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시선]  제3차 종합계획 수립 용역 논란을 보며

본란을 통해 원희룡 도정의 제주미래비전을 높게 산 적이 있다. 도백이 누구든 평소 도정 칭찬에 인색한 편이라 오글거림이 없지 않았으나, 기대와 바람을 드러낸 것이기도 해서 글에 대한 반응에 신경쓰지 않으려 했다. ‘제주판 3김’의 폐해 종식을 고하며 등장한 원 도정이 청정과 공존을 핵심 가치로 삼은 것은 잘했다는 내용이다. 수십년의 제주 개발사(史)에서 빚어진 문제점을 제대로 짚었다고 판단했다.

제주미래비전은 반드시 수립해야 하는 법정계획도 아니었다. 그만큼 난개발과의 결별, 변화에 대한 의지가 대단하다고 여겼다. 비전 수립에는 16억원이 들어갔다. 제주를 제주답게 가꿔가는데 새 이정표를 세울 수 있다면 이만한 혈세는 아깝지 않다는 생각도 했다.  

그러나 비전은 비전일 뿐이었다. 원 지사가 ‘몸소’ 그걸 보여줬다. 

제주미래비전 보고서에는 공항·발전소·쓰레기매립장·화장장 등을 지을 경우 사회적인 공론화와 합의과정을 거치도록 의무화하는 방안이 들어 있었다. 갈등 현안을 폭넓은 소통으로 풀겠다는 취지로 해석됐다.

2019년 9월18일 도의회 임시회 본회의장. 마침 제2공항 공론화 요구 청원이 도의회에 접수된 날이었다. 청원에는 도민 1만2000여명이 서명했다. 

한 도의원이 미래비전 보고서를 근거로 제2공항 공론조사 의향을 묻자 원 지사는 주저없이 이렇게 대답했다. 

“제주미래비전은 제주를 위해 가장 이상적이고 발전적인 방안을 총 취합한 것이다. 제도에 반영된 것도 있고, 그렇지 않고 추후 과제로 남겨놓은 것도 있다…공론화를 하려면 구체적인 제도로 뒷받침돼야 한다” 

미래비전이 구두선에 그칠 수도 있음을 실토하는 순간이었다. 물론 비전이라는게 미래의 야망, 리더와 구성원이 응시하는 먼 지점까지 담아내는 것이어서 100% 신속한 이행을 요구할 수 없으나 원 지사의 태도는 한마디로 “그건 그거고…”였다. 이어진 답변에서도 공론조사 불가 입장을 분명히 했다.

무심한 세월은 흘러흘러 바야흐로 제3차 종합계획(2022~2031년)을 수립해야 할 때가 도래했다. 늘 그렇듯 문제는 공감과 소통이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제2공항 문제를 논하려는게 아니다. 원 지사는 여론조사로 확인된 민심과는 다른 입장을 내놓았으나 대세는 이미 기울었다. 국토교통부가 상식적으로 판단하는 일만 남았다.

정작 하고픈 말은 따로 있다. 제주특별법에 따른 최상위 법정계획인 제3차(2022~2031년) 제주국제자유도시 종합계획 수립과 관련된 얘기다. 

자그마치 12억8300만원이 투입된 용역이다. 지난해 4월 시작한 용역은 오는 5월28일까지라고 하니, 이제 마무리단계에 접어든 셈이다.

최근 도의회 보고 자리에서 여러 비판이 제기됐다. 아직도 핵심사업 하나 선정하지 못하는 등 우왕좌왕하고 있다거나, 뜬구름 잡기식이라는 지적이 쏟아졌다.

계획 대비 투자 실적이 매우 저조한 점을 들어 1, 2차 종합계획이 허명의 문서로 전락했다, 앞서 JDC(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가 자체 수립한 미래전략을 쫓아가려 한다는 비판도 나왔다. 

나름 일리있는 지적들이나, 그것보다는 소통의 문제를 짚고 싶다. 한 국가, 한 지역의 미래상을 그리는 것은 구성원들의 동의와 공감이 필수적이다. 일방적이어선 도의원들이 지적한 허명의 문서, 원 지사가 사실상 고백한 구두선이 되기 십상이다. 그러잖아도 지금 제주는 비전의 혼돈을 겪고 있다. 

제2차(2012~2021년) 종합계획이 좋은 사례다. 

‘互通無界 好樂無限 濟州’(호통무계 호락무한 제주). ‘교류와 비즈니스의 경계가 없고, 무한한 만족과 즐거움을 얻는 곳, 제주’라는 뜻이란다. 2011년 12월 확정된 제2차 종합계획에는 제주의 비전이 이렇게 명시됐다. 10년이 지났는데도 화끈거림을 떨쳐버릴 수 없다. 그 용역에는 13억5000만원이 지출됐다. 

아무리 그 시절 중국, 혹은 차이나 머니가 화두였다지만, 도민 교감이 배제된 국적 불명의 비전은 혀를 차게 만들었다. 

2019년, 제3차 종합계획의 과업지시서 초안을 다듬을 당시 제주도가 약속한 ‘도민참여 보장’ 약속이 제대로 지켜지고 있는지 궁금하다. 당시 제주도는 종합계획 수립 사상 최초의 ‘도민참여단’ 구성을 천명한 바 있다.

1년6개월 전 쯤 <소리시선> 칼럼에서 인용한 국제자유도시 전문가의 말은 여전히 유효하다. 

“비전은 … 구성원 전원의 공유와 공감이 생명이다. 허황되거나 과장되게 현란한 수식어로 설정된 비전은 비전의 운영 초기부터 구성원에게 피로감을 주거나 외면당하기 십상이며 리더의 신뢰를 파괴하게 된다”

제주의 미래를 설계하는데 시간에 연연할 필요는 없다. 무엇보다 이번 3차 종합계획은 ‘생명력’이 있었으면 좋겠다. <논설주간 / 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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