금작물 중 하나였다. 사실, 적어도 일제강점기 이전 제주 사람들에게 말린 식재료는 생소했을 것이다. 제주에서는 사시사철 푸른 채소를 얻을 수 있었던 탓에 들과 산과 바다에서 나는 것들을 굳이 말려 먹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일제강점기 전후 제주 사람들은 무언가를 말려 저장성을 좋게 하여 판매하면 부가가치가 올라간다는 것, 그래서 돈으로 교환이 가능하다는 점을 알게 된다. 즉 환금작물에 대한 인식이 생겨난 것이다. 특히 바다가 준 선물인 미역, 모자반, 톳, 우뭇가사리는 물론 들과 산에서 나는 고사리, 표고버섯도 일본사람들이 사랑하는 식재료였다. 제주의 전복과 소라도 마찬가지였다. 돌아가신 외할머니는 해녀이셨는데, 당시 꼬마였던 나에게 ‘일본 사람들이 가파도 해녀가 가지고 오는 것은 다 좋아한다’고 말씀하시곤 하셨다. 그 ‘가파도 해녀가 가지고 오는 것’은 제주 바다에서 나서 일본으로 수출되던 먹거리들을 뜻했을 것이다. 이처럼, 제주의 말린 식재료들은 귀한 몸 자랑하면서 일본으로 수출됐던 효자상품이었다. 그리고 아마 이런 말린 식품들은 돈이 되었던 식품이었기 때문에 팔기위해 평소에는 먹지 않았을 것라는 생각을 해 본다.

이 지점에서 나는 하객음식으로 주로 언급되는 몸국, 고사리육개장, 성게미역국, 전복미역국들의 공통점을 조심스레 생각해 보았다. 그런데 이상하게 전부 환금작물들과 관련이 있다. 몸국을 끓일 때도 대부분 건몸을 불려 사용한다. 미역도 역시 대표적인 환금작물이었는데 거기에 역시 해녀들의 주 수입원이었던 성게와 전복을 더했다. 물론 이는 나의 상상력이 만들어 낸 억측일 수 있다. 하지만 가문의 가장 경사로운 날, 혼인하는 자녀에 대한 사랑과 하객들에 대한 감사하는 마음으로, 팔아서 돈을 마련해야 하는 환금작물들을 아낌없이 사용해 음식을 만들었던 것 아닐까?

물론 집집마다 사정이 다르기 때문에 몸국에 쓰이는 재료는 지금보다 훨씬 다양했을 수 있다. 조심스레 추측을 해 보지만 확실히 고사리육개장과 성게미역국, 전복미역국은 가장 최근에 생겨난 하객음식인 것 같다. 제주사람들의 경제적 상황이 나아졌고 고기값이 싸지면서 돼지고기는 흔한 식재료가 되었다. 모자반과 고사리도 꼭 제주산이 아니더라도 구하기 쉬워졌다. 게다가 외국산 메밀가루가 들어오면서 몸국이나 고사리육개장을 좀 더 대중화된 가격으로 즐길 수 있다. 그래서 몸국과 고사리육개장 대신 오히려 비싼 식재료인 성게나 전복이 가문잔치나 상집에서의 음식으로 자리잡지는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몸국. 사진=김진경.
고사리육개장. 사진=김진경.

그래서 오히려 처음 들어본 양oo 할아버지의 나물국이 궁금해졌다. 실제로 1995년 제주도민속자연사박물관에서 펴낸 “제주도의 식생활”이라는 책에 기록 된 당시 하객맞이 음식을 보니 재미있는 부분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 책에서 보면 56년도 결혼했던 3도1동 김oo은 국수를 일반 하객들에게 제공했다, 북제주군 한림읍 대림리에서도 멸치국물에 달걀지단을 넣은 국수와 밀가루 물을 넣은 돼지갈비 국을 대접했다고 한다. 한림리의 문oo과 구좌 하도로 시집간 변oo도 국수를 대접했다고 나와 있다. 제주시 연동의 문oo은 성게국이었다. 서귀포 예례동은 성게국, 대림리의 다른 사례는 옥돔국, 오조리는 성게미역국이 하객상에 등장한다.

