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왓 칼럼] (27) 노인들도 사람답게 살아가는 세상을 위해

편견으로 무장한 이들이 사회적 약자들에게 여전히 반인권적 발언과 행동을 주저하지 않는 일들을 우리는 종종 목격하곤 합니다. 존재 자체로 차별받는 사회적 약자들이 있어선 안됩니다. 여성, 장애인, 성소수자, 이주노동자, 난민 등 대상은 다르나 일상 곳곳에서 여전히 차별이나 혐오, 폭력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독립언론 <제주의소리>가 인권문제에 천착한 '인권왓 칼럼'을 격주로 연재합니다. 인권활동가들의 현장 목소리를 싣습니다. [편집자 글]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명저 ‘노인과 바다’에는 한 노인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이 소설에서 노인은 어부이기는 하지만, 오랜 기간 고기 한 마리 잡지 못한다는 세간의 비웃음을 받는 존재이다. 그런 노인에게도 자신을 믿고 따라주고 이야기를 나누는 소년이 있었다. 세상의 온갖 훼방에도 불구하고 노인은 홀로 바다로 나갔고, 기어코 큼지막한 청새치 한 마리를 잡고야 만다. 하지만 그조차도 상어의 공격을 받아 뼈만 남게 되고, 결국 청새치의 뼈만 들고 항구로 돌아간다. 그리고 소년은 노인을 위로하고, 노인은 행복감에 젖어든다. 

영화 '노인과 바다' 포스터. 출처=네이버영화.
노인 인권은 노인들도 사람답게 살아가는 세상을 의미한다. 노인들도 사람으로서 자신들의 주체적인 삶을 상상하고 그렇게 살 수 있어야 한다. 영화 '노인과 바다' 포스터. 출처=네이버영화.

주민센터 공공형 일자리에 참여하고 돌아오신 어머니가 얼굴 가득 웃음을 채운 채 오늘 하루 누구를 만났고, 무슨 이야기를 했고, 어떤 기분이었는지를 신나게 이야기하셨다. 딴 데 정신이 팔려 있어 듣는 둥 마는 둥이지만, 어머니는 그래도 이야기를 들어주는 이가 있어 더 신이 나는 모양이다. 그러더니 올해 들어 어머니는 아쉬운 소리를 하신다. 기본 소득이 있어서 공공형 일자리에서 제외되었다는 것이다. 더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서 당연한 결과라고 받아들이셨지만, 정말 많이 아쉬워했다. 그 때 만난 친구들이나 더 새로운 친구를 만날 일이 없어졌다면서 약간은 우울해 하셨다. 

우리 사회에서 노인은 복지의 우선 대상 중 하나이다. 노인들을 위한 각종 수당이나 편의, 공공시설도 제공한다. 당연히 공동체가 부양의 의무를 가지고 노인들을 위한 다양한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그런데 문제는 노인들을 대상으로만 여기고, 사회의 주체로 인정하지 않는 사회적 환경이다. 

전화를 걸어 무엇 하나 고장 신고를 하려 해도 ARS는 그리 쉬운 과정이 아니다. 키오스크의 조작 몇 번으로, 굳이 말하지 않아도 척척 요리가 나오는 세상이지만 노인들에게는 뭔가 아주 복잡하고 화려한 색상의 번뜩임이다. 한참을 서 있다가 무조건 나이가 어린 사람에게 물어본다. 어떻게 하는 거냐고? 

사회적으로 그리고 기술적으로 사회는 상당히 빠른 속도로 변화하고 있으며, 그 사회에서 사는 방식도 크게 달라지고 있다. 그 속도와 방식에 나이가 들어가는 사람들은 점차 소외감을 갖게 되며, 결국에는 체념하게 된다. 사회는 점점 더 노인이라는 사람들의 주체성을 대상으로 만들어가면서, 사회적 효율성을 증진시킨다. 사회의 일반적인 시스템에서 노인들을 위한 여러 방편들은 소비력이나 생산력이 거의 없는 사람들을 위한 비용의 증가로 치부되기 십상이다. 

이런 상황에서 국가는 노인들을 위한 다양한 사회적 지원책을 쏟아내며 노인복지를 강화한다. 노인을 위한 사회복지 서비스의 강화는 노인들로부터 큰 환영을 받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이러한 노인복지 서비스의 강화는 그 이면에 숨겨진 큰 단점이 있다. 노인들이 복지서비스의 대상으로만 파악이 되고, 노인들의 사회복지 서비스에 대한 의존이 심화된다는 점이다. 

다시 헤밍웨이의 소설로 돌아가 보자. 노인은 무엇 때문에 청새치를 잡고자 했을까? 그리고 왜 노인은 소년의 위로에 행복감을 느꼈을까? 그리고 다시 왜 어머니는 가정형편이 어렵지도 않은데 공공형 일자리를 놓친 것이 아쉬웠을까? 

국가인권위원회의 모토는 단순명료하다.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이다. 인권은 모든 사람이 누구나 다 인간답게 살아가는 것을 추구한다. 그리고 그 사람은 다른 사람들의 시각으로 측정되거나 판단되는 사람이 아니다. 고기 한 마리 못 잡는 어부일지 모르지만, 고기를 잡으려는 노인은 여전히 어부이다. 나이가 들어 신체적 능력이 쇠약해지는 노인일지 모르지만, 여전히 사람이다. 사회적 성과가 미비할지 모르지만, 또는 청새치의 뼈인지 상어의 뼈인지도 구분 못 하는 세상일지 모르지만, 노인은 자신이 원하는 고기를 잡았다. 그리고 소년의 위로를 들으며, 누군가가 자신과 함께 있다는 것에 행복을 느꼈다. 어머니가 공공형 일자리를 통해 얼마나 벌었는지? 그 일이 얼마나 사회적으로 성과를 냈는지 모르겠지만, 어머니는 일하는 것 자체를 기뻐했다. 바다 위의 노인처럼 누군가를 그리워했고, 누군가와 이야기 나누고 싶어 했다. 하지만 공공형 일자리는 취약한 경제력을 가지 노인을 위한 사회복지제도로만 귀결 되어 버렸다. 그 이상 나아가지 못한 것이다. 의도하지 않았겠지만, 그 일자리가 가지고 있었던 다양한 사회적 의미가 간과되어버린 셈이다. 많이 아쉽다. 

노인 인권은 노인들도 사람답게 살아가는 세상을 의미한다. 

신강협 제주평화인권연구소왓 상임활동가.
신강협 제주평화인권연구소왓 상임활동가.

노인들을 위한 복지제도뿐만 아니라, 노인을 위한 노동환경이나 업무환경 개선, 그리고 노인 인권에 대한 사회적 인식의 확산도 필요하다. 예를 들어 공공형 일자리가 단순한 일자리가 아닌 노인들의 사회적 기여의 기회, 그리고 사회적 관계를 형성하는 시간과 공간, 그런 의미들도 부가 되었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노인들을 위한 사회복지제도는 필수적이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가 되어서는 안 된다. 노인들도 사람으로서 자신들의 주체적인 삶을 상상하고 그렇게 살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다 함께 살아가야 한다. / 신강협 제주평화인권연구소왓 상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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