2017년 제주특별자치도와 제주한라대학교에서 출간한 “제주음식생활문화사”는 ‘돗 삶은 국물’이라는 표현이 있다. 이 ‘돗 삶은 국물’은 몸(모자반), 고사리 또는 무청을 넣어 만든 국에 메밀을 넣어 만든 순대가 우러나오면서 나온 국물로 이웃에 돌려 나누어 먹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결국, 제주의 가문잔치를 대표하는 국이 무엇인지 단언할 수 없을 것 같다.

아무튼 가문잔치 하객음식의 범주를 정하는 것 보다 더욱 확실한 것은, 지금 제주의 청년들 중 힐링음식으로 몸국과 고사리육개장, 고기 국수를 꼽는 사람들이 무척 많다는 점이다. 내가 사는 동네의 ‘몸국집’으로 유명한 한 식당이 있다. 이 식당은 주변에서 드물게 새벽까지 운영하는데 밤이고 낮이고 테이블이 사람들로 가득 차 있다. 나도 역시 코로나19가 심해지기 전에 새벽2시 쯤, 이 몸국 한 그릇으로 속을 달래고 들어간 적이 있다.

고사리육개장도 마찬가지이다. 내가 좋아하는 고사리육개장집은 밀려드는 관광객들 때문에 도민들은 갈 수 없는 일명 ‘핫플’이 되었지만 여전히 속이 허하거나 뜨끈한 것이 생각 날 때 그 집 고사리육개장이 떠오른다. 고기국수집은 또 어떤가. 간단하지만 든든하게 끼니를 때울 수 있는 식사이면서도 회식의 마무리는 고기국수로 끝내야 마무리가 된 것 같다고 하는 젊은이들도 여전히 많다.

ⓒ이로이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지근한 돼지고기 베이스의 국물에 폴폴한 메밀가루를 풀고 몸과 고사리를 가득 넣은 몸국과 고사리육개장 한 그릇은 별 다른 반찬 없이도 제주사람들의 배를 든든하게 채워주는 음식임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이로이로

물론 이 음식들이 역사가 긴 제주전통음식이 아닐 수도 있다. 어른들은 고기국수가 무슨 제주 전통음식이냐며 반문하실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지근한 돼지고기 베이스의 국물에 폴폴한 메밀가루를 풀고 몸과 고사리를 가득 넣은 몸국과 고사리육개장 한 그릇은 별 다른 반찬 없이도 제주사람들의 배를 든든하게 채워주는 음식임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수업으로 고사리육개장이나 몸국을 하게 되는 날이면, 나는 항상 엄마에게 몸국과 고사리육개장을 챙겨준다. 다른 음식을 가져다 드릴 때는 시큰둥 하실 때도 많은데 꼭 몸국이나 고사리육개장을 드리러 가겠다고 전화를 걸면 항상 반갑게 대답하신다.

“아이고, 난 다른 건 몰라도 몸국이랑 고사리육개장은 언제나 좋아. 갖다 줘.”

내가 좋아하는 한 친구는 나에게 이런 말을 해 주었다.

“저희 엄마는 집을 비우게 되는 날이 오면 몸국을 한 솥 가득 끓여놓고 가요.”

그 친구네 집에서는 이 국이 엄마의 빈 자리를 단단하게 채워주는 역할을 하는 것 같다.

그러고 보니 나는 잠시 집을 비우게 되면 아이들을 위해 카레를 한 솥 가득 끓이고 나온다. 제주의 아이들에게 카레라니. 이제부터라도 아이들이 좋아하는 카레 대신에 엄마와 할머니가 좋아하는 몸국으로 엄마의 빈자리를 채워주어야겠다.

# 김진경

20대에 찾아온 성인아토피 때문에 밀가루와 인스턴트 음식을 끊고 전통음식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떡과 한과에 대한 공부를 독학으로 시작했다. 결국 중학교에서 아이들 가르치던 일도 그만두고 전통 병과점을 창업해 새로운 인생을 시작했다.

이후 제주전통음식으로 영역을 확장해 현재 베지근연구소의 소장을 맡아 제주음식 연구와 아카이빙, 제주로컬푸드 컨설팅, 레시피 개발과 쿠킹랩 등을 총괄기획하고 있다.

현재 제주대학교 한국학협동과정 박사과정을 밟으며 제주음식 공부에 열중이다. 두 아이를 키우고 있어 어멍의 마음으로 제주음식을 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